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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패(腐敗)는 망국(亡國)의 길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다.        - 영국 수상 글래드 스톤 (1809∽1898) 다산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지은 지 100년도 못되어 조선은 망했다. 부패한 조정은 백성을 가렴주구 했고, 학정에 못 견딘  동 학농민들은 1894년에 봉기했다. 하지만 고종과 민왕후는 반성은 커녕 외세를 끌어 들여 진압하려 했고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조선 이 망한 것은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주된 요인이지만 내부적으로는 위정자의 부패도 한 몫 했다. 부패는 망국을 자초한다.  - 연재를 시작하면서  다산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牧民心書)』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적었다. “오늘 날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은 오직 거두어들이는 데만 급급하고 백성을 기를 줄은 모른다. 백성들은 여위고 시달리고, 시들 고 병들어 쓰러져 진구렁을 메우는데, 그들을 기른다는 자들은 화려한 옷과 맛있는 음식으로 자기만을 살찌우고 있다. 어찌 슬프 지 아니한가? (중략) 심서라 한 것은 무슨 까닭인가? 목민할 마음은 있으나 몸소 실행할 수 없기 때문에 심서라 이름한 것이다.”                               - 순조 21년(1821) 늦봄에 열수 정약용은 쓴다.1800년 6월 28일에 개혁군주 정조(1752∽1800)가 붕어하자 정약용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정약용은 남양주 생가에 내려가 서   서실 이름을 여유당(與猶堂)이라 하였다. “내가 노자(老子)의 말을 보건대, “여[與]여 ! 겨울에 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신중하게 하고, 유[猶]여 ! 사방에서 나를 엿보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라” 고 하였으니, 아, 이 두 마디 말이 내 병을 고치는 약이 아닌가.” 사진 1 여유당 (남양주시 정약용 생가) 정약용은 겨울 내를 건너듯이, 사방의 이웃이 자신을 감시하는 것처럼 매사를 조심했다.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11세로 즉위한 순조 대신 수렴청정(垂簾聽政)한 대왕대비 정순왕후는 1801년 1월10일에 사학(邪學, 천주교) 엄금을 하교하여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났다. 사실은 집권세력 노론 벽파의 남인과 시파에 대한 숙청이었다. 2월8일 새벽에 정약용은 옥에 갇히고 말았다. 그는 19일 만에 풀려나서  정약용은 경상도 장기현으로 귀양 갔다. 그런데 9월15일 에 ‘황사영 백서 사건’이 또 터졌다. 황사영은 큰 형 정약현의 사위였다. 정약용은 다시 끌려 왔다. 혐의가 없어 목숨은 건졌지 만 정약용은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1801년 11월 하순에 강진에 도착한 정약용에게 거처를 내 줄 이가 없었다. 고맙게도 읍내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토담집 방 한 칸 을 내주었다. 1802년 초봄에 정약용은 아전 자식들에게 공부를 가르쳤다. 황상, 손병조 등 네 사람이었다. 1803년(순조3) 가을에  정약용은 한 농민의 슬픈 사연을 듣고 ‘애절양 (哀絶陽)’ 시를 지었다. ‘남자의 거시기가 잘림을 슬퍼 하는 시’의 사연은 갈대밭 마을에 사는 한 백성이 낳은 남자아이가  사흘 밖에 안 되었는데 군적(軍籍)에 들어가고 아전이 못 바 친 군포(軍布)대신 소를 빼앗아갔다. 화가 난 백성은 칼을 뽑아 양경(陽莖: 성기)을 스스로 자르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것 때문에 이런 곤욕을 당한다.” 라고 하였다 . 그 아내가 피가 아직 뚝뚝 떨어진 양경을 가지고 관청에 가서 울며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다음은   ‘애절양(哀絶陽)’ 시이다. 갈밭 마을 젊은 아낙네 곡소리 길기도 해   곡소리 동헌을 향해 하늘에 울부짖네.      싸우러 나간 지아비 돌아오지못하는 것은 있었으나                               옛날부터 남자의 양기를 잘랐다는 말은 못 들었네.                                        