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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 나라 새롭게 바라봐”
    나라사랑기도포럼 제 13-4차 정기기도회  양림동 선교사묘역서 ‘고난주간 특별기도’찬양·기도·말씀의 합심기도 순교자뜻 기려 지난 4월 16일 토요일 아침 7시에 나라사랑기도포럼(대표회장 문희성 목사)이 주관하는 나라사랑기도포럼 제13-4차 정기기도회  ‘고난주간 특별기도회’가 광주광역시 남구 호남신학대학교 경내에 있는 양림동 선교사 묘원 일원에서 개최됐다. 양림동 동산의 선교사 묘역에는 130여 전부터 미국장로교교회의 파송을 받아 광주전남북지역에 온 선교사들의 묘지와 일제 신사참배 반대와 6·25전쟁 당시 광주전남지역에서 순교한 850여명의 기념비가 있는 곳이다. 부활절을 하루 앞두고 열린 이날 특별기도회는 제1부 예배, 제2부 선교사·순교자 추모, 제3부 순교신앙 계승을 위한 기도 순으로 진행됐다.이날 나라사랑기도포럼 부회장 정석윤 목사의 인도로 진행된 1부 예배에서는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제목으로 광주CCC 대표간사 이종석 목사가 설교했다.이 목사는 “100여 년 전 가난과 무지와 풍토병이 만연하던 불모지에 오신 유진벨, 오웬, 포싸이트, 윌슨, 서서평 등 수 많은 선교사들의 희생와 헌신으로 오늘 이 땅은 세계 10대 경제대국, 세계 2위의 선교대국이 되었다”며 “고난 없는 영광은 없고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이제 이곳에 있는 우리도 일어나 함께 가자고 부르시는 주님의 도전에 응답하자”고 강조했다.기도포럼 대표회장 문희성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제2부 선교사·순교자 추모 순서는 시인 리종기 목사의 추모헌시, 광교협대표회장 강희욱 목사의 추모사에 이어 예배에 참여한 200여명이 추모를 위한 합심 기도 후에 주최측에서 준비한 국화와 수건을 가지고 헌화와 묘비를 정성껏 닦는 순서를 가졌다.특히 금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에는 국제펜클럽회원이고 한국문인협회회원인 광교협고문, 수석부회장 리종기 목사(시인)의 추모헌시가 있어 더 큰 감동을 주었다.“십자가여 생명의 부활이여!(양림동순교자 헌시)            은산 리 종기 시인/목사 피묻은 십자가 가슴에 품고어린 시체들 뒹글던 양림동산 찾은푸른 눈의 서양의 선교사님들이여맞이하는 사람 없는곳알아주는 사람 없는 곳무지와 미신과 가난의 저주만 있던 무진주 땅  잿빛도시 양림골에님들은 어깨의 무거운 짐 풀고이국땅 이 자리에 자리잡았나이다. 풍토병과 싸워가며이국의 악한영들과 영적전투 벌이며십자가의  핏빛 헌신으로 생명사랑  영혼사랑으로육체위해   현대식 제중병원 세워는포사이드 선교사님 윌슨선교사님혼을 위해  현대식 미션학교 세우는유화례, 쉐핑 선교사님영을 위해  구원방주 교회 세우는유진벨, 오웬, 변요한선교사님27명의 잠들어 있는 선교사님들의무수히 쏟아내는 순교정신뜨거운 선교의 핏빛 사랑눈물을 바치고땀을  바치고 한방울 피까지도 비치고이국땅 코리아 광주 양림동산에 밀알되어 누워 계신 님들이여! 이 묘역에 27명의 선교사님들이여 우리는 세계 최빈국가에서세계 6위 10위권의 상위권에 드는 경제강국, 군사강국, 반도체강국으로세계 제2의 선교강국 되었으니십자가의 핏빛사랑 선교사님 정신을 예수 부활생명으로 빛고을 광주에서 삼천리 금수강산, 북녁땅으로 세계 열방으로 펼쳐나가겠나이다.”              제3부 순교신앙 계승을 위한 기도시간에는 이종석 목사가 선교사들의 순교역사와 순교자에 대해 소개했다.M하프단의 잔잔한 연주가 양림동산에 울려퍼지는 가운데 참석자들의 순교영성 계승을 위한 땅 밟기 기도와 묘역순례가 이어졌다.고난주간 특별기도회의 추모헌시와 추모사와 헌화와 순교자의 소개와 간절한 합심기도는 우리에게 믿음을 눈을 열어 하나님의 나라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기적의 시간이었다. M하프단과 형제들의 찬양은 어두어진 참가자들의 영혼을 흔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온전히 고백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표회장과 임원들의 구별된 마음가짐과 준비로 200여 명 가까이 참여한 기도회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로 부활절 주일 예배를 준비했다. 찬양과 기도와 말씀과 합심기도는 100여 전에 선교사들과 순교자들과 함께하는 감동을 주었고 “함께 가고자” 결단하게 하는 도전을 주었다. 이번 고난주간 특별기도회를 주관한 나라사랑대표회장 문희성 목사는 한마디로 “감동적인 메시지가 있는 기도회였다”며 “CCC대표간사 이종석 목사님께서 말씀을 뜨겁게 전해주셔서 감사드린다. 광교협 대표회장 강희욱목사님의 추모사로 격을 높혀 주셔서 좋았다. 고문 목사님들과 임원들의 헌신적인 수고에 감사드리고, 최선희 권사님이 조화 일체를 봉헌해 주셨고, 한평철 장로님이 화병심는 날 식사와 행사에 사용하는 수건을 섬겨 주시고, 이경영 권사님과 정순옥 권사님이 구운계란으로 섬겨 주시고, 크로마 M하프단의 찬양과 행사에 참석해 주신 강기정 전 정무수석, 김병내 광주 남구청장, 김용집 시의회 의장에게 감사드린다”고 했다.봄이 짙어가는 양림 선교동산에서 인류의 죄짐을 지고 십자가에 죽임당한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골고다 언덕의 고난을 깊게 묵상하며 드려진 나라사랑기도포럼 고난주간특별기도회는 대단한 의미와 감동의 순간들이었다. 몇 주 전부터 선교동산을 오르며 기도하며 헌신한 예배와 추모와 기도회는 평화와 사랑과 인권과 자유를 갈망하고 헌신하는 광주정신의 시작이 어디에 있는지 그 현주소를 알게 했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원 ‘양림동산’전라도 사역 순교 선교사 23명 묘비 조성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 108번지 호남신학대학교 캠퍼스 경내 뒷산에 위치한 양림동 선교사 묘원(양림동산)은 1895년 한국선교사로 들어와 나주, 목포, 광주에 선교부를 세우고 30년간 한국복음화를 위해 살았던 유진벨(배유지) 목사의 묘를 비롯해 한센병 치료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던 오웬 선교사, 광주 직업여성과 걸식인, 한센병자들의 대모로 살았고 광주 최초의 시민장으로 치러질만큼 시민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쉐핑 선교사 등 한센병자와 결핵환자, 빈민과 고아, 과부를 위한 사랑의 공동체를 실현했던 22명의 미국 남장로교 출신 선교사와 그 가족(자녀, 친척 등)의 묘가 있으며 전라도 일대에서 사역하다 순교한 23명의 선교사 묘비도 조성되어 있다.선교묘역에는 최초 서울 지역에 묻힌 선교사들의 기념비 22기와 전주지역과 순천지역에 묻힌 선교사 기념비 6기 등 22기의 묘비가 새로 조성되었고, 일제 강점기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한 순교자들과 광주 전남에서 6·25 때 순교한 850여 분의 순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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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7
  • 주성식의 어른 왈/고양이를 탓하기 전에
