• 최종편집 2019-06-25 (화)

‘일본 성리학 원조’ 강항 선생 위령제 봉행

日 에히메현 오즈시에서 일본인 1백여명 참여 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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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10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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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항 기일 맞춰… 오즈시 초등교재에도 업적 실려
오는 19일 교토 류코쿠대학서 국제학술세미나 열려


일본에 조선 성리학을 전파한 강항 선생 위령제가 최근 일본 현지에서 열렸다.
수은 강항(姜沆) 선생 위령제실행위원회 주최로 지난 8일 일본 에히메현(愛媛) 오즈시(大洲市) 시민회관에서 열린 이날 위령제에는 무라카미 쓰네오 수은강항선생 일본연구회장을 비롯 사토 신지로 (사)Peace Love in 에히메 회장 등 100 여명이 참여, 강항 선생의 뜻과 업적을 기렸다.
1597년 정유재란 당시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끌려간 강항 선생은 후지와라 세이가(藤原惺窩: 1561~1619)에게 성리학을 전함으로써 일본 성리학의 원조(元祖)가 되었다.
강항 선생이 억류생활을 했던 오쓰성에 1990년 ‘홍유강항현창비(鴻儒姜沆顯彰碑)’가 세워져 선생을 기리고 있다.
강항 선생의 고향인 영광군과 선생이 머물렀던 일본 오쓰시는 지난 2001년부터 교류를 갖고 있다.
전 오즈시청 공무원이었던 무라카미 쓰네오씨는 우연한 기회에 수은 강항 선생에 대한 자료를 접하고 깊은 관심을 갖게 됐다. 퇴직 후에는 본격적으로 강항 연구에 매달렸으며 선생의 고향인 영광군을 수차례 방문했다. 현재 오즈시 강항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무라카미씨 등 강항연구회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오즈시 초등학교 사회과목 부교재에는 ‘조선 선비 강항’에 관한 내용이 수록돼 있다. ‘강항선생이 31살 때 포로로 오쓰성에 압송되어 왔으며, 그때 유교를 가르쳐 일본 유교의 근본이 되었다’는 내용이다. 오즈시 50명의 강항연구회 회원들은 강항 선생 관련 책자를 발간하는 한편 선생의 발길이 닿은 곳을 답사하며 선생의 뜻을 기리고 있다.
이들 회원들의 활동 덕분에 강항이 일본에 처음 도착한 나가하마(長浜) 해안에서 오쓰성까지에는 강항선생과 관련된 안내판이 자리하고 있고 그 나무 안내판에는 강항선생이 쓴 한시(漢詩)도 새겨져 있다. 주민들은 강항 선생과의 인연 때문에 오즈시가 일본유교를 융성케 한 도시가 됐다는 사실을 매우 의미 깊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즈시에서 강항선생위령제가 열리게 된 까닭이다.
강항 선생은 일본 오사카(大阪)로 끌려가 학식 높은 승려들과 교유하며 유학을 가르쳐 주는 한편, 그곳의 지리와 군사시설을 비롯한 적정(敵情)을 비밀리에 인편으로 고국에 보고하였으니 그글을 모아 엮은 책이 간양록이다.
1598년 교토(京都)에 이송되어 그곳에서도 적정을 적어 밀송(密送)하고, 1600년 포로생활에서 풀려나 가족들과 함께 고국에 돌아왔다. 1602년 대구교수(大丘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스스로 죄인이라 하여 얼마 후 사임하였고, 1608년 순천교수(順天敎授)에 임명되었으나 역시 취임하지 않았다.
경사백가(經史百家)에 통달했으며 그림에도 뛰어나 인물화와 송화(松畵)에 특기가 있었다. 영광 용계사(龍溪祠)에 배향되었다. 저서로는 《수은집(睡隱集)》 《간양록(看羊錄)》 《운제록(雲堤錄)》 《건거록(巾車錄)》 《강감회요(綱鑑會要)》 《좌씨정화(左氏精華)》 《문선찬주(文選纂註)》 등이 있다.  
 한편 한국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석무)는 일본 강항연구회와 함께 오는 19일 일본 교토 류코쿠대학(龍谷)에서 강항 선생 국제학술세미나를 갖는다. 한국측에서는 주제발표를 하는 김덕진 광주교육대학교 교수를 비롯 40여명이 참여한다.  
/손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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