시아버지는 상복 벗은 지 오래고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조 · 부 · 자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네.    하소연 하러 가니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관청에 지켜 섰고,                 이정(里正)은 호통 치며 소마저 끌고 갔네.    칼 갈아 들어간 방에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남편은 아이 낳은 죄를 한탄하네.             누에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억울한데   민(閩)의 거세 풍습은 참으로 비통했네.      옛날 중국 민(閩) 지방에서는 아들을 낳으면 환관을 시키려고 거세하는  풍습이 있었는데 인간으로서는 차마 못 할 일인데, 하물 며 자기의 양경을 잘라서 군정(軍政)의 폐단에 대해 항의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하늘의 도는 남자 되고 땅의 도는 여자 되지.   말이나 돼지 거세도 가엾다 말하거늘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길임에랴.        부자들은 일 년 내내 풍악 울려 즐기지만   쌀 한 톨 삼베 한 치도 내놓는 일 없네.    너나 나나 똑같은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가? 객창(客窓)에서 거듭거듭 시구편(鳲鳩篇)만 외우네. ‘시구편((鳲鳩篇)’은 『시경(詩經)』 ‘조풍(曺風)’에 나오는 시인데, 조나라 사람이 그들을 지배하는 권력자를 뻐꾸기에 빗대 어, 뽕나무에 앉은 뻐꾸기가 새끼 일곱 마리에게 골고루 먹이를 먹여 기르는 것을 칭송하고 있다.  이 얼마나 시대를 슬퍼하고 세속을 개탄하는 시인가. 민중의 아픔을 읊은 사회시(社會詩)이다.   애절양 시는 황구첨정(黃口簽丁)과 백골징포(白骨徵布) 폐해의 극치이다. 황구첨정은 젖먹이 어린애까지 군적(軍籍)에 올려 군포( 軍布)를 징수하던 횡포이고, 백골징포는 죽은 사람도 군적(軍籍)에 올린 횡포였다.   16세에서 60세까지 남자 장정에게 부과된 군정의 경우도 양반은 면제되었다. 이런 불평등속에서 백골징포와 황구첨정이 비일비재 했으니  백성들은 살 길이 없어 도망치고,  유민(流民)으로  전락했다.  정약용은 『목민심서』 ‘병전(兵典) 6조’ 제1조 첨정(簽丁 : 장정을 병적에 올리는 일)에서 군정의 폐해를 지적하였다.  “첨정하여 군포를 거두는 법은 양전(중종 때 인물)에서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  폐단이 크고 넓어서 백성들의 뼈에 사 무치는 병폐가 되었다. 이 법을 고치지 아니하면 백성은 모두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정약용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순조 임금 시대는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로 매관매직이 성행했고, 수령과 아전의 가렴주구는 극 에 달해 삼정(三政)이 더욱 문란해졌다. 부패가 풍습인 시대였다.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 국민권익위원회 청렴연수원 청렴강사)
    • 기획.연재
    2019-09-17
  • 김종식 시장 ‘독립운동가 후손’ 재조명
      낭만항구, 맛의 도시, 슬로시티, 근대역사도시 등 목포를 새롭게 브랜딩하고 있는 김종식 목포시장의 독립운동가 집안 내력이 알려져 새삼 관심을 받고 있다.김종식 시장은 “나라를 위한 희생과 헌신에 조부님과 부모님 그리고 형제 친척들이 앞장서 왔다”고 말했다.실제로 김 시장의 조부 김경태 씨는 전국 3대 독립운동 성지인 완도군 소안도에서 독립운동가로 활약 해 항일운동 30인중 한명으로 기록되고 있으며 부친 김복도 씨는 농사를 지으며 반자유당 조직에 비밀 자금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김 시장의 형 김삼웅씨는 유신독재 반대운동에 앞장섰던 인물로 안기부에 연행되어 모진 고문을 당하기도 했었다. 또, 친일인명사전제작 부위원장과 친일반민족행위진상조사위원을 지냈고, 독립기념관 관장을 역임(2004년 9월~2008년 3월)했다.김 시장의 5째 형 김종화씨도 전교조 광주 부지부장을 역임하며 교권민주화를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김종식 시장 본인은 대학시절 유신정권에 맞서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었고, 전남도청에 재직할 때는 공무원 노동조합 설립의 필요성을 적극 역설하며 전남도청 공무원 노동조합의 출범을 적극 주장하기도 했다.