    <주성식 선임기자>   이 사회 특히 정치의 문제점은 너무 심각하고 광범위하고 명백하기 때문에 오히려 방치되고 있다고 하겠다. 원인과 결과가 맞물리면서, 아예 관행이고 대세며 체질이 된 것 같기도 하다.  힘을 가진 부류들은 날뛰며 더욱 강해지려 하고, 일부는 그 곁에 빌붙어 생계를 꾸린다. 한 마디로 복마전(伏魔殿)이다. 한창 진행 중인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통해 그 속내의 일단을 살펴보자. 오는 6월 1일 유권자들은 투표인(印)을 몇 번 찍을까? 5천만 명이 넘는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투표구 별로 ‘나리’들을 몇 분이나 모시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으니, 선거(기간)가 시작되면 사회 전체가 난장판이 된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떼를 지어, 춤을 춰대고 속이 뒤집힐 만큼 시끄럽게, 유행가와 구호를 퍼붓는다. 요란한 영상을 보여주며 거리를 누빈다. 누가, 몇 명이, 무슨 자리를 노려 ‘그 짓’을 하는지도 알기 어렵다. 그러나 이것은 겉으로 드러난 한 부분일 뿐이다. 각 정당이 공천 후보를 뽑을 때마다 항의·탈당 등 소동이 벌어진다. 기준도 원칙도 없이 ‘맞춤형 전략 공천’ 등 폭력이 자행되기 때문이다. 실력자(몇몇)가 경쟁력·도덕성 따위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것을 들먹이며 공천을 쥐락펴락하지 않던가. 워낙 비난 여론이 들끓자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소위 ‘국민참여경선’이다. 물론 그것도 온갖 협잡·불법·비리 투성이지만, 그 발상부터 우습지 않은가? 해마다 수백억 원 국비 지원을 받는 정치집단이, 후보 하나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무능을 자백하며 국민들을 끌어들이는 것이니 말이다.  공천이나 (본)선거 결과에 책임지지 않으려는 꼼수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 어떤 뒷거래가 있는지 유권자와 국민은 대개 알고 있다. 그러니 결국 우리 문제요 우리가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다.  혹시 우리는 그동안 아무 고양이한테나, 어떤 굴레도 채우지 않은 채, 생선가게를 맡겼던 것 아닐까? 몇 년(!)에 한 번, 종이쪽과 붓대롱만 손에 쥐면, 조건반사처럼 속절없이 투표소에 가서, 꼬박꼬박 ‘정해진’ 번호에 찍고, 또 던졌던 것 아닌가? 이제 더 이상 ‘허천난 아귀(餓鬼)’ 같은 것들에게 무한 권력을 허용하고, 방치하지는 않아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직접 정치가 절실하다. 그 조건은 이미 충분하다. 그냥, 실행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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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6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구례 명협정 이원익 왕버들나무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역사를 비틀고 뒤집어 보는 것은, 재미라기보다 바로보기의 한 방편이 아닐까 싶다. 조선 500년의 여러 정승 중 백성들이 꼭 정승 호칭으로 존경한 사람은 네 분이다. 첫째가 세종 때 영의정인 황희 정승이다. 두 번째가 역시 세종 때 좌의정인 맹사성 정승이다. 서울의 고갯길 이름 ‘맹현’은 맹 정승이 거기 살았기 때문이다. 세 번째가 명종 때 영의정인 상진으로 서울의 상동 이름도 상 정승이 거기 살았기 때문이다. 네 번째가 오리 정승인 이원익이다. ‘선조의 가훈을 받들어 충효로 마음을 세우고 인과 예절로 몸을 다스리며, 형제간에 화목하고 사리사욕으로 남에게 원한을 사지 말라. 내가 죽거든 절대 후하게 장사지내지 말라. 단지 수의와 연금으로 시신을 싸고, 외관이 있거든 석회를 쓰지 말고 석회가 있거든 외관을 쓰지 말라. 장지는 선영 내의 정한 곳에 입장하라. 초상, 소상, 담제 이후에도 일체 무당과 불가의 행사를 하지 말고 선조께서 소찬으로 진설한 것을 따라라. 풍수가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자손 대대로 한 산지에 장사하여 그 처소를 잃지 않도록 하라. 시제와 속제의 묘제 재물은 풍성과 사치를 숭상하지 말고 단지 정결히 하며 십여 접시에 그치도록 하라. 1630년 11월 21일, 아들 의전과 손주 수약에게 이글을 준다.’ 앞글은 오리 이원익(1547-1634) 정승의 유언 내용이다. 오리 정승은 선조, 광해군, 인조 왕 등 3 왕에 걸쳐 64년간 공직에 있으면서 6번에 걸친 영의정과 도체찰사를 지냈다. 임진, 정유재란, 정묘호란의 전장을 누볐고, 조선의 청백리 217명에 이름을 올렸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문자를 쓰고 있을까? 오리 정승이 없었다면, 조선은 과연 500년 역사를 기록했을까? 이렇게 역사를 비틀고 뒤집어 보면, 세종대왕은 한반도의 문명을 크게 여신분이고, 오리 정승은 민족의 역사를 이어 지키고 세운 분이다. 왜냐하면, 오리 정승이 없었다면 이순신이 없고, 이순신이 없었다면 정유재란에 한양은 단숨에 무너졌을 테고, 조선의 남쪽은 왜가 지배하거나 식민정권이 세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구례의 명협정은 그 정유재란에 오리 정승 이원익이 이순신을 만난 곳이다. 당시 이원익은 영의정 겸 도체찰사로 국가비상사태직무 총사령관이었다. 왕을 비롯하여 모두가 자신의 안위를 걱정할 때, 이원익은 왜의 코 앞인 전쟁터에 있었다. 이때도 백의종군 중인 이순신을 만나기 위해 구례까지 달려간 것이다. 얼마 전 이순신은 극적으로 목숨을 구했다. 그 이순신이 원균의 모함으로 국문장에서 사형집행을 눈앞에 두고 있을 때였다.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을 때다. 이원익은 선조에게 ‘전하께서 전시 중에 신(臣)을 폐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신 또한 전쟁 중에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을 해임 못 하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선조는 ‘도체찰사가 그리 말하니 이순신이 죄가 없는가 보다’라고 했고, 이틀에 걸친 친국은 마무리되었다. 조선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구례 명협정 옆의 500살 넘은 왕버들 나무와 아직도 푸르른 참느릅나무 3그루는 구례로 달려온 이원익이 이순신과 만나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나무이다. 이순신 또한 ‘오리 대감은 누구 보다 앞장서서 나를 믿고 옹호해 주었다. 나 역시도 상국이 오로지 나의 계책을 써 주어 오늘의 수군이 완전할 수 있었다.’라고 했으니, 이로써 오늘의 우리가 일본이건, 누구건, 당당하게 맞설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명협정 500년 세월의 왕버들나무와 참느릅나무에게 돌아가신 조상님 모시듯 허리까지 굽혀 예를 갖추는 연유이기도 하다. 김 목/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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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04-21
  • “온갖 법 문란해지고 정사 그르쳐”
    1904년 7월 15일에 안종덕은 고종 정권이 ‘청렴, 근면하지 않고 공정 하지도 않으며 신뢰도 잃었다’는 상소를 올렸다. 한 달이 지난 8월 22일에 고문정치가 시작되었다. 고종은 재정 고문에 일본인 메카다, 외교 고문에 미국인 스티븐스를 임명했다.  8월 28일에 철도원(鐵道院) 총재 신기선이 의정부 참정(총리)에 임명되었다. 그런데 5일 후인 9월 2일에 신기선은 사직 상소를 올렸다.“(전략) 현재 온몸과 터럭들까지 다 병들어 단 한 점의 살점도 성한 것이 없이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온갖 법이 문란해지고 모든 정사가 그르쳐졌습니다. 하나하나 두루 진찰해 보면 변사를 갈아대며 말해도 그 증세를 다 말해 낼 수 없으며 그 어떤 약도 효력을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증세에 대한 처방을 가장 근원적인 데서 찾으면 두 가지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두 가지는 첫째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하는 것이고, 둘째 뇌물을 없애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온 나라 사람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것으로서 신기하고 심원한 논의가 아니며 본래 평소의 확실한 이치여서 시행하기 쉬운 것입니다. 폐하께서는 무엇을 꺼려 시행하지 않겠습니까? 첫째,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하는 것입니다. 임금은 만백성의 위에 있습니다. 