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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은 강항, 일본에 성리학을 가르치다
    1597년 정유재란 때 끌려가 조선 성리학 전파오는 6월19일 교토 료코쿠대서 국제학술세미나 한국 강항기념사업회, 6월21일까지 현지 방문 2019년 6월 19일 일본 교토 용곡(료코쿠)대학교 세미나실에서 수은강항선생 국제학술세미나가 열린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는 1980년 9월 1일 방영한 MBC TV 드라마 ‘간양록’과 KBS에서 2002년 3월 6일 방영했던 KBS 역사스페셜-‘임란 포로체험기 간양록, 선비 강항은 일본에 무엇을 남겼나’로 수은 강항이 1597년 정유재란 당시 포로로 붙잡혀가 참혹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왜국에 유교를 전파한 업적에 비해 궁색하나마 그렇게 조금씩 알려져 왔다.올해 2019년은 탄신 453주년을 맞이해 일본 에이메현 오즈시 수은강항선생일본연구회(회장 무라까미 쓰네오)에서는 선생의 위령제(慰靈祭)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접했다.우리나라에서는 영광내산서원보존회 중심으로 2000년대 초반 비교적 활발히 강항문화제와 연계해 활발하게 일본 에이메현 오즈시와 교류 등으로 진행되다가 갑자기 양국의 시군 교류까지 중단되고 말았다. 2001년 3월 6일 2박3일에 걸쳐 영광 향토사 관계자와 강항 선생 연구자 등 16명이 일본 성리학 전파 유적지 답사기행을 다녀왔으며, 2002년 9월 1일 영광 JC와 오즈JC가 일본의 에이메현 오즈시에서 회무교류를 가졌다. 이와 관련한 성과로 같은해 문화관광부 선정 3월의 인물 <수은 강항 선생>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기념사업들이 영광에서 비중 있게 다뤄져 왔다.또 수은 강항의 ‘간양록’(출판 서해문집 2005.02.28.)을 현암 이을호 선생이 집필했다. 현암의 다산 정약용 연구를 비롯한 실학사상의 연구업적은 지금도 학계에서 독보적 업적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강항을 수면위로 올리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이같은 다방면에 걸친 노력과 성과에 힘입어 최근 한일 양국에서 강항 선생에 대한 적극적인 평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실제 일본 에이메현에서 20년째 거주하고 있는 한국어 교사 강용희(진주강씨 은열공 후손) 선생이 ‘Peace Love in 에이메’회원 자격으로 2018년 6월 무라카미 쓰네오 수은강항선생 일본회장을 찾아가 수은 강항 선생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처음 알고 “그동안 20여 년 동안 일본에서 알게 모르게 숨죽이고 살아온 나날을 이제는 훌훌 털고 대유(大儒)이며 지성(至聖)인 강항 선생의 위령제를 오는 6월 8일(강항 탄신일 음력 1567년 5월 17일)에 준비 중”이라고 전해왔다.강용희씨는 진실된 역사를 알고 1597년 최악의 포로 신분인 수은 강항으로부터 유교를 배운 일본인들에게 이제는 자부심과 긍지를 갖고 일본 내에서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게 살아가게 된 계기가 마련되었노라며 매우 감격해 하고 있다.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회장 박석무)도 일본 성리학의 비조로 추앙받고 있는 수은 강항 선생의 업적 선양사업의 일환으로 일본 국제학술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고 있다. 기념사업회는 6월 18일부터 6월 21일까지 방일 기간중 국제학술세미나를 비롯 강항기념관 건립에 대한 유물 확보 차원에서 ‘일본 국립 공문서관 내각문고 및 교토 류코큐(용곡)대학교  및 도쿄박물관’을 방문한다. 이에 앞서 수은 강항 선생의 생애와 업적을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수은 강항은 세조 때 명신 사숙재 강희맹(1424∼1483)의 5대손으로 1567년(명종 22년)에 영광군 불갑면 유봉마을에서 강극검의 5남중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강항 집안은 고조부인 강학손(1455∼1523, 강희맹의 차남)이 영광군으로 귀양와 정착하였다.    강항(姜沆)은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였다. 