    • 기획.연재
    2019-08-05
  • “1천만 관광객 찾는 서남권 관광거점도시로 육성”
     9월 6일 해상케이블카 개통... 관광인프라 확충 기대 8월 8일 첫번째 ‘섬의 날’ 행사 통해 섬의 가치 제고‘목포(愛)가을(藝)페스티벌(樂)’ 문화예술 역량 특화   목포의 새로운 관광랜드마크가 될 해상케이블카가 오는 9월 6일 개통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고하도 해안힐링랜드와 목화정원, 스카이워크 등과 연계한 관광인프라 확충이 기대된다. 목포시는 자주적 근대도시의 역사성뿐만 아니라 남도 맛의 본거지, 고유한 전통과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섬의 매력 등을 부각시켜 이전과는 다른 목포만의 새로운 슬로시티 모델을 만들어 나간다는 청사진을 내놓고 있다.맛의 도시 목포 완성을 위해 지역 모든 식당을 으뜸맛집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유도해 음식특화거리 조성, 경영 컨설팅, 식도락 관광상품 개발, 음식문화개선사업 등을 통해 맛의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또 오는 8일 삼학도에서 열리는 첫 번째 ‘섬의 날’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 목포 지역 섬의 가치를 더욱 높인다는 복안이다. 외달도와 달리도를 전 세계 하나뿐인 바다자연정원으로 조성하고 아름다운 자연과 예술작품 속에서 휴식을 누릴 수 있는 섬 예술랜드를 만든다는 야심찬 구상도 추진하고 있다.장좌도에 대규모 복합형 리조트 투자협약을 체결하는 한편 삼학도 어린이 복합테마공간, 해양레포츠 체험공간, 사계절 꽃피는 공간, 갓바위 문화타운 및 근대역사문화공간과 연계성 강화를 구체화하고 있다. 이밖에도 ‘목포(愛)가을(藝)페스티벌(樂)’을 개최하는 등 예향 목포의 수준높은 문화예술 역량을 특화상품화,  올 가을부터 9월과 10월에는 주말마다 다채로운 문화예술축제 행사로 관광객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다.민선 7기 들어 목포시의 제2 도약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고 있는 김종식 시장을 만나 1000만 관광객 달성을 통한 서남권 관광거점도시로의 비전을 들었다.(편집자 주)   ■얼마 전 해상케이블카를 9월 6일 개통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차질없이 준비되고 있는지요?=총 연장 3.23km(해상 0.82, 육상 2.41)로 국내 최장, 왕복 40분 노선으로 현재 공정률은 98%, 승강장 및 주차장은 완료됐으며 메인로프 설치와 종합시운전 절차만 남아있습니다.8월초 외국기술진 책임시공하에 메인로프 설치가 완료되는 데로 시운전을 거쳐 개통하려고 합니다.지난 번 100% 안전보장을 위해 개통을 연기했듯이 무엇보다도 안전에 가장 큰 신경을 쏟고 있는 만큼 설치 및 운영에 만전을 기할 것입니다.해상을 건너는 메인 타워 높이가 155m로 여느 케이블카에서 느끼지 못하는 스릴감을 선사하여 전남 서남권 대표 관광랜드마크가 될 것으로 보여 연간 130만 명 이상 방문, 1000억 원 가량의 경제효과가 예상됩니다. ■국제슬로시티 가입도 중요한 성과인데요?=우리시는 특정 지역, 특정 컨텐츠가 아닌 목포시 전체가 슬로시티로 지정돼 국내 16번째, 세계적으로는 253번째 국제슬로시티로 인정받았습니다.근대역사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원도심,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주민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외달도·달리도 등 목포가 보유한 우수한 자원과 가치, 정책, 더불어 살아가는 주민공동체 등이 호평 받았습니다. ‘슬로시티 목포’라는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게 됨에 따라 목포 도시 브랜드 가치와 위상이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이에 따라 각종 마케팅과 홍보활동에 사용, 관광객 증가 및 지역경제 활성화와 주민 생활여건 개선 효과가 기대됩니다. 자주적 근대도시 역사성, 예향, 남도 맛의 본거지,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있는 섬의 매력과 강점 등을 부각시켜 다른 곳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가장 한국적인 목포만의 새로운 슬로시티를 조성코자 합니다.특히 외달도와 달리도 바다는 대한민국 최고의 바다자연정원으로 조성하고, 원도심은 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조성해 연계한다는 방침입니다. ■맛의 도시 선언 이후 향후 계획은?=작년부터 목포가 남도를 대표하는 ‘맛의도시’ 브랜드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면서 그 일환으로 서울에서 ‘맛의 도시 선포식’을 진행했습니다.