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2-07-0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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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광주 절골 박상 소나무
      박상은 1474년인 성종 5년에 광주광역시 서구 서창동 절골에서 태어났다. 충청도 회덕에서 살던 아버지 박지흥이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보고, 벼슬길을 포기한 뒤, 처가인 하동 정씨 마을로 이거 했기 때문이다. 호가 눌재인 박상은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선비이자, 불의를 용납하지 않는 정의로운 공직자로, 숱한 일화를 남겼다. 연산군 시절이다. 이때에 미녀와 좋은 말을 구하기 위하여 지방에 파견한 관리로 채홍준사가 있었다. 연산군 11년인 1505년 6월에 이계동을 전라도, 임숭재를 경상도·충청도 채홍준사로 임명한 게 처음이다. 그 뒤 이들을 각지로 파견하며 우수한 실적을 올리는 자에게는 작위와 토지, 노비를 주었고, 간택된 여자 집에도 특혜를 주었다. 이때에 나주에 쇠부리, 또는 우부리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 바로 이 자의 딸이 채홍사의 눈에 띄어 연산군의 후궁이 되었다. 이에 우부리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날뛰며 할 수 있는 나쁜 짓은 다 했다. 하지만 종2품인 전라관찰사도, 정3품인 나주 목사도 우부리의 못된 짓을 그저 눈치만 보고 있어야 했다. 이걸 알고 박상은 정5품으로 지방의 관리를 감찰하는 전라도사에 자원하여 나주에 들렀다. 나주목의 이방이 어떻게든 이 상황을 수습해보려 했으나, 박상은 곧바로 우부리를 체포해 오라고 했다. 결국, 우부리는 나주목 관아에서 곤장형을 받았는데, 그만 죽고 말았다. 이러니 우부리 집안에서는 장례도 치르지 않고 한양의 딸에게 달려가고, 박상도 연산군에게 사실을 이야기하러 가게 되었다. 박상이 장성갈재에 이르렀을 때다. 연산군의 사약을 가지고 오는 금부도사와 한양으로 가는 박상이 이곳에서 길이 엇갈렸다. 고양이 한 마리가 박상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다른 샛길로 안내한 것이다. 그리고 곧 중종반정이 일어나 우부리 사건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때의 인연으로 박상이 고양이 제사를 위해 광산구 하남면 오산리의 40여 두락 전답을 금강산 정양사의 묘답으로 두었으나, 일제강점기 주인이 없는 역둔토라 하여 국유화되었다. 이어 1506년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중종 시절이다. 중종의 첫 부인인 신 씨의 아버지 신수근은 연산군 때의 좌의정으로 반정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로 인해 죽임을 당했다. 따라서 신 씨도 왕비가 되지 못하고, 반정 7일 만에 쫓겨났다. 그리고 10년 뒤인 1515년 둘째 비인 장경왕후 윤 씨가 훗날 인종이 되는 왕자를 낳고 또 일주일 만에 죽었다. 이때 담양부사이던 박상이 새 중전을 뽑지 말고 폐위된 신 씨를 복위시키자는 상소를 올렸다. 순창 강천산의 삼인대가 이때의 유적지로 박상과 순창군수 김정, 무안현감 유옥 등 세 사람이 이곳 소나무 가지에 관인을 걸어 놓고 신 씨를 왕비로 복위시키자는 상소를 결의하고 맹세했다. 이 일로 중벌의 위기에 처한 박상은 조광조 덕분에 1년여 남평 유배형으로 그쳤다. 또 이런 인연으로 1519년 기묘사화에 능주로 유배 가는 조광조를 광주 학동 원지교에서 만났다. 한 달여 만에 사약을 받은 조광조의 시신이 이듬해에 달구지에 실려 고향으로 갈 때다, 박상은 다시 원지교로 나갔다. 그 한탄을 ‘뒷날 저승에서 다시 만나면…’이라는 시로 남겼다. 조선 선비의 기개와 정신의 표본인 박상의 묘는 그가 태어났던 절골 마을 뒷산에 있다. 소나무, 참나무가 우거진 숲을 오르면 몇 그루 소나무가 그를 향해 경배하듯 서 있다. 오래된 소나무로는 보이지 않지만, 선비의 기개, 무늬만이 아닌 진정으로 공정과 정의를 실천한 눌재 박상의 기상을 닮았다. 감히 머리 숙여 말없이 누워 계시는 선생을 뵙는다. 김 목/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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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6-02
  • 김대중 전남교육감 후보 “교육 확 바꿔 전남 살릴 것!”
     교사·목포시의장·교육감 비서실장 등 여러 경험이 장점 “기술혁명·지역소멸, 전남교육 현안 해결 가능” 자신감  “수업권·학습권 확보해 수업이 가능한 교실 만들겠다!”전남은 사라지고 있다. 각종 유인책이 쏟아지지만 인구 유출은 뚜렷하고, 각 시군은 지는 해를 붙잡는 듯한 도로(徒勞)에 지쳐가고 있다. 대도시의 1개 동에도 미치지 못하는 인구가 넓은 지역에 흩어져 있어, 복지 등의 각종 행정 역량이 제 구실을 하기도 쉽지 않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은 노령화다. 절대 인구수가 급감하는 데다 노인 인구 비율이 급증하는 만큼, 사회 모든 부문에서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연히 젊은 층은 떠나고 신규 전입은 끊긴다. 김대중 전남 교육감 후보는 이 악순환을 끊겠다고 선언한다.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사람에게 수영법을 강의하거나 텅 빈 골짜기에서 큰 소리로 교과서를 읊어대는 식의 교육과 학습의 한계를 지적한다. 교육은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하는 것, 사람이 모인 다음에라야 가르치거나 배우거나 선악(善惡)과 선후(先後)를 따지고 살필 일이라는 것이다. 깐깐한 교사, 품 넓은 정치인, 착실한 행정가로서 전남 교육감에게 필요한 자질과 경륜을 모두 갖췄다며 출마한 김대중 후보를 만나, 전남교육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출마 계기는? 나는 현재 우리 사회에서 급격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는 기회도 되지만 위기이기도 하다. 특히 전남은 인적·물적 토대가 취약한 만큼 위험의 측면이 더 크다.앞으로 4차산업혁명이 본격화하면서 현재 직업의 60%가 사라진다. 직업을 선택해야 하는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그와 함께 전남 17개 군은 가장 먼저 소멸할 위험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상황이 좋지 않다. 즉 아이들이 사라지고, 학교가 없어지고, 인구가 줄고, 마을이 소멸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런 절실한 인식을 바탕으로, 우리 아이들에게 미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주고, 그것을 바탕으로 전남을 구하기 위해 출마했다. 전남교육 대전환을 통해 교육을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전남 전체의 활로도 열어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아이들의 불확실한 미래와 지역소멸을 극복하는 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다. 교육과 정치와 행정을 두루 경험한 나 김대중이 전남교육을 바로 세우고 전남을 살려내야 한다는 각오로 출마를 결심했다. 나 김대중이 할 수 있다. 꼭 해내겠다.-교육감에게는 어떤 자질, 덕목이 필요한가?교육감에게 가장 중요한 자질은 겸손함이다. 말하기보다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독선적이고 독단적 행정은 아이들을 위험에 빠트린다. 덕목이라면 다양한 경험, 오랜 과정을 거쳐 검증된 능력, 청렴함 등이 중요할 것이다.- 현 전남 교육(감)의 문제는?상대 후보를 직접 평가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지난 4년 전남교육의 추락은 여러 객관적 지표가 웅변하고 있다.면학 분위기가 최악으로 떨어진 결과 수능 성적은 꼴찌로 하락했다.또 고위 간부를 포함해 직원들이 잇따라 비리 혐의로 구속되고, 교육감 부인이 관용차를 개인 용도로 쓰고, 공무원이 교육감 부인을 수행하고, 비서실 직원이 근무평점을 조작하는 등 청렴도도 역대 최하위로 떨어졌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상황인데도 원인을 밝히고 대책을 수립해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남 탓’만 하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한 마디 사과도 없이 자기 자랑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해법은 있는가? 우선 학생의 학습권과 교사의 교권을 회복해 ‘수업이 가능한 교실’을 만들어야 한다. 디지털에 기반한 맞춤형 교육으로 학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또한 공정한 인사와 투명한 행정으로 청렴도를 향상시켜야 한다. 즉 코드 인사를 중단하고, 역량과 성실성을 기준으로 평가하는 인사를 실현함으로써 교직원들의 근무 의욕과 사기를 높여야 한다.조달·구매 관련 불·탈법이 많은 만큼, 제도를 개선해 계약 투명성을 향상시켜야 한다. 내가 가장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다.-최근 현수막 게시 논란의 실체와 입장은? 사건의 발단은 ‘학력과 청렴도 꼴찌’를 지적한 현수막이 게시된 것이었다. 지난 4년간 전남교육 행정에 대한 도민들의 평가였다고 본다. 내용은 모두 공공 기관의 발표와 언론 보도 등을 통해 확인된 객관적 지표였다.그런데 장석웅 후보 측에서 그 사실을 감추기 위해 이념 공세를 펼쳤다. 그 현수막을 게시한 단체가 보수정당과 관련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자 당사자들이 언론을 통해 해명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공격적으로 허위사실을 유포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지지율이 역전되고 격차가 커지자, 다급한 마음에 흑색 선전을 하는 것 아닌지 의문이다. 