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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농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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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1.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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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강성채 순천농협조합장의 “푸른 농심”이 익어가고 있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촌변화와 혁신을 일구고 있

는 농산물유통구조에 달인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난 속에서도 양질의 농민의 삶은 무엇일까? 아니 농민이
잘 살 수 있는 길은 어떤 길일까? 라는 문제점을 머릿속에 그리면서 살아왔었다.
 
“흙은 진실하다. 흙은 속이지 않는다.”라는 신념으로 오직 진실만을 추구해 왔던 강 조합장의 활동상은 농심이다. 어떠한 계산
을 따지기보다는 생명창고인 농업을 기르고 지키는 일에 최선을 다했었다. 따라서 농촌을 떠날 수 없었다는 그의 길은 아름다웠다
. 그런 까닭에서일까? 그의 농산물유통철학은 순천농업을 넘어 전국농업과 세계농업으로 뻗어가고 있을 뿐 아니라 배움의 장이되
고 있다.
 
지난 1일이었다. 농식품신유통 연구원(이사장 원철희, 원장 김동환)이 주최한 신유통 토론회에 강성채 조합장이 발표자로 참여했
었다. 유럽연합 PO(Producer Organization)제도와 국내조직화 사례를 주제로 한 이번 토론회에서 강 조합장은 제3주제 ‘국내 광
역조직화 사례와 시사점’ 발표자로 나서 ‘순천농협농가조직화 활성화 사례’를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첫째는 농가조직화 추진방향이다. 둘째는 소량다품목 중심의 계약재배다. 셋째는 거점 APC 활성화다. 넷
째는 공선출하회 육성이다. 다섯째는 품목별 농가조직화다” 등을 발표했었다.”
 
그는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대단위 합병농협의 농가조직 활성화사례를 발표했다. 그의 발표는 참석자들로부터 큰 반응과
함께 산지 생산 및 유통조직을 활성화는 물론 농업인 편익증진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평가받았다.
 
또 최근 ‘WTO 개도국 포기’ 에 따른 농협역할과 농산물 신유통이 가야 할 방향 제시 등을 제시해 공감대를 형성했다. 어쩌면 국
제농업에 대한 우리농협의 현실을 역설했으며, 농협과 조합원들의 청사진을 그렸는지도 모른다.
 
강조합장은 지난 제 2회 전국 동시 조합장선거에서 순천농협조합장으로 당선됐다. 20여 년 간연임을 단 한 번도 허락하지 않았던
순천지역에서 무투표로 당선됐었다. 현재 3선 조합장으로 18,000여명의 조합원 수와  2조 3천억 원의 자산 등 전국 최대 규모의
지역농협을 이끌고 있는가 하면 유통조직의 선구자다.
 
특히 그의 자서전은 농민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최근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미래농업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꽃이 되
어 바람이 되어’ 를 출간해 농민과 농협조합원들로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태어난 전남 순천시 해룡면 복성마을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동상은 참으로 고단한 삶이었다. 자서전에서 밝힌바
와 같이 그의 어린 시절은 혹독했었다. 조례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순천중학교로 진학했지만 어려운 가사를 도와야 했다. 10남매 중
의 장남으로 태어나 나뭇짐장사를 해야만 했다. 아버지를 따라 나뭇지게를 지고서 십리 길을 오가야했던 어린 날의 고달픔과 농촌
의 한이 그대로 담겨져 있다.
 
순천중학교를 졸업하고 순천고등학교를 곧바로 진학해야했다. 하지만 당시의 시대상황으로 순천고등학교 보다는 농림고등전문학교
에 진학해 농촌부모의 힘을 덜어주어야 했다. 그 당시에는 순천농림고등전문학교를 졸업하면 초등교사자격증을 준다는 문교부정책
이었다. 전남 동부6군의 농촌지역 부모들은 이 학교를 보내려고 안달이 났었다. 우수한 성적으로 전전기의 진학시험에 합격한 그
는 순천농림고등전문학교에 입학했다. 집에서 학교까지의 거리가 6키로나 됐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결석과 지각을 하지 않았으며
학업에도 충실했다. 그러나 자신의 꿈을 펼치기에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농촌의 삶보다는 도시의 삶을 꿈꿔왔던 터라 농업학교가
싫었던 것이다. 몇 번의 생각으로 학업을 포기하려고도 했었다. 그러나 농민의 아들로써 생명창고인 농업의 길을 가야한다는 생각
이 굳어져만 갔다.
 
농협에 입사한 그의 입지는 한마디로 왜소했다. 소농의 10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번민하면서 자의식에 눈뜨던 시절의 기억부터 어
린 시절의 농촌에 대한 애증 등으로 늘 고뇌에 쌓였었다. 그러나 그는 농협중앙회 28년과 주경야독을 했다, 인연과 회한의 아픔도
느꼈다. 순천농협 20년, 농업은 생명창고 등의 활동상을 보여 왔었다.
 
지금도 그는 ‘우리 농민들은 왜 이렇게 밖에 못사는가?’에 대한 답을 50년 넘게 찾고 있다. 아직도 진행형이다. 현장에서 또는
학업이나 연구를 통해 더 나아가 선거에 직접 나서서 농촌을 지키고 사는 그들과 약속을 하고, 그들의 삶이 나아질 수 있도록 동
분서주 했다. 하지만 해답은 잡힐 듯 잡힐 듯이 하면서도 더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농협을 통해 사는 사람들이 행복한 농촌으로, 그 농촌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던 그런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작
은 소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있다고 사명서로 밝히고 있다.
자서전인 “꽃이 되어 바람이 되어(花名故土 風吹新天)”는 꽃이 되어 이 땅을 지키고, 바람이 되어 새 날을 연다/ 어제 없는 오
늘, 오늘 없는 내일이 있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지나온 삶을 반추하고 반성해 본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의 삶을 방증하고 있
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농촌과 우리농협의 미래상이 펼쳐지는 듯싶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회자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그의 “
푸른 농심”이 익어가는 길목에 풍요로운 가을빛이 따라붙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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