‘맛의도시’ 이미지에 걸맞은 음식관광 명소 조성 및 서비스 개선을 통해 관광객의 재방문률 제고를 꾀하는 한편 자연 발생적으로 먹거리촌이 형성된 곳을 중심으로 음식특화거리   환경 조성(포토존이 되는 조형물, 관광 편의 시설 조성), 외식업소 경영 개선 컨설팅, 으뜸맛집 지속 발굴 및 관리 등 통해 접객 서비스 향상을 유도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외식업소와 청년의 참여를 통해 다양한 고객층을 고려한 메뉴 개발 및 보급화에 노력하고 근대역사문화 및 다양한 관광지, 문화·예술 행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음식과 함께하는 여행으로 상품화하여 음식관광 활성화로 지역 경제에 기여하겠습니다.향후 세계적인 맛의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성장시켜 내고자 합니다. ■목포시가 올 하반기에 큰 행사들을 많이 유치한 것으로 압니다. 관광활성화의 마중물이 될 만한 사업들인데 어떤 행사들이 열리는지요?=우선 8월 8일 개최되는 ‘제1회 섬의 날’ 기념행사를 다도해의 관문인 목포에서 개최, 8월 10일까지 3일간에 걸쳐 삼학도 일원에서 흥겨운 축제의 장 펼쳐집니다.‘만남이 있는 섬, 미래를 여는 섬’을 주제로, 온 국민이 다 같이 즐기는 축제 형태로 구성해서 행사 이름도 ‘제 1회 섬의 날 기념, 대한민국 썸 페스티벌’로 정했습니다.무엇보다 여름 휴가철과 방학이 겹치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2019년 전라남도혁신박람회를 유치, 9월 6일부터 8일까지 근대역사문화공간 일대 빈집과 빈상가를 홍보부스로 활용하는 혁신적인 박람회로 개최합니다.박람회 이후 빈집을 청년창업, 주민책방 등 지역주민에게는 활기를 주고, 관광객들에게는 또다른 볼거리와 휴식처가 되는 공간으로 만들어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기회가 되도록 잘 활용할 계획입니다.또 3일부터 11일까지 ‘2019 동아시아축구연맹 15세 이하 여자 축구대회’가 목포국제축구센터에서 열리고 있으며 8월 10~11일  국제파워보트대회가 평화광장 일원에서 열립니다.아울러 문화재 야행, 세계마당페스티벌, 항구축제, 버스킹 공연 등 가을철에 열리는 문화예술축제를 통합 브랜드화해 매주 주말에는 목포가 들썩들썩하고, 관광객들이 즐거움을 만끽할 것으로 기대됩니다. ■9월부터 10월까지 문화예술축제를 통합 브랜드화해 개최한다고 하셨는데=목포는 전국 최초로 예향이라는 명칭을 쓴 도시답게 문화예술 역량도 뛰어나고, 다채로운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고 있으나 개별적으로 진행되다보니, 마케팅에도 한계가 있고, 짜임새가 부족해 가지고 있는 역량이나 수준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그동안 개별적으로 개최되어 온 목포항구축제, 문화재 야행, 세계마당페스티벌 등 목포의 대표적인 문화예술축제뿐만 아니라 산발적으로 개최되던 각종 공연, 마을단위 축제를 하나의 브랜드로 통합해 홍보마케팅을 펼치고, 상호 연계성을 강화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기로 했습니다. 지난 6월부터 전 국민 대상 공모를 통해 최종적으로 ‘목포(愛)가을(藝)페스티벌(樂)’로 선정된 통합명칭의 의미는 ‘가을에는(愛) 낭만항구 목포에서 문화예술(藝) 축제(Festival)를 즐기자(樂)’로, 한·중·미 3개 국어 사용으로 국제적 문화도시로 발돋움하고자 하는 포부를 내포하고 있습니다.‘가을 여행은 낭만항구 목포로’라는 슬로건 아래 8주간 매주 금, 토, 일요일에 걸쳐 다채롭고 흥겨운 무대가 펼쳐질 예정입니다.8월 30일 제9회 목포세계마당페스티벌을 시작으로, 2019 왕년의 목포축제(9.6.~9.8.), 목포문화재야행(9.20.~9.22.), 전국통키타페스티벌(9.27.~9.29.)이 이어지고, 올 가을 낭만항구 목포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2019 목포항구축제(10.3.~10.6.), 생활문화동호인한마당(10.11.~10.13.), 서산동 연희네슈퍼 일원에서 열리는 골목이 춤춘다(10.18.~10.20.), 북항노을축제(10.25.~10.27.) 등  낭만항구 목포는 가을 내내 풍성한 볼거리로 관광객을 맞습니다.가을 문화예술축제 상호 간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고, 목포의 가을 이미지를 더 높여 가을여행은 낭만항구 목포로 올 수 있도록 만들어 해상케이블카와 함께 연계해 상당한 시너지 효과가 기대됩니다. ■목포가 최근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뜨고 있습니다.  =금년 들어 ‘롱 리브 더 킹’과 같은 영화뿐 아니라 각종 교양프로그램, 인기 드라마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목포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KBS 6시 내고향, tvN 호텔델루나, MBC 신입사관 구해령)   7월중에도 케이블채널에서 인기 있는 여러 프로그램을 목포에서 촬영했습니다. (tvN 유재석의 유퀴즈 온더 블럭, TV조선 허영만의 백반기행, SBS 이승기의 집사부일체 등)올해 초 미디어마케팅팀을 신설, 전략적이고 체계적인 마케팅을 집중 전개한 결과로  보입니다.