특정 허위 사실 유포와 이념 공세로 내 지지도를 하락시키려는 것 같은데, 결국 무리수가 될 것이다. 청렴도와 학력 꼴찌에 대해 도민들에게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어야 한다.- 진보 정치권 경력이 상당하다. 이번 논란 때 왜 밝히지 않았나?교육감 후보는 정당을 표방할 수 없다. 그래서 이 부분을 명확히 밝히기가 조심스러웠다. 나는 김대중 대통령이 창당한 정당에서 목포시의회 의장을 했고, 노무현 대통령이 함께했던 정당의 후보로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뼛속까지 진보다. 선거 승리가 절실하겠지만, 나에게 보수의 굴레를 씌우려는 것은 비열한 정치적 작태라고 할 수밖에 없다.-본인의 경쟁력, 약점은?내 경쟁력이라면, 교육·정치·행정을 두루 경험했다는 점일 것이다. 또 강한 추진력도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목포시의원으로 활동하던 2000년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그때 아무도 실현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무상급식은 지금 현실이 됐다. 지금도 가장 보람 있는 일로 생각한다.약점은 광역(권) 선거는 처음이라, 아직은 인지도가 낮다는 것이다. 그러나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거리에서도 알아보는 분들이 많다. 이제 됐다 싶다.-교육은 궁극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교육은 아이들에게 미래를 주는 것이다. 결국 그 아이들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육은 단순히 교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남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짓는 것이다. 지금 전남은 지역 소멸 상황에 처해 있다. 엄중한 상황이다. 아무나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교육과 정치, 행정을 모두 경험한 내가 전남교육의 위기를 극복해 나가겠다.-전 세계적 교육 환경 변화에 대책이 있다면?미래사회의 특징은 불확실성이다. 전남교육 대전환으로 미래를 대비하겠다. 구체적 실행 방안의 첫째는 전남형 교육자치, 둘째는 미래 교육이다. 전남형 교육자치는, 지역사회와 함께 전략산업에 기반한 일자리를 만들고, 그 일에 적합한 인재를 맞춤형 교육으로 키우는 것이다. 전남 아이들이 전남에서 배우고, 전남에서 일하게 하는 개념이다. 일선 시·군별로 농·수산업 외의 일자리까지 파악해, 우리 학생들이 여건에 맞는 공부를 하고 취업까지 연결하겠다는 것이다.미래 교육은, AI(인공지능) 등을 활용해 교육의 새로운 경지를 여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식 습득이 어려웠지만, 지금은 인터넷 등에서 얼마든지 가능하다. 미래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은 더 이상 암기하는 지식 위주가 아니다. 창의력, 자기주도학습능력 등 미래사회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역량을 키워야 한다. 나는 인공지능과 디지털에 기반한 맞춤형 학습을 통해, 아이들이 필수적인 미래 역량을 갖추도록 가르칠 것이다. -신조나 좌우명이 있다면?‘조금 부족하게’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부족하면 채워야 하고, 채우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말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러면 겸손해진다.-끝으로 하나 더, 이름 덕을 본다고 생각하나?이름 뿐인가. 실제 ‘그 분’이 도와주신다고 ‘절감’한다.(웃음)           김대중 후보는 올해 초 출마 뜻을 밝혔을 때만 해도 거의 무명이었다. 차츰 이름이 알려지면서 ‘차기를 노리고 밑바닥을 다지는 정도’라는 평이 많았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부터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울림이 끈질기게 그리고 넓게 퍼져나갔다.아마 ‘전남 소멸’을 막겠다는 김대중 후보의 간절한 뜻이 작용했을 것이다. 교육 때문에 해마다 4500여 명이 전남을 떠난다. 소외와 차별의 피해자에 그치지 않고 이제는 존재가 사라질 위기가 닥치고 있다. 그 전남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 교육 복원이며, 전남교육은 대전환을 통해 바로 설 수 있다는 절박한 깨우침이 있을 것이다. 호남지역은 아예 정치 부재라는 폄훼(貶毁) 아니 적시(摘示)에 갇혀 있다. 그래서 김대중 후보가 교육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당당하게 지적하는 것이 돋보인다. 그렇다. 정치가 부끄럽게 기피해야 할 것이라면 왜 투표 따위로 일꾼을 뽑을 것인가! 부인(중등교사 명예퇴직)과 사이에 3녀. 10년 이상 매일 새벽 5시 유달산 등산을 시작으로 하루 1만보(萬步)를 걷고 있다. 취미는 독서, 걸으면서 음성 책을 듣기도 한다. 종교 기독교. 저서로 ‘김대중의 전남교육대전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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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5-29
  • 장석웅 전남교육감 후보 “아이들 미래 열어온 ‘외길 교육’”
     교사·교육시민운동·교육감 근무 등 ‘최고 교육전문가’ 자임  직무수행지지도 33개월 연속 1위  “선진적 교육 정책 주효”“정책 선거 돼야!”  전남 교육 지속적 발전 위해 지지 호소올해 초까지만 해도 무풍지대처럼 여겨졌던 전남 교육감 선거에 풍랑이 거세다. 장석웅 현 교육감이 재선에 나서면서 연임이 확실해 보였으나, 후보 두 명이 가세하면서 변수가 생겼다. 특히 정치권 개입설, 공약 관련 재원 조달 등 쟁점이 잇따라 터지면서 판세가 요동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그러나 장석웅 후보는 ‘초저녁 기세가 새벽까지 가지는 않는다’라며 여유를 보이고 있다. 장 후보가 평소 유지해온 낙관(樂觀)과 ‘새벽이 오지 않을 만큼 긴 밤은 없다’는 믿음이 흔들릴 만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장석웅 후보는 아이(학생)들을 잘 가르치는 것 즉 후세들에게 보다 나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에 평생을 바쳐온 ‘천생(天生) 교사’다. 그 일념으로 교사가 됐고 교육·시민운동을 했고 선출 공직에까지 이르렀다.어디에 있건 무엇에 쓰건, 황금이 돌이 되거나 흙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어떤 위치에 있건 늘 배우며 가르치기에 힘쓰겠다고 다짐하는 장석웅 후보를 만나 재선 도전의 소회를 들었다.-재선에 나서는 소감은?먼저 지난 4년 동안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뛰어온 감회가 크고 무겁다.내가 재선에 도전하는 것은, 막 시작된 전남교육의 발전 가능성을 제 궤도에 정착시키겠다는 마음 때문이다. 나는 사범대학 입학 이후 지금까지 오직 아이들의 미래와 전남교육을 위한 외길로 헌신해 왔다. 한눈팔지 않았다. 37년 동안 현장 교사, 교육개혁·혁신운동, 시민운동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교육 분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한다. 이것은 17개 시도 교육감 중 직무수행지지도 33개월 연속 1위라는 수치로도 증명된다. 교육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는 상황에 전남교육을 제대로 이끌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출마했다.-재임 중 치적과 아쉬운 점은?취임 1년 6개월 뒤 코로나19가 닥쳤다. 교육활동 전반이 위축되고, 계획했던 혁신 정책들을 제대로 정착시키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쉽다. 그러나 성과가 훨씬 크고 많았다.첫째, 전남이 전국 최고의 무상교육을 정부계획보다 2년 앞서 실시한 것이다. 둘째, 기초기본학습 문제 해결을 주요정책으로 추진한 것이다. 기초기본학습 은 아이들의 복지·인권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초등 저학년의 기초기본학습 보장을 위해, 전국 최초로 시·읍 지역 1학년 학급당 학생 수를 30명에서 25명으로 줄였다. 학생 개인별 맞춤지도가 가능해졌다.특히 기초학력 전담교사를 배치해, 초등 1·2학년 때부터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고 교육했다. 그 결과 ‘기초학력전담교사제’는 2021년 정부혁신 교육 분야 대상을 받았다.또 ‘전남농산어촌 유학프로그램’은, 교육 분야의 코로나19 대안으로 영국 BBC,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등 해외 언론까지 주목했다. 지난해 1학기 82명이었던 참가자가 올해는 304명이다. 사업 1년 만에 약 4배가 늘었다.교사의 행정업무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학교지원센터’도 전남이 전국 최초로 모든 시·군에 구축했다. 4개 권역별 지원센터를 만들어 진학정보 제공과 상담을 진행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의 관심과 참여 열기가 뜨겁다.-2期의 역점 추진 계획은?첫째, 기초기본학력 확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인한 원격수업이 아이들의 학습에도 영향을 끼쳤다. 특히 초등 저학년의 학력 저하가 문제다. 그 시기에 기초학력을 잡지 않으면 중·고까지 학력 격차가 심해진다. 