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12-06 (금)

정약용, ‘수심에 쌓여 (憂來)’ 시 12수를 짓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5회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19.11.11 16:12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정약용이 1804년에 지은 ‘여름날에 술을 마시다’ 시의 마지막은 신분제도의 모순에 대한 탄식이다.  
 
산악이 영재를 만들어낼 때에     
씨족을 가려서 만들 리 없고      

한 가닥 좋은 기운이 반드시       
명문가 최씨와 노씨의 뱃속에만 있으리란 법 없지 
솥은 솥발이 뒤집혀야 좋고      
난초도 깊은 골짝에서 나는 법  
송나라 위공은 비천한 집 출신이었고    
송나라 범중엄도  의붓아비 밑에서 자랐네.  
명나라 대신 구준도 먼 변방에서 났지만 
재주와 지모가 모두 빼어났거늘 
어찌하여 등용 길이 그리도 좁아      
사람이 움츠려 기를 펴지 못 펴나.  
오직 제일골(第一骨 신라시대 귀족)만 발탁해 쓰니        
나머지 골품은 노예와 같은 신세
 
서북 사람들 언제나 얼굴 찡그리고   
서얼들은 원통해 통곡소리 드높네.    
위세 당당한 수십 가문이          
대대로 국록을 먹어치우니           
그들끼리 패가 서로 갈리어          
엎치락뒤치락 죽이고 물고 뜯어      
약자의 살을 강자가 먹고는          
대 여섯 집 호문(豪門)만 살아남아서    
이들 만이 경상(卿相 정승)이 되고      
이들 만이 악목(岳牧 판서와 감사)이 되고 
후설(喉舌 승정원 관원) 맡은 자도 그들이고   
이목(耳目 감찰 관원) 노릇도 그들이 다 하며  
이들만이 모든 관직 다 해먹고           
이들만이 옥사를 감독하네.             
먼 시골 백성이  아들 하나 낳았는데        
빼어난 기품이 난곡(鸞鵠) 새와 같고
               
팔 구세 되어서는                  
의지와 기상이 가을철 대나무 같아              
아비 앞에 꿇어앉아 여쭙는 말이
“제가  지금 구경(九經)을 다 읽고           
경술이 누구보다 으뜸이오니            
홍문관에 들어갈 수 있겠지요”    
구경(九經)은 시경 · 서경 · 역경 ·효경 ·춘추 ·예기·논어·맹자 ·주례이다.  
그 아비 하는 말 “너는 지체가 낮아            
임금을 곁에서 모실 수 없을 것이다.”
          
자식이 하는 말 “제가 이제 큰 활을 당길 만하고            
무예가 춘추시대 진나라 장수 극곡과 같으니              
오군영의 장수나 되어
말 앞에다 대장기를 꽂으렵니다.
그 아비 하는 말 “ 너는 지체가 낮아       
장군 수레 타는 것도 허락 안 할 것이다”   
자식이 다시 하는 말 “제가 이제 관리 일 공부했으니 
애민하는 순리(循吏) 한나라 공수와 황패의 뒤를 이어받아
그냥 군부(郡符)를 허리에 차고
죽도록 고량진미 실컷 먹으렵니다.
 
그 아비 하는 말 “너는 지체가 낮아
애민의 순리도 가혹한 혹리(酷吏)도 너에겐 상관 없은 일”
이 말 듣고 자식 놈 발끈 노하여
책이고 활이랑 던져버리고
쌍륙놀이와 골패놀이
마작놀이 공차기놀이로
허랑방탕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늙어서는 시골구석에 파묻혀버리네.
권세 있는 집안도 자식 하나 낳았는데
사납고 교만하기 천리마 같고
그 아이 팔구세가 되어  
예쁘장한 옷을 입고 다니면
객들이 하는  말이
“너는 걱정 없다
너희 집은 하늘이 복 내린 집이고
네 벼슬도 하늘이 정해놓아서
청관 요직 마음대로 될 것이니
부질없이 헛고생 해가면서
매일 같이 글공부 할 필요 없으리.
때가 되면 좋은 벼슬은 저절로 오리니
편지 장이나 쓸 줄 알면 족하리.”
 
