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정약용, 전간기사 6수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9회
1810년에 다산 정약용은 전간기사(田間紀事) 6편을 지었다. 즉 다북쑥, 뽑히는 모, 메밀, 보리죽, 승냥이와 이리, 오누이 시이다.
전간기사 6편에는 다산의 서문이 적혀 있다.
“기사년(1809년)에 나는 다산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지난 해 겨울부터 봄을 거쳐 금년 입추에 이르기까지 붉은 땅이 천리에 연했다.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고 6월초에는 유랑민들이 길을 메워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참상이어서 살 의욕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죄를 짓고 귀양살이 온 몸이라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는 처지이기에 오매초(烏昧草)에 관하여 아뢸 길이 없고, 은대(銀臺)의 그림 한 장도 바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그때 본 것들을 시로 적었다. 그것은 처량한 쓰르라미나 귀뚜라미와 더불어 풀밭에서 슬피 우는 것과 같은 시들이지만, 성정(性情)의 올바른 것을 구해서 화기(和氣)를 잃지 않으려 했다. 오랫동안 써 모은 것이 몇 편 되기에 ‘전간기사(田間紀事)’라 이름하였다.”
여기에서 오매초는 고사리의 이칭(異稱)이고, 은대(銀臺)는 신선이 사는 곳인데, 모두 백성의 굶주림과 관련 있다.
그러면 전간기사 제1수 ‘다북쑥’ (채호)을 음미해보자.
다산은 원주(原註)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북쑥은 흉년을 슬퍼한 시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기근이 들어 들에 푸른 싹이라곤 없었으므로 아낙들이 쑥을 캐어다 죽을 쑤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1.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저 산등성이 오르니
붉은 머리 숙이고
눈물만 쏟아지네.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무더기를 이뤘기에
데치고 소금 절여
달리 또 무엇하리.
다북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명아주도 비름나물 다 시들었고
자귀나물은 떡잎은 나지도 않아
샘물까지도 말랐네.
바다엔 조개도 없다네.
기근이다 기근이다 말만 하면서
봄이 와야 구휼이네
그 누가 묻어줄까
어찌 그리도 무정하시나이까.
캐다가 보면 들쑥도 캐고
캐다가 보면 다북쑥을 캐네.
미나리 싹까지
모두 캐도 모자란데
바구니에 쓸어 담고
아귀다툼 벌어졌네.
온 집안이 떠들썩하네.
마치 올빼미들 같네.
여기서 올빼미란 아귀다툼하는 간악한 사람을 비유한다. 하기야 배고프면 나만 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전간기사 제2수는 ‘뽑히는 모(拔苗)’이다. 다산은 이렇게 적었다.
“모가 말라 모내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농부들은 그것을 뽑아 버리는데, 모를 뽑으면서 통곡하는 소리가 온 들판에 가득했다. 어떤 아낙네는 너무 억울해서, 자식 하나를 죽여서라도 비 한 번 쏟아지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연한 녹색에 짙은 황색
푸른빛 은은하네.
아침저녁 돌보아서
보기만 해도 흐뭇했네.
논바닥에 주저앉아
저 하늘 향해 호소하네.
이 벼 싹 다 뽑다니
슬픈 바람이 쓸쓸하네.
내 손으로 다 뽑다니
내 손으로 죽이다니
잡초처럼 뽑아내고
화톳불 놓듯 태우다니
저 웅덩이에 두었다가
고인 물에나 꽂아볼까
젖도 먹고 밥도 먹는데
이 어린 모 살렸으면
먼지만 풀풀 날리는데
메밀 대신 심으라네.
시장에 가도 살 수 없어
메밀 종자 살 수가 없네.
‘메밀종자 걱정 말라
내 장차 너희 위해
감영 통해서 구해주마’
논 갈아엎었는데
우리들만 독촉하면서
나는 벌을 내리리니
너의 살점 떨어지리.”
오호라 하늘이시여
왜 이다지 못 살피시나요.
우리는 살 길이 없는데
우리 탓만 하며
호령이 벽력같네.
안 먹는다고 벌 줄 것인가
나라 분부 내렸건만
우리 임금을 속이다니
한편 전간기사 제4수는 보리죽이다. 다산은 원주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거 역시 흉년 걱정이다. 가을 추수 가망이 없어 부잣집들도 모두 보리죽을 먹는 형편이고, 신세가 고단한 자들은 보리죽도 먹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내가 다산에 있을 때 앞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리죽을 먹고 있었는데, 나도 가져다 먹어보았더니 겨와 모래가 절반이나 되어 먹고 나면 속이 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동쪽 집이 들들들
서쪽 집도 들들들
맷돌소리 요란하네.
기울도 까불지 않고
주린 창자 채운지만
눈앞이 어질어질
천지가 빙빙 돈다네.
저녁에도 보리죽 한 모금
배부르기 바랄쏜가.
보리를 사려 해도
기와조각 자갈이요
옥 같고 구슬 같네.
모여든 자 수 백 명 이네.
마을에서 부자나 먹네.
정원 수목 우거져서
감나무에 돌밤나무
찬장에는 놋그릇
홰에서는 닭이 자고
수염도 멋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