깊은 대궐에서는 상하의 엄격한 구분이 있고 친척들이 뵙는 것도 정해진 시간이 있으며 궁인(宮人)들과 내시(內侍)들의 시중에도 제한이 있고 만나는 사람은 오직 공경이나 어진 사대부들 뿐인 것입니다. (중략) 그런데 지금은 하찮고 간사한 무리들이 폐하의 곁에서 가까이 지내는가 하면 점쟁이나 허튼 술법을 하는 무리들이 대궐 안에 가득합니다. 대신은 폐하를 뵈올 길이 없고 하찮은 관리만 늘 폐하를 뵙게 됩니다. 정사를 보는 자리는 체모나 엄할 뿐 서리나 하인들이 직접 폐하의 분부를 듣습니다. 시골의 무뢰배들이 대궐의 섬돌에 꼬리를 물고 드나들며 항간의 무당 할미 따위들이 대궐에 마구 들어갑니다. 평소에 감히 보통 관리도 가까이하지 못하던 자들이 폐하의 앞을 난잡하게 마구 질러다닙니다. 이로 인하여 벼슬을 함부로 주고 이를 통해 청탁이 공공연히 벌어집니다. 굿판이 대궐에서 함부로 벌어지고 장수하기를 빌러 명산(名山)으로 가는 무리들이 길을 덮었습니다. (...)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소인(小人)들을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들을 가까이하며 경찰들에게 엄히 신칙(申飭)하여 필요 없이 대궐에 들어가는 것을 단속하여서 대궐을 엄숙하고 맑게 만들어야 합니다. 폐하가 정복(正服) 차림을 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날마다 재상과 대신을 만나 정사의 도리를 강론한다면 정사가 어찌 깨끗해지지 않고 법이 어찌 서지 않으며 대궐의 문란이 어디에서 생기겠습니까?둘째, 뇌물을 없애는 것입니다. 대체로 벼슬자리를 만들어 놓고 직무를 맡기는 것은 장차 하늘이 준 직책에 나가 하늘이 낸 백성을 잘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직 어질고 재능 있는 사람만을 선발하여 등용하고 조금도 사적인 마음을 개입시키지 말아야 하는데, 하물며 뇌물로 벼슬을 주는 것이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폐하의 명철함으로는 절대로 재물을 귀중히 여기고 어진 것을 천하게 여기면서 불법적으로 벼슬을 팔아먹을 리가 없건만, 수십 년 이래로 뇌물 주고받는 것이 풍습이 되고 관청 문이 저자처럼 된 것은 틀림없이 간사한 무리들이 연줄을 타고 청탁을 하여 사욕을 채우고 진상(進上)을 구실로 규례를 만들었기 때문입니다.지금 상하가 서로 이익을 다투는 것을 마치 일상적인 일처럼 보며 온 나라 사람들이 모두 뇌물이 아니면 벼슬을 얻을 수 없고, 뇌물이 아니면 송사(訟事)에서 이기지 못하는 것으로 알며, 관찰사나 수령 자리에는 모두 높은 값이 매겨져 있고 의관(議官)이나 주사(主事) 자리도 또한 값이 정해져 있어서 심지어는 뇌물을 바치고 어사(御使)가 되어 각도(各道)를 시찰하기도 합니다.”   이어서 신기선은 갑오경장 후부터 폐지된 경연(經筵)을 다시 열고, 하루에 세 번 조회를 열어 일체 정사를 처결할 때는 반드시 대신들과 직접 대면하여 의논하고 조정의 신하들에게 직접 문의할 것을 상소했다. “삼가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신의 간곡한 마음을 살펴 신의 벼슬을 체차(遞差)하고 신의 말을 채용해서 날마다 경연에 나가고 정사를 직접 처결하여 대궐을 엄숙하고 깨끗하게 만들고 뇌물을 근절하소서.”이러자 고종은 ‘사직하겠다는 말을 거두고 즉시 일을 보라.’고 비답(批答)하였다. 이로부터 2개월이 지난 11월 25일에 신기선은 다시 사직 상소를 올렸다. (고종실록 1904년 11월 25일)“삼가 생각건대 신은 위태로운 때에 줄곧 녹봉만 축냈습니다. 이에 물의(物議)가 물 끓듯 하고 사람들이 원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이 변변치 못하게 직무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랜 폐단을 없애 백성들의 마음을 위로하지 못하였고 또 기강을 엄하게 세워 민심을 진정시키기 못하여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간 상사(喪事)를 만나 감히 사임하는 글을 내지 못하다가 오늘에야  폐하를 번거롭게 하니 원컨대 속히 신의 참정 벼슬을 체차하고 신의 죄를 다스리소서.”이러자 고종은 번거롭게 굴지 말라며 사직을 반려했다. 하지만 신기선은 12월 31일에 또 다시 사직 상소를 올렸다. “신이 재주도 없이 외람되게 벼슬을 차지하였기 때문에 파면시켜 줄 것을 아뢰었으나 허락을 받지 못하고 그전대로 어물어물 벼슬에 있은 지 이미 한 달이 지났습니다. (...) 오늘날 백성들이 일으킨 소란은 참으로 유사(有史) 이래 들어보지 못한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백성들이 단체로 회를 결성하여 정부에 대들고 칙명(勅命)에 항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면밀히 따져 보면 그것은 곧 폐단을 강제로 짓누르고 억울한 기운이 쌓인 것에 불과합니다. 이 변고가 비록 고금(古今)에 처음 보는 일이나 그 이치를 궁구해 보면 또한 필연적인 것입니다.지금 조정은 태평의 즐거움을 탐하고 큰 세력만 의지하였습니다. 백성들을 다스리는 관리들이 사욕만 채웠고, 시행하는 정령(政令)은 압제(壓制)로 줄달음쳤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원한이 극도에 이르렀으나 하소연할 데가 없게 되었고, 그것이 처음 변란인 임술년(1862)의 소요를 초래하였고 두 번째 변란으로 갑오년(1894)의 난리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런 다음에야 나라는 비로소 개혁을 도모하며 유신(維新)을 표방하였습니다.그러나 오랫동안 이루어진 버릇이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대소 관리들은 전날보다 몇 곱절 더 제 이익만 채우며 공적인 것을 모두 잊고 폐하를 속이며 법을 무시하고 있습니다. 부패 관리들은 백성들의 등골을 긁어내고 파견 관리와 시찰 관리들은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빙자하여 재물을 빼앗고 있습니다.경무(警務)를 맡은 두 관청과 옥을 맡은 관리들은 요민(饒民)에게서 포악하게 약탈하여 온 나라를 함정으로 만들고 있으며 각 진위대(鎭衛隊)의 군사들은 비적(匪賊)을 핑계대고 백성들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각궁(各宮)과 각사(各司)에서는 잡세(雜稅)를 함부로 받아 내고 서경(西京)의 궁(宮)을 짓는 역사(役事)에 도(道) 전체를 모조리 긁어내어 고갈시켰습니다. 전환국은 악화(惡貨)를 주조하여 물가를 등귀시키고 있으며 내장원(內藏院)에서는 역참(驛站)의 둔전(屯田)을 관할하면서 농민들을 들볶고 있습니다. 이 밖의 허다한 고질적인 폐단은 다 셀 수도  없습니다.백성들이 도탄에 빠진 것이 도리어 임술년(1862), 갑오년(1894) 전보다 더 심해졌으니 백성들이 떠들썩하게 일어나 분연히 모여 살아날 길을 도모하는 것 또한 괴이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때문에 이런 비상한 변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신은 매번 폐하 앞에 나설 때마다 적이 폐하의 뜻을 헤아리고 개연히 분발해서 어려운 형편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생각을 하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변변치 못한 신이 어찌 외람되게 의정부(議政府)의 벼슬을 차지할 수 있겠습니까?그 누구보다 어리석고 나약하기 때문에 아첨이 풍속이 되고 신하가 폐하의 위엄을 무릅쓰고 바른 말로 간하지 못하고 그럭저럭 지내는 것이 정상이 되어 있어 신은 일을 과단성 있게 처리하지 못합니다.사변이 들이닥쳐도 망연해져 어쩔 줄 모르고 폐단을 바로잡을 계책이란 늙은이가 늘 하는 푸념에 지나지 않습니다. 의정부의 회의에 관리들이 모이는 것이 엉성하고 인망이 경박하여 동책(董策)하지 못하고 탄주(彈奏)는 폐하의 재가를 받지 못하여 법질서를 세우지 못합니다. 신은 외람되게 오랫동안 벼슬자리에 앉아 있으면서 어진 사람이 나설 길을 방해하였기 때문에 나라 일이 갈수록 위태로워져도 타계할 계책을 세우지 못했던 것입니다. 신의 죄는 만 번 죽어 마땅하니 바라건대 폐하는 속히 신의 참정(參政) 벼슬을 체차(遞差)하고 유능하고 식견 있고 명망 높은 인재를 선발하도록 하소서.”마침내 고종은 아뢴 대로 하라면서 사직을 수리했다. 참정에 임명된 지 4개월 만이었다.
    • 기획.연재
    2022-04-20
  • “횡재 바라지 말고 안목 키워라!”
