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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정치, 오래 된 제도

주성식의 어른왈/주성식선임기자sesa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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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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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새롭기만 한 것은 소멸(성) 자체’라고, 어떤 종교 경전은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했다.
‘새로운 것’이 절대 제멋대로, 그냥 생긴 것은 아니라는 의미일 것이다. 선악·빈부·강약·우열 심지어는 남녀만 보더라도, 시작부터 있었고 끝까지 있으리라는 지적 아니겠는가.
왜 이렇게 밑자락을 까느냐면, 직접정치도 필자의 독자적 발상(그렇다면 얼마나 좋을까!)이 아니고 오랜 근거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 사회 구성원들이 무척 좋아하는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의 글에 탕론(湯論)이라는 것이 있다. 은(殷)나라를 세운 탕(湯)에 대해 논한 글인데, 유교사상이 근간을 이루는 동양에서 식자(識者)들 사이에 끊이지 않는 논쟁거리였다.
내용은 간단하다. 신하인 탕(湯)이 왕인 걸(桀)을 쫓아내고 새 왕조(殷)를 세운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군신유의(君臣有義)뿐 아니라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유교사상에 비춰볼 때 확실한 반역이며 명백한 패륜이 아닐 수 없다. 반면에, 폭정과 압제에 시달리는 최대 다수 백성의 삶이 더 중요하고 따라서 역성(易姓)이 그르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다산은 후자(後者) 쪽이다. 아주 먼 옛날에는 백성들이 직접 지도자를 뽑았다. 즉 다섯 가(家)가 모여 린(隣)을, 다섯 린이 모여 리(里)를, 다섯 리가 모여 비(鄙)를, 다섯 비가 모여 현(縣)을 이루고, 각 단계 구성원이 장(長)을 뽑았다는 것이다. 최고위직(명칭이 무엇이건)도 예외가 아니었다.
다산은 악단을 예로 든다. 악단 대표가 무능하거나 범법을 하면 바로 물러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내세우는데, 국가라고 다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직접’ 정치를 할 수 있었던 상황이 바뀐 것은,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이후다. 황제가 중앙과 지방을 독단적으로 통제하면서 백성들은 지배와 통치의 객체(客體)로 전락했다. 폭력으로 강제하는 억압과 수탈을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관행이 계속 이어지며 법과 제도가 됐다. 그 틀에 끼어들어 뭔가 주워 먹으려는 모리배들의 온갖 패악(悖惡)질이 현재 정치인 것이다.
다산은 절대왕정시대에 살았다. 그런데도 극형에 처해질 만한 발언을 꺼리지 않았다. 옳은 생각이요 바른 실천방법이라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물 정치를 한다는 모리배들, 뭔가 아는 것처럼 시덥잖은 소리만 떠드는 책상물림들, 그냥 고상하게 아무것도 모른 척하는 뜨내기들, 이런저런 꼬투리만 잡으면서 어떤 것도 하지 않으려는 게으름뱅이들, 그러니 듣고 보라는 것이다.
니들 생각도 이야기도 다 받아들이겠다는 것이다. 직접정치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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