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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1804년 여름에 술 마시며 세속을 개탄하다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 (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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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10.17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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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에 유배 온 정약용은 강진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내준 토담집 방에서 지냈다. 정약용이 이 방에서 잠을 자고 있는데 모기 한 마리가 왱하고 날아다니면서 물어뜯었다.
견디다 못해 정약용은 ‘얄미운 모기[憎蚊]’ 시를 지었다.   

맹호가 울밑에서 으르렁대도  
나는 코골며 잠잘 수 있고 
긴 뱀이 처마 끝에 걸려있어도
누워서 꿈틀대는 꼴 볼 수 있지만
모기 한 마리 왱하고 귓가에 들려오면
기가 질려 속이 타고 간담이 서늘하단다.
부리 박아 피를 빨면 그것으로 족해야지
어이하여 뼈에까지 독기를 불어넣느냐
베 이불을 덮어쓰고 이마만 내놓으면
금방 새 울퉁불퉁 혹이 돋아 부처 머리처럼 돼버리고
제 뺨을 제가 쳐도 헛치기 일쑤이며
넓적다리 급히 만져도 그는 이미 가고 없어
싸워봐야 소용 없고 잠만 공연히 못 자기에
여름밤이 지루하기 일 년과 맞먹는다네.
몸통도 그리 작고 종자도 천한 네가
어찌해서 사람만 보면 침을 그리 흘리느냐
밤으로 다니는 것 도둑 배우는 일이요
제가 무슨 현자라고 혈식을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그 옛날 대유사에서 교서할 때는
집 앞에 창송과 백학이 줄서 있고
유월에도 파리마저 꼼짝을 못했기에
대자리에서 편히 쉬며 매미소리 들었는데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
내가 너를 부른 거지 네 탓이 아니로다.
‘지금은 흙바닥에 볏짚 깔고 사는 신세(如今土床薦藁?)’라는 마지막 구절은 정약용이 기거한 토담집 방의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지금의 강진 사의재는 너무 호사스럽다. 이 시 구절을 고증삼아 좀 더 누추하게 복원되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인데. 흙바닥은 아니라도 볏짚이라도 깔아 놓았더라면 훨씬 실감 날 것인데. 그런데 이 시에서 모기는 ‘백성을 가렴 주구하는 탐관오리’로 비유된다.  일종의 우화시(寓話詩)이다.
한편 1804년 여름에 정약용은 ‘여름날 술을 마시며 [夏日對酒]’ 시를 지었다. 이 시는 1060자에 달하는 장편 고시(古詩)이다. 이 시에는 전정(田政) · 군정(軍政) ·환곡(還穀) 등 삼정(三政)문란,  과거제도 · 신분제 등 조선 후기의 사회적 모순이 낱낱이 묘사되어 있다. 그러면 시를 읽어보자.
나라 임금이 토지를 소유함은 
비유컨대 부잣집 영감 같은 것
영감 밭이 일백 두락이고
아들 열이 제각기 분가하여 산다면
한 집에 열 두락씩 주어
먹고 사는 형편을 같게 해야 마땅한데
약은 자식이 팔구십 두락 삼켜버리니
어리석은 자식의 곳간은 늘 비어 있네.
정약용은 임금이 토지를 불평등하게 분배한 것을 한탄하고 있다. 
이런 한탄은 정약용의 산문 ‘원정(原政)’ 첫 부분에 잘 나타나 있다.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는 말이다. 다 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로움을 남들 것 까지 아울러 가져 부유한 생활을 하고, 누구는 토지의 혜택을 받지 못하여 가난하게 살 것인가.”
시는 계속된다.  
약은 자식은  비단옷이 찬란히 빛나는데    
어리석은 자식은 가난에 시달리네. 
영감마님 눈을 들어 이 지경을 보면     
불쌍하고 속이 쓰리겠지만            
그대로 맡기고 직접 정리를 하지 않아 
서쪽 동쪽으로  뿔뿔이 굴러다니네.   
부모 밑에 똑같이 받은 뼈와 살인데            
부모의 사랑이 왜 이다지 불공정한가.
       