차기 4년 동안에도 최우선으로 기초학력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둘째, 지역사회와 함께 자치와 협치의 교육생태계를 만들 계획이다. 마을학교 규모를 키우고, 주민도 활용하도록 학교 시설을 복합화할 것이다. 폐교를 지역(민)이 활용하도록 지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디지털 소양교육을 강화하고, AI·SW교육과 연계한 창의융합형 미래교육과정을 특화해 운영할 것이다. 모든 학교에 AI미래교실·온라인학습카페 등 미래교육에 최적화된 에듀테크를 완비하게 된다. 또 미래형혁신학교·미래형 통합운영학교·그린스마트미래학교 육성으로 전남의 새로운 미래교육을 펼쳐 가겠다.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안심하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배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것이다. 5無(GMO·방사능·농약·첨가물·항생제이 없음) 급식을 전면 추진하고, 지자체와 연계해 ‘우리 아이, 내 집 앞, 마을 돌봄’을 실시할 계획이다.-교육감에게 중요한 자질·덕목은?아이(학생)를 소중하고 특별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다. 나는 37년 동안 교육 외길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교육감(역할)을 잘 할 수 있다. 내가 우리 아이들을 당당한 미래로 이끌겠다.-최근 쟁점에 대한 입장은?전남교육 기본소득에 대해서만 견해를 밝히겠다. 학생 1인당 월 20만원(연 24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김대중 후보의 전남교육 기본소득 공약이 실현되면 좋겠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김 후보가 제시한 재원이 ‘지방소멸대응기금’인데, 이 기금은 지자체 예산인 데다 인건비·소모성 경비 등 ‘현금성 지원’을 할 수 없다. 확실한 재원도 없이 현금을 줄 것처럼 선심성 공약을 내놓으니 ‘전 국민에게 1억원씩 주겠다는 허경영식 공약이다’ 하는 식으로 비판받는 것이다. 반면 내 교육활동비 200만원 지원 공약은 재원이 확실하다. 시교육청 자체 예산을 증액하고, 급식이나 돌봄 등의 경비는 지자체와 나눠 부담하면 된다.구체적으로, 전체 초·중·고 학생 태블릿 PC 제공, 학생 1인당 학습준비물 비용 30만원 지원,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으로 전체 학생 월 2회 특식 제공, 학생 수련활동비·수학여행비 100% 인상 지원. 고3 석식 무상 제공(지자체 협업) 및 취업·진학 준비금 1인당 50만원 지원 등이다.특히 저소득층과 다문화가정의 경우 더 많은 지원이 이뤄지게 하겠다. 이것을 모두 합하면 초등학생은 최대 연간 244만원, 중학생은 211만원, 고등학생은 351만원에 달한다. 추가로 저소득층 자녀는 1인당 282만원, 다문화가정은 80만원을 받을 수 있다.-본인의 경쟁력, 약점은?나는 ‘새벽이 오지 않을 만큼 긴 밤은 없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왔다. 즉 내 경쟁력은 매우 낙천적이고 낙관주의자라는 것이다. 삶에서 어려움이나 시련이 닥쳐왔을 때 낙관의 힘으로 버텨 왔다, 또 일관되게 한 길(교육)만을 걸어 온 것도 강점이라고 생각한다.약점이자 단점은 사람을 너무 믿는다는 것이다. 사람을 한 번 믿으면 무조건 믿는다. 그런 점 때문에 낭패를 당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교육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무엇인가?나에게 교육은 ‘한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첫째, 모든 아이들은 소중하다. 그 소중한 아이들을 맡은 만큼 학교는 책임지고 교육해야 한다. 둘째, 모든 아이들은 다르고 특별하다. 아이들 각자가 갖고 있는 장점과 강점, 소질과 적성을 제대로 발현시키고 키우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셋째, 모든 아이들은 평등하므로 공정하고 차별 없는 교육이 필요하다. 기계적 기회 균등 차원을 넘어, 정의의 관점에서 평등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취약 계층이 많은 전남에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한 까닭이다. 끝으로, 모든 아이들은 미래의 주인공이다. 따라서 당당한 주체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 대응 역량을 길러줘야 한다. 이런 다짐과 의지도 현실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제반 정책을 수립할 때는 여러 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실현 가능한 방안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신조나 좌우명이 있는가?새벽이 오지 않을 만큼 긴 밤은 없다.장석웅 후보는 자신을 ‘돌처럼 단단하고, 곰처럼 뚝심 있게 한 길을 가는 실천가’라고 정의한다. 흔들리지 않고 외길을 가겠다는 자경(自警)인지 모른다. ‘스승’이라면 ‘노동자’ 혹은 ‘싸움꾼’이라는 비난과 질시(疾視)까지 피하거나 외면하지 않아야 한다고 되뇐다. 장석웅 후보는 재선에 나서며 “전남교육을 중단없는 혁신과 미래교육으로 이끌겠다”고 내세웠다. 선거(운동)가 혼탁해지는 것을 경계하며 스스로 ‘정책으로 평가’ 받겠다고 다짐한다. 그렇지 않겠는가. 어떤 스승 무슨 가르침이 있어, 스스로 행하지 않는 것을 제자들에게 배우고 따르라고 요구하겠는가 말이다.부인과 슬하에 1남 1녀. 등산으로 건강을 챙기고, 독서를 즐긴다. 종교는 기독교. 저서로 「끝나지 않은 마지막」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들」이 있다.
    • 기획.연재
    2022-05-29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울릉도 고조선 석향
      지금부터 2500년 전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중국은 춘추전국시대로 노자, 공자가 도덕과 학문을 가르치고, 우리나라는 고조선 44세 구물 단군이 지린성 장춘의 백악산 아사달에서 남쪽으로 내려와, 랴오닝성 개원시에서 제3왕조인 장단경 아사달 시대를 연 때이다. 그렇다면 2500년 전 울릉도는 어떠했을까? 그때 사람이 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울창한 향나무섬이었을 거다. 그때 뿌리내려 2500년을 살아온 향나무가 있으니 말이다. 고조선 시대에 사할린과 왜 열도에 조몬족이 살았다. 특이하게 얼굴이 희고 온몸에 털이 많았으며 여왕이 다스렸다고 하니 모계 씨족사회였다. ‘서진’의 ‘진수’가 쓴 ‘삼국지위지동이전’의 기록이다. ‘244년 왕기가 위궁(고구려 동천왕)을 토벌하러 옥저 동해안에 도착했고 노인에게 동해에 사람이 사느냐 물으니 바다 동쪽에 섬(울릉도)이 있고 사람이 살고 있으나 여자만 있고 해마다 칠월이 되면 소녀를 가려 뽑아서 바다에 빠뜨린다’고 하였다. 이로 보아 당시 울릉도는 모계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한 영웅이 우산국을 세우고 왕이 되니 ‘우해’이다. 이 우해가 대마도의 왜구를 정벌하고 대마국 왕의 셋째딸 ‘풍미’를 후궁으로 맞이했다. 그 풍미에게 빠져 정사를 게을리하다 512년 6월 신라 장군 ‘이사부’에게 나라를 잃었다. 이때 우산국의 문화를 잘 아는 강릉 태수 이사부는 나무 사자를 배에 싣고 와 ‘이 맹수로 모두 밟아 죽이겠다’는 계략을 썼다. 아마도 이 무렵부터 울릉도의 향기로운 향나무가 신라 왕실을 향기롭게 했을 것이다. 김부식 삼국사기의 향 전래 기록이다. ‘눌지마립간(417∼458) 때 양(梁)나라 사신이 의복과 향물을 가져왔다. 왕과 신하들이 그 향의 이름과 쓸 바를 몰라 여러 사람에게 두루 물었다. 묵호자가 말하였다. 이것을 사르면 향기가 나는데, 이른바 신성에 정성을 닿게 하는 것이다’고 하였다. 묵호자는 5세기에 고구려에서 포교하다 신라에 불교를 처음으로 알린 중국의 고승이다. 또 양나라는 중국 중남부에서 베트남 하노이 남부까지 56년간 다스렸던 제국이다. 그리고 이사부가 울릉도를 점령한 뒤의 기록이다. ‘612년(진평왕 34) 전란에 김유신이 향불을 피워 하늘에 고하여 빌었다’고 하였다. 아마도 이때의 향은 울릉도 향나무였을 것이다. 나무 속살이 붉은 보라여서 자단이라고도 하는 향나무는 아열대가 원산이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똑같은 향을 풍기는 신비한 나무이다. 특히 불에다 사르면 더욱 향기롭다. 따라서 중요한 의례나 의식에서 향로에 향을 피우니 이는 ‘신의 향기’였다. 4세기의 고구려 안악 3호분의 벽화 ‘부인도’에서 향로를 받든 시녀의 모습은 일상생활에까지 향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향나무를 땅속에 묻거나 줄기의 상처에서 수지를 얻었다. 이 수지가 침향이며, 짙은 향의 귀한 약재였다. 천수 백 년이면 침향이 될 거라 여기고, 주로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각처의 해안에 향나무를 묻고 비를 세웠다. 1662년 삼척부사 허목이 편찬한 ‘척주지’에도 1309년 동해안의 지방관들이 이상사회를 미륵부처께 서원하며 2500그루의 향나무를 동해안에 묻고 고성 사선봉에 매향비를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그때의 침향은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울릉도의 향나무를 석향이라 한다. 이 울릉도의 석향은 조선 왕실의 진상품이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수없이 파헤치고 잘렸으며, 한국전쟁 무렵까지 소금을 굽는 장작으로 썼다니, 이 글을 쓰기조차 부끄럽다. 그렇게 울릉도의 울울창창 석향숲은 역사의 뒤안길에 있다. 하지만 도동항을 내려다보는 2500살 석향을 향해 엎드리나니, 이제부터라도 석향 자손들이 다시 그날의 석향 우거진 숲섬 모습을 되찾았으면 한다. 김 목/ 동화작가
    • 기획.연재
    2022-05-29
  • “광주의 중심 서구, 중단없는 발전 자신 있다!”
