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7 (목)

군대와 식량은 버릴지언정 신의는 지켜야

대한제국망국사(25회)중추원 의관 안종덕의 상소/김세곤·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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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3.22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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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7월 15일에 중추원 의관(議官) 안종덕이 ‘조정이 청렴, 근면, 공정하지도 않고 신의도 없음’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
안종덕은 근면의 허상을 이야기한다.         
“지금 폐하께서는 근면한 것을 좋아하지만 조정에는 게으른 습성이 있어 무슨 일이나 성사될 가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의정부의 회의는 모여 앉자마자 헤어지고 각 부(部)의 출근에 대해서 여러 번 주의를 주었음에도 출근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령이 결원되어 있으나 해가 지나도록 임용되지 않는 것은 전형을 맡은 관리들이 태만한 탓입니다. 죄수들이 옥에 갇혀 있어도 계절이 바뀌도록 심리하지도 않는 것은 법관들이 태만한 결과입니다. (중략)
신은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은 데 있지않은가’생각합니다. 대체로 제왕들의 근면은 관리들이 수고로이 힘쓰는 것과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어진 사람을 구하는 데 힘쓰며 인재를 얻은 다음에는 모두 맡겨버리는 것입니다. 고요(皐陶)의 노래에는‘임금이 모든 일을 다 맡아보니 고굉지신(股肱之臣)들은 게을러져서 만사가 그르쳐지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다 맡아본다는 것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서는 것이 근면한 듯 하지만 신하는 게을러지고 일이 그르쳐집니다.
근면하기는 마찬가지나 그 결과는 이처럼 상반됩니다. 진시황이 직접 계(啓)를 꼼꼼히 살피고, 수나라 문제(文帝)가 직접 호위 군사들에게 밥을 먹인 것은 해당 관청에서 할 일이었지 제왕이 직접 할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 폐하께서는 황위에 오른 이후 날마다 바쁘게 지냈으니, 참으로 천하에 의로운 임금입니다. 하지만 걱정이 지나쳐서 하찮은 일들까지 살폈고 근심이 깊어서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여 모든 일을 직접 도맡아 하였습니다. 하찮은 일들까지 살폈기 때문에 큰 원칙이 허술해졌고 남이 하는 것을 싫어하였기 때문에 참소(讒訴)가 쉽게 들어왔습니다.
큰 원칙이 허술해지니 소인들이 폐하를 기만하게 되었고, 참소가 들어오니 대신들이 자주 교체되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나선다는 것입니다.
(중략)  전형을 맡은 관리들은 명령만 기다리게 되고, 법을 맡은 관리들도 명령만을 받들게 되니, 임금의 팔다리 노릇을 해야 할 관리들이 어찌 게을러지지 않으며, 만사가 어찌 그르쳐지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을 놓고 신은 감히 폐하의 근면이 근면의 마땅한 도리를 잃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상소는 공정에 다다른다. 그는 고종의 공정성을 상당히 의심한다.     
“지금 폐하는 공정한 것을 좋아하나 조정에는 사리사욕이 넘쳐나고, 관리들 간에는 당(黨)이 갈라졌으며, 벼슬을 얻어 나가려는 자들은 대궐 안의 비호 세력과 결탁하고, 세력에 끼려는 자들은 외세에 의지합니다.
재주도 없이 턱없는 과분한 벼슬을 지내는 것은 모두 세도 있는 집안의 인척들이고, 죄를 지고도 요행수로 면하는 것은 모두 권세 있는 가문의 청탁 결과입니다. 임용해야 할 벼슬자리가 있으면 비천한 자들을 사대부들보다 먼저 앉히며, 이익을 얻을 수 있으면 도적보다 더 심하게 빼앗아 냅니다. 천하에 잘 하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사익을 채우는 일 한 가지뿐이니 이것이 무엇 때문입니까?
신은 폐하의 공정함이 진실한 공정함이 아니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겉으로 드러난 정령(政令)과 하는 일들로 미루어 폐하의 마음을 더듬어 보면 순전히 공적인 마음에서만 출발한 것이 아닌 것도 있는 듯합니다. (고종실록 1904년 7월 15일) 
안종덕의 상소는 계속된다.