최근 문체부 한류 관광지 활성화 공모사업에도 선정돼 하반기 중 1억원의 예산으로 촬영지를 활용한 관광지 홍보 등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앞으로 촬영지를 활용한 다양한 관광상품 개발, 미디어마케팅 접목 등 전방위적인 홍보 전략을 통해 도시 이미지를 매력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고 더 많이 알려서 목포를 서남권관광거점 도시로 만들고자 합니다. ■관광객 유치 위한 대형 숙박시설 대책은?=현재 목포에는 관광호텔 5개소와 가족관광호텔 2개소 등 약 350여개의 숙박시설이 있으나 일반 모텔이 다수여서 가족단위나 학생 등 단체 관광객이 투숙하기에는 시설이 많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200객실 이상 규모의 리조트 유치를 위해 다양한 경로를 통해 관련 업체들과 협의 중이며 지난달 25일 (주)여수예술랜드가 장좌도 일원(292,748㎡)에 1500억원을 투자, 370 객실 및 워터파크, 스카이바이크, 조각공원 등 각종 부대시설을 갖춘 대형 복합형 리조트 조성을 내용으로 하는 투자협약을 체결했습니다.앞으로 케이블카가 개통되고 관광객들의 방문이 이어지면 수요 및 공급의 원칙에 따라 자연스럽게 더 많은 투자가 활발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더불어 기존 시설을 개선해 관광 숙박업소로 전환, Happy Family 지정 및 숙박업소 간판정비(모텔→호텔)  등 관광객 숙박시설 확대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도시재생사업과 문화재도시재생 사업은?=도시재생 뉴딜사업은 2017년 12월 선정된 ‘1897 개항문화거리’ 및 ‘서산동 보리마당’ 2개의 사업이 추진 중입니다. 목포근대역사문화공간 조성사업은 당초 계획대로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으며 2018년 8월 원도심 일대는 전국 최초 공간단위 문화재로 등록돼 올해부터 2023년(5개년)까지 500억의 사업비가 투입되어 문화재의 진정성을 회복하고 이를 활용한 시범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원도심은 목포만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간직한 보물창고로 도시전체가 지붕없는 박물관인 만큼 재생사업을 통해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고 도시균형발전, 관광자원화, 주민 삶의질을 개선하겠습니다. ■ ‘제1회 섬의 날’ 행사 개최 준비는? =‘만남이 있는 섬, 미래를 여는 섬’을 주제로, 온 국민이 다 같이 즐기는 축제 형태로 구성해서 행사 이름도 ‘제 1회 섬의 날 기념, 대한민국 썸 페스티벌’로 정했습니다. 기념식에는 정부 주요인사, 국회의원 등 1500여 명이 참석하고 축하 이벤트도 선보일 예정이며, 전국 섬 홍보부스(60여개)도 운영하고, 섬 민속경연, 섬 특산품 판매, 섬 문화 체험, 어린이 해양직업체험이나 케이팝콘서트, 멀티미디어 불꽃쇼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입니다.행사장 정비와 각종 안전 시설물 설치, 교통·의료대책 등을 안전하고 성공적인 축제가 되도록 지원하기 위해 부서별 지원업무를 세분해 자체적인 세부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무엇보다 여름 휴가철과 방학이 겹치면서 전국에서 많은 관람객이 찾아올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하고 있습니다.‘섬의 날’ 제정은 그동안 낙후와 소외의 대명사처럼 취급됐던 섬의 미래성장 동력으로서의 가치를 인식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하겠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이에 따라 섬의 날 기념행사는 섬의 가능성과 중요성 공유 및 인식 제고, 섬은 더이상 고립과 단절의 대명사가 아닌 가능성과 발전의 대상이 될 것임을 천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 기획.연재
    2019-08-05
  • 수은 강항, 일본에 성리학을 가르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끌려가 조선 성리학 전파오는 6월19일 교토 료코쿠대서 국제학술세미나 한국 강항기념사업회, 6월21일까지 현지 방문 2019년 6월 19일 일본 교토 용곡(료코쿠)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린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9월 1일 방영한 MBC TV 드라마 ‘간양록’과 KBS에서 2002년 3월 6일 방영했던 KBS 역사스페셜-‘임란 포로체험기 간양록, 선비 강항은 일본에 무엇을 남겼나’로 수은 강항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붙잡혀가 참혹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왜국에 유교를 전파한 업적에 비해 궁색하나마 그렇게 조금씩 알려져 왔다.