    김화중 고미술협회 광주전남지회장 ‘보물찾기 반세기’핵 가족화·아파트 생활, 예술품 시장에 큰 변수돼많이 보고·자기 기준 갖고·조금씩 투자하면 성공소장 유물 공개 계획·전시장소 마련 등 참여 기대 대담=주성식 선임기자코로나19 상황과 경기 침체가 맞물리면서 골동품·예술품 시장은 급격히 위축됐지만, 봄 기운과 함께 방역조치가 완화되면서 차츰 기지개를 켜고 있다. 한국고미술협회 광주전남지회장 취임 2년째인 김화중 고전방 대표도 변화를 체감하고 있다. “예술의 거리를 찾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다”라고 밝힌 김화중 대표는 “경기 침체 국면이라고는 하지만 억눌렸던 소비 심리가 살아나고, 젊은 층을 중심으로 예술품 등 ‘아름다움’에 대한 욕구가 폭발하고 있다”라며 낙관적인 전망을 내놨다. 봄빛 완연한 광주 예술의 거리 고전방 사무실에서 김화중 대표의 ‘보물찾기 반세기’를 들어보고, 골동품·예술품 시장의 현황과 전망을 살폈다.-고미술협회는 어떤 곳인가?예술품 특히 고미술(골동)품과 관련해 국내에서 가장 권위 있는 기관일 것이다. 설립된 지 반세기가 됐다. 도자기·동서양화·고서화 같은 옛 물건에 대해 알고 싶은 경우, 가장 믿을 만한 답을 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물론 근현대 미술품도 다룬다.-공인(公認)된 기관이란 말인가?공인이라면 국가나 공적기관이 설립하는 등 법적 근거가 있다는 의미일 텐데, 우리나라에 고대 유물이나 예술품을 다루는 공인 기관은 없다. 이것은 전 세계 모든 국가가 마찬가지다.-그렇다면 진품(眞品) 여부부터 가격까지 전혀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닌가.이 부분에 대해 완벽하게 설명하는 것은 세상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도 불가능할 것이다. 어쩌면 인류의 생성부터 따져봐야 할지도 모른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와 관련한 진위 논란이 있었다. 작가 본인이 ‘가짜’라고 했는데도 국가기관인 국립현대미술관과 검찰은 진짜라고 했던 유명한 사건이다. 예술품을 구입해 감상하고 소장하겠다는 입장에서 어느 판단을 따르는 것이 맞겠는가?널리 알려진 추사(秋史, 金正喜)나 남농(南農, 許楗)은 생존해 있을 당시에도 가짜가 유통됐다. 문제는 그 가짜가 작가 본인이 직접 제작한 진짜에 못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더 훌륭하기도 했다는 데 있다. 당시의 종이·붓·먹을 사용해, 유행하던 필법으로, 치열한 노력 끝에, 더 ‘작가답게’ 위조한 작품과 원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구분하겠는가. 아니 어떤 것이 더 예술적 가치가 있겠는가?그래서 앞에서 ‘가장 믿을 만한’이라고 한 것이다. 완벽한 감정은 있을 수 없다. 누구도 해낼 수 없다. 끝없이 근사치(近似値)를 추구하는 것이 감정이고, 우리 고미술협회는 그 과정에 가장 충실하다는 것이다.-요즘 이 분야에도 변화가 있다던데?과거 동양화(남화, 문인화)가 주를 이루고 글씨(서예 작품)가 보조적인 역할을 했는데, 추세가 완전히 변했다. 핵가족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주거 공간도 아파트가 많아지면서 소품 위주의 서양화·조각 등이 인기다. 젊은 층이 한자(漢字)에 익숙하지 않은 영향도 있을 것이다.-이 분야에 종사하게 된 계기는?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양화 유통에 관여하게 됐다. 당시에는 각 가정은 물론이고 시중 다방, 식당 심지어는 유흥업소까지 그림이나 글씨 몇 점 걸어놓지 않은 곳이 없었다. 우리 경제가 좋아지던 때라 수입도 괜찮았다.작품을 많이 접하다 보니 어떤 것이 진귀한 것인지 나름대로 안목이 생겼다. 특히 세상에는 물질적 이득 말고도 소중한 것이 있다는 가치관도 갖게 되고, 이 분야에서 한 몫을 해내고 있다는 보람도 커졌다.-중국과 관련한 일도 적지 않았다던데?중국이 개방되면서 이 업계에도 중국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중국과 거래해 큰 돈을 벌었다는 업자들 소문이 무성했다. 나는 고서(古書)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한중(韓中)은 동일한 한자문화권이고, 과거에도 물자 이동이 활발했다는 데 착안한 것이다. 상대적으로 운반하기 쉽다는 점도 고려했다. 중국 시장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당시 중국은 경제 규모나 생활 수준이 우리와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후진적이었지만, 골동품 시장은 별천지였다. 중국의 골동품 수장(애호)가가 약 8000만 명 정도다. 구매력을 가진 열렬 애호가가 우리 전체 인구보다 많은 것이다. 중국 고서(古書) 경매로 적지 않은 수입을 거뒀는데, 전부 중국 골동품 구입에 썼다. 흑피옥(黑皮玉)·칠기(漆器, 전국시대 추정)·도자기까지 진품이 많았고, 지금도 다수 소장하고 있다.-최근 중국 골동품과 관련한 논란이 적지 않다.기물이나 작품의 (眞僞)부터 적정 가격, 한 걸음 더 나아가 한중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분란이 심각하다.그 대표적인 것이 흑피옥(黑皮玉, 玉 彫刻에 검은 칠을 했다)이다. 이 유물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은, 7000~1만년 전 우리 민족이 만주·몽골 지역을 지배하던 때의 유물이라고 주장한다. 인류 역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중요한 보물인지를 두고 논란이 뜨겁다. 중국이 전면적으로 고대 유물 해외 반출을 금지하고, 코로나19 상황이 닥치면서 소강상태이기는 하지만, 연구자부터 소장자와 유통 관계자까지 ‘해뜰 날’을 기다리고 있는 형국이다. 또 중국 고대 도자기와 관련해서도 다툼이 적지 않다. 한쪽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보물급 도자기가 우리나라에 (한 점도!) 있을 리 없다고 한다. 다른 편은 중국은 한반도의 50배 이상 크고, 3000년 가까운 역사 동안 무수한 유물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한다. 중국 경제가 발전하면서 도로공사나 택지 개발 과정에 최소 20만기 이상 상류층 분묘가 파헤쳐졌고, 그 과정에 부장품(副葬品)이 대량 쏟아져 나왔다는 것이다. 국외 반출이 통제되기 전 수천만 점이 해외로 빠져나갔으며, 국내에도 최소 100만 점 이상 들어와 있다고 주장한다.이 기물들이 유통되면서 법적 분쟁도 적지 않게 발생한 것으로 들었다.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시급하다고 본다.-기억에 남는 일이 적지 않을 텐데?중국에 다니면서 흑피옥과 춘추전국시대(추정) 칠기(漆器)를 처음 접했을 때가 지금도 뚜렷하게 떠오른다. 참으로 좋은 기물은 감정이나 분석이 필요 없다. 그냥 ‘아 좋다!’라고 느껴진다. 또 마지못해 인수한 물건이 엄청난 가치를 가진 것으로 밝혀졌던 것도 기억난다. 물론 반대인 경우가 더 많았지만. (웃음)-그동안 지켜온 원칙이나 신조가 있는가?상식과 관행을 지키자고 다짐해왔다. 다시 말하자면 합리성과 의리(義理)를 중시하고, 원칙으로 삼았다.이 업에 종사하다 보면 온갖 ‘위험’에 접할 수밖에 없다. 고의건 자신도 몰랐건 가짜를 비싸게 팔려는 사람들이 있다. 거래가 마무리된 후 그것을 확인했을 때, 세상의 상식과 업계의 관행에 따라 무리하지 않고 처리해왔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가격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 그리고 분명 진품인데 인정받지 못할 때 속앓이가 심하지만, 어디까지나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극복해 왔다. -계획이나 목표가 있다면?앞에서 언급한 흑피옥을 비롯해 그동안 수집한 중국 관련 기물과 국내 유물 등을 적절한 공간에 전시하고 싶다. 박물관이나 전시관 등 어떤 형식이건, 내 노력의 성과를 공개해 가능한 한 다수와 나누려는 것이다. 혼자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뜻 있는 분들의 관심과 동참을 기대한다.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골동품·예술품 감정 기준이 마련되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법규 제정·관계 전문기관 설립·전문가 양성 등 어떤 분야건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분야에 힘을 보탤 것이다.-골동품·예술품 구입과 소장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 조언한다면?가장 먼저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끔 언론에 나오는 횡재(橫財)는 몇 년에 한 번, 수억 명 인구 중 한두 명의 사례다. 그리고 결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복권 당첨자를 생각해 보기 바란다.그다음에는 많이 봐야 한다. 만져 보고, 냄새도 맡고, 가능하다면 오감(五感)을 넘어 육감(六感)까지 동원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야 한다.그래도 미진한 것이 있기 마련이니 공부해야 한다. 관계 역사부터 작가(들)의 특성과 사용한 재료에 이르기까지 ‘아는 만큼 보인다’는 점을 명심하면 좋다.보기에 좋고, 쓸모도 있고, 주변과 어울리고, 경제적으로 큰 부담도 없는 선에서 하나둘 모으다 보면 어느 새 전문가가 돼 있을 것이다.김화중 대표는, 귀천(貴賤)을 비롯한 골동품·미술품의 가치는 각자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 유명 박물관 앞에서 크기나 상태까지 실물과 전혀 다르지 않은 복제품을 팔고 있는 것을 거론하며 “그 작품의 아름다움에 과연 차이가 있겠는가?”라고 묻는다. 아이가 유치원 때 삐뚤빼뚤하게 쓰고 어설프게 그린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편지의 가치가, 호화로운 미술관 속 거만(巨萬)을 헤아린다는 명작만 못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진정 소중한 가치가 온전히 드러나고, 되도록 많은 사람이 반가이 접해 넉넉하게 즐길 수 있기를 바라는 김화중 대표의 뜻, 이미 ‘진품(珍品)이요 보물’ 아닌가!