근본 강령이 이미 무너졌으니        
만사가 꽉 막혀 불통인 것이지.      
한밤중에 책상 치고 벌떡 일어나     
탄식하며 높은 하늘을 우러러 보네    
이렇듯 세상은 불공평하다. 다 같은 백성인데 나라가 차별대우를 하고 있고, 다 같은 자식인데 부모가 불공정하게 대우하고 있다.
이러니 아무리 공부를 하고 노력을 해도 무엇 하나? 가문과 혈통이 삶을 좌지우지하니. 지금은 어떤가. 한국사회는 정의롭고 공정한가?
현대판 신분제인 금수저와 흙수저는 없나?
정약용의 시는 이어진다.
 
많고 많은 저 백성들   
모두 똑같이 백성들인데    
마땅히 세금을 거둬야 한다면   
부자들에게나 거둘 일이지   
어찌하여 유독 힘없는 백성에게만
피나게 긁어가는 정사(割政)를 하는가. 
조세 불공평에 대한 탄식이다. 그런데 정약용의 시대만 그런가? 월급쟁이는 원천징수로 꼬박꼬박 세금 내는데, 전문직· 임대업자 · 기업인들은 세금을 제대로 내고 있나?
군보(軍保)라는 것은 대체 무엇인지  
이다지 모질게 법을 만들었나.
일 년 내내 힘들여 일을 해도    
제 몸 하나도  가릴  길이 없고        
뱃속에서 갓 태어난 어린 것도   
백골(白骨)이 진토가 된 사람도          
그들 몸에 요역(?役)이 모두 부과되어     
하늘  곳곳마다 울부짖는 소리.
양근(陽根)까지 잘라버릴 정도니
그 얼마나 비참한 일인가
정약용이 1803년에 지은 애절양(哀絶陽) 시가 다시 생각난다. 정약용은 군정의 폐단, 즉 황구첨정 · 백골징포를 통탄하고 있다.  
 호포법은 논의 있는 지 오래되어
그 뜻은 균등하고 타당했는데 
작년에 평양 감사 이 법 시행해 봤지만 
수 십일도 되지 않아 그만두었네.
호포법 시행 논의도 흐지부지되고 마는 현실. 이는 몇 십 년 후인 1862년에 삼정문란으로 일어난  임술민란 이후 삼정이청정의 개혁도 마찬가지였다.
만인이 산에 올라 통곡하거니    
무슨 재주로 임금의 뜻을 펼 수 있으리. 
먼 곳 가려면 가까운 데서 시작하고 
낯선 사람 다스리려면 가까운 친척부터 하는 법 
어찌하여 굴레와 다리 줄을 가지고 
야생마부터 먼저 길들이려 드는가.
‘장자’ 책에는 백락이 야생마를 길들이는 글이 나온다. 그는 말머리를 묶는 가죽 굴레와  말의 앞발을 가지 못하게 묶는 줄이다.
  
놀라서  손을 빨리 빼는 것은 물이 끓기 때문이니
어떻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리
 
서쪽 백성들 오랜 세월 억눌려 지내 
십세(十世) 동안  벼슬 길 막혀 버려서 
겉으로야 공손한 체 하지만     
가슴속은  언제나 사무친 원한    
서쪽 백성은 서도(西道), 즉 평안도와  황해도 백성을 말한다. 이들 마음속에는 원한이 사무쳐 있다. 
지난번에 왜놈들 쳐들어 왔을 때    
의병들 곳곳에서 일어나 활약했지만  
서쪽 백성들은 유독 수수방관한 것은 
진실로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이지.
그랬다. 임진왜란 때 함경도 회령에서 국경인은 피난중인  선조의 큰 아들 임해군과 셋째 아들 순화군을 잡아서 가토 기요마사에게 넘겨준 부역자였다. 이에 의병장 정문부(1565~1624)가 의병을 일으켜 국경인을 무찌르고 함경도를 탈환했다. 이 전투가 북관대첩이다.
한편 다산이 이 시를 쓴 지  7년이 지난 1811년에 홍경래 난이 일어났다.  서북인에 대한 차별이 폭발한 것이다. 
이윽고 정약용은 ‘분노가 끓어서 술이나 진탕 마시노라’고 시를 끝맺는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 속이 끓어올라       
술이나 진탕 마시고(痛飮) 진(眞)으로 돌아가리.
김세곤/호남역사연구원장·청렴연수원 청렴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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