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7 (토)

한국과 일본 간의 과거 청산

김한수/논설위원·중국지역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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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1.10.07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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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한수 사진.jpg

 

지난 번에 있었던 홍범도 장군의 귀환을 보면서 애국지사들의 피땀 어린 항일투쟁이 가슴에 와 닿는다. 나라를 빼앗긴 슬픔 속에서 몸 바쳐 항일독립 운동을 벌인 무수한 지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흘린 피가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이룩하는 데 얼마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는지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오늘의 역사는 이전 세대가 그들의 세상과 처절하게 맞서 싸운 끝에 얻어낸 내일이다. 현재 한일관계는 악화일로에 놓여 있다. 과거를 깔끔하게 정리하지 못하니까 항상 어정쩡한 입장에서 일본을 대하게 된다.
개항 초기 조선을 둘러싸고 청나라와 세력 각축전을 벌이던 일제는 1894년 청일전쟁을 도발하였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청나라 세력을 배제하고 조선에 있어 우월한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일제는 나중에 러일전쟁을 도발함과 동시에 1904년 2월, 한국에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침략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이러한 군사력을 등에 업고 한국 정부를 위협하여 체결한 것이 「한일의정서」이다. 한국은 일제에게 군사적 목적을 포함한 모든 편의의 제공을 강요받았고 많은 토지와 인력까지 징발당하였다. 급기야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치 사이에 합병조약이 조인됨으로써 한국은 암흑의 일제시대 35년 간을 경험했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박정희 정권은 경제개발 자금이나 기술이 급했던 까닭에 명분이나 민족적 감정을 내세우지 않았다. 과거 청산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일본 정부도 무책임했지만, 과거 청산을 표방한 한국 정부도 외교관계 설정과 각종 경제협력 수용이라는 관점에 머물러 피해자 보상으로 이어지는 구체적인 성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한일협정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책임을 묻지 않은 회의가 되고 말았으며, 이 때문에 1990년부터 식민지 피해자들이 과거사 손해배상 청구를 제기하는 단초가 만들어졌다.
1965년 이래 양국 간 논쟁이 계속된 조약 문구에 대해 일본 정부는 한국 쪽의 해석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한일 기본조약 제2조의 ‘already null and void’라는 영문 합의에 대해 일본 쪽은 ‘이제 무효’로 해석해 1948년 대한민국 성립과 함께 무효화라는 입장인 반면, 한국 쪽은 ‘원천 무효’로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이견에 대해 일본 측은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의 입장에서 “일본 정부가 한국병합 100년을 계기로 총리 담화를 발표한다면 제2조에 대해서는 현시점에서 한국 쪽의 해석을 수용하겠다고 표명하는 게 적절하다”. 현재의 일본 자민당 정권이 시베리아 억류자 등 내부 피해자 보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처럼 외부 피해자 보상문제에 대해 전향적으로 나서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일본의 전반적이고 대폭적인 보상문제가 타결된다면, 이로써 한일협정의 불비한 요소들에 대해 추후 보완이 되었으니 이를 인정하고 대승적 자세로 나아가면 된다.
1990년대 북-일 협상 대표를 맡은 엔도 데쓰야 전 한국대사가 말했듯이 “한일 병합은 정통성은 없었지만 합법성은 인정돼야 한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일본은 과거의 역사적 잘못을 반성하고 이 기조 위에 국제법상 용인되는 범위 안에서 그들의 합법성을 주장하는 데 그쳐야 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당시의 위정자들인 우리 선조들이 했던 행동에 대하여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한일 간 대타협, 소모적 민족갈등 종식, 21세기 미래 공동번영 협의체로 한국과 일본이 손을 맞잡고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민족 간 감정이 근대에 싹튼 것이 아니고 멀게는 백강 전투(백제·왜 연합군 : 나당 연합군) 멸망, 여몽 연합군의 일본 정벌, 임진왜란·정유재란에서 기인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그것이 의식 아래에 잠재되어 있어 서로의 불신감과 일방적인 욕망이 표출되면서 한 나라는 억압받고 수탈당했으며, 다른 나라는 우월적 지위를 활용해 이웃을 유린한 것이다. 따라서 감정적 문제도 위로받거나 치유받아야 하고, 물리적·금전적·재산권적 침해도 적절한 형태로 보상이 이루어져야만 양쪽 다 떳떳한 입장에 설 수 있다.
한일 간 경제갈등이 심화되자 일본의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관련 핵심품목 수출금지, 우리나라의 불매운동 및 핵심기술개발이니 하면서 파열음이 커진 지 오래되었다. 저마다 기술 독립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금은 국제분업화의 촘촘한 기술협력시대로 나아갈 시점이다. 잘할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내가 서투른 것은 남에게 맡기면 된다. 국가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다 독점하거나 이익을 취할 수는 없다. 이웃도 정들면 가까운 혈육, 친지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민간 차원에서 문화의 폭과 깊이를 더하여 서로 이해·협력하려는 자세를 갖추는 한편, 어떤 상황에서든 Win-Win 하겠다는 공존공영의 정신을 잃지 말고 노력하는 두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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