    • 기획.연재
    2022-04-17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포항 구룡포 천지창조 용송
      일만이천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는 인간을 비롯 뭍 생명에게 멸족의 두려움과 멸망의 공포였다. 이 시기의 생존은 사라져버린 태양을 대신한 불이었다. 서양에서는 프로메테우스가 불을 훔쳐 뭍 생명을 살렸고, 북방민족을 살린 건 태양 안에 살며 태양과 인간을 불로 맺어준 불의 신이자, 전령사인 삼족오다. 이 삼족오를 모시고 빙하기를 견뎌온 부족이 해 뜨는 동쪽으로 아리랑 고개를 넘어 정착했으니 석기부족인 곰족이다. 뒤이어 고개를 넘어온 청동기 부족이 호랑이족이다. 이 두 부족이 백두산을 중심으로 세운 나라가 단군조선이다. 이들 후손 중 철기문화를 일으킨 부족이 예족이다. 이들은 박달나무로 만든 강한 활에 쇠활촉을 달고, 역시 쇠날을 박은 긴 창으로 한반도의 동해안과 바다를 다스렸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그 6.9m의 긴창을 두세 병사가 함께 들고 능숙하게 다뤘으니, 이는 훈련이 잘된 강한 군사력을 말한다. 동해를 품에 안은 포항지역은 삼한 시대 진한의 12국 중 근기국이다. 근기(勤耆)는 고대 신라어로 도기야(都祈野)이며 ‘돕(돋)기/도기(도끼)/도지/돋이’를 음차 및 훈차한 표기이니 ‘해돋이’를 뜻한다. 또한, 연오랑과 세오녀의 오(烏)도 불의 신 삼족오이니, 이는 ‘해맞이’다. 이 ‘연오’가 ‘영일’이 되었고, 영일만의 호미곶은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뜬다. 다리가 대나무를 닮아 대게인 포항대게 중 크고 단단한 대게를 ‘박달게’라 한다. 이 박달도 환웅 천황 배달국 신시의 밝고 환한 새 나라에 닿아있다. 하늘의 아들이라는 천신족 사상의 제천의식을 치렀던 이곳 포항은 신라에 병합되기 전 제철과 직조기술로 진한의 지배자였고, 오늘날에도 동해의 으뜸 도시이자, 세계를 지배하는 철의 왕국이다. 포항에 구룡포 설화가 있다, 열 마리의 해룡이 승천하는데, 9용은 하늘에 오르고 1용은 바다에 머물렀다. 짝수 10은 음수로 여성, 홀수 9는 양수로 남성이다. 따라서 아홉 용은 세상으로 나갈 남성이자 아들이고, 바다에 남아 10을 채우는 용은 삶터를 지킬 여성이자 어머니이니 모계에서 부계로 이어짐의 상징이다. 또 10은 완벽한 수, 9는 가없이 큰 수이니 완전함과 가없음으로 세상을 연 곳이 포항이다. 이는 대륙해양 고을 포항의 천지창조에 버금가는 자부심과 자긍심이다. 뭍과 바다, 하늘의 지배자인 그 포항의 용이 이제 포스코의 철로 만든 배와 비행기가 되어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니, 구룡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설화였다. 또 연오랑과 세오녀의 설화가 있다. 신라 8대 아달라왕 때다. 불로 쇠를 다루는 연오와 옷감을 짜는 세오가 바위배(큰 배)를 타고 왜국으로 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 왕은 사자를 보내 연오와 세오의 귀국을 권유했다. 이에 연오는 세오가 짠 비단을 보내 평화를 약속하니, 신라 왕은 근심을 덜었다. 이 역시 높은 파도를 이길 튼튼한 배, 제철과 직조기술로 왜 열도를 달래고 어르면서 평화를 유지했음을 상징하는 태양신화이다. 구룡포의 근대문화역사 거리는 일제강점기에 일인들이 살았던 곳이다. 이곳 구룡포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에 오르면, 하늘로 오르는 모습의 역동적인 구룡 조형물이 있다. 그 아홉 용이 넘실대는 푸른 파도를 가르며 하늘로 오르고, 또 열 번째 용이 있으니 바로 바다를 보며 용트림하는 용송이다. 그렇게 아홉 용이 하늘에서 세상의 번영을 이루고, 또 열 번째 용이 뭍과 바다에서 세상의 평화를 지키는 구룡포는 세상의 핵심인 용의 터이자, 여의주다. 구룡포에 가면 그 열 용을 보며 대륙에서 해양으로 나가는 포항의 힘찬 기상과 늠름한 기백을 함께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우리 아이들과 함께 가면 더욱 좋은 곳이다. <김 목/ 동화작가>
    • 기획.연재
    2022-04-14
  • 대한임상통합의학회 고문 박중욱 박사 “의사는 끝없이 공부해야 한다”
     불치·난치병 진단·치료법 찾아 최신 의학·과학정보 섭렵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식이요법·적절한 영양 강조  코로나19 등 감염병 집단방역 한계·개인면역력 키워야  개인유전자검사(DTC), 전문가 검사·판단·처치 절대 필요   대담=주성식 선임기자 지난 3월 27일 세종대학교 대양AI CENTER에서 「대한임상통합의학회 2022년 학술대회」가 열렸다. 코로나19 확산세가 정점을 치닫고 있었지만 의학회는 비상 상황일수록 ‘인술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이루고 행사를 진행했다. 현재 의학회 고문인 박중욱 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청담의원)이 〈임상통합의학 관점에서 본 면역유전체학〉을 강의했다.  박중욱 고문은 2004년 대한임상통합의학회 설립을 주도하고 2014년 이사장을 맡아 학회의 안정과 성장을 이뤘다. 2018년부터는 고문으로서 학회에 방향을 제시하는 등 통합기능의학의 발전에 힘을 보태고 있다. 청담통합의원(서울 강남구 청담동 소재)에서 불치·난치병 환자들에게 활로(活路)를 열어주기 위해 진력하고 있는 박중욱 고문을 만났다. <편집자주> -이번 ‘대한임상통합의학회 2022년 학술대회’의 내용은? ‘면역과 비만 및 통증 관리’가 대주제였다. 면역과 관련된 장 기능, 암 식이요법과 면역요법, 비만 관련 약물 처방 등에 관해 최신 정보를 소개하고 공부했다. 최근 코로나19 유행 국면에 확인됐지만, 감염력이 강한 질병을 단체 방역으로 대처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결국 개인 방역 체제가 작동해야 한다. 동일 질병에 개인의 증상이 다른 것은 결국 면역력 즉 면역 체계의 효용성 차이 때문이다. 우리 학회는 미래 사회의 건강을 위해 면역 분야의 연구와 발전이 필수라고 본다. 암이나 비만 관리뿐 아니라 코로나19 등 유행병도 의학계가 주도적으로 해법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좀더 능동적인 분위기로 현장감있게 몰입하고자 이번 학회도 현장 강의로 진행하였고 방역지침을 철저히 준수한 덕에 지난 해 6월에 이어 아무 문제없이 치러냈다. -통합의학회의 설립 목적과 그동안의 활동 내용은? 대한통합의학회는 2004년 설립됐다. 급성기 질환 위주여서 포괄적·장기적 질병에 취약한 의료 현실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다.  물론 연구·학술 활동은 철저히 현대의학 즉 과학이 기반이다.  촌각을 다투며 발전하는 진단·검사법, 암을 비롯한 여러 불치·난치질환에 대한 최신 치료법을 연구한다.  특히 연수교육과 포럼 등을 통해 관련 전문가 육성과 저변 확보에 힘쓰고 있다. -최근 DTC 관련 논란이 적지 않은데? DTC(Direct To Consumer, 소비자 직접 의뢰방식 유전자 검사)는 의료기관이 아닌 유전자검사회사가 검체 수집·검사·결과 분석을 소비자에게 직접 전달하는 유전자 검사다.   2016년 법령이 정비돼 2017년부터 질량지수·중성지방 농도·콜레스테롤·카페인 대사 등을 시작으로 현재는 일부 암 유전자 검사까지 확대됐지만 그 효용성은 회의적이다.  유방암 가족력과 유전자 검사 결과를 근거로, 선제적 유방 절제술을 받은 안젤리나 졸리의 사례는 널리 알려져 있다. 유명 인사인 만큼 전문가들이 특히 신중하게 판단했겠지만, 일반 대중에게는 불안감과 편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유전자가 우리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DNA Is Not Destiny.)”  해당 질병 유전자가 있으면 반드시 그 질병에 걸리고, 또 없으면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유전자 검사와 함께, 유전자의 발현을 조절하는 후생 유전학적 적용을 고민해야 한다. 생화학 기전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개개인의 유전체에 통합적으로 적용하고 가늠할 수 있어야, 유전자 검사 결과에 대해 정확하게 판단하고 의미 있는 조치를 할 수 있다.  미국만 해도 유전자(정보) 해독 회사와 미가공 유전자 자료(raw data)를 분석·처방하는 기업이 100여개 이상 경합하고 있다. 대다수 DTC가 (특정 유전자) 유무(有無)의 기초 자료를 대충 분석하고, 적절한 해법은 제공하지 못한다. 대중에게 막연한 호기심이나 두려움을 조성하는 상업적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우리의 코로나19 대응은 적절한가? 앞으로 추이를 전망한다면? 유행 초기에 국경을 차단하지 않은 것, 근거 없는 거리두기 방식과 단계 조절 등이 아쉽다. 의료인(간호사·의사)들을 분열시킨 것 등 의료진들의 사기를 저하시킨 것도 문제였다.   최근 온갖 방역 조치가 무색하게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전 국민의 26~40% 감염까지 예측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집단면역이 실현될지는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방역 실패 혹은 포기의 결과다.  이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위중증 환자와 사망자의 급격한 증가, 이에 따른 의료 시스템의 붕괴다. 일반 중환자군에 대한 진료 역량 부족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다. 바이러스 변이가 대개 증상은 약하고 감염력은 강해지는 추세이므로, 앞으로는 개인 방역을 강화하고 중환자 위주로 관리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또한 심근염, 머리가 명료하지(brain fog) 못하게 되는 코로나 후유증(Long Covid)의 치료·관리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통합기능의학이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의 근원에 대한 통합의학의 관점은? 