올해 2019년은 탄신 453주년을 맞이해 일본 에이메현 오즈시 수은강항선생일본연구회(회장 무라까미 쓰네오)에서는 선생의 위령제(慰靈祭)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우리나라에서는 영광내산서원보존회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비교적 활발히 강항문화제와 연계해 활발하게 일본 에이메현 오즈시와 교류 등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양국의 시군 교류까지 중단되고 말았다. 2001년 3월 6일 2박3일에 걸쳐 영광 향토사 관계자와 강항 선생 연구자 등 16명이 일본 성리학 전파 유적지 답사기행을 다녀왔으며, 2002년 9월 1일 영광 JC와 오즈JC가 일본의 에이메현 오즈시에서 회무교류를 가졌다. 이와 관련한 성과로 같은해 문화관광부 선정 3월의 인물 <수은 강항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들이 영광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 왔다.또 수은 강항의 ‘간양록’(출판 서해문집 2005.02.28.)을 현암 이을호 선생이 집필했다. 현암의 다산 정약용 연구를 비롯한 실학사상의 연구업적은 지금도 학계에서 독보적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강항을 수면위로 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이같은 다방면에 걸친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최근 한일 양국에서 강항 선생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 일본 에이메현에서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국어 교사 강용희(진주강씨 은열공 후손) 선생이 ‘Peace Love in 에이메’회원 자격으로 2018년 6월 무라카미 쓰네오 수은강항선생 일본회장을 찾아가 수은 강항 선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처음 알고 “그동안 2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알게 모르게 숨죽이고 살아온 나날을 이제는 훌훌 털고 대유(大儒)이며 지성(至聖)인 강항 선생의 위령제를 오는 6월 8일(강항 탄신일 음력 1567년 5월 17일)에 준비 중”이라고 전해왔다.강용희씨는 진실된 역사를 알고 1597년 최악의 포로 신분인 수은 강항으로부터 유교를 배운 일본인들에게 이제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본 내에서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살아가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노라며 매우 감격해 하고 있다.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석무)도 일본 성리학의 비조로 추앙받고 있는 수은 강항 선생의 업적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일본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6월 18일부터 6월 21일까지 방일 기간중 국제학술세미나를 비롯 강항기념관 건립에 대한 유물 확보 차원에서 ‘일본 국립 공문서관 내각문고 및 교토 류코큐(용곡)대학교  및 도쿄박물관’을 방문한다. 이에 앞서 수은 강항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수은 강항은 세조 때 명신 사숙재 강희맹(1424∼1483)의 5대손으로 1567년(명종 22년)에 영광군 불갑면 유봉마을에서 강극검의 5남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강항 집안은 고조부인 강학손(1455∼1523, 강희맹의 차남)이 영광군으로 귀양와 정착하였다.    강항(姜沆)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였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서 글을 읽으면 곧 바로 외워 주변으로부터 신동(神童)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네 살 때 맏형인 저어당(齟齬堂) 해(瀣)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뛰어나게 잘해 소문이 널리 났다.  해(瀣)의 호는 저어당(齟齬堂)으로 율곡 이이의 문하(門下)에서 폭넓은 교류를 통해 학문을 쌓다가 신묘년(선조 24년, 1591년) 신묘사화(辛卯士禍)에 연좌되어 변고(變故)를 당하였다.(선조실록 1591년 8월 13일) 강항은 이미 다섯 살에 벌써 글을 지을 줄 알았다.당시 전라감사 신응시(辛應時)가 이 소문을 듣고 각(脚)자로 명제를 주니, 곧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다리가 만 리를 가지만 그것은 마음이 다리를 시킨 것)이라 지어 신응시 전라감사를 놀라게 하였다.