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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허난설헌 옛집 터 난설헌 살구나무

보슬보슬 봄비에 송이송이 살구꽃 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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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3.31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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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난설헌 살구.jpg

 

허난설헌의 아버지 허엽의 호가 초당이다. 강릉 초당동 477 허난설헌 생가터의 지명은 허엽이 이곳에서 두부를 만든 데서 얻은 이름이다. 이곳에 그 초당두부를 만든 우물이 있다.

허엽은 첫 부인이 1남 2녀를 낳고, 세상을 뜨자, 강릉김씨 김광철의 딸과 재혼하여 2남 1녀를 낳았다. 첫 부인 아들 허성은 이조, 병조 판서를 지냈고 남인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임진왜란 직전 일본에 통신사의 서장관으로 다녀와서 일본 침략을 예언했다.

강릉김씨의 자녀인 허봉은 열여덟 살에 생원시에 수석으로 합격한 수재였고, 명나라에 다녀와 기행문 ‘조천기’를 썼다. 허균은 난설헌의 여섯 살 아래 동생으로 최초의 한글 소설 ‘홍길동’의 저자이다.

허난설헌의 어릴 적 이름은 초희와 옥혜이고, 자는 경번이며 난설헌은 호이다. 난설헌은 허균과 함께 천재라 불렸다. 여덟 살에 쓴 장편 시 ‘광한전백옥루상량문’은 ‘하늘의 신선이 산다는 백옥루’를 상상해 지은 시로 당시 한양의 화제가 되었고, 훗날 이 시를 읽은 정조도 감탄했다고 한다.

하지만 결혼생활은 불우했다. 1577년 15살 때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안동 김씨인 16살의 김성립과 결혼하였다. 남편도 문인이었으나 아내의 남다른 재능을 챙겨주기는커녕, 가정사마저 등한했다. 여러 차례 과거에 낙방하다, 아내가 죽은 1589년에야 증광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저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 순절하여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허난설헌은 두 남매에게 온갖 애정을 쏟았으나, 연이어 남매를 잃었다. 경기도 광주 초월읍 지월리 양지바른 언덕에 남매를 나란히 묻고, 자신을 그 무덤 뒷자리에 묻으라고 했다. 그렇게 한이 맺혀서인지, 그녀의 ‘삼한(三恨)’은 조선에서 태어난 것, 여성으로 태어난 것, 남편과 금슬이 좋지 못한 것이었다.

허난설헌이 스물세 살에 친정어머니의 초상에 친정에 갔을 때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깬 그녀는 ‘붉은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가 차가운 달에 떨어졌네’라는 시를 지었다. 허균이 이 시를 읽고 "부용꽃 서른아홉 송이는 곧 스물일곱 살의 자기 죽음을 예감한 것이다"고 하였다.

허난설헌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사람은 허균이다. 그녀는 자신의 시를 불사르라 했으나, 허균은 생전에 넓은 땅에 태어나지 못했음을 한탄한 누이의 뜻을 이루어주려 그녀의 시를 중국 사신 주지번에게 주었다. 중국과 일본까지 난설헌의 시를 시인들이 애송하게 된 연유이다.

경포대에서 호수와 바다를 바라보면 신선이 된다는 곳이다. 바다와 호수, 너와 나의 눈, 마주치는 술잔, 그리고 마음속까지 해와 달이 뜬다는 곳이다. 사철 푸른 금강송과 낙엽송인 상수리나무, 그리고 벚꽃이 어울리면 경포호는 커다란 꽃구름이 되는 곳이다.

허난설헌이 태어난 집은 그 경포대가 있는 경포호 남쪽 솔숲에 있다. 오랜 세월 집 주인이 바뀌고, 집도 개축되었겠지만, 그곳에 오래된 나무가 있다. 그녀의 시에 나오는 살구꽃을 지금도 피우고 있는 한 아름 살구나무이다.

보슬보슬 봄비에 연못은 어둑하고/ 으스스 찬 바람 장막에 스며들제/ 뜬 시름 못내 이겨 병풍에 기대니/ 송이송이 살구꽃 담위에 지네.

허난설헌의 시 ‘봄비’이다. 이 봄비에 나오는 살구나무와 옛집 터의 살구나무가 같은 나무인지, 아닌지, 아니면 그 후손 나무라도 되는지, 아닌지를 굳이 따질 필요는 없다. 하지만 웬일인지 오래된 그 살구나무 앞에서 한동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김 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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