인류의 이성이 계발됨에 따라 과학 특히 현대 의학은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영유아 사망·전염병·전쟁 등 급격한 상황으로 인한 사망이 극적으로 줄고, 평균 수명은 현저히 증가했다. 현재 의학의 역할은 증가된 생존기간 동안 더 건강하고 안온하게 보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결국 만성 난치 질환의 해법을 찾는 것인데, 그 길은 애매모호한 체질론이나 여러 의학 체제를 아무 근거도 없이 혼합하는 것이 아니라, 엄밀한 현대 과학에 있다. 통합기능의학은 검증 가능한 과학을 대전제로 하되, 질병을 근원부터 파악해 우리 몸의 균형·항상성·개별성을 지키려고 한다.  그동안 주류 의학이 놓치고 있던 부분을 통찰하는 것이며, 이것이 미래 의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 향후 목표, 계획은? 많은 의사들이 보다 쉽게 활용할 수 있도록, 통합기능의학을 적용한 임상 프로토콜을 개발하려고 한다. 통합의학이 소수만의 혜택이 아니라 필요한 누구나 접할 수 있도록, 보험 혜택과 정책적 지원이 확대되게 하는 것도 있다. 특히 관련 전문가를 육성하기 위해 정규 의학 교육에 통합의학을 포함시키는 것이 꿈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힘이 되는 한 찾아온 환자에게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의사로 열심히 살려고 한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본다면? 호랑이를 그리려고 노력해야 고양이라도 그릴 수 있다. 감나무 아래에서 입만 벌리고 있는 사람에게는 운(運)이 없다. 목표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운이 오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과정을 살펴보니,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게 여러 부문에서 활동했다. 그만큼 바쁘고 의욕적으로 살았고, 아무 후회도 없다. 그 모든 과정이 나를 성장시켰고, 조그만 성취지만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건강 관련 조언을 한다면? “You are what you eat. 먹는 것이 우리를 만든다.” 우리 몸과 마음은 거짓말하지 않는 것이다. 가장 기본이자 중요한 진리가 내 몸에 맞는 건강한 식이(食餌) 즉 잘 먹는 것이다. 유익한 음식(채소·과일·동물성 단백질 등)과 줄여야 하는 음식(패스트 푸드·과다 탄수화물·중성지방 등)도, 개인의 생리학적 특성 등에 따라 적절한 식품군과 섭취량에 차이가 있다.  특히 나이가 들면서 소화 능력이 감퇴하므로 필요 영양소를 음식으로만 섭취하기는 어렵다. 고품질 기능성 영양제 복용이 필요한 까닭이며 사실상 모든 사람에게 해당된다.  개인의 적정 식단을 결정하고, 시중의 여러 기능성 식품들 가운데 신뢰할 만한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개인의 식이 전반에 관해 기능의학 전문가에게  상담할 것을 추천한다. 적당한 운동 등 상식적인 것도 잘 지켜야 한다. -통합의학 등과 관련해 더 알리고 싶은 것은? 오랜 기간 여러 병원을 다니고도 해결하지 못한 질환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그 가족이라면 꼭 통합기능의학의 가능성을 확인해 보기 바란다.  예를 들어, 과민성 장(腸)증후군·두통 등으로 내과 치료를 받다가 정신과로 간 경우, 수술·화학·방사선 등 암 치료 전후에 상담이 필요한 경우 그리고 진정한 의미의 예방 진료를 원할 경우 통합기능의학 전문가가 도움을 줄 수 있다. 과학적 근거에 의해 합성 약물 복용을 줄이고, 생활습관교정· 식이·운동 요법 등 위험이 적고 효과적인 처방을 제시할 것이다. 동료 의사들에게는 의료의 큰 줄기에 기민하게 반응할 것을 말씀드리고 싶다. 외상·전염병·급성 질환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면, 통합의학의 가능성을 확인해봐야 한다.  류마치스내과·피부과·신경과·신경외과·재활의학과·마취통증과·가정의학과 특히 자폐·ADHD·우울증·불안·공황장애를 치료하는 정신과 그리고 노인의학 전문 의사들께 강력하게 권유한다.  의사는 어떤 분야보다 오래, 치열하게 공부한다. 그렇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관성적이지 않은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계속 학습해야 한다. 편협한 시각, 경직된 자세로는 환자에게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의사들 모두 정체되지 않고 변화에 잘 대처하는 의료인으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   박중욱 고문의 건강법은 단순하다. 통합기능의학에 따라 식단과 식사량을 철저하게 조절하고, 정기적으로 받는 기능의학적 검사 결과에 따라 기능성 영양제를 복용한다. 너무 격렬한 운동은 피한다. 꾸준히 (골프) 연습하면서 가끔 필드에 나가는 것으로 운동량을 채운다.  그는 지금도 매일 기능의학의 최신 지견과 세계적 흐름을 확인한다. 환자 치료를 위한 공부일 뿐 아니라 최고의 취미가 됐다.  박중욱 고문은 청담병원에서 환자와 그 가족들을 만나, 오랜 질병의 고통을 위로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어떤 미련도 남기지 않으려고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술(仁術)은 결국 사람이 하는 일 바로 인술(人術)일 테니 말이다.
    • 기획.연재
    2022-04-11
  • 삶, 숨, 쉼터, 나무 이야기/초록비 녹우당의 초록빛 은행나무
    초록비가 내리고 초록으로 물든 녹우당(綠雨堂)에서는 스쳐 가는 바람도 초록색이다. 또 이곳 해남 윤씨 고택의 유적·유물을 통해 한 시대의 일이 쌓여 역사가 됨을 알게 된다.여기 연동마을의 녹우당은 1501년 윤선도의 4대 조부 윤효정(1476∼1543)이 도강 김씨와 탐진 최씨들이 살던 곳으로 이주하면서 시작되었다.그런데 집을 짓고 살면서 2차례의 화재가 있었다. 어느 날 윤효정의 꿈에 하얀 옷의 노인이 ‘지금의 자리는 산강수약(山强水弱)하니 자리를 옮기고 현재의 터는 못을 만들어 흰 연꽃을 심으라’고 했다. 이에 집을 옮기고 연못을 만들자 화재가 없었으며, 백련동(白蓮洞)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이 백련지는 그렇게 바람을 가두고 물을 얻는 이치로 만들어졌는데, 네모난 형태의 연못은 땅이요, 연못 속의 둥근 섬은 하늘을 뜻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고대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다. ‘연지에 물이 가득 차 그 물속에 덕음산의 산 그림자가 비추이면 집안과 마을이 번성한다’는 유래이기도 하다. 그리고 연지의 섬을 ‘몰(말)무덤’이라 하는 것은 고기(漁)를 잡고 나무(樵)하며 조용히(隱)살고자 하는 어초은 윤효정의 뜻이 반영된 말이다. 윤두서가 백마를 다 그리고 난 뒤 그 백마가 죽어서 묻었다는 전설은 맘이 몰이 되고 몰이 말로 변한 탓이다. 윤두서가 이곳에 있을 때는 눈이 좋지 않아 그림을 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렇게 해남 윤씨가는 윤효정 이후 5대에 이어지며 과거 급제자가 나와 명문으로, 해안 간척지를 개척하여 재력가가 되었다. 그러다 남인을 이끌던 윤선도가 벼슬에 미련을 버리고 귀향하였고, 소박한 시골집 녹우당은 큰 변화를 갖게 되었다. 윤선도는 수원집의 사랑채를 옮겨오고, 백련지를 큰 규모로 개수했다. 수원의 사랑채는 효종이 자신의 스승이었던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이를 1668년에 뱃길로 해남까지 옮겨왔던 것이다.윤선도의 증손인 윤두서 이후에 녹우당은 더욱 풍성해졌다. 이전의 종갓집에 보태어 1821년 가묘와 3개의 사당이 중건되었다. 이어 행랑채를 신축하고, 1938년에 녹우당 뒤 재각인 추원당을 신축하였다. 현재의 녹우당은 그렇게 400년간의 증축과 개수의 과정을 겪은 결과물인 것이다. 그리고 녹우당이란 현판 글씨는 윤두서의 친구인 ‘이서’의 글씨다. 또한, 이때부터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의 외증손이자 실학자인 정약용, 남화의 대가인 허유 등이 머물고 교류하여 녹우당은 문화예술의 부흥처가 되었다.여기 녹우당 뒷산 9만여 평에 이르는 ‘해남연동리비자나무숲’은 천연기념물 제241호이다. 조림숲이니 1대 나무는 5백 5십여 살이다. 이 비자숲을 보호하기 위해 윤씨의 선조는 ‘뒷산의 바위가 노출되면 이 마을이 가난하여진다.’는 유훈을 남겼다. 그리고 후손들은 이를 잘 지켜 오늘의 자랑이 되었다. 이 비자나무는 우리나라의 내장산 이남과 일본 등지에서 자라며 작은 잎끝이 두껍고 뾰족하다. 봄에 핀 꽃이 가을에 길고 둥근 열매가 된다. 나무의 수형이 아름답고 열매는 구충제, 변비 치료제, 기름을 짜기도 한다.또 녹우당에는 3백 살을 넘긴 해송 한 그루와 나이가 비슷한 회화나무가 있다.그리고 초록비 녹우의 상징인 은행나무는 윤효정이 그의 아들의 과거급제를 기념하여 심었다 한다. 처음에는 아들 4형제처럼 4그루였는데 지금은 2그루만 남았다.해남 윤씨가의 역사를 지켜본 이 은행나무는 자태가 웅장하며 가을에 황금빛으로 물이 들면 푸른 비자나무 숲과 어울려 한 폭의 그림이 된다.김 목/ 동화작가  
    • 기획.연재
    2022-04-10
  • 날마다 외세의 치욕을 당하면서도 막지 못하다
