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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조선의 魂을 없애려 한다”

대한제국망국사(20회)… 전운(戰雲)의 한반도 //김세곤·역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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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2.01.04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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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레야 1903년 가을
 1903년 가을부터 대한제국은 흉흉한 소문에 휩싸였다. 동학교도들이 일본인을 내쫏기 위해 다시 봉기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이 시기에 폴란드계 러시아인 세로체프스키(1858~1945)는 1903년 10월 10일에 부산에 도착하여 1개월간 한국을 여행하고, 1905년에 ‘코레야 1903년 가을’ 책을 지었다.
‘코레야 1903년 가을’의 마지막은 ‘전쟁 전야의 서울’이다. 저자는 러일전쟁 전야의 대한제국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신문균과 나는 서울의 유명 음식점에서 마지막 저녁을 함께 보냈다. 음식점은 너무 형편없었다. 역겨운 술 냄새가 진동했고, 탁자도 의자도 벽도 너무 더럽고 지저분했다. 신문균은 말이 없었다. 벽 너머의 목소리가 잦아들고 손님들이 나간 후에야 그는 우울한 말을 하였다. 
“도대체 희망이 보이지 않아요. 교육도 하고 학교도 열고 학생들 유학도 보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돈이 없는 것은 관료들이 도둑질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들도 가족을 봉양해야 하고, 친척도 도와주어야 하고, 뇌물도 상납해야 하고… 그러니 도둑질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외국인들은 우리나라에 관료들이 너무 많다고 하지만, 한국에는 관직을 제외한 직업이란 게 없습니다. 농민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고 있어 차라리 개들이 더 낫게 사는 지경입니다.” 
그는 한숨만 푹 쉬며 술을 들이켰다. 
“그럼 일본인들은 어떻습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일본인들이요? 그들은 최악입니다. 그들은 산 채로 우리 목에 올가미를 걸고 있어요. 그들은 은행을 열어서 우리에게 돈을 빌려줍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그들의 노예가 되고 있습니다. 서울 땅의 1/3이 그들 소유라는 것을 아십니까? 다들 그들에게 저당 잡히고 또 잡히고 있지요.”
‘그래도 일본인들은 개혁을 시도하고 있지 않나요? 사람들을 교육하고 노예제를 폐지하고 국가 경제를 정비하고자 하지 않습니까?’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겉으로만 우리를 만족시키려 하고 있어요. 우리의 겉모습만 바꾸고 내면은 다 파내 버려 껍질만 남기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혼을 없애려고 합니다.”
신문균은 우울한 침묵 속에 연거푸 술을 마셨다. 잠시 후 우리는 발코니로 나갔다. (…) 갑자기 저기 나무들 사이로 갓 쓴 노인의 환영(幻影)이 보이는 듯했다. 노인은 졸음이 밀려오는 지친 머리를 기댈 곳을 헛되이 찾고 있는 듯 보였다. 그 모습이야말로 한국의 저 불행한 과거를 말해주는 끔찍한 상징이 아니겠는가!” (세로셰프스키 지음· 김진영 외 4명 옮김, 코레야 1903년 가을, 개마고원, 2006, p 420-423)

# 전운의 한반도
일본과 러시아는 여러 차례 협상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결렬 위기에 놓였다. 1903년 12월에 러일 양국은 경쟁적으로 한반도에 병력을 증파하고 있었다. 러시아는 12월 17일에 순양함 두 척을 제물포로 보냈다. 일본군은 부산·인천 등을 통해 수십 명 단위로 상륙했고, 연습용 명목으로 기관포와 공병 재료들도 소속 들어왔다. 
1904년 들어 열강들은 자국 공사관 보호를 명목으로 속속 호위병을 입경시키고 순양함을 제물포에 파견했다. 1월 3일 미국 공사 알렌은 공사관과 거류민 보호를 위해 미 해병대 100명을 입경시켰고,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도 호위병을 증강했다. 러시아는 1903년 12월 17일에 순양함 두 척을 제물포로 보냈다.
이러자 서울의 물가는 폭등하고 민심이 동요되는 등 극도의 혼란이 일어났다.  1월 25일 자 <황성신문>은 “근일 각국의 보호병이 서울에 들어오고 일본과 러시아의 개전론이 유포되면서 곡식값이 뛰고 있다”고 보도했다.
1904년 1월 2일에 고종은 고위 대신을 통하여 미국공사관에 파천을 요청했다. 알렌은 “전쟁이 터지면 황제가 공사관으로 오겠다는 요구를 거절했다”고 미국 국무부에 보고했다.
프랑스공사관에 온돌방을 만들었다는 소문이 도는 가운데, 고종은 프랑스 공사관에도 파천을 타진했지만 실행되지는 못하였다.
