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19-09-19 (목)

"수구, 계속하고 싶어요"... 여자수구, 눈물바다 속 결의

불모지 한국 첫 수구 대표팀, 개최국 자격 대회 출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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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7.2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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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첫 한국 여자 수구 대표팀의 마지막은 '눈물 바다'였다.

한국과 쿠바의 2019 광주세계수영선수권대회 여자 수구 15·16위 결정전이 열린 22일 광주 광산구 남부대학교 수구경기장.
경기 종료 전부터 대표팀 선수들은 눈물을 훔쳐내느라 바빴다. 쿠바에 0-30(0-8 0-9 0-6 0-7) 패배가 확정된 후 한국 여자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닭똥같은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관중석에 인사를 할 때도 선수들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했다. 믹스트존을 지나가는 선수들의 눈은 퉁퉁 부어있었다.
수구 불모지인 한국에서 여자 수구 대표팀이 꾸려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개최국 자격으로 대회 출전권을 얻자 대한수영연맹은 지난 5월 말에야 부랴부랴 대표팀을 꾸렸다. 한국에 여자 수구팀이 없어 전문 수구 선수는 단 1명도 없는 대표팀이다. 대부분 경영 선수들로만 이뤄진 대표팀은 중학생 2명, 고교생 9명, 대학생 1명, 일반부 1명이 포함됐다.
훈련 시간조차 짧았다. 지난 6월2일에야 진천선수촌에서 훈련을 시작해 불과 40여일 동안 훈련하고 대회에 나섰다.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 대표팀은 비교가 힘들 정도로 기량 차이가 났다.
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대표팀의 이번 대회 목표는 '1승'도 아닌 '한 골'이었다.
한국 여자 수구 사상 최초의 공식 경기인 헝가리와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대표팀은 0-64라는 기록적인 패배를 떠안았다. 하지만 러시아와의 2차전에서 역사적인 첫 골을 넣는데 성공했다. 물론 결과는 1-30 패배였다.
대표팀은 점차 나아진 경기력을 보여주며 캐나다와의 조별예선 3차전에서는 두 골을 넣었고, 2-22으로 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과의 13~16위 결정전에서는 23점차로 대패한 가운데서도 세 골이나 터뜨렸다.
대표팀의 성적은 5전 전패, 대회 최하위인 16위다.
하지만 선수들의 눈물은 꼴찌를 해서 느끼는 억울함이 아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동고동락한 이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워 흘린 눈물이다. 훈련하고 대회를 치르면서 서로를 격려하며 버텨 온 대표팀 선수들은 서로 "수고했다, 고생 많았다"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눈물을 더 쏟았다.
주장 오희지(23·전남수영연맹)는 "이제 떨어져야한다는 아쉬움에 울었다. 잠깐이었지만, 많이 정들었고, 그래서 더 속상했다"고 밝혔다. 경다슬(18·강원체고)은 "이번 대회에 아쉬운 점은 없다. 다들 열심히 뛰어줬다. 순간순간 그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김예진(18·창덕여고)도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것이 많이 섭섭하다. 짧은 기간 함께했지만, 합숙하면서 훈련하며 하루종일 같이 있다보니 짧은 기간에 정이 많이 쌓였다. 곧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는데 그게 많이 슬프다"고 울상을 지었다.
정해진 레인에서 홀로 기록과 싸우는 경영 선수로만 뛰었던 이들에게 서로 호흡을 맞추며 해나가야하는 단체종목은 생소했다. 공을 가지고 몸싸움을 해야하는 것도 익숙하지 않았다. 익숙해지기에는 훈련 기간도 짧고, 마땅히 경험해볼 상대도 없었다.
김예진은 "몸싸움이 가장 적응이 되지 않았다. 대처 방법을 잘 몰랐다. 다른 팀과 하면 어떻게 다가올지, 잡힐지 모르니까 그게 가장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모두 경영 선수였다가 공으로 하는 수구로 넘어왔다. 수구는 많이 해봐야 느는데, 기간이 너무 짧았다. 단기간에 힘들게 했다"며 "다시 시작한다면 조금 더 오랫동안 훈련했으면 좋겠다. 지금보다 열심히 해서 1승이라도 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서로 단합해 팀을 꾸려가야 한다는 생각은 강했다. 오히려 짧은 기간은 선수들이 더 똘똘 뭉치는 계기가 됐다.
경다슬은 "한 달이었지만, 그 한 달이 정말 절실했다. 한 달을 연습하고 일반인이 세계선수권대회에 나서는 것은 메시와 축구하는 것과 같다"며 "그러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뭉칠 수 밖에 없었다. 무조건 뭉쳐야 살 수 있었다"고 전했다.
오희지는 "개인적인 종목을 하다가 팀을 꾸려가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감이 있었고, 대표팀 13명이 모두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다"며 "그래서 팀워크가 생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수구 선수로 뛴 것은 이들에게는 인생을 바꾸는 전환점이 됐다. 김예진은 "불행했는데 지금은 꽃길을 걷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경영에서 잘하는 선수가 아니었는데 여기와서는 다 똑같지 않나. 한 명이라도 개인으로 하면 안 된다. 단체라서 좋았다"며 "혼자만 잘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다같이 잘해야 하는 것이 좋았다. 혼나도, 잘해도, 슬퍼도 다같이 하니까 좋았다"고 말했다.
경다슬은 "이기적인 삶을 바꿔준 종목이 수구다. 지금까지 정해진 레인에서 혼자 뛰니 나만 생각하면 됐는데, 이건 13명이 다 집중해서 뛰지 않으면 안되는 종목"이라고 짚었다.
수구의 매력에 폭 빠진 이들은 스스로 한국 여자 수구의 '씨앗'이 되고자 한다. 한결같이 수구를 계속하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오희지는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 너무 재미있고, 매력적이다. 홀려드는 것이 있다. 블랙홀 같은 느낌"이라며 "서울, 인천에 클럽팀이 있는데 전남에서도 클럽팀을 꾸려보려고 한다. 마스터스 대회도 참가하고 하면, 여자 수구팀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도전해보려고 한다"고 포부를 드러냈다.
김예진도 "만약 여자 수구팀이 만들어지면 전향할 생각도 당연히 있다. 대표팀을 만들게 되면 선발전을 치르게 될텐데 열심히 해서 다시 수구 대표팀으로 뛰고 싶다"는 마음이다.
경다슬은 "계속 수구를 하고 싶다. 남자면 실업팀이라도 있는데 우리는 아니다. 팀원들과 수구를 계속 하고 싶다"고 간절한 바람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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