    - 재선 도전 소감은? 서구는 광주의 중심이다. 위치뿐 아니라 행정·정치·금융·상업·교통·의료 등 모든 면에서 광주의 미래를 좌우할 중심구다. 따라서 서구청장은 행정은 물론 정치 역량이 풍부해야 한다.구청장이 능력도 경험도 없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구민에게 미치고 결국 광주 전체로 퍼질 것이다.이런 상황을 막고, 중단 없는 서구 발전을 위해 재선에 도전했다. 특히 일부 정치꾼들이 농단하는 공천장이 아니라, 우리 서구민들의 직접 선택에 의해 지난 4년의 성과와 미래에 대한 전망을 평가받고 싶다- 공천 등 민주당의 문제는 무엇인가?위원장이 독단(獨斷)으로 자기 사람을 공천한 데서 대참사가 벌어졌다. 광주 특히 송갑석 시당위원장 지역구가 있는 서구 공천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가히 폭발적이다. 언론, 시민사회단체, 지역 정치 관계자들의 질타가 이어지고 있다.특히 대선 패배라는 큰 상처를 입은 민주당이 아무런 반성도 하지 않고 아무 대책도 없다는 것이 이번의 자기 사람 심기 등 불법·막장 공천으로 드러났다.내 경우, 중앙당의 부적격자 7대 기준을 완전히 무시한 채, 치욕적인 불명예를 뒤집어 씌우며 경선에도 참여하지 못하게 했다. 오직 가장 유력한 후보를 배제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 말부터 ‘서대석은 무조건 공천 배제되니 불출마한다더라, 시당위원장과 가까운 사람이 공천받는다더라’ 하는 소문이 지역에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설마 했는데 이런 파렴치한 짓을 자행한 것이다.그뿐 아니다. 나와 함께 평생 민주당원으로서 정치해온 시·구의원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공천에서 탈락했다. 반면에 지역 연고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 느닷없이 서구에서 공천을 받기도 했다.이것이 민주국가의 정당인가? 지역민의 절대적인 신뢰와 지지를 받는 더불어민주당 맞는가? 대선 패배로 민주당이 최대 위기 상황에 처했는데도 모른 체하며, 지역에서 ‘골목대장’ 행세나 하려는 작태가 한심하다. 헛웃음만 나온다.- 재임 기간 중 치적과 아쉬운 점은?자랑할 것이 많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하는 것이 ‘시민과 함께, 사람 중심의 서구’를 만들고 가꿔왔다는 것이다. 민선 7기 구정 목표를 ‘사람 중심 서구’로 정한 이유가 있었다. 취임 당시 서구는 엄청난 갈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전 집행부와 노조의 갈등이 직원들 간의 대립이 되더니 지역사회로 퍼졌다. 마침내 주민과 주민, 주민과 공무원의 반목으로 확산돼 서구 상황이 극도로 어려웠다. 나는 취임하자마자 노조와의 대화를 통해 갈등을 완전하게 해소시켰다. 그것을 시작으로 해 서구 공직자와 서구민 모두가 서구 발전을 위해 화합하고 소통하는 모범 자치구로 변모했다.그 결과 서구는 주민자치와 복지 분야에서 다른 지자체들이 부러워할 만큼 크게 발전한 상태다.실적으로도 증명된다. 자치 분야에서 「전국 주민자치박람회」 6년 연속 최다 우수지자체로 뽑혔고, 복지 분야에서 AI통합복지 모델로 「좋은 정책대회」 대상을 수상했다. 나 개인이 아니라 서구의 영광이다. 바로 ‘사람 중심 서구’의 자랑스러운 서구민이라서 가능했기 때문이다.- 대표 공약은?크게 두 갈래로 이야기하겠다. 하나는 추구하는 가치·방향이고 다른 하나는 무슨 사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목표다.우선 가치적 방향을 말씀드리겠다.첫째, 주민의 자율과 참여로 운영되는 동 정부에 인력·예산·업무를 대폭 이양해 주민 스스로 자기 마을 사업을 시행하는 완전한 주민자치 실현이다. 둘째, 그동안 서구가 추진해 ‘복지 선도 지자체’로 위상을 굳힌 통합 돌봄 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K복지모델’ 완성이다.셋째, 코로나 19 상황에 건강이 최대 화두가 된 것을 계기로 서구 건강공동체 정착, 넷째 전 세계적 관심사인 기후위기 대응 관리를 통한 탄소중립도시 서구확립이다.구체적 실현 목표도 제시하겠다.가장 중요한 것이 마륵동 탄약고 이전이다. 마륵동 탄약고 이전은 서구는 물론 광주의 미래를 바꿔 줄 초대형 사업이다. 탄약고 부지는 국제문화교육지구와 광주·전남 공동혁신도시 배후지원단지로 육성하게 돼 있다. 탄약고 부지 인근에 대형 복합쇼핑몰을 유치하고, 김대중컨벤션센터 제2전시장, 특급호텔 신축 건립 등과 연계하면 상무지구 일원에 호남권을 대표하는 MICE사업을 육성할 수 있다.이밖에 광주시공공의료원 설립, 도심융합특구 조성 사업, 광주 대표 도서관 설립, 상무소각장 활용 문화재생사업, 중앙공원 민간특례사업, 광천동 재개발 사업 등을 공약했다. 원활하게 추진해 큰 성과를 낼 것을 약속한다. - 당선 후 민주당에 복당하나? 아직 거론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한다. 내 지지자 모두가 민주당 복당을 바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당 밖에서 민주당을 바로 세워주면 좋겠다고 조언하는 분들도 많다. 먼저 구정에 전념해 서구의 행정과 정치가 제대로 운영되면, 더불어민주당이 올곧게 바로 설 수 있는 근거도 될 것이다.- 좌우명이 있다면? 수처작주(隨處作主)를 마음에 두고 있다. 어떤 곳에 있더라도 주인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 정치 그리고 인생의 목적은? 내 삶의 궁극적 목적은 ‘모든 사람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너무 피상적일지 모르지만 내가 살아온 과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여러 공·사직을 겪었고 현재 선출직 공무원까지 됐지만 그 지향점을 잊은 적은 한 번도 없다. 아무래도 정치적인 부분에 관심이 있을 텐데 나는 이번(8회 지방선거)에 당선되면 다시 출마하지 않는다. 4년 후에는 현실 정치를 끝낸다는 것이다. 이번에 재선에 나선 것도 결코 권력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속했던 집단의 뒤틀린 점을 바로 잡고, 내가 대표했던 지역을 튼실한 발전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마음 뿐이다. 서대석 후보는 선출직 공직자의 어려움으로 ‘자기 시간이 없고 모든 생활이 공개되는 것’을 꼽았다. 서구청장이 되면서 주말은 사라졌고, 국토를 종단할 정도로 즐겼던 산악자전거(MTB)를 타본 기억도 까마득하다.건강법은 그냥 ‘일’이다. 쉴 틈도 없이 움직여도 괜찮을 만큼 건강을 타고났다. 서대석 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이 대선에 패배한 결정적 원인 중 하나가 지방 분권에 실패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국세·지방세 비율을 조정해 재정 분권을 이루고 지금도 지방정부가 시행하고 있는 각종 복지사업 등 업무를 지방에 이양했다면 결과는 크게 달랐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서대석 후보는 지난 4년 동안 주민자치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이제 정치와 행정은 주민들이 서로 돕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고 그것을 원활하게 시행하도록 돕는 역할에 치중해야 한다고 절감했다. 서대석 후보는 그러므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정치인’이라고 자부한다. 모두들 목표를 갖고 그곳에 이르는 길은 또 헤아릴 수 없게 많겠지만, 결코 ‘사람’을 벗어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디에서나 주인 되려는 것(隨處作主)은 결국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주인으로 섬기겠다는 치열한 각오 아니겠는가!부인과 슬하에 1남 1녀. 부인은 지난 4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서구 관내 18개 동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그냥 가서 사진 짝고 돌아오는 식이 아니라 모든 행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참석자들과 함께 했다. 서대석 후보가 동네를 다니다보면 “(서대석 후보) 부인 봐서라도 찍을게!”라고 격려해주는 분들이 많다고 한다. 서영석 국회의원(경기 부천시정, 더불어민주당)이 친동생. 종교는 천주교.      
    • 기획.연재
    2022-05-26
  • “물레방아 도는 힘, 한반도 이끈다!”
