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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태백 구문소 백룡 소나무

물이 산을 넘으니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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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6.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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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 구문소 백룡 소나무.jpg

 

태백은 석탄의 고을이다. 태백산 들머리에 ‘태백 석탄 박물관’이 있다. 이곳에 가면 ‘1950년대 광부 아낙네들은 한 달에 한 번 배급 받는 백미를 늘려 먹으려고 잡곡, 밀가루 등과 바꾸었고, 장바구니에 담아 온 돼지고기 한 근을 아이들 몰래 남편 밥상에만 올려놓았다’는 옛 탄광촌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또 1960년대의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와 인근 탄광의 경석장에서 땔감으로 괴탄과 갱목을 한 짐씩 주워다 놓은 뒤, 아버지가 가져다준 쇠구슬로 구슬치기를 하거나, 비석치기, 고무줄놀이하며 놀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광산이 개발되기 전 태백에는 화전민이 너와집을 짓고 살았다. 초목을 불태운 거름으로 산밭을 일구어 조, 메밀, 감자, 옥수수, 콩, 수수를 심어 삶을 이었고, 1930년대에 일인이 탄광을 개발하자 광부가 되거나, 정착영농을 하게 되었다. 또 고랭지 채소로 부농을 꿈꾸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또 험준한 산간인지라 호랑이에게 죽은 사람은 화장하여 그 위에 돌무지를 쌓고 시루를 덮은 뒤 물레 가락을 꽃아 창귀를 가두어 호환을 예방하는 호식장을 치렀고, 이 무덤을 호식총이라 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태백 용연굴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아름답고 아기자기한 동굴이다. 굴의 길이는 그리 길지 않아 800m이며, 약 3억만 년 전에서 1억 5000만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고드름처럼 생긴 종유석, 바닥에서 올라온 석순이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또 임진왜란에 의병들의 모임터였으며, 어려운 시기의 피난처였다고 한다.

태백은 물의 고을이다. 태백시 한가운데의 못 황지에서 솟구친 물은 낙동강이 되어 남해로 가고, 금대봉 아래 검룡소에서 시작된 물은 한강이 되어 서해로 간다. 태백시와 삼척시 사이의 백병산 흰늪에서 솟구친 물은 오십천이 되어 동해로 간다. 또 여기 삼수령은 한 발자국 사이로 빗물이 한강, 낙동강, 오십천 등 한반도 세 바다의 물로 나뉘니, 석별령이기도 하다.

낙동강 발원지 황지에는 욕심 많은 황부자가 노승에게 시주 대신 두엄을 퍼 주어 이에 집터가 꺼져 연못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하루 5천여 톤의 물이 샘솟는데, 이 물은 태백시 매봉산 천의봉 너덜샘에서 시작한 황지천이 지하로 스며들었다가 나오는 거라고 한다.

이 황지를 나온 황지천이 남으로 내려오다가 태백시를 벗어나기 전에 바위산을 만난다. 그리고 산을 뚫으며 도강산맥을 만드니 바로 구문소이다. 약 5억만 년 전에는 황지천이 산의 암벽 때문에 말발굽처럼 구부러져 흘렀다. 그러다 1억만 년 전 마침내 바위를 뚫었다, 기다리고 있던 철암천과 곧장 만나 낙동강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 구문소에 ‘엄청나게 큰 싸리나무가 구멍을 뚫었다, 단군께 치산치수를 배운 중국 하나라의 하우씨가 바위를 칼로 찔러 뚫었다. 두 석벽을 사이로 동쪽 철암천의 청룡과 서쪽 황지천의 백룡이 낙동강의 지배권을 놓고 다투었는데, 백룡이 석벽을 뚫어 청룡을 기습하여 이겼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구문소는 구멍이나 굴을 뜻하는 ‘구무’와 한자어 물웅덩이 ‘소’를 더한 말이다. 내가 산을 뚫어 흐르니 ‘천천(穿川)’이고 ‘뚜루내’이다. 또 물방울이 돌을 뚫으니 수적천석이다. 그렇게 물이 산을 넘었으니, 세상에 불가능은 없다. 여기 삼형제가 모두 물에 빠져 죽어 용이 되었다는 구문소 삼형제 폭포의 전설은 슬프지만, 폭포를 바라보고 있는 백룡 소나무는 늘푸름이다.

<김 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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