“요즘의 관보를 보니, 칙임관·주임관·판임관의 벼슬이 매번 가까이 돌면서 사적인 총애를 받거나 점쟁이나 이단(異端)의 무리들에게 내려지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이 두 무리들에도 어찌 등용할 만한 사람이 한 명도 없기야 하겠습니까마는, 대체로 이 무리들은 간사한 술법을 숭상하고 간교하여, 안으로는 남을 헐뜯고 시비를 전도하며 밖으로는 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권세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이익을 좋아하고 염치없는 무리들을 앞다투어 추종하며 저마다 아부하여 편당을 만들고는 자기들과 다른 사람을 배척하고,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을 쫓아냅니다. 이런 형세는 필시 나라를 망하게 만들고야 말 것이니, 어찌 경계해야 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고종은 여전히 점쟁이나 이단의 무리를 등용했다. 대표적인 사람이 1899년에 만난 성강호이다. 그는 고종에게 1895년 을미사변에 시해당한 명성황후의 혼령을 볼 수 있다고 현혹했다. 이에 빠진 고종은 명성황후가 생각나면 매번 성강호를 궁중으로 불러들였다. 그는 1년 사이에 벼슬이 뛰어올라 협판(차관급)에 이르렀으며 그의 집 문 앞은 항상 저잣거리처럼 붐볐다. 황현의 『매천야록』에 나온다. 
상소는 이어진다.
“지금 중앙과 지방의 높고 낮은 관리들은 대부분 지조가 없고 턱없이 벼슬을 차지한 자들입니다. 약간이나마 염치가 있고 조금이나마 절개를 지닌 사람들은 임용되자마자 바로 쫓겨나고 벼슬에 나서자마자 물러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폐하의 공정한 마음을 헤아려서 왔다가 나중에는 이 무리들의 배척을 받고 떠나버립니다.”
간사한 자는 벼슬을 다 차지하고, 염치 있고 절개 있는 자는 쫓겨나는 현실이 대한제국이었다.
이어서 안종덕은 고종의 늦잠 버릇에 대해 말한다.  
“대궐 안의 일은 알아서 안 될 일이기 때문에 신이 자세히 모르겠습니다만, 가만히 듣건대 폐하는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들어 정오가 지나서야 일어나므로 아침 식사를 들자마자 벌써 날이 저물어버린다고 합니다.
대문이 열리면 행랑(行廊)이 마치 시장 같아지고 항간의 잡된 무리와 시골의 부정한 무리들이 밀치며 꼬리를 물고 달려들어서는 폐하 앞에서 버릇 없이 부산스레 들락날락하니, 이는 무엇을 도모하자는 일이겠습니까?
폐하를 보좌하여 일을 주관해야 할 높은 관리들과 나랏일을 논의해야 할 신하들은 해가 지나도록 폐하를 만나 뵙지 못하고 그저 문서나 받아 처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런 판이니 온 나라에 시행되는 정사가 과연 공정한 것이겠습니까, 사사로운 것이겠습니까?
 이는 명철한 임금이 정사를 베푸는 원칙에 손상을 주는 것일뿐 아니라, 옥체를 조섭하는 도리에도 해를 끼치는 것이기 때문에 신은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고종은 1870년대 부터 민왕후와 함께 밤새 연회를 즐겨 새벽에야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이 버릇은 여전했다.    
“원컨대, 폐하께서는 공적인 도리를 널리 시행하여 사적인 총애를 받는 자들을 내쫓고 신망 있는 사람을 널리 등용하소서. 대책을 세울 때에는 조정에 묻고 개인들과 의논하지 말며, 인재를 선발하는 경우에는 벼슬에서 물러난 지조 있고 충직한 선비들 속에서 구할 것이요, 연줄을 대어 결탁하는 간사하고 부정한 무리들 속에서 찾지 말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굽어살피소서.”
안종덕은 간사하고 부정한 무리를 멀리하고 신망받는 사람을 가까이하라고 간언한다. 하지만 고종은 여전히 몇몇 편애하는 사람들에 의존하여 대한제국을 이끌고 있었다.   
이제 상소는 신의(信義)로 이어진다. 
“지금 폐하께서는 신의를 좋아하지만 주변의 신하들은 속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중앙과 지방에서는 유언비어가 떼지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애통조서(哀痛詔書)를 여러 번 내렸으나 온 나라가 감격하는 효과가 없고, 엄격한 칙서(勅書)를 자주 내렸으나 탐관오리들이 조심하는 기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신의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의 도리가 서지 못하고 신의가 없으면 하늘의 도리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신의가 없으면 제 몸도 수행할 수 없으며 신의가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릴지언정 신의는 버리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릴지언정 신의는 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논어’ ‘안연 편’의 공자와 자공의 대화에서 나온다.
자공 :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 :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사를 넉넉히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 : “부득이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 “군대를 버려라”
자공 : “나머지 두 가지 중에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식량을 버려라.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 (民無信不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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