강항이 일곱 살 때에 중국고서를 판매하는 책장수가 불갑면 안맹마을을 지나가면서 어린 소년이 맹자(孟子)책을 읽어보기 위해 다가오자 맹랑하게 느껴 놀려줄 심산으로 이 책을 읽어보게 하고 맹자 1질에 대한 내기를 걸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나절 동안 그 책장수와 강항은 맹자책을 앞에 놓고 씨름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결국 강항(姜沆)이 안맹마을에서 한나절 사이에 이것을 모두 암송(暗誦)하고 ‘이 책은 이미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으니 사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유봉마을로 가버렸다. 그 책장수는 놀랍고 기특하여 그 책을 소년에게 선물로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음으로 마을 어귀의 당산 나무에 매 달아 놓고 갔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후에 이 자리에 맹자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강항(姜沆)의 천재성을 기려왔다. 지금도 그 자리(안맹마을) 부근에 맹자(孟子)정 비가 서있다.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6월에 강항은 이굉중 · 이용중 · 송약선 등과 함께 창의하여 양곡과 군기를 고경명 의병에 보냈다. 10월에는 영광군수 남궁현이 친상으로 사직하여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응종 등 영광 선비 55명은 자발적으로 영광군 향토방위에 나섰는데 강항도 집안 친척 강태, 강락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영광군 영광읍 임진수성사에는 이들 55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1593년 12월27일 세자 광해군(광해군은 분조 역할을 함)은 전주에서 과거를 실시하여 문신 11명, 무신 1600 명을 뽑았다. 이 때 강항은 병과(丙科) 5번째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나이 27세였다.강항은 박사·전적을 거쳐, 1596년 가을에 공조좌랑, 겨울에는 형조좌랑이 되었고, 1597년 2월에는 영광에서 휴가 중이었다. 그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5월말에 강항은 호조참판 이광정의 보좌역으로 남원성 군량미 운반을 담당했으나 남원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항은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 의병 수백명을 모집했지만 왜군이 전라도를 침탈하자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9월 14일에 왜적들이 영광군을 온통 불태우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자, 강항은 둘째 형 준(濬), 셋째 형 환(渙) 등과 함께 배를 타고 피신했다. 20일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싸우기로 하였는데, 뱃사공이 21일 밤에 신안 어의도로 뱃머리를 돌려 부친이 탄 배와 헤어지고 말았다. 23일 아침에 강항 일행은 부친을 찾아 영광군 염산면 논잠포로 향했다. 그런데 왜군 수군이 나타나 강항 일가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강항(姜沆)과 두 형을 비롯한 가족을 포로로 잡은 왜 수군은 부산 근처의 안골포(安骨浦)를 거쳐 대마도로, 그곳에서 일본 침략군의 출발 기지인 큐슈(九州) 서북단의 나고야(名古屋) 시모노세키(下關)를 거쳐 큐슈 동북쪽에 가로누운 시코쿠의 나가하마(長浜) 항에 닿았는데 그때가 음력 10월 15일이었다. 나가하마에서 오쓰(大津)에 닿기까지의 15km는 그야말로 죽음의 행로였다. 선상(船上)에서 아흐레를 굶어도 죽지 아니하고 그 쇠잔한 몸으로 나가하마에서 오쓰에 이르기까지 열 발자국에 아홉 번을 쓰러졌다니 생지옥을 거쳐 도깨비굴에 닿은 것이다.오쓰는 강항 일가족을 붙들어온 왜의 장수 도도 다카토라의 영지(領地)다. 오쓰 거리는 강항 가족과 전후하여 붙들려온 1000여 명의 조선족이 즐비했고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니 씻을 수 없는 왜놈들의 죄업(罪業)이 눈앞에서 보듯이 ‘간양록’에 적혀있다.강항은 오쓰 억류 생활 9개월에 두 번의 도주를 감행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오쓰의 영주인 도도 다카토라는 강항 일가족을 오쓰에서 오사카(大阪)로 옮겨가고, 그곳에서 또 후시미(伏見)로 데려갔다. 후시미는 당시 일본의 서울이다. 이곳에서 2년 남짓, 큰 선비 강항(姜沆)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곳에서 일본 성리학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되는 학승(學僧) 후지하라 세이카(藤原惺窩)를 만났기 때문이다. 후지하라 세이카를 일본 성리학의 개조(開祖)로 평가하지만 알고 보면 세이카의 스승이 강항(姜沆)이다. 