    대신,관찰사 등 자주 교체폐하의 마음에 신의 부족 1904년 7월 15일에 중추원 의관(議官) 안종덕이 ‘조정이 청렴, 근면, 공정하지도 않고 신의도 없음’을 지적하는 상소를 올렸다. 안종덕의 상소는 이어진다.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말을 가지고 하지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폐하의 일에는 무슨 일이나. 신의가 별로 없습니다. 조서나 칙서를 내릴 때마다 신의를 다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하나도 제대로 실천되는 일이 없습니다. 대궐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잡된 무리들이 더 들어오고, 잡세(雜稅)를 폐지한다고 말하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소환되었다가는 곧바로 석방됩니다.  부패를 척결한다고 말하지만 관청이 부패관리를 보고하면 덮어두고 내려보내지 않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핀다고 하지만 대책을 올리면 아예 덮어둡니다.  대신이나 협판(차관)을 장기짝 옮겨 놓듯 교체하고, 관찰사나 군수는 여관 집 드나들 듯 교체됩니다.  직제(職制)는 어제 변경시켰는데 오늘 또 고치고, 법률은 중한 쪽으로 쏠렸다가 경한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래 가지고야 조정의 명령이 어떻게 신의를 보이겠습니까?더구나 관직 제도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탁지부가 있는 이상 내장원은 왜 두며, 군부(軍部)가 있는데 원수부(元帥府)는 왜 만들었는지요?  외부(外部)가 있는데 예식원(禮式院)은 또 무엇 때문에 설치하며, 경무청이 있는데 경위원(警衛院)은 왜 또 둡니까? 법부가 있는데 군법원(軍法院)에 권한을 나눠준 것은 무엇때문입니까?  한 번은 나누었다가 한 번은 합하고, 한 번은 없앴다가 한 번은 두는 일은 모두 법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법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고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안종덕은 내장원, 원수부, 예식부 등 황제 직속 부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한다.   상소는 이어진다.    “폐하는 정사를 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하들이 어진가 어질지 못한지를 환히 꿰뚫었고, 착한 것을 좋아하고 악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이 없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사람이 벼슬길에 나오기는 어렵고 악한 사람이 승진하기는 쉬웠습니다. ‘착한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등용하지 못했고 악한 사람을 미워하면서도 내쫓지 못한 것’은 바로 춘추시대 곽(郭) 나라가 망한 까닭이니, 이것은 남이 권해서 될 일이 아니라 폐하 자신이 힘써 야 할 일입니다”여기서 “곽나라가 망한 까닭”이란  ‘관자(管子)’에 나오는 일화이다. 춘추시대의 패자 제환공(齊桓公)이 멸망한 곽 나라를 방문했다. 그는 그곳 노인에게 “곽 나라는 어찌하여 망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노인은 “군주가 선량한 사람을 좋아하고 사악한 사람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라고 답했다.  노인의 말을 의아하게 생각한 제환공이 다시 물었다.“당신의 말이 맞는다면, 그는 현명한 군주인데 어찌하여 망했단 말인가?” 노인이 대답했다. “곽나라 군주는 선량한 사람을 좋아했지만 그들을 등용하지 못했고, 사악한 사람을 싫어했지만 그들을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라가 망한 것입니다”이처럼 안종덕은 고종에게 곽나라 군주처럼 되지 말라고 간언하였다. 선량한 자를 좋아하면서 그들을 등용하지 못했고, 악한 자를 싫어하면서 그들을 내치지 못해 망국을 초래했다는 교훈은 지금도 되새길 만하다.  상소는 계속된다. “외교의 경우에는 더구나 신의가 중요합니다. 항간의 보통 사람들도 신의가 없이는 교제를 하지 못하는데 더구나 나라와 나라간에 교제를 하는 경우야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 세계가 어지러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데 우리 대한제국은 피폐하여 무력과 재력을 가지고서는 물론 겨루어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오직 지켜야 할 것은 신의뿐인데, 신의란 스스로 세우는 것입니다.돌아보건대, 우리는 삼천리 강토와 500년 왕업을 가지고 가만히 앉아 독립 자주권을 잃고 있으며, 세력을 믿고 달래며 위협하는 자들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습니다. 날마다 치욕을 당하지만 감히 막지 못하고 강요가 끊임없건만 감히 거절하지 못합니다. 이러다가는 장차 국내 정사와 대외 실무가 모두 남에게 넘어가 나라가 나라 구실을 못하게 될 것이니, 어찌 통탄스럽지 않겠습니까?이 근원을 따져 보면 신의가 서지 못한 데 있습니다. 관자(管子)가 말하기를, ‘권세 높은 사람이 재능에 관계없이 높은 벼슬을 차지하면 백성들이 본업을 저버리고 외세를 구한다’라고 하였는데, 오늘날을 놓고 보면 이 말이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진실로 폐하께서 깊이 살펴야 할 일입니다.한편 지금 나라가 가난하기 그지 없지만 탁지부의 연간 수입이 그래도 6, 7천만 민(緡)은 됩니다. 우선 내장원을 없애어 탁지부에 소속시키는 동시에 각궁(各宮)과 내수사(內需司), 훈부(勳府) 등의 저축까지 합하면 거의 수억만 민은 될 것입니다. 안에서 재물을 저축하면서 무익한 소비를 없애야 합니다. 재물이 풍부해야 군사를 강하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라의 형편이 이처럼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은 누구의 잘못 때문이겠습니까? ”안종덕은 고종이 정치를 제대로 하여 부국강병하길 간언한다.  이제 상소는 마무리 단계이다.   “논하는 사람들은 모두 대한제국에 인재가 없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나라에 인재가 없는 것이 걱정이 아니고,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한 것이 더 걱정이라고 생각합니다. 폐하께서 신의를 세우기만 하면 청렴과 근면, 공정 세 가지는 애쓰지 않아도 저절로 시행될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아름다운 말은 미덥지 못하고 미더운 말은 아름답지 않다’라고 하였으며, 또 ‘쉽게 수락하는 말에는 틀림없이 신의가 적고 자꾸 고쳐 말하면 일이 잘되기 어렵다’라고 하였습니다. 폐하는 늘 말을 곱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 말에 신의가 없고, 또 늘 쉽게 수락하였다가 번복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의가 적습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어떤 문제에 부닥치면 반드시 먼저 마음속으로 이 일이 청렴한 것인가 탐욕스러운 것인가, 근면한 것인가 게으른 것인가, 공정한 것인가 사사로운 것인가를 요량해 보고 청렴한 것이면 나아가고 탐욕스러운 것이면 물리치며, 근면한 것이면 힘쓰고 게으른 것이면 경계하며, 공정한 것이면 시행하고 사사로운 것이면 그만두면서 한결같이 신의를 굳게 지켜야 할 것입니다. 아! 자하(子夏)가 말하기를, ‘믿어 준 다음에야 간하는 법이다. 그 임금이 믿지 않으면 자기를 헐뜯는다고 생각한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하찮은 사람으로서 폐하에게 믿음을 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그저 바른 말을 해야 하는 직책에 있다는 이유로 감히 남이 하지 못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신의 허리가 작두에 잘려도 부족하고 신의 목이 도끼에 찍혀도 모자라리라는 것을 제 자신이 잘 알면서도 감히 이처럼 망령된 말을 하면서 두려움을 모르는 것은 정신병자라서 이러는 것이겠습니까?지금 나라가 위태로운 때에 폐하가 청렴과 근면, 공정과 신의로써 백성들을 안정시키는 근본으로 삼으리라 마음먹고 여러 신하들이 간하지 못한 데 대해 간언하였으니, 지금이야말로 위태로움을 안정으로 전환시켜야 할 때입니다. 그러므로 신이 숨김없이 말한 것은 정사에 만분의 일이나마 보탬이 될 것을 기대한 것이지, 자신에게 미칠 화나 복을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원컨대 폐하께서는 신의 마음을 살피시고 만일 티끌만큼이라도 비방하려는 데서 나온 것이면 당장 저를 처단함으로써 공경치 못한 신하들을 경계시키소서. 그러나 만일 충성하려는 데서 나온 것으로 자신의 안위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은 것이라면 부디 살펴보고 채택하여 시행하소서. 신의 몸이 주륙을 당하더라도 드린 말씀이 시행된다면 신은 죽어도 살아 있는 것과 같겠지만, 혹시 덮어둔 채 살피지 않고 마치 예전에 신하들이 연명으로 상소를 올렸을 때처럼 죄도 주지 않고 받아들이지도 않으신다면 신은 죽어도 여한이 남을 것이고, 또 그것은 폐하가 아랫사람을 신의로 대하는 도리도 아닐 것입니다.오로지 명철한 폐하의 재결(裁決)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신이 지내는 중추원 의관 벼슬을 속히 체직하심으로써 죽어서 고향에 묻히려는 소원을 이루어 주소서”이에 고종은 간단히 비답하였다.“말은 물론 옳다. 그렇지만 시의(時宜)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대는 사직하지 말고 직무를 살피라”고종이 언급한 시의(時宜)는 무슨 의미인가? 안종덕의 상소가 시의적절(時宜適切)하지 않다는 의미인가? 아니면 러일전쟁을 예의주시하라는 의미인가? 아무튼 고종은 안종덕의 상소가 그리 탐탁하지 않았다. 