그 아이 이 말 듣고 깡총깡총 좋아하고
다시는 서책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마작이며 골패라든지
장기바둑 쌍륙에 빠져
허랑방탕하여 인재 되지 못하건만
높은 벼슬 차례로 밟아 오르네.
먹줄 한 번 못 맞아본 나무가
어떻게 큰 집 재목 될 것인가
두 집 자식 다 자포자기하고 말아
세상천지에 어진 자라곤 없어졌다네.
곰곰 생각하면 속만 타기에
부어라 다시 또 술이나 마신다네.
다산은 묻고 있다. 평민 자제들은 실력이 있어도 왜 출세할 수 없는가?
권세가 자제들은 놀면서도 어떻게 출세하는가? 지금은 어떠한가? 
 
사진 1  2012년 유네스코 기념인물로 선정된 정약용

이어서 1804년에 정약용은 ‘수심에 쌓여(憂來)’ 시 12수를 지었다. 강진읍 동문 밖 주막집 토담 방에서 지낸 정약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시이다.  이 중에서  몇 수를 읽어보자. 

1.
어려서는 목표가 성인이었다가    
중년에 와 현자라도 바랐는데     
늘그막엔 우하(평범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달게 여기나
수심에 쌓여 잠 못 이루네(憂來不得眠)

2.
복희 시대에 살지 못하여   
복희에게 물을 길이 없고    
중니(仲尼 공자) 시절에 태어나지 못해  
중니에게도 물을 길이 없네.  
이 시의 원주에는 ‘이때 《주역(周易)》 전(箋)을 쓰고 있었다.’고 적혀 있다. 정약용은 1803년 겨울부터 주역을 읽기 시작하여
1804년 여름에 초고를 완성했다.
정약용이 주역을 공부하였다는 것은  같은 해에 쓴 시 ‘근심을 달래며’ 12수중 2수에도 나타나 있다.

“천하의 책들을 모두 삼키고
마지막에 주역을 토해 내려 했는데
하늘이 그 인색함을 풀고자 하여
나에게 삼년 귀양 내리셨도다.”
 
5.
취하여 북산에 올라 통곡하니       
통곡소리 하늘에 사무치건만       
옆 사람 그 속도 모르고          
나더러 신세가 궁하여 운다고 하네.  
6.
천 명이 술에 취해 떠드는 속에
선비 하나 의젓하게 있고 보면
그 천 명 모두가 손가락질하며
그 한 선비 미쳤다고 한다네. 
이게 바로 정약용의 심사였는데, 이 시는 복원된 강진군 사의재 팻말에 적혀 있다. 

사진 2.  강진군 사의재에 있는 한시 팻말   

7.
어쩔 수 없이 늙고                 
어쩔 수 없이 죽지                 
한번 죽으면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인간 세상을 천상으로 여기다니       
8.
실날같이 어지러운 눈앞의 일들       
바르게 되는 일 하나도 없지만          
바르게 정리할 길이 없기에           
생각하면 혼자 가슴만 쓰릴 뿐이네    

9.
마음이 육신의 노예 되었노라고      
도연명도 스스로 말한 바 있지만      
백 번 싸워야 백 번 다 지니           
이 몸은  왜 이리 멍청할까           
 
10.
태양이 소리같이 빨리 질주하여  
총알도 따르기 불가능하네.     
그를 잡아맬 길이 없어            
그것을 생각하면 슬프기만 하네.  

11.
호랑이가 어린 양을 잡아먹고는        
붉은 피가 입술에 낭자하건만         
호랑이 위세가 이미 세워진지라           
여우와 토끼는  호랑이를 어질다 찬양하네.
호랑이는 봉건지배층, 어린 양은 힘없는 백성들, 여우와 토끼는 지배층에 빌붙어서 이익을 챙기는 아첨꾼들이다. 정약용은 우화시
로 세태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12.
예쁘장하고 작은 복사나무       
봄철이면 가지가지 꽃이지만    
해 저물어 이리저리 꺾이고 나면
쓸쓸하기 옛 몰골이 아니지      
혹시, 복사나무의 몰골이 유배지의 정약용 모습이었을까? 
 
 

태그

전체댓글 0

  • 00071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정약용, ‘수심에 쌓여 (憂來)’ 시 12수를 짓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