    “민주당, 대선 아쉬움 버려야!” 지방선거 행태 지적  2014년 청와대 하명수사로 정치적 좌절 “결국 내탓”“호남 위상 확립해 한반도 평화·통일 이끌 것” 다짐5·18이 42년째다. 헌법에 넣어야 할 가치라는 찬사부터 모리배들이 짬짜미로 잇속 챙기는 야바위판이라는 비판까지, 더께는 쌓이고 또 커진다. 비좁은 땅덩어리가 갈라진 것도 안타까운데, 그나마 온갖 구실과 핑계로 나뉘고 쪼개져 성한 곳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해마다 5월이 되면, 거리에 사람이 많아지고, 시끄러워지고, 길이 막히고, 곳곳이 난장(亂場)이 된다. 어떤 여지도 용납하지 않고 무류(無謬)를 지향하며, 독선(獨善)의 탑을 쌓는다. 그 위를 박제(剝製)된 이념과 그 희생물이 슬픔을 강요하며 유령처럼 떠돈다.그 성소(聖所)가 바로 광주다. 무덤을 만들고, 넓히고, 꾸민다. 늘 조종(弔鐘)이 울리고, 비가(悲歌)가 흐르고, 비싼 값의 곡비(哭婢)들이 흐느낀다. 비석들이 임립(林立)한 그늘에 무저갱(無底坑)을 차려놓고 아귀(餓鬼)들처럼 끝도 없이 먹어댄다.그러나 신계륜 이사장(윤이상평화재단·신정치문화원)은 〈5·18광주〉를 찾는다. 살아남은 죄(罪)를 빌고, 죽음으로도 다하지 못할 벌(罰)을 청한다. 시공(時空)의 구별을 한탄하며, 일체(一體)의 간절한 지향을 삭힌다. 날로 새로워지는 깃발을 추스르며 사라진 옛 동지를 그려 국립5·18묘지를 찾은 신계륜 이사장과 함께 광주5·18 42주년 주변을 살폈다.-근황을 알려달라.나는 내 국회의원 선거(총선)를 6회, 대통령 선거를 3회 치렀다. 큰 선거를 핵심에서 경험한 것이다. 지금도 어떤 상황을 무슨 관점에서 보더라도 (내가) 정치를 떠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절감하고 있다. 최근에는 제도권 정치를 포함해서 사회(특히 환경과 평화), 시민 관련 문제 등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 분야가 넓어졌다.  2009년에 6·15선언과 10·4선언을 지지하며 창립한 사단법인 신정치문화원을 계속 운영하고 있다. 그 중점 사업이 남북간의 협력과 평화를 추구하는 「걸어서평화만들기」인데, 갈수록 참여자가 늘어나는 등 더 활발해지고 있다. 세계적 작곡가인 윤이상 선생을 기념하는 「재단법인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으로서 봉사하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 5·18 42주년을 맞은 소감은? 5·18을 맞아 광주를 찾아 참배하는 것은 끝나지 않을 나의 참회다. 혼자이거나 여럿일 때나, 일반 시민이거나 국회의원일 때나 변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남은 죄에 대해 스스로 정한 벌(罰) 가운데 하나다. 올해는 특히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선생이 1981년에 완성한 교향시 “광주여 영원히!(Exemplum in Memoriam Gwangju)”가 마음에 맺힌다. 이 곡은 광주민주화운동을 묘사한 세계 최초의 대 서사시이다. 그런데 광주에서 자행된 학살과 그것을 극복한 광주의 항쟁을 전 세계에 널리 알린 이 명작이 우리나라에서는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곡이 5·18공식기념식이 열리는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매년 공연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중앙정부 및 광주광역시와 협의해 가능성을 키워갈 것이다.-대선 이후 민주당을 자평(自評)한다면?대선 당사자인 이재명 후보, 당을 이끌었던 송영길 대표 그리고 지도부까지 아무 반성도 없이 그대로 지방선거에 임하고 있다. 득표율 0.73% 차이에 집착하는 민주당 당사자들의 태도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더 깊이 보면, 다음 총선(22대, 2024년 실시)을 생각하는 출마예상자들의 조바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대선 패배에 대한 분노도, 아쉬운 비상대책위원회 구성과 운영도, 실망스러운 지방선거 공천 파행도 돌이킬 수는 없다. 그 모든 것에 대해 국민들이 가차(假借) 없이 평가할 것이다.-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고난을 겪었는데?회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궁지에 몰린 당시 청와대는 무려 민주당 국회의원 24명을 이른바 입법로비혐의(서울종합예술직업전문학교·치과의사협회·대한물리치료사협회·한전 KDN 등)로 수사에 착수해서 일대 공안 정국을 만들었음이 당시 민정수석 김영환의 비망록으로 나중에 밝혀졌다.촛불 혁명이 없었다면 이 사실도 묻혔을 것이다, 나는 그 중 첫 번째 타겟이었다(2020년 10월 KBS 시사직격 참조). 나는 ‘1980년 서울의 봄’ 당시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을 시작으로 온갖 고난을 겪으며 민주화운동에 헌신했다. 1992년 총선에서 고향 함평 출마를 고사하고 서울 성북구을에 출마해 최연소 국회의원(당시 37세)의 영광을 누렸다.그러나 이 성과를 잘 발전시키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지켜내지도 못했다. 어느 새 내 소매에 묻고 살쩍에 엉긴 세월의 때를 의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다. 통상적인 연말 선물까지 뇌물로 엮어 문제 삼아도, 청와대 하명·표적수사고 정치적 음해라고 해도,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해도, 결국 모두 내 책임인 것이다.-정치는 어떤 것인가?시대마다 핵심 정치 과제가 변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일제식민지배에서) 독립한 시기, 산업화 시기, 민주주의 정착 시기 그리고 민주주의 심화·발전 시기(사회 구성원 간 대립·갈등 시기)에 정치의 의미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현재 민주주의 심화·발전 시기에 우리 정치의 가장 크고 중요한 과제는 남북의 대립과 갈등이라고 하겠다. 이 사실에 눈감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이 중요한 사안에 대해 현재 우리 정치는 김대중 대통령 시기보다 퇴보한 모습만을 드러내고 있다. 이번 대선 과정에 확인됐지만, 여야 모두 한반도 문제에 대해 초보적인 견해 외에 아무 가능성도 내놓지 못했다. 성숙된 우리 민주주의의 실체를 확인시키고 그 바탕에서 전망을 제시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비참할 만큼 유치한 논쟁으로 일관했던 것이다. 나는 대선 후 어지러운 마음을 추스르면서 독일 통일을 떠올렸다. 성숙한 서독 민주주의가 결국 독일 통일의 위업을 달성했다는 것을 절감했다.한계나 성역 없는 민주주의의 성숙만이 우리 정치를 선진화할 것이고, 한반도 통일과 자주 국가 건설도 가능해질 것이다.-득의의 순간과 실의의 순간을 꼽는다면?득의의 순간은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다. 민주주의를 위해 젊은 시절 모든 것을 바친 내 노력이 현실 정치에서 결실한 상징적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들 김대중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주했는데, 나는 흥분상태에서 벗어나 정신을 차리는 데만 거의 반년이 걸렸다. 순진한 탓도 있지만 나에게는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실의의 순간도 정치적이다. 내 삶에서 1980년 5월 광주만큼 결정적인 일이 또 있을까 싶다. 당시 ‘서울의 봄’ 상황에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가 5월 18일 지명수배됐다. 검거를 피해서 간 곳이 광주였고, 5월 27일 계엄군이 도청을 점령한 다음 날 다시 지명수배를 피해 광주를 떠났다. 이때의 절망감 즉 실의가 이후 내 인생 대부분을 지배했다.-앞으로 목표는?앞에서도 거론됐지만, 2014년 민주당 대표 출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당시 청와대의 기획·하명수사로 나의 제도권 정치 경력은 멈췄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한 중단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을 신념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호남이 없으면 민주당은 존재하지 않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도 없다는, 절실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강력한 확신이다.또 하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가능하게 하려면 민주주의가 온전히 정착돼야 한다는 신념이다. 나는 현 상황에 선출직 출마 등 제도권 정치인으로서의 역할과 가능성을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호남의 길고도 고난에 찬 여정이 제대로 평가될 때까지 정치적 활동을 멈추지 않을 것이며,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위한 과제 해결에 여생을 바칠 생각이다. 그 과정에 민주당원으로서, 선출 공직 경험자로서, 무엇보다도 호남인이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어떤 역할이건 주어진다면 무조건 거부하지는 않을 것이다.     -본인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물레방아(溪輪)! -원칙이 있다면?공사(公私)의 구분이다.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운동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온 나라가 ‘전장(戰場)’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선 패배를 설욕하겠다는 투지에 불태우면서 특히 호남지역 ‘수성(守城)’에 공을 들이고 있다.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다. 대선 승리를 바탕으로 제2당의 기세가 거세고 거의 예외가 없다시피 한 경선 파행으로 ‘집토끼 사정’도 전 같지 않다. 내우외환(內憂外患)이 바탈길을 굴러내려가는 바윗돌 꼴이다.무소속 연대 등 반(反) 민주당 바람이 거세지면서 ‘호남정치’ 복원에 대한 담론이 피어나고 있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민주당에 볼모로 잡힌 꼴인 호남의 정치적 상황이 갈수록 소외되고 입지가 축소되기 때문이다. 공사 중인 구조물이 무너지고, 강고하기만 할 것 같던 권력조차 뺏기는 상황을 불러 온 것은 결국 독점의 폐해 때문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므로 전 정권에서 결정적 음해를 당하고, 그러면서도 첫 뜻을 꺾지 않고, 밀려나 있으면서도 동지들에게 칼을 꽂지 않은 신계륜 이사장에 주목하는 지역민들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물레방아는 물이 흐르지 않으면 멈춰, 쉰다. 어느 것인들 그러지 않겠는가. 다만 물이 흘러 뭔가, 어딘가를 추구해 갈 때 그 동력(動力)을 사람들이 이롭게 쓰도록 돕는 것이 바로 물레방아다.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의 중핵(中核)이라는 한반도가 움직이고 있다. 그 거대한 물결을 가늠하고 이끌 ‘물레방아’로 신계륜 이사장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신계륜 이사장은 부인(김유미, 미술강사)과 어머니(93세)를 모시고 있다. 하루 평균 5~7km를 걷고 가끔 배드민턴 치기로 건강을 관리한다.(前 대한배드민턴협회회장, 현 고문) 취미는 바다낚시(前 프로낚시연맹 총재) 종교는 기독교(성북구 종암중앙교회)저서로 신계륜일기(2007, 나남) 걸어서평화만들기(2010, 하이미디어) 내 안의 전쟁과 평화(2011, 나남)가 있다.
