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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 전간기사 6수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9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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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01.14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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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0년에 다산 정약용은 전간기사(田間紀事) 6편을 지었다. 즉 다북쑥, 뽑히는 모, 메밀, 보리죽, 승냥이와 이리, 오누이 시이다.
전간기사 6편에는 다산의 서문이 적혀 있다.
 “기사년(1809년)에 나는 다산초당에 머물고 있었다. 이 해에 큰 가뭄이 들어 지난 해 겨울부터 봄을 거쳐 금년 입추에 이르기까지 붉은 땅이 천리에 연했다. 들에는 푸른 풀 한 포기 보이지 않았고 6월초에는  유랑민들이 길을 메워 눈뜨고는 차마 볼 수 없는 참상이어서 살 의욕마저 잃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죄를 짓고 귀양살이 온 몸이라 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는 처지이기에 오매초(烏昧草)에 관하여 아뢸 길이 없고, 은대(銀臺)의   그림 한 장도 바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때그때 본 것들을 시로 적었다. 그것은 처량한 쓰르라미나 귀뚜라미와 더불어 풀밭에서 슬피 우는 것과 같은 시들이지만, 성정(性情)의 올바른 것을 구해서 화기(和氣)를 잃지 않으려 했다. 오랫동안 써 모은 것이 몇 편 되기에 ‘전간기사(田間紀事)’라 이름하였다.”
여기에서 오매초는 고사리의 이칭(異稱)이고, 은대(銀臺)는  신선이 사는 곳인데, 모두 백성의 굶주림과 관련 있다.
그러면 전간기사 제1수 ‘다북쑥’ (채호)을 음미해보자.
다산은 원주(原註)에서 이렇게 적었다.
“다북쑥은 흉년을 슬퍼한 시다. 가을이 되기도 전에 기근이 들어 들에 푸른 싹이라곤 없었으므로 아낙들이 쑥을 캐어다 죽을 쑤어 그것으로 끼니를 때웠다.”
1.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새발쑥이네.   

양떼처럼 떼를 지어          
저 산등성이 오르니         
푸른 치마에 구부정한 자세     
붉은 머리 숙이고             
무엇에 쓰려고 쑥을 캘까        
눈물만 쏟아지네.             
쌀독엔 쌀 한 톨 없고           
들에도 풀싹 하나 없는데     
다북쑥만이 자라서              
무더기를 이뤘기에            
말리고 또 말리고          
데치고 소금 절여         
된 죽 묽은 죽 쑤어 먹지
달리 또 무엇하리.      
2.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이 아니라 제비쑥이네.     
    
명아주도 비름나물 다 시들었고    
자귀나물은 떡잎은 나지도 않아   
풀도 나무도 다 타고
샘물까지도 말랐네.
논에도 우렁이 없고
바다엔 조개도 없다네.
높은 분네들 살펴보지도 않고
기근이다 기근이다 말만 하면서
가을이면 다 죽을 판인데
봄이 와야 구휼이네
유랑 걸식 떠난 남편
그 누가 묻어줄까
오호라 하늘이여
어찌 그리도 무정하시나이까.
3. 다북쑥을 캐네. 다북쑥을 캐네.
캐다가 보면 들쑥도 캐고
캐다가 보면 쑥 비슷한 것도 캐고
캐다가 보면 다북쑥을 캐네.
푸른 쑥이랑 흰 쑥이랑
미나리 싹까지
무엇을 가릴 것인가
모두 캐도 모자란데
그것을 뽑고 뽑아
바구니에 쓸어 담고
돌아와서 죽을 쑤니
아귀다툼 벌어졌네.
형제간에 서로 뺏어
온 집안이 떠들썩하네.
서로 원망하고 욕하는 꼴들이
마치 올빼미들 같네.
 
