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7 (목)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부안 개암사 이매창 홍매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받은 여인 매창

댓글 0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구글플러스
기사입력 : 2022.03.24 15:14
  • 프린터
  • 이메일
  • 스크랩
  • 글자크게
  • 글자작게


부안 개암사 이매창 홍매.jpg

 

개암사는 백제 무왕 35년, 634년에 묘련이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에 세운 절이다, 개암은 기원전 282년, 진한과 마한에 쫓긴 변한의 문왕이 우(禹)와 진(陳) 두 장군에게 이곳 두 계곡에 도성을 쌓게 하고 전각 이름을 동쪽은 묘암, 서쪽은 개암이라고 한데서 유래한다.

신라 때인 676년 원효와 의상이 이곳 우금산 울금바위 굴에서 수도했고, 고려 때인 1276년 원감국사가 절을 크게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을 피하지 못하고 소실되었다. 현재는 조선 중기의 대웅보전을 중심으로 1913년 화은이 시작하여 여러 건물을 복원하고 있다.

절에서 바라보이는 울금바위에는 3개의 동굴이 있다. 그중 원효방에는 조그만 웅덩이가 있는데, 원효가 수도하면서부터 샘물이 솟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우금산의 주류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다. ‘벌처럼 모이고 고슴도치처럼 일어나 산과 골짜기에 가득 찼다.’는 백제부흥운동의 마지막 유적지다.

‘임진, 계사에 왜적이 쳐들어왔을 때/ 이 몸의 시름과 한 뉘에게 풀었으리/ 홀로 거문고 끼고 난세의 노래 뜯으면서/ 삼청동의 그대를 서글피 그리워했지요.’

가사, 한시, 시조, 가무, 현금에 이르기까지 다재다능했던 매창, 이화우 흩날릴 제의 시인인 이매창(1573∼1610)의 ‘옛일을 더듬으며’라는 한시다.

어릴 적 이름은 향금, 태어난 해가 계유년이라 계생, 계랑이라 했던 매창은 그녀의 호다. 매창은 선조 6년에 부안현의 아전, 이탕종의 얼녀로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글을 배웠고, 모친에게 거문고를 익혔다. 15세에 계례를 치러 정식 기녀로 입적하며 천향이라는 자를 받았다.

매창은 어릴 적부터 시문과 거문고에 천부적 재능이 있어 주위 사람들은 그녀의 빼어난 솜씨에 흠뻑 빠져 혀를 내두르며, 신분과 운명을 안타까워했다.

조선 현종, 숙종 때 학자인 홍만종은 그의 저서 ‘소화시평’에서 ‘송도의 진랑(황진이)과 부안의 계생(매창)은 시의 문체가 서로 견줄 만하니 참으로 기이하다’고 했다.

삶도 사랑도 뜬구름일 수밖에 없는 기녀였지만 매창의 시 ‘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헤어진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는가/ 천지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매’는 지고지순한 만고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1610년 37살의 매창은 세상을 떠났다. 읍의 남쪽 나지막한 야산 공동묘지에 그녀의 유언대로 손때 묻은 거문고와 함께 묻혔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은 그녀를 기(妓)가 아닌 아름답고 우아한 여인 ‘원(媛)’으로 추억했다.

1655년 매창이 떠나고 45년 뒤에야 무덤 앞에 비석이 세워졌다. 1668년에는 사람들이 외워서 간직하던 시 58편을 고을 아전들이 모았다. 개암사에서 목판에 새기니 바로 ‘매창집’이다. 천민으로 태어나, 아픈 사랑을 안고 살았던 그녀의 아름다운 부활이었다. 살아서부터 미움과 질책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살아서도 죽어서도 사랑받는 사람이 바로 매창이다.

해마다 오는 봄이다. 봄 하늘가 흰구름이 송이송이 흐르고, 넋인 듯 사랑인 듯 매창의 시가 거문고에 실려 노래가 된다. 그렇게 아름다운 사람은 세월의 흐름을 넘어 살아간다.

매창의 시를 세상에 알린 개암사의 늙은 노매는 이제 근근이 봄맞이꽃을 달지만, 매창과 더불어 아름다운 정한의 꽃이다. 이른 봄 개암사에 가면, 그리고 개암매를 보면, 기녀가 아닌 아름답고 우아한 원인 매창도 만날 것이다. 매창은 부안의 시인이며, 개암사의 시인이다.

<김 목/ 동화작가>

태그

전체댓글 0

  • 04190
비밀번호 :
메일보내기닫기
기사제목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부안 개암사 이매창 홍매
보내는 분 이메일
받는 분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