    • 기획.연재
    2022-05-25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옥과 유팽로 이팝나무
      ‘함평천지 늙은 몸이’로 시작하는 호남가를 듣다 보면 ‘나무나무 임~실이요’에서 임과 실 사이의 박자가 9임을 알 수 있다. 제일 길게 부르는 대목인 것이다. 다음 대목은 ‘가지 가지 옥과로다’이다. 그렇다. 그렇게 길게 공들여 맺은 과일이니 구슬 같은 옥과가 아니겠는가? 향기로운 과일이며 아름다운 보석이다. 하지만 옥과(玉果)가 무엇이겠는가? 나무라면 당연히 열매이지만, 사람이라면 자식 아니겠는가? 향기롭고 아름다운 자식을 원하지 않은 사람이 있느냐고 묻는 건 어리석음이다, 우리 인간의 한평생 가장 큰 보람은 자식을 얻어서, 더불어 살아가는 향기롭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도록 키우고 가르치는 일이다. 곡성군 옥과면 합강리는 임진왜란 의병장 유팽로가 태어난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옥과천이 들녘을 적시고, 마을 뒤 옥출산을 휘감아 오는 섬진강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월파(月坡) 유팽로(柳彭老 1564-1592)는 충주판관과 순창군수를 지낸 아버지 유경안과 어머니 남원 윤씨의 장남이다. 6세 때 부모님에 대한 효행시를 지었고 선조 12년인 1578년에 사마시, 1589년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가 되었다. 부모상에 시묘살이 중 곧 선조의 부름에 1592년에 28세로 홍문관 박사가 되었으나,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오던 중이다. 전북 순창에서 5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전라도의병 진동장군 유모(全羅道義兵 鎭東將軍 柳某)의 대청기(大靑旗)를 높이 들고 기병하였다. 진동은 처음 일으킴이며 청색은 동쪽이니, 곧 동쪽의 왜적을 섬멸하겠다는 뜻이다. 왜란 발발 7일만인 4월 20일이니 조선 최초의 의병이 바로 그들이고 유팽로는 최초의 의병장이다. 5월 11일 이들 유팽로 의병은 임실군 갈담역 전투에서 임란 최초의 첫 승리를 하는 등, 각처의 의병들에게 구국의 열정과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역사의 분수령이었다. 그 뒤 담양 추성관에서 고경명 의병의 선봉장이 되어 말의 피를 마시고, 속내의에 이름을 기록하여 죽음으로 싸울 것을 결의하였다. 6월 11일 의병 6000명을 이끌고 담양을 출발, 6월 24일 전주, 마침내 7월 8일 금산성 전투를 치르다 이틀 뒤, 순절하였으니 나이 28세였다. 이때 유팽로가 타고 다니던 말은 오리마(烏悧馬)로 처음에는 다리가 다섯이었던 검은 말이었다. 이 오리마가 왜군이 가져가려고 하는 장군의 머리를 빼앗아 물고 합강리로 왔다, 부인 원주 김 씨가 후원에 단을 쌓고 남편의 무사 귀환을 빌 때였다. 집에 돌아온 오리마는 9일이나 여물을 먹지 않고 울다 죽었다. 남편과 의마의 장례를 치른 원주 김 씨도 슬픔을 못 이겨 남편 뒤를 따랐다. 합강리 마을 앞 들녘의 의마총이 바로 그 오리마의 무덤이다. 비록 유팽로의 의병 활동은 81일간의 짧은 기간이지만 어려운 시기에 역사의 흐름을 바꾼 위대한 업적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못했음이 참으로 민망하고 죄송스럽다. 임진왜란이 일어나도록 기강이 문란했던 나라, 속수무책으로 국방이 허술했던 게 논의의 초점이다. 누가 먼저 기병하고 무슨 업적을 쌓았느냐는 나중 일이라고 에둘러 생각하지만, 글을 읽은 선비로서 분연히 칼을 들고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유팽로의 용기와 정신은 만고의 귀감임에 틀림없다. 이곳 유팽로의 오리마 무덤으로 가는 길에 네 그루의 커다란 이팝나무가 있다. 넷이 어울려 산더미처럼 쌀꽃으로 젯밥을 해마다 올리니, 그나마 장군과 원주 김 씨, 오리마에게 죄송함을 던다. 김 목/ 동화작가
    • 기획.연재
    2022-05-19
  • “나라는 망해도 황실만 온전하면 된다”
    고종, 황실의 안녕만 챙겨 일진회 “외교권 日에 위임”중무장 일본군 회의장 포위5월 14일 토요일에 을사늑약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서울시 중구 정동)을 찾았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꽤 많다.  그러면 을사늑약의 전말을 살펴보자.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1905년 9월 5일 포츠머스 조약에서 한반도의 지배권을 인정받았다. 11월 2일 메이지 천황은 이토 히로부미를 한국 특파대사로 임명했다.11월 5일 송병준이 주도한 일진회는 “한국의 외교권을 일본에 위임하는 것이 독립을 유지하고 영원히 복을 누리는 길”이라는 선언서를 발표했다. 을사오적보다 더 나쁜 매국노들이었다. 11월 10일에 이토는 고종에게 메이지 천황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다시 알현하길 청했다. 그런데 일본은 11월 11일에 이토 대사 접대비 명목으로 무기명 예금 증서 2만원(시가 25억 원)을 경리원경 심상훈을 거쳐서 황실에 납입시켰다. 이 기록은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주한일본공사관기록 24권, 11 보호조약 1-3’에 나온다.11월 15일에 고종과 이토는 4시간 동안 단독 회담을 했다. 이토는 조약안을 고종에게 내밀었다. 고종은 이토에게 외교 형식이라도 보존해 달라고 매달렸지만, 이토는 변통의 여지 없는 확정안이라고 거절했다.고종은 전·현직 정부 신료와 상의해야 하고 인민의 의향도 살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토는 전제 군주가 인민의 뜻을 살피겠다는 것은 인민을 선동하려는 저의라고 항의했다.마침내 고종은 외부대신끼리 협의 사항을 정부가 검토한 후에 짐이 재가하겠다고 이토에게 말했다.11월 16일 오후에 이토는 정부 대신들을 숙소인 손탁호텔로 불러 조약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참정대신 (총리) 한규설이 외교의 형식만이라도 남겨 달라고 간청했으나, 이토는 ‘절대 불가’라고 못 박았다.11월 17일 오전 11시에 한규설 등 대신 8명은 일본 공사관에 모였다. 일본 공사 하야시는 조약안을 본격적으로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정부 대신들은 선뜻 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비로소 농상공부대신 권중현이 말문을 열었다.“지금 당장 토의해 의결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중추원에서 여론을 수렴해야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하야시는 언성을 높이며 반박했다.“귀국은 전제국가인데 어찌하여 입헌정치 흉내를 내어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려 합니까? 황제가 응당 한마디 말로써 직접 결정하는 것인데 의견 수렴 운운으로 모면하려고 합니까?”오후 3시쯤에 하야시는 대신들을 이끌고 대궐로 향했다.이윽고 어전회의가 열렸다. 고종은 몹시 괴로워하면서 대책을 여러 번 물었다. 대신들은 조약은 절대로 허락할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러자 고종은 일단 결정을 미루자고 했다.이때 이완용이 아뢰었다. “어쩔 수 없이 허락하게 된다면 조약의 내용 중에 첨삭하거나 개정할만한 중대한 사항을 상의하자는 것입니다.”이완용의 말은 조약 체결 거절은 불가능하니 현실적인 대안을 찾자는 것이었다. 할복이라도 하면서 거절해야지, 조약안 첨삭·수정을 미리 대비하자니 이게 매국의 징조였다.그런데 고종이 타당하다고 말하자 조약안의 첨삭·수정 회의가 진행됐다.권중현이 아뢰었다. “신이 외부(外部)에서 얻어 본 일본 천황의 친서 부본에는 우리 황실의 안녕과 존엄에 조금도 손상을 주지 말라는 말이 있었는데 조약 조문에는 없습니다. 