    • 기획.연재
    2022-04-05
  • 김선호 광주교육감 예비후보 “교육계, 정치권 영향력 사라져야”
     중등 교육 전문가·교육의원·사학재단 이사장 등 경력 다채실력 광주 회복과 함께 사람다운 사람 길러내는 데 집중   전교조 출신 후보와 단일화 추진  “100% 시민 뜻에 따라” 대담=주성식 선임기자대선이 끝나자마자 지역 정치권은 6월 1일 실시되는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열기가 뜨겁다. 단체장부터 의원까지 입지자들이 넘치고 유권자들의 혼란과 염증도 심해지는 모양새다. 그에 비하면 함께 시행되는 교육감 선거는 ‘평온(?)’해 보인다. 아마 정당 공천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현 교육감이 3선 연임 제한에 따라 출마하지 못하는 광주광역시의 경우, 여러 후보들이 각축을 벌이며 내연(內燃)하는 불길은 어느 선거 못지않게 치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호남일보는 대학 총장부터 국회의원, 전교조 지부장까지 출신과 배경이 다양한 광주광역시 교육감선거 (예비) 후보들을 만나 그들의 포부와 광주교육 발전계획을 들었다. 첫 순서로 중학교 교장, 교육의원, 사학재단 관선 이사장을 지내고 현재 유권자 단체 회장 등 시민운동가로도 활동하고 있는 김선호 예비후보를 만났다.<편집자 주>-교육감 선거 출마 계기는?현 교육감의 공과(功過)를 뚜렷하게 가르기는 힘들 것이다. 그러나 광주 학생들의 학력과 광주교육청의 청렴도가 최하위권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사기가 저하된 교직원들은 자발성과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학생들까지 학교생활이 즐겁지 않다. 나는 그동안 교육 관계자로서, 광주교육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대안을 모색해왔다. 새로운 지도력을 발휘해 즐거움과 행복을 나누는 학교를 만들 수 있다고 믿어 출마를 결심했다. 광주교육,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 김선호가 해내겠다.-현 광주 교육의 문제점은 어떤 것인가?심각한 학력 저하, 전국 최하위권 청렴도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다. 편향된 인사에 대한 지적도 있다.-해법이 있는가? 추진 계획은 무엇인가?가장 먼저 교직원의 사기를 진작시킬 것이다. 교사는 제왕적 권력이 아니라 민주적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다.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한 실력 배양’은 학교(교육)의 기본이고 생명이다. 교직원들이 자발성과 자율성을 발휘하고, 학생 모두에게 평화통일의 희망을 갖고, 국가의 정체성과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는 교육을 시행할 것이다.-본인의 경쟁력은 무엇인가?가장 먼저 교육 관련 다양한 영역의 많은 경험을 들 수 있다. 나는 공·사립 중고등학교, 인문계와 전문계 고등학교, 장애인 특수학교를 두루 거쳤다. 제6대 광주광역시의회 교육의원으로서 광주시교육청 업무를 감독·파악했다.동아여자중·고등학교 관선 이사장(재임 3년)으로서 학교장 공모·교사와 행정직원 공채 등을 실시해, 광주뿐만 아니라 전국 사학에 모범이 됐다. 사회문제와 관련해서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의 공동대표로서, ‘일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아냈고, <지역교육네트워크 화월주(화정·월산·주월동)>의 대표를 6년 동안 맡았다.이런 과정에 쌓인 경험이 중요한 경쟁력이고, 크고 작은 조직을 무리 없이 운영했다는 데서 충분히 검증됐다고 생각한다. -교육은 궁극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교육은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겸손하고, 많이 배울수록 상대방을 배려하며 존중하고, 많이 가질수록 베풀면서 이웃과 함께하는 사람을 길러내는 것이어야 한다. -교육감의 핵심 자격이라면?교육감 선거마저 정치판이 된 현실이 가슴 아프고 안타깝다. 교육감은 초·중등 학교를 관장하는 만큼 그 현장 경험자가 맡아야 한다. 대학교 총장이나 교수는 초·중등 교육 현장 경험이 없지 않은가?-교육의 이념화가 심각하다는 지적이 있는데?이념(중심) 교육은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독선적 발상의 산물이다. 교육은 상대를 인정하고, 서로 소통하며 합의점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코로나19로 인해 교육 현장의 변화가 더 심해졌다. 꼭 코로나19가 아니더라도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비대면 수업이 늘어난 데 따라 수업의 양(量)과 질(質)이 달라진다. 빈부 차이가 학력에 비례하는 만큼, 취약계층 학생들에 대한 국가적 지원이 필요하다.-기타 교육 현안에 대한 견해는?탈학교 학생이 매년 전국적으로 4만 명, 광주도 1400명 정도다. 국가와 지자체가 탈학교 청소년에 대해 재학생 만큼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가 건강해지고 미래 세대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다.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과 정보통신기술(ICT, Information & Communications Technology) 관련 능력은 이제 기본 소양이 됐다. 정보기기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도록 교육해야 한다.사립학교의 건학이념은 존중하되 부정과 비리는 엄단해야 한다. 올해부터 사학도 공개 전형으로 신규교사를 선발하게 된 만큼 철저한 감독이 필요하다.대입 제도를 과감하고 획기적으로 바꿔야 한다. 수월성 교육과 학력 평준화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늘 마음에 간직하는 기준이 있다면?여럿 있는데, 그중 하나가 ‘心如江山(심여강산)’이다. 항상 마음을 강처럼 깊게, 산처럼 높게 하려고 노력했다. 아무렇게나 적당히 살지 않았고, 청렴하고 정의롭게 살려고 애썼다.김선호 후보는 부인과 함께 노모(94세)를 모시고 있다. 슬하에 2남 1녀와 손자 여섯을 뒀고, 아들·며느리·딸 등 4명이 교사인 교육 가족이다. 가족 모두 기독교인이며 김 후보는 안수집사, 부인은 권사다. 하루 1만보 걷기로 건강을 관리하며, 어릴 때부터 익힌 서예가 취미를 넘어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선호 후보는 사회활동에도 열심이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 지역교육네트워크 화월주(화정·월산·주월동) 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유권자중앙회 광주광역시총회장, 광주광역시교육청 교육발전자문위원, 광주 평화와통일을여는사람들 지도위원이다.‘정의로운 교육 전문가’를 자임하는 김선호 후보는 “내 모습 그대로 깨끗하고 바르게 선거를 치를 것”이라고 다짐한다. 특히 정치 권력에 휘둘리는 교육계의 실태를 지적하면서, 광주 시민들이 교육 문제에 관심을 갖고 해결책 마련에 동참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김선호 후보는 “광주 교육 발전을 위해 반드시 정성홍 예비후보(전교조 지부장 출신)와 단일화를 이루겠다”면서 교육은 단순한 지식 거래가 아니고 ‘교학상장(敎學相長)’의 소중한 기틀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 기획.연재
    2022-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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