여기서 올빼미란 아귀다툼하는 간악한 사람을 비유한다. 하기야 배고프면 나만 살려는 것이 인간의 본능 아닌가.
전간기사 제2수는 ‘뽑히는 모(拔苗)’이다. 다산은 이렇게 적었다.
“모가 말라 모내기를 할 수 없게 되자 농부들은 그것을 뽑아 버리는데, 모를 뽑으면서 통곡하는 소리가 온 들판에 가득했다. 어떤 아낙네는 너무 억울해서, 자식 하나를 죽여서라도 비 한 번 쏟아지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벼 싹이 나올 때면        
연한 녹색에 짙은 황색    
한 폭의 비단같이       
푸른빛 은은하네.        
어린 자식 보살피듯        
아침저녁 돌보아서        
주옥처럼 보물로 여겨     
보기만 해도 흐뭇했네.    
쑥대머리 한 여인이  
논바닥에  주저앉아 
방성통곡을 하면서      
저 하늘 향해 호소하네.  
차마 어이 정을 딱 끊고 
이 벼 싹 다 뽑다니    
오뉴월 한여름에        
슬픈 바람이 쓸쓸하네.  
우거진 나의  모를      
내 손으로 다 뽑다니   
무성한 나의  모를
내 손으로 죽이다니
우거진 나의  모를  
잡초처럼 뽑아내고  
총총한 나의  모를
화톳불 놓듯 태우다니  
뽑아서 묶어서
저 웅덩이에 두었다가
행여 비가 내리면
고인 물에나  꽂아볼까
내 자식 셋이 있어 
젖도 먹고 밥도 먹는데
그 중 하나를 죽여서라도
이 어린 모 살렸으면
이어서 전간기사 제3수는 메밀이다. 메밀은 현령(縣令)을 풍자한 시다. 조정에서는 메밀종자를 나누어 주도록 영을 내렸는데도 현령은 그 영은 따르지 않고 백성들에게 메밀만 심으라고  독촉만 한다. 
넓고 넓은 논에
먼지만 풀풀 날리는데
어린 볏모 뽑아버리고
메밀 대신 심으라네.
집안에 없는 메밀
시장에 가도 살 수 없어
주옥은 구할지라도
메밀 종자 살 수가 없네.
현령이 통첩을 내려
‘메밀종자 걱정 말라
내 장차 너희 위해
감영 통해서 구해주마’
우리는 그 말만 믿고
논 갈아엎었는데
메밀은 주지 않고
우리들만 독촉하면서
“메밀 심지 않으면
 나는 벌을 내리리니
흰 몽둥이 붉은 곤장에
너의 살점 떨어지리.”
오호라  하늘이시여
왜 이다지 못 살피시나요.
메밀이나마 심지 않으면
우리는 살 길이 없는데
 
우리 탓만 하며
호령이 벽력같네.
고기 쌀죽 안 먹으면
안 먹는다고 벌 줄 것인가
메밀종자 주라는 
나라 분부 내렸건만
그 분부는 안 따르고
우리 임금을 속이다니
조정에선 메밀 종자 나누어주라고 영을 내렸건만 현령은 종자는 안 나누어주고 메밀 심으라고 백성만 들볶고 있다. 이게 나라인가?   
한편 전간기사 제4수는 보리죽이다. 다산은 원주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거 역시 흉년 걱정이다. 가을 추수 가망이 없어 부잣집들도 모두 보리죽을 먹는 형편이고,  신세가 고단한 자들은 보리죽도 먹기 어려운 실정이었다. 내가 다산에 있을 때 앞마을 사람들이 모두 보리죽을 먹고 있었는데, 나도 가져다 먹어보았더니 겨와 모래가 절반이나 되어 먹고 나면 속이 쓰려 견딜 수가 없었다.”
 
동쪽 집이 들들들  
서쪽 집도 들들들  
보리 볶아 죽 쑤려고 
맷돌소리 요란하네.  
체로도 치지 않고    
기울도 까불지 않고  
그대로 죽을 쑤어    
주린 창자 채운지만  
썩은 트림 신트림에
눈앞이 어질어질    
해도 달도 빛을 잃고
천지가 빙빙 돈다네. 
아침에도 보리죽 한 모금  
저녁에도 보리죽 한 모금   
이것마저 잇기 어려운데    
배부르기 바랄쏜가.  
있는 물건 모두 팔아    
보리를 사려 해도        
내 물건은 팔리지 않아  
기와조각 자갈이요    
파는 곡식은 날개 돋쳐 
옥 같고 구슬 같네.  
보릿자루 하나 나면        
모여든 자 수 백 명 이네.
내 보기엔 보리죽도    
마을에서  부자나 먹네.
으리으리한 집에다가 
정원 수목 우거져서   
소나무 대나무에    
감나무에 돌밤나무
옷걸이엔 명주옷  
찬장에는 놋그릇  
외양간에는  소 누웠고
홰에서는 닭이 자고  
말 잘하고 권력도 있고 
수염도 멋지더라.     
극심한 가뭄에도 부자들은 보리죽이라도 먹는다. 하지만 일반 백성들은  보리죽도 못 먹는 신세이다.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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