응당한 조목을 만들어야 합니다.”고종은 “과연 옳다. 농상공부 대신의 말이 참으로 좋다”며 대만족을 표시했다. 황실의 안녕만 챙기는 고종의 모습이 돋보인다.회의가 끝날 무렵 대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아뢰었다.“이상 아뢴 것은 대책을 강구하는 준비에 불과할 뿐입니다. 신들은 한 마디로 조약 체결을 거부하겠습니다.”오후 4시경 시작된 어전회의는 7시 넘어서 끝났다. 잠시 후 하야시 공사가 참정대신 한규설에게 어전회의 결과를 물었다.한규설은 ‘폐하께서는 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뜻으로 지시하셨으나, 우리 8인은 모두 반대하는 뜻으로 거듭 말했습니다’라고 태연히 대답했다. 중대한 협상을 앞두고 협상전략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노출한 것이다.이러자 하야시가 질책하고 나섰다.“폐하가 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하교가 있었다면 조약을 순조롭게 진행해야지, 대신들이 모두 폐하의 명을 어기니 어찌 된 일입니까? 이런 대신들은 조정에 두어서는 안 되며 특히 참정대신과 외부대신은 그만두게 해야 하겠습니다.”한규설은 몸을 일으키며 ‘공사가 이렇게 말하니 나는 참석할 수 없다’고 대꾸했다. 이윽고 대신들이 만류하자 한규설은 다시 자리에 앉았고, 당황한 하야시는 이토 히로부미에게 긴급 연락했다.오후 8시쯤에 이토가 조선 주둔군 사령관 하세가와 요시미치와 일본군 헌병 사령관 등을 거느리고 황급히 수옥헌(지금의 중명전)으로 들어왔다. 수옥헌 안팎은 중무장한 일본군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포위해 공포 분위기였다.하야시 공사로부터 사태를 파악한 이토는 고종의 알현을 여러번 요청했다. 하지만 궁내부 대신 이재극은 “짐이 이미 대신들에게 협상해 잘 처리하라 했고, 지금 목구멍에 탈이 생겨 접견할 수 없으니 모쪼록 대신들이 잘 협상하라”는 성지(聖旨)를 전달했다.그런데 “대신들이 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고종의 어명은 결국 독약이 되고 말았다.고종의 어명을 접한 이토는 곧 참정대신 한규설에게 토의하자고 요청했고 회의를 직접 주재했다.이토는 먼저 참정대신에게 말했다.“참정대신은 어전에서 무엇이라고 아뢰었습니까.”한규설은 ‘반대’였다고 말했다.다음에 이토는 외부 대신에게 물었다.박제순이 대답했다.“외부대신의 직임을 맡고 있으면서 외교권이 넘어가는 것을 찬성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이토는 “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명령이 있었으니 어찌 칙령이 아니겠습니까? 외부대신은 찬성하는 편입니다.”다음엔 민영기에게 묻자 민영기는 ‘절대 반대’라고 답했다. 이어서 법무대신 이하영에게 물었다.이하영: 우리나라가 외교를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귀국이 이처럼 요구하는 것이니 이는 바로 우리나라가 받아들여야 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미 지난해에 이루어진 의정서와 협정서가 있는데 또 외교권을 넘기라고 합니까? 이는 중대한 문제이니 승낙할 수 없습니다.이토: 그렇지만 이미 대세와 형편을 안다고 하니, 이 또한 찬성입니다.이어서 이토는 이완용에게 물었다.이완용은 말했다.“이번 일본의 요구는 대세 상 부득이한 것이다. 종전에 우리 외교의 변화가 심했던 탓으로 일본은 두 차례나 큰 전쟁을 치렀다. 일본은 더 이상 동양 평화를 위태롭게 할 수 없어 이번 요구를 제기한 것이다. 일본은 이번에는 반드시 목적을 관철하려고 할 것이다. 국력이 약한 우리가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을진대 원만히 타협해 일본의 제의를 수용하고 우리의 요구도 제기해 관철하는 것이 좋다. 자구(字句) 등은 다소 수정할 여지가 있는 것 같다.”이완용은 대신들의 결의를 한순간에 뒤집고, 적극 찬성으로 돌아선 것이다.이러자 이토는 벌떡 일어나면서 “조약 중에 고칠 만한 곳은 고치면 되니, 과연 당신은 완전 찬성이요”라고 크게 만족했다. 이토의 마음에 든 것이다.이어서 권중현, 이근택, 이지용이 모두 찬성했다. 대세가 확 바뀐 것이다.1905년 11월 17일 늦은 밤, 이토 히로부미는 대신들과의 찬반 문답이 끝나자 궁내부 대신 이재극을 불러 말했다.“협상해 잘 처리하라는 폐하의 지시를 받아 각 대신에게 의견을 물었더니 찬성은 6인, 반대는 2인으로 가결이 됐으니 주무 대신에게 지시를 내리시어 속히 조인하도록 주청해 달라.”이토가 가결을 선언하자, 참정대신 한규설은 의자에 앉아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이토는 제지하며 “어찌 울려고 하느냐”고 짜증을 냈다.이후 한규설과 박제순은 입을 다물고 자리에 앉아 있었고, 민영기, 이지용, 권중현, 이완용, 이근택, 이하영은 조약 문안을 수정하는 문제로 설왕설래하는 바람에 회의장은 다소 어수선해졌다.이때 한규설이 밖으로 나갔다. 그는 예식관 고희경을 시켜 고종의 알현을 요청하고, 대청 뒤 작은 방으로 들어가 다시 이재극에게 알현을 청했다. 이 때 고희경이 일본 공사관 통역 시오가와가 참정대신을 만나고 싶다고 전했다. 한규설이 앞뜰로 나가니 시오가와와 일본 헌병들이 한규설을 작은 방에 감금해 버렸다.한참 있다가 한규설이 회의실로 다시 들어왔다. 한규설은 갑자기 통곡하자 회의는 잠시 중단됐다. 이때 이토는 “너무 떼를 쓰는 모양을 하면 죽이겠다”며 모두 들으라는 듯이 엄포를 놓았다.대신들은 겁에 질렸고 이후 조약 수정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문안 수정이 끝나자 이토는 “참정대신이 반대해도 다른 대신들은 수정안에 모두 찬성했으니 안건은 결정됐다”고 말했다.이어서 이토는 일본 공사관 통역 마에마 교사쿠와 외부 보좌원 누마노 등과 일본군인 수십 명으로 하여금 외부(外部)로 달려가서 외부대신의 직인을 탈취하게 해, 박제순과 하야시가 나란히 조약에 날인했다.(그런데 11월 18일의 ‘윤치호 일기’에는 외부(外部)의 직인은 일본이 탈취한 것이 아니라 외부대신 박제순의 명령에 의해 직원이 수옥헌(중명전)에 가져간 것으로 기록돼 있다.)이처럼 11월 18일 토요일 오전 2시경에 을사 5조약이 체결됐다. 일본의 조약안은 당초에 4개 조항이었는데 조선의 요구에 의거 ‘일본 정부는 한국 황실의 안녕과 존엄을 유지함을 보증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나라는 망해도 황실만 온전하면 된단 말인가?
    • 기획.연재
    2022-05-18
  • 광주남구청 ‘헌혈 퀸’ 고영미 동장, ‘은장’ 포장
    광주 남구청 ‘헌혈 퀸’ 고영미 사무관이 숭고한 생명나눔 공로로 대한적십자사 은장 포장증을 받았다.  남구에 따르면 고영미 봉선1동장은 지난 13일 구청에서 열린 2분기 사랑의 헌혈 나눔 캠페인에 참여해 30번째 생명나눔에 나섰다.  지난 2014년부터 1년에 4차례씩 자신의 혈액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올해로 30번째를 맞이한 것이다.  대한적십자사는 숭고한 인류애 정신을 발휘한 고영미 봉선1동장에게 존경과 축하의 마음을 담아 30번째 혈액 나눔에 동참한 이들에게 수여하는 은장 포장증을 이날 수여했다.  그가 꾸준히 헌혈 나눔에 동참한 이유는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면서 평소 생활신조로 삼아온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수단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고영미 봉선1동장은 “내가 나눌 수 있는 것에 행복함을 느끼고, 헌혈 나눔을 할 수 있도록 나의 건강을 꾸준히 관리해 건강하다는 사실에 또 한번 행복함을 누리게 된다”며 “앞으로도 기회가 닿는 대로 꾸준히 헌혈 나눔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공직자로 남고 싶다”고 밝혔다. 
    • 기획.연재
    2022-05-16
  • “빛고을에서도 가장 빛나는 동구 만들 것!”
