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7 (목)

5·18 광주역·금남로 '집단발포 명령' 문건 확인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5.12 15:20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1980년 5월 작성 보안사령부 보고서

 계엄군 자위권 발동 이전 발포 명령

 5·18硏 "상부 압박 군 수뇌부 조사를"


5·18민주화운동 당시 지휘관들이 계엄군에게 발포를 명령한 내용이 담긴 군 문건이 확인됐다.

12일 전남대 5·18 연구소와 5·18 기념재단 등에 따르면 '광주소요사태 진행 상황'이라는 1980년 5월 보안사령부가 생산한 600여 쪽 분량의 문건을 확보, 이를 분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문서에는 당시 광주에 파견된 505 보안부대 등이 파악해 보고한 시간대별 기록이 작성돼 있으며, 발포 명령 지시와 명령권자가 명확히 적시돼있다. 문서에는 5월 18일 오전 11시 전남대 앞 상황 보고를 시작으로 5월 27일 오후까지의 보고가 기록됐다.

발포와 관련한 명령이 가장 처음 확인된 날은 5월 20일 오후 9시 50분이다. 이날은 계엄군이 광주역 앞 시민들에게 집단 발포한 날이다. 

문건에는 '3여단장은 각 대대에 M16 실탄 배부 및 장착 지시 하달'이라고 기록됐다. 당시 3공수여단장은 전두환 씨의 최측근인 12·12 군사 반란 가담자 최세창씨다. 광주역 발포로 숨진 시민들의 수는 최소 4명으로 집계됐다.

다음 날인 21일에는 정웅 31사단장의 발포 명령이 있었다. 이날은 계엄군이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을 향해 집단으로 발포한 날이다.

21일 오전 9시5분 기록에는 '31사단장은 문을 부술 경우 발포 명령(전교사관 금지 지시)'이라고 적혀있다. 당시 31사단에는 3·7·11공수여단이 배속돼 광주교도소 경계 근무를 서고 있었다.

오전 9시 30분에는 '31 사단은 모든 업무 중단하고 출동 준비' 기록이 쓰여있다. 이 시점부터 공수부대는 금남로로 배치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후 3시 45분 기록을 통해 금남로 집단 발포 정황이 뚜렷해졌다. 기록에는 '31사단장은 폭도 무장에 대비, 전 병력에게 완전무장 및 충분한 실탄 휴대를 지시하고 발포권한도 개인에게 부여'라고 쓰여있다. 집단발포는 오후 4시 옛 전남도청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와 함께 시작됐다.

오후 6시에 기록된 내용에는 '31사단장 발포 명령을 취소하고 여하한 경우라도 허가 없이 발포 금지(탄약 장전도 금지)'라고 적시됐다.

전남·전북 등 호남지역 군부대를 지휘하는 2군사령부에서도 발포 지시가 내려졌다. 오후 7시 기록된 보고에는 '35사단에 사남터널 병력 100명 추가 배치하고 전남에서 오는 폭도는 발포토록 2군(2군사령부)에서 지시'라고 적혀 있다. 35사단은 당시 전남과 전북의 경계인 사남터널을 지키고 있었다. 

이날 발포 명령이 계엄사령관 이희성의 이름으로 자위권을 천명한 오후 7시 30분 이전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상부의 압박에 의해 진행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도 제기된다.

김희송 전남대 5·18연구소 연구교수는 "자위권 발동 전 광주 지역 계엄군 지휘부가 단독으로 발포 명령을 내릴 수는 없었을 것"이라며 "발포 명령을 지시한 것은 당시 군 최고지휘부였을 것이다. 군 수뇌부를 조사해 지시 경로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태그

전체댓글 0

  • 12645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5·18 광주역·금남로 '집단발포 명령' 문건 확인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