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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나주 금성관 은행나무

7백년 흥망성쇠 묵묵히 지켜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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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1.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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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나주 금성관 은행나무.jpg

 

1894년 음력 7월 초하루, 광주지역 5천 동학농민군을 이끄는 최경선이 나주 금안리에 진을 쳤다. 7월 5일 어둠이 내리는 시각 나주 접주 오권선과 함께 나주 관아의 서쪽 성문인 서성문을 공격했다. 하지만 나주 목사 민종렬과 수성군 도통장 정석진이 이를 잘 막아냈다.
8월 13일, 전봉준은 수하 10여 명과 함께 민종렬과 담판을 하기 위해 나주 관아로 들어갔다. 하지만 목사 내아인 금학헌에서의 회담은 결렬되었고, 전봉준은 객사인 금성관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옷 세탁을 핑계로 사지를 벗어났다. 10월 18일, 조정은 관군과 일본군을 파견하며 호남초토영을 나주에 설치하고 민종렬을 초토사로 임명했다.
11월 23일이다. 수만의 농민군은 나주 금안리의 진을 나와 북망문 쪽 함박산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농민군은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퇴했다. 이틀 뒤인 11월 25일, 농민군은 금구와 원평, 태인 전투에서도 연이어 무너졌다, 12월 2일, 피신 길에 오른 전봉준은 순창 피로리(避老里)에서 피체되었다. 그리고 호남초토영이 있는 나주를 거쳐 한양으로 압송되었다.
나주는 천년을 넘어 역사의 고을이다. 이곳엔 영산강을 사이로 특이한 역사가 있다. 영산강 아래쪽이 마한일 때 위쪽은 백제였다. 아래쪽이 후백제일 때, 위쪽은 고려였다. 삼별초군과 동학군도 영산강 아래쪽에서는 기세를 올렸으나 나주성은 점령치 못했다. 특별한 편 가름은 아니지만, 고대사회에서 강이 위아래 고을의 소통을 어렵게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비단 고을 나주(羅州)는 호남의 중심 고을이다. 전라도는 전주와 나주를 합친 말이다. 또 전라는 동서남북 온 세상을 아우른다는 뜻이니, 나주는 온 세상을 덮어주는 비단 자락이다. 그렇게 나주는 차령과 금강 이남의 웅도이자 수도였고, 앞으로도 그리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903년, 금성(나주)에 첫발을 디딘 왕건은 고려를 개국했고, 천여 년 뒤인 1894년에 온 전봉준은 동학혁명의 영웅이다. 하지만 1980년 나주를 다녀간 전두환은 치욕의 인물이다.
나주는 삼한 시대에 마한의 54개국 중 불미국으로 추정되며, 목사 고을이 된 것은 983년 고려 성종 2년이다, 이 나주를 대원군이 결불여나주(結不如羅州)라고 평했다. 경지 면적 넓기는 나주만 한 곳이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런 해석도 할 수 있다. 경지가 넓으니 수확량도 많고, 거둬들이는 세금도 많으니, 비리나 수탈도 함께 정비례했을 거다. 평안감사와 과천 현감, 나주 목사는 조선 시대 벼슬아치들의 1순위 선망처였다. 그러니 금성관 객사에는 선정비, 공적비가 즐비하다.
그중에 전국에서 유일하게 김좌근을 기리는 ‘영의정김공좌근영세불망비’가 있다. 영산포 도내기샘의 처자 ‘나합’이 김좌근을 움직여 나주의 기근에 구휼미를 실어 보낸 데 대한 보은의 비다. 하지만 안동김씨의 세도가 끝나고 두 동강이 났던 걸 다시 붙여 금성관 경내에 세웠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비는 나주 수성군들이 동학농민군들을 물리친 내용을 기술한 ‘금성토평비’다. 그리고 전라관찰사 윤웅렬의 ‘창덕애민비’에는 1910년 일제의 남작 작위를 받은 민족반역자라는 표지판이 함께 있다. 상황이 이러하니 이곳 30여 기의 비석은 역사의 굴곡과 백성의 애환이 서린 이정표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를 700년 가까이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나무가 금성관 뒤뜰의 은행나무이다. 고려 태조 왕건과 장화왕후야 못 봤겠지만, 두 왕조의 흥망성쇠, 전란과 민란, 동학혁명과 나주학생독립운동 등 근현대 역사를 품고 있는 나무이다. 그러니 이 노거수 앞에서 무슨 할 말이 있으랴? 그저 도도히 흐르는 역사라는 물줄기에 한 점 티끌의 오욕이 되면 안 되겠구나 한다.
<김 목/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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