    임택 후보 광주 동구청장 재선 도전민선7기 문화관광·골목상권 중심 동구 발전 가시화시켜앞으로 4년간 호남 넘어 전국 최고 행복 동구 이룬다구·시의원부터 구청장까지 ‘토박이 동구 일꾼’ 자부심정권이 바뀌고 지방선거가 2주 남짓 남았다. 권력 굳히기에 힘쓰는 쪽이나 어떻게든 흔들어보려는 편이나 이번 정치 행사의 의미는 각별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최소 4~5년 겪어야 하는 ‘꼴’을 다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호남지역은 기존 구도에 큰 변화가 없으리라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배타적 심리는 더 심해지고 단결은 더 강해졌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대권의 향방이 갈리는 과정에 드러난 변화의 조짐이 ‘심상치 않다’는 분석도 적지 않다. 구르기 돌처럼 시작된 추세(趨勢)를 멈추기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한국 정치에서 호남의 역할은 상징적이다. 그 중심이 광주이고, 광주의 핵심이 바로 동구였다. 광주 동구는 한국 정치에서 결정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한 때 호남의 주요기관이 모두 모여 있다고 할 만큼 번성했던 광주 동구는, 이제 인구 10만을 유지하기도 버겁다. 붕괴하는 상권과 쇠락한 주택가 그리고 노령화되는 구성원들이 저무는 햇빛을 바라보며 탄식하는 형국이다. 임택 광주광역시 동구청장 후보는, 이런 광주 동구를 ‘빛고을에서도 가장 빛나는’ 곳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의지와 희망만이 아니라, 동구를 되살릴 수 있는 구체적 복안을 갖고 청장 재선에 나섰다는 임택 후보를 만났다.-재선 도전 소감은? 우리 동구는 민선 7기에 통계청 조사 결과 ‘행복지수 호남권 1위’로 꼽혔다. 인구 10만 명을 회복했고, 교육·보육·정주 여건 등이 개선되면서 ‘광주 동구는 살 만한 곳’이라는 공감대가 광범하게 형성된 결과라고 본다. 도시재생·인문도시 사업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그러나 아직 이루지 못한 것이 더 많다. 내가 구상하고 실현 가능성을 확보한 사업들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일관성 있게 추진해야 한다. 지난 4년의 성과를 통해 내 의지와 역량은 충분히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기필코 동구 발전을 이루겠다는 각오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재선에 도전했다.-재임 기간의 치적과 아쉬운 점이 있다면? 먼저 동구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었고 그런 특징으로 알려진 것을 들 수 있겠다. 낙후된 구도심이라는 선입견을 벗고, 활기찬 주거지로 탈바꿈한 것이 무척 자랑스럽다. 또 13개 동이 각각 주민자치를 통해 마을의 발전을 모색하는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됐다는 점도 내세우고 싶다. 전국 최초로 인문도시정책과를 설치해 ‘인문도시 동구’라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것도 호평을 받았다. 각종 수치가 단적으로 증명한다. 2020년도 전국기초단체 평가 1위, 광주광역시 유일의 3년 연속 청렴도 최고 등급, 단체장 공약수행 최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국비와 시비를 역대 가장 많이 확보했다. 학동 유흥가 철거, 구립도서관 건립, 산수굴다리-구 재활용창고 도로 개설 등도 동구의 숙원을 해결한 것으로 자부하고 있다.다만 시간의 한계로 인해 완수하지 못한 여러 사업이 아쉽다. 앞으로 4년 동안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구민들이 전폭적으로 지지해주시리라 믿는다. -핵심 공약은?동구는 소매·도매업 위주의 골목 경제다. 골목상권이 살아나야 동구 전체가 활력을 찾고 유지된다. 즉 사람들이 많아야 한다. 동구를 도심 관광 거점으로 육성해 관광객 등을 최대한 유치하겠다. 자영업 중심인 골목·민생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도 만들어질 것이다. 문화전당 야간경관 기반조성, 미디어 테마 콘텐츠 체험관광 플랫폼 조성, 빛의 길 도심 야간관광 활성화, 충장 상권 르네상스 등 구체적 방안을 통해 문화관광도시 동구를 만들겠다. -정권이 바뀌었는데 예산 확보, 사업 유치 등 방안은?과거에 비해 어려운 면이 있겠지만, 지난 4년 동안 예산을 역대 최대로 확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차질 없게 추진할 자신이 있다. 광주시를 비롯해 지역 국회의원 등이 포함된 광범위한 협력 체제를 구축하면, 광주 동구의 경쟁력을 증명하고 자생력을 키울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될 것이다.각 분야의 전문성을 높여 중앙·광주시의 공모사업 유치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 동구 발전을 위한 시책을 발굴하는 한편 지역경제, 도시재생, 문화예술 등 동구 역점 사업을 적극 추진하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한다.-본인의 경쟁력, 약점은?나는 지난 25년 동안 동구에서만 기초·광역의원부터 구청장까지 역임했다. 풀뿌리 정치인으로서 동구의 실태와 문제에 대해 누구보다 더 잘 알고, 해결책과 전망도 갖고 있다고 자부한다. 특히 기초·광역의회의 견제 기능을 알뿐 아니라 4년 구청장으로서 집행 경험을 가져, 동구 발전에 필수적인 역량을 두루 갖추고 있는 점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사교성이 약하다는 평판도 있는데, 극복하려고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그 결과 요즘에는 ‘사람이 듬직하다’로 바뀐 듯하다. (웃음)-지방자치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는가?주민 중심의 풀뿌리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기초다. 주민이 행정에 참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집행부와 적절히 소통함으로써 사회적 갈등을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건강한 지역공동체를 구축하며, 결과적으로 지역 발전이 가능해진다. 나는 그동안 주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관련 법제를 정비하고 행정체제를 개선해왔다. 다양한 의사소통이 상호 신뢰를 높일 수 있는 사회적 자산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임기에도, 주민끼리 그리고 주민과 행정이 소통하는 체제를 적극 운용할 것이다.-평소에 철저히 지키는 원칙이 있다면?‘배려하는 삶을 살자‘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고 다른 사람들과 어우러져야 하는데, 자기 생각만 고집하기 때문에 다툼과 갈등이 생긴다. 상대를 배려하니 더 큰 기쁨으로 돌아오더라. ’남에 대한 배려가 곧 나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하며, 적극 실천하고 있다.-목표가 있다면?현재는 (당선돼) 민선 8기를 충실하게 이끌고 잘 마무리하겠다는 생각 뿐이다. 보다 길게는 ‘주민들 가슴 속에 기억되는 정치인’이 되고 싶다. 소명의식을 갖고,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주민들이 기억해주는 ‘최고의 선물’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일부 정치 전문가들이 더불어민주당의 호남 독점을 지적하는데?득표율이나 당선자 수를 두고 균형과 조화를 거론하는 경우를 봤다. 그러나 호남에서 어떤 정치집단이 민주당과 견줄 만한 정책과 인물을 내놓고 경쟁했는지 의문이다. 호남에서 균형과 조화를 이루려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나눠 가져야 하는가? 호남 유권자를 전부 모아놓고 ‘너는 이 당 찍어. 나는 저 당 찍을게!’ 이런 식으로 할 수 있겠는가?호남 유권자들은, 우리나라의 정치 문화와 법적 제도적 범위 안에서, 특정 시기와 상황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호남을 한 틀로 묶어놓고 ‘외골수’니 ‘독선적’이니 단정하고 비난하는 것에 단호히 반대한다. 꼭 다양한 정치세력의 견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면, 정치체제부터 바꿔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를 비롯한 여러 대책이 가능할 것이다. 호남과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세계 정치사에서도 특이한 면모와 관계를 보인다. 독재와 핍박, 소외와 차별을 극복하는 과정에 생긴 흔적이다. 그 상처 위에 더께가 끼고 두터워져 이제 제 살처럼 됐다. 그 영향일까. 호남을 독점하고 있는 민주당은 권력을 부담으로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권력이란 맞서 싸울 대상이라는 관념의 영향일 것이다. 뭔가 잘못한 것 같고, 너무 많이 가진 것 같고, 훨씬 더 완벽해야 할 것 같은 강박(强迫)과 초조(焦燥)에 휘둘린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임택 광주광역시 동구청장 후보가 돋보인다. 임택 후보는, 호남은 민주정치의 절지(絶地)가 아니며 호남인이 그저 우민(愚民)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그동안 호남은 좋은 정책 훌륭한 후보를 ‘제 몸처럼’ 아끼고 지지해왔던 것 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강조한다. 임택 후보는 ‘자치행정전문가’를 자임하면서, 자치공동체가 ‘이웃이 있는 마을’이 되기를 꿈꾼다. 또 동구가 ‘낙후된 구도심’이라는 굴레를 벗고 ‘빛고을에서도 가장 빛나는 지역’이 되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임택 후보는 타인의 성장을 돕는 데서 큰 보람을 느끼며, 넉넉한 품으로 주민을 보듬고 상대까지 껴안으려고 한다. 꼭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겠다는 치열한 결의를 하나씩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임택 후보는 부인과 슬하에 아들, 딸이 한 명씩 있다. 취미는 걷기, 클래식 감상, 명상(瞑想)이다. 종교는 천주교.
    • 기획.연재
    2022-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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