# 국외중립 선언
1904년 1월 21일에 고종은 중국 지푸에서 기습적으로 ‘국외중립선언(局外中立宣言)’을 하였다. 그 내용은 러시아와 일본 간에 평화가 결렬될 경우 대한제국은 엄정중립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지푸 선언은 황실에서 이용익이 극비리에 총지휘하고 현상건·강석호·이학균·이인영 등이 프랑스인 교사 마르텔 및 벨기에인 고문 델코안뉴 등의 협조를 받아 추진되었다. 영국 공사 조단은 ‘외무대신도 사전에 알지 못한 채 문서에 도장을 찍으라는 명령만 받았다’고 본국에 보고했다.
더욱이 한국의 전신 업무는 실제로 일본의 수중에 있었기 때문에 고종은 외부(外部) 번역관 이건춘을 지푸 주재 프랑스 부영사에게 밀사로 파견하여 불어로 된 선언문을 각국에 타전하였다.  
그런데 일본과 러시아·미국은 이 선언에 대해 아무런 회답을 보내지 않았다. 영국·프랑스·독일·이탈리아는 접수했다는 회신만 했을 뿐 이를 지지하지는 않았다. 
#. 매켄지와 이용익의 면담 
2월 8일 새벽에 사세보항을 출발한 연합함대 제4전함대는 제1군단 선봉대는 2천명을 싣고 오후에 인천항에 도착했다. 오후 8시부터 개시된 상륙은 한밤중에 이르러 완료되었다.
한편 일본군이 인천에 상륙하기 이틀 앞서(2월 6일경) 영국 데일리 메일 종군기자 매켄지는 고종의 최측근 이용익과 대담하였다. (매켄지는 1908년에 <대한제국의 비극>, 1920년에 <자유를 위한 한국의 투쟁;한국의 독립운동>이란 제목으로 번역됨> 책을 쓴 친한파이다.)
이 만남에서 이용익은 ‘한국이 러일전쟁에 결코 휘말려 들어갈 수 없다’는 굳은 확신을 다음과 같이 피력했다.
“러일전쟁이 일어나기 직전에 내가 겪은 개인적인 기억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는 서울에 있는 동안 이용익과의 면담에 초대받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한국이 멸망하지 않으려면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말을 들은 이용익은 한국이 미국과 유럽으로부터 독립을 보장받았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즉각 응답했다. 그와 나 사이에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갔다.
M(매켄지) : 열강으로부터 보장받지 못한 조약이란 쓸모없는 것이라는 점을 귀하는 모르십니까? 만약 조약이 준수되기를 바란다면 당신이 먼저 조약을 지켜야 합니다. 지금 한국은 개혁을 단행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이용익) : 다른 나라가 어찌하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중립적이라는 사실과 우리의 중립이 존중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을 발송했습니다.
M : 만약 귀국이 스스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들이 왜 당신들을 지켜주겠습니까?
이 : 우리는 미국과 약속을 했지요. 무슨 일이 있어도 미국은 우리의 우방이 되어 줄 겁니다.
이용익은 그러한 입장으로부터 자기의 결심을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3일이 지나자 러시아 선박 와리아크호와 코리에츠호는 제물포항에서 일본 함대의 포격을 받고 격침되었으며 일본 군대는 한국의 궁궐을 점령했다.
(매켄지 지음 · 신복룡 역주, 한국의 독립운동,  p 58-59)
이용익이 언급한 미국의 약속이란 1882년 5월 22일에 체결된 한미수호조약 제1조의 ‘거중조정(good offices)조항’을 말한다.
“미합중국 대통령과 조선국왕 및 각 그 정부의 공민과 신민간에 영구한 평화와 우호가 있을 것을 기약하고 만일 제3국이 체약국 간의 어느 한 정부에 대하여 부당하게 또는 억압적으로 행동할 때에는 체약국 중의 타방 정부는 그 사건의 통지를 받는대로 원만한 타결을 가져오도록 주선을 다함으로써 그 우의를 표시하여야 한다.”
이용익은 이 조항을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미국이 도와주리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 거중조정 조항은 1883년 11월 26일에 체결된 한영수호통상조약 제1조에도 명시되어 있다.
“제1조 (2) 체약국의 일방국과 제3국 간에 분쟁이 발생되는 경우에 청을 받은 타방은 이의 원만한 타결을 보기 위해 조정에 노력한다.”
이용익은 국가 간의 통상수호조약에서 통상 쓰는 이 용어를 가지고 미국이 영토의 보전까지 도와주리라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는 이용익만의 생각이 아니라 고종과 그 측근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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