우리나라 인명대사전(韓國人名大辭典)에는 강항을 일본 성리학의 시조(始祖)로 적어놓고 있다. 개조나 시조는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강항(姜沆)과 세이카와의 관계는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일본의 성리학을 근대학문으로 구축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오쓰에 ‘홍유강항현창비’가 세워진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후지하라 세이카에게 주자학(朱子學)의 깊은 학리(學理)를 가르쳐준 스승이 강항(姜沆)이며 또 그의 의뢰로 강항(姜沆)과 두 형 그리고 학자 10여 명이 참여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 대자본(大字本)을 정서(淨書)하고 수진본(袖珍本: 옷소매에 넣을 수 있는 소책자)으로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사서(四書)와 역경, 서경, 시경, 예기, 춘추, 곡례전경(曲禮全經)의 오경(五經)과 소학과 근사록(近思錄), 근사속록, 통서, 정몽(正蒙) 등을 필사(筆寫)했다. 수진본 16종은 현재 일본 왕궁의 국립공문서 관내 내각문고(內閣文庫)에 보전되어 있으며 강항(姜沆)의 서명이 뚜렷이 남아있다.일본에서 근래(1991년, 2007년)에 ‘일본에 유교를 전한 조선인’이라는 주제로 2권의 저서가 간행된 까닭은, 강항(姜沆) 이전에 이미 유교가 전해졌다 하더라도 원문(한문)을 해독하는 극히 한정된 몇 사람의 안중(眼中)에 머물러 있던 유교와 성리학을 강항의 도움으로 후지하라 세이카가 사서오경왜훈본(四書五經倭訓本 : 사서오경을 일본음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든 책)과 주자신주(朱子新注)의 훈점본(訓點本 : 새겨서 읽을 수 있도록 한 책)을 완성함으로써 유교와 성리학 접근을 쉽게 하고 그 문호를 넓혔으니 일본 근대화에 미친 강항(姜沆)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후지하라 세이카는 중국과 조선을 숭모(崇慕)하여 도항(渡航: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넘)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독학(獨學)으로 어렵게 배움의 길을 걷던 참에 조선 사람 유학자 강항(姜沆)을 만남으로써 우리 글로 새겨 읽을 수 있는 왜훈본(倭訓本) 간행이라는 대사업을 완성했으니 두 사람을 개조와 시조라는 동의어(同義語)로 엮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로 시대가 근대(近代)로 내려오면서 일본의 마을과 고을마다 배움의 집인 데라고야(寺子屋: 우리나라의 서당에 해당)가 서고 근대교육에 대한 열망이 불길처럼 일어남으로써 일본의 근대화가 촉진되었으니 일본 땅에 사상과 학문의 씨앗을 뿌린 강항(姜沆)의 이름이 ‘홍유현창비’로 섰음은 당연하다.단지 강항(姜沆)이 써 남긴 ‘간양록’이 사무치는 원한으로 격렬하게 일본을 매도했으므로 일본인이 읽고 질겁을 할 정도라 일본이 조선 강점 이후로 ‘간양록’을 보이는 대로 거두어서 불에 태워 없앴으니 강항(姜沆)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힌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본은 거의 씨가 말랐으므로 지식인 중에서도 강항을 깊이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랬던 것이 강항의 이름을 일본 전국에 알게 한 결정적인 사단(事端)은 1989년 2월 23일 일본의 NHK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45분짜리 「유자(儒者) 강항과 일본」이라는 프로다. 한국 취재까지 한 이 프로는 일본 전국에 큰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 전인 1980년 9월 1일자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문화면에 「한·일을 이은 유자(儒者) 강항(姜沆)의 유적을 찾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강항(姜沆)재조명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전해 온다. (계속)  /글= 강대의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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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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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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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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