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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원 열사 부친 윤석동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 별세

5·18민주화유공자회 회장 맡아 진상규명 위해 헌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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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9.06.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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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시민군 대변인 윤상원 열사의 부친 윤석동 전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이 16일 오전 9시 51분 별세했다. 향년 93세.
윤 씨는 5·18 당시 시민군 대변인 윤상원(1950~80)의 아버지로 5·18민주화유공자회 회장을 맡아 진상규명을 위해 헌신했다.
아들 상원씨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옛 전남도청에서 계엄군과 맞서 싸우다 숨졌다. 1982년 4월 윤상원과 그의 들불야학 동지 박기순의 영혼결혼식 넋풀이를 위해 만들어진 노래가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고인은 슬픔을 딛고 아들의 죽음이 갖는 역사적 의미를 이해했다. 그는 "(상원이의 삶은) 역사를 위해 희생된 인생이라고 느꼈다. 역사는 그리하여 발전한다"고 말했다.
고인은 5·18민주유공자유족회장을 맡아 12·12군사반란과 5·18 학살의 주범인 전두환씨의 서울 연희동 자택 앞을 찾아가 농성을 하는 등 5·18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힘을 쏟았다.
그는 16살 송정리 농업실습학교 학생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해 평생 기록을 남겼다. 일기에 떠나간 아들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을 적었고, 5·18민주화운동 관련 각종 신문 기사를 오려 첨부해 뒀있다.
윤상원 열사도 고인의 영향을 받아 초등학교 때부터 생을 마치기 직전까지 일기를 써서 남겼다.
고인은 1997년 12월 20일 전 씨가 사면 복권됐을 때 "과거를 반성하고 국민 대통합에 협력해 주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하지만 전 씨가 지난 3월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기 위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던 고인은 "나쁜 놈은 나쁜 놈대로 벌을 받아 죄를 안 짓고 살아야지"라고 일갈하기도 했다.
윤 씨는 논농사와 감나무 재배, 축산·양봉을 하며 7남매를 가르쳤다. 먼저 간 아들이 생각날 때면 혼자 무등산에 올라 광주를 바라보곤 했다.
신장투석 등으로 수년 동안 지병을 앓았던 고인은 지난해 5월 휠체어를 타고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았다. 먼저 떠난 아들의 비석을 애틋하게 쓰다듬던 고인은 "인자 곧 죽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아들 비석을 만져보고 싶어 왔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고인은 지난 15일 손글씨로 "내일 간다"고 적은 뒤, 자녀들에게 "고생했다. 감사하다"는 말을 남겼다.
유족은 배우자 김인숙 씨, 아들 웅원(대원건업)·태원(㈜한양 전무)씨, 딸 정희·경희·덕희(봉주초 교사)·승희씨, 사위 전남구·이기홍·나창영(목포대)·송인엽(대구광역시청) 등이 있다. 빈소는 광주 VIP장례식장 301호, 발인은 18일 오전 9시다.

/김혜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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