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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화엄사 각황전 황제 화엄매

인간도리의 예를 깨닫는 아름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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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3.17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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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jpg

 

구례는 지리산과 섬진강의 품에 안겨 오랜 세월 민초들의 숱한 얘기를 만들고 그들을 보듬어주었다. 세상사의 이치와 인간 도리의 예를 깨닫게 하는 깨달음의 고을, 구례는 한반도 남쪽의 큰 언덕이다.

이곳 화엄사는 신라 진흥왕 5년인 554년에 인도 승려 연기조사가 세웠다. 그 뒤 남북국 시대에 의상대사가 지금의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을 짓고 건물의 벽을 화엄석경으로 둘렀다. 하지만 이 화려했던 전각은 정유재란에 잿더미가 되었고 인조 때 벽암선사, 숙종 때 계파선사에 의해 각황전으로 되살아났다.

각황전은 글자 그대로 깨우침의 황제 전각이다. 왜란에 불에 탄 전각 복원을 위해 화주승을 뽑을 때다. 밀가루와 엿을 넣은 항아리에서 엿을 꺼내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는 사람을 뽑았다. 이때 스님 매월이 뽑혔고, 그날,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시주를 받으라고 했다. 그런데 매월이 처음 만난 사람은 아랫마을 가난한 벙어리 노인이었다. 매월의 사연을 듣고, 노인은 두말없이 계곡에 뛰어들어 목숨을 시주하였다. 8년 뒤, 매월은 청나라에서 한 어린 소년을 만났다. 소년은 청나라 황태자로 벙어리였다. 그런데 매월을 만나자, 말문이 터졌다. 황제는 매월에게 아들의 환생 사연을 듣고, 전각 복원비를 시주하였다. 그래서 장육전은 황제를 깨우친 전각, 각황전이 되었다. 이는 각황전 두어 전설 중 하나지만, 자신의 본심과 본성을 깨닫는 게 각성이고, 각성이 곧 깨우침의 황제인 각황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이곳 화엄사 승려들은 임진, 정유왜란에 분연히 일어났다. 화엄대선 겸 선교판이던 윤눌은 임란이 일어나자, 수군에 가담하여  1차 진주성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다. 스님 해안도 의병장으로 진주성에서 싸웠다. 스님 설홍은 방처인 등 화엄사 승병을 이끌고 석주관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였다.

이렇듯 임란과 정유재란 때 석주관에서 왜와 싸웠던 의승병의 기록은 의병장 조경남의 산서전진실기와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 이미 알려졌으나, 정조 22년인 1798년에 화엄사 승당을 중수할 때 나온 격문 ‘기서화엄사화상승○○’과 ‘정유란일기’에서 다시 확인되었다.

그러니까 정유재란 때인 1597년 음력 8월 7일이다. 진주에서 올라온 고니시 유키나가의 왜병이 구례를 집중 공격했다. 구례현감 겸 석주관 만호였던 이원춘은 남원으로 후퇴하고, 왕득인이 의병과 함께 왜와 맞섰으나, 모두 전사했다. 왜의 살인, 방화, 약탈행위는 극에 달했다. 11월 초다. 구례의 20대 젊은 선비들 3600여 명, 화엄사 주지 설홍이 이끄는 승병 153명이 의분에 떨쳐 일어섰다. 그리고 이들도 모두 전사했다.

‘들도 산도 성도 모두 태워 버리고 사람을 쳐 죽이고 쇠사슬로 손을 묶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찾아 울부짖고 아이는 어머니를 붙들고 운다. 어린아이를 어머니로부터 떼어내 어미를 죽이니,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지옥의 참상이다.’ 당시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를 따라온 승려 케이넨의 종군일기이다. 또, 이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는 승병에 대한 앙갚음으로 화엄사를 불 지르고 범종을 훔쳤으나, 섬진강에서 배가 전복되었다.

이곳 붉다 못해 검은 화엄매는 아름답다. 오죽헌 율곡매, 선암사 선암매, 백양사 고불매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근근이 봄맞이하지만, 화엄매의 봄맞이는 화사하고 눈부시다. 이 화엄매 맞이는 세상사의 이치와 인간 도리의 예를 깨닫는 각성이다. 그게 또 깨달음의 각황이니 새봄에 화엄매를 맞이한다면 황제는 물론이고 그 무엇이 부러우랴?

(김 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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