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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존중한 조선의 선비

최갑현/논설위원·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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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5.24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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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1708m)은 한라산(1950m)과 지리산(1915m)에 이어 남한에서세 번째로 높은 산으로 조선 중기 이만부의 지행록에 의하면 ‘음력 8월 한가위에서 시작한 눈이 하지에 이르러 녹는다’하여 설악산이라고 한다. 흔히들 지리산을 남성에 비유하고 설악산을 여성에 견준다. 장대하고 너른 지리산의 풍채, 지극한 아름다움의 여성미를 지닌 설악산의 실상을 말해주고 있다.
송강 정철은 “설악이 구경이 아니라 고경(苦境)이며, 봉정이 아니라 난정(難頂)이로다”고 봉정암을 오른 뒤 말했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설악을 칭송하기를 “설악산은 절세의 미인이 그윽한 골속에 있으되, 고운 양자는 물속의 고기를 놀래고, 맑은 소리는 하늘의 구름을 멈추게 하는 듯한 뜻이 있어서 참으로 산수풍경의 지극한 취미를 사랑하는 사람이면 금강보담도 설악에선 구하는 바를 비로소 만족케 할 것이다”고 하였다.
매월당 김시습과 삼연 김창흡 선생이 그윽한 집을 이 산중에 얽고 지낸 것을 보면 설악의 아름다운 매력에 몸을 뺏긴 것은 우연이 아니다.
세종대왕이 감탄한 신동 매월당 김시습은 어려서부터 좋은 경치를 만나면 시를 읊조리며 즐기기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하였다. 26세 때 관동지방을 유람하여 지은 시를 모아 ‘탕유관동록’을 엮었고, 47세에 관동지방 방랑의 길에 나서 당시 양양부사 유자한과 교분을 쌓고 양양, 강릉, 설악 둥지를 두루 유람하였다. 이때 그는 육경자사로 지방 청년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시와 문장을 벗 삼아 유유자적한 생활을 보냈는데, 그의 수작 ‘관동일기’에 있는 100여 편의 시들은 이때 쓰인 것들이다.
정조대왕에게 존경받는 두 선비가 있었다. 매월당 김시습과 어우당 유몽인이다. 둘 다 글재주가 뛰어났으며, 선대 임금을 위하여 절개를 지킨 인물이다. 정조는 선대 왕에 한결같은 절개를 지킨 두 인물을 거론하며 “김시습이 설악산이라면, 유몽인은 금강산에 비유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조선의 선비들이 산과 물을 찾는 목적은 오늘날 현대인이 건강을 위해 오르는 등산과는 차이가 크다고 본다. 선비들이 산수를 즐겨 찾고 풍류를 즐기는 데는 공자의 가르침이 크다고 본다. 공자는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며 양생법에 “지혜로운 자는 움직이고, 어진 자는 고요하다(知者動 仁者靜), 지혜로운 자는 즐기고, 어진 자는 오래 산다(智者樂, 仁者壽)”고 했다.
지혜로운 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막히면 지혜를 갖춘 자와 같고, 아래로 흘러가니 예를 갖춘 자와 같으며, 깊은 곳도 머뭇거림이 없이 들어가니 용기를 가진 자와 같고, 막혀서 갇히면 맑아지니 천명을 아는 자와 같고, 험하고 먼 길을 흐르면서 남의 허물을 뜯는 법이 없으니 덕을 가진 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진 자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은 만인이 우러러 보는 대상이기때문이다. 초목이 그 곳에서 자라고,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새들이 모여들고 짐승이 쉬어간다. 인간은 그 곳에서 이익을 취하고 산다. 천·지 중간에 우뚝 서 있는 산에는 구름과 바람이 불어 인다. 천지는 이로서 안녕(安寧)을 얻는다. 그래서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자연과 하나 되기를 꿈꾸었던 선비의 마음은 자연을 담은 정자, 별서, 정원 또는 원림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공간과 면학공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소쇄원은 옛 선비들의 교류의 공간으로 자연의 풍광을 관상하며 성리학의 이상을 꿈꾸며 인격을 수양하고, 시와 학문을 수련하며 후세를 양성하는 무릉도원이었으며, 심오한 담론의 장이 되었으며, 선비문화의 요람이었다.
선비의 자연사랑은 지금처럼 교통이 편리하지도 않고, 신발도 편치 않는 짚신을 신고 두발로  팔도강산의 산수를 유람하면서 자연의 도를 깨닫고 자연과 살아가겠다는 풍류 세계관을 볼 수 있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김효원은 유(遊)두타산기’에서 “산과 숲은 궂은 것을 감춰 준다는 도량에서 나의 가슴을 넓혀주는 것을 배우고, 맑고 서늘한 기운에서 나의 누추함과 더러움을 씻어 버릴 것을 배우게 한다. 또 게으름과 타락에 빠지게 하고, 경박함과 조급함으로 화를 발끈 내며 스스로를 소인 취급하여 애걸복걸하며 구차하게 여기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산과 물의 도움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선비는 자연을 벗삼으며 시를 읊조리고, 독서하며,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에서 호연지기를 기르며 살아간다.
석주 이상룡 선생은 나라를 빼앗기고 1911년 나라를 떠나면서 “더없이 소중한 삼천리 우리강산,
오백년동안 선비의 예의를 지켜왔네.
문명이 무엇이기에 노회한 적 불러 들어” (이하 생략)
외세 문명 앞에 선비정신이 무너져버려 나라잃은 슬픔을 한 편의 시를 읊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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