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4-05 (일)

'동학농민군 피울음' 옛 나주읍성 111년 만에 윤곽

2018년 4대문 복원 완료이어 '서성벽' 부분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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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3.1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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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수차례 공격 실패…日軍에 수천명 사상
 

나주읍성 서성벽.jpg


동학농민군의 피울음과 한이 밴 옛 나주읍성(羅州邑城) 서성벽이 일제에 의해 지워진지 111년여 만에 옛 윤곽을 드러냈다.
나주읍성 서성문을 기점으로 좌우로 축성된 서성벽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역동적인 역사로 평가받는 동학농민혁명(1894년) 당시 농민군과 관군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서글픈 역사의 현장이다.
그해 동학농민군이 전국 고을 중 조정에 세금을 가장 많이 내는 전남 나주로 진출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주읍성의 4대문 중 서쪽에 위치한 서성문을 수차례 공격했지만 실패했다.
무명적삼을 걸친 농민군은 마치 '하얀 포말을 품은 거친 파도'처럼 기세를 올리며 서성벽을 넘으려 했지만 관군과 현대식 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의 수성에 막혀 수천 명의 사상자 만 내고 산야와 내를 피로 물들인 채 뿔뿔이 흩어졌다.
동학을 이끌었던 녹두장군 전봉준도 그해 12월 붙잡혀 형장의 이슬이 됐다.
민초들이 '반봉건'과 '척왜척양'의 기치로 일으킨 혁명은 일본군 토벌대에 의해 좌절됐고, 그 역사의 중심지였던 나주읍성도 일제의 민족혼 말살정책에 의해 1910년~ 1920년 사이 헐리고 망실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후 나주시가 천년고도 목사(牧使)고을 정기 회복을 위해 나주읍성 4대문 복원사업을 추진하면서 하나 둘 옛 모습을 되 찾아가고 있다.  
지난 2018년 12월 나주읍성 4대문이 108년 만에 전체 복원된 가운데 지난해 12월에는 동학농민군의 한이 서린 서성문 성벽 일부 구간 247.4m가 정비사업을 통해 완벽한 복원에는 못 미치는 형태지만 '옛 윤곽'을 찾았다.
서성벽 정비사업은 나주 역사문화 환경 관리계획에 따라 역사축과 어우러진 나주읍성 전통마을 조성을 위해 국비와 시비 등 14억2000여 만원을 들여 2018년 5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추진한 끝에 빛을 봤다.
주택과 개인 사유지를 매입하고, 콘크리트 담장과 인공 구조물을 걷어 낸 후 서성문 우측에서 나주천을 따라 옛 성벽 터를 찾아내는 시굴조사가 이뤄졌다.
이 과정에서 발견한 옛 성벽돌로 다시 길을 따라 나즈막한 '성벽'을 아름드리 다시 쌓고 길게 뻗은 잔디 광장을 조성했다.
성벽이 나주천과 만나는 잔디광장 왼편에 노거수로 보호 중인 수백 년 된 팽나무 그늘 아래에는 여행자와 관광객을 위한 포토존 겸 휴게시설로 의자를 설치해 운치를 더 했다.
시나브로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는 나주읍성은 전체 둘레 3.7㎞, 면적 97만2600㎡규모를 자랑한다.
현재 남아있는 읍성의 모습은 조선시대 나주로 부임한 목사 김계희(1457~1459)에 의해 완성됐다가 1910년대 일제 강점기 때 4대문 성문이 철거되고, 성벽이 크게 훼손된 채 오늘에 이르렀다.
나주시가 지난 1993년 남고문(南顧門) 복원을 시작으로 2005년 10월 동점문(東漸門)에 이어 2011년 10월에 영금문(映錦門 또는 서성문)을 복원했고, 2018년 12월에는 마지막 성문인 북망문(北望門)까지 복원을 마쳤다. 
김인자 나주시 역사관광 과장은 15일 "완벽한 복원은 아니지만 망실됐던 서성벽의 옛 모습을 부분 적이나마 되살려 냄으로써 잃어버린 나주의 역사적 위상을 되찾는 계기가 마련된 것 같다"며 "원도심 역사문화 자원과 연계해 다양한 관광·문화콘텐츠 발굴에 힘써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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