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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식의 어른왈/“2022년, 보이나니!”

주성식/논설위원sesan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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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2.30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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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성식 사진.jpg


2022년이다. 하루가 여럿 모여 한 해가 되는데, 또 하나 구획(區劃)이 당도한 것이다. 아득한 집(宇)과 까마득한 때(宙)를 살피자니 감회가 심상치 않다.
새해를 맞으며 온갖 덕담(德談)이 만발하고 밝은 전망과 흐뭇한 다짐이 넘쳐난다. 묵은 때를 잘 벗고 새 틀을 제대로 갖추자는 것이니, 소중한 습속(習俗)이 아닐 수 없다.
살아가는 실상이 만만치 않은 것이야 외면하면 그만이다. 인류가 흔적을 남기기 시작한 이래 처음이라고 할 괴질(怪疾)이 엄연하고, 이기(利己)를 탐하며 독선(獨善)을 좇는 행태가 날로 악화되는 것도 맹목(盲目)이면 족하다.
척도(尺度)는 왜곡되거나 실종됐고, 말도 아닌 횡포(橫暴)한 소리만이 난무한다. 얄팍한 지력(知力)을 앞세워 현란(絢爛)한 분장술과 뒤섞고는 눈을 놀리며 귀를 가린다. 대화 따위 소용될 까닭이 없다.
무식과 배울 뜻마저 없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편하게 그저 관견(管見)을 광신(狂信)할 따름이다. 그런 청맹(靑盲)과니들이 작당(作黨)해 마침내 대세를 조작하고 정도(正道)를 자임한다.
그뿐이겠는가. 한 쪽에서는 오직 일신의 안위를 챙기면서 세상 일을 초월한 듯 흰 소리를 내뱉는다. 백안(白眼)과 사시(斜視)를 희번덕거리며, 언제건 휘두를 칼날을 뱃속에 감춘 채 그렇다.
온통 도박판이고, 난장판이며, 복마전이다. 보다 악착(齷齪)같아야 살아남고, 더 악랄(惡辣)해야 행세한다. 인의·공정·염치·도덕 등은 빨리, 어떤 여지도 남기지 않고 뭉개서 버리는 것이, 최선의 처세술이며 유일한 생존법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가장 무서운 것은 신뢰(信賴)가 사라져 없어진 것이다. 오늘 말을 내일 뒤집고, 극독(劇毒)에 당의(糖衣)를 입히고는 명약(名藥)이라고 속인다. 간담(肝膽)을 꺼내놓거나 목을 자를 듯 선연(鮮然)한 약속은, 버릇처럼 희롱이요  매양 사술(詐術)이 된다. 당연하다고 속삭이고, 당당하게 강변(强辯)한다.
옛 경전 중 하나에서 종말의 표지(標識)를 ‘읽을’ 수 있다. ‘말세는 세상에 신뢰가 사라진 때이며, 그 징후는 자격 없는 자가 권력을 잡는 것’이라고 천명(闡明)한다. 어떤가, 과연 감당하겠는가? 혹시 학수(鶴首)로 기다리는 것인가?
2022년을 맞아 보이고, 보리라! 오래됐으나 늘 새로운 세상에 간절한 뜻을 드리리라! 지혜롭게 생각하고, 선량하게 행동하며, 모든 것이 온전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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