특히 기억력이 뛰어나서 글을 읽으면 곧 바로 외워 주변으로부터 신동(神童)이라 소문이 자자했다. 네 살 때 맏형인 저어당(齟齬堂) 해(瀣)에게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뛰어나게 잘해 소문이 널리 났다.  해(瀣)의 호는 저어당(齟齬堂)으로 율곡 이이의 문하(門下)에서 폭넓은 교류를 통해 학문을 쌓다가 신묘년(선조 24년, 1591년) 신묘사화(辛卯士禍)에 연좌되어 변고(變故)를 당하였다.(선조실록 1591년 8월 13일) 강항은 이미 다섯 살에 벌써 글을 지을 줄 알았다.당시 전라감사 신응시(辛應時)가 이 소문을 듣고 각(脚)자로 명제를 주니, 곧 각도만리심교각(脚到萬里心敎脚;다리가 만 리를 가지만 그것은 마음이 다리를 시킨 것)이라 지어 신응시 전라감사를 놀라게 하였다.강항이 일곱 살 때에 중국고서를 판매하는 책장수가 불갑면 안맹마을을 지나가면서 어린 소년이 맹자(孟子)책을 읽어보기 위해 다가오자 맹랑하게 느껴 놀려줄 심산으로 이 책을 읽어보게 하고 맹자 1질에 대한 내기를 걸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한나절 동안 그 책장수와 강항은 맹자책을 앞에 놓고 씨름을 벌인 일화로 유명하다.  결국 강항(姜沆)이 안맹마을에서 한나절 사이에 이것을 모두 암송(暗誦)하고 ‘이 책은 이미 내 머릿속에 다 들어 있으니 사지 않겠다’고 말하고는 유봉마을로 가버렸다. 그 책장수는 놀랍고 기특하여 그 책을 소년에게 선물로주려 하였으나 받지 않음으로 마을 어귀의 당산 나무에 매 달아 놓고 갔다고 전해 내려오고 있다. 후에 이 자리에 맹자정이라는 정자를 지어 강항(姜沆)의 천재성을 기려왔다. 지금도 그 자리(안맹마을) 부근에 맹자(孟子)정 비가 서있다. 1592년 4월에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6월에 강항은 이굉중 · 이용중 · 송약선 등과 함께 창의하여 양곡과 군기를 고경명 의병에 보냈다. 10월에는 영광군수 남궁현이 친상으로 사직하여 민심이 흉흉하였다. 이응종 등 영광 선비 55명은 자발적으로 영광군 향토방위에 나섰는데 강항도 집안 친척 강태, 강락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영광군 영광읍 임진수성사에는 이들 55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1593년 12월27일 세자 광해군(광해군은 분조 역할을 함)은 전주에서 과거를 실시하여 문신 11명, 무신 1600 명을 뽑았다. 이 때 강항은 병과(丙科) 5번째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의 나이 27세였다.강항은 박사·전적을 거쳐, 1596년 가을에 공조좌랑, 겨울에는 형조좌랑이 되었고, 1597년 2월에는 영광에서 휴가 중이었다. 그해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5월말에 강항은 호조참판 이광정의 보좌역으로 남원성 군량미 운반을 담당했으나 남원성이 왜군에게 함락되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항은 여러 읍에 격문을 보내 의병 수백명을 모집했지만 왜군이 전라도를 침탈하자 모두  흩어지고 말았다.9월 14일에 왜적들이 영광군을 온통 불태우고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자, 강항은 둘째 형 준(濬), 셋째 형 환(渙) 등과 함께 배를 타고 피신했다. 20일에는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싸우기로 하였는데, 뱃사공이 21일 밤에 신안 어의도로 뱃머리를 돌려 부친이 탄 배와 헤어지고 말았다. 23일 아침에 강항 일행은 부친을 찾아 영광군 염산면 논잠포로 향했다. 그런데 왜군 수군이 나타나 강항 일가는 포로가 되고 말았다. 강항(姜沆)과 두 형을 비롯한 가족을 포로로 잡은 왜 수군은 부산 근처의 안골포(安骨浦)를 거쳐 대마도로, 그곳에서 일본 침략군의 출발 기지인 큐슈(九州) 서북단의 나고야(名古屋) 시모노세키(下關)를 거쳐 큐슈 동북쪽에 가로누운 시코쿠의 나가하마(長浜) 항에 닿았는데 그때가 음력 10월 15일이었다. 나가하마에서 오쓰(大津)에 닿기까지의 15km는 그야말로 죽음의 행로였다. 선상(船上)에서 아흐레를 굶어도 죽지 아니하고 그 쇠잔한 몸으로 나가하마에서 오쓰에 이르기까지 열 발자국에 아홉 번을 쓰러졌다니 생지옥을 거쳐 도깨비굴에 닿은 것이다.오쓰는 강항 일가족을 붙들어온 왜의 장수 도도 다카토라의 영지(領地)다. 오쓰 거리는 강항 가족과 전후하여 붙들려온 1000여 명의 조선족이 즐비했고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늘에 닿았다니 씻을 수 없는 왜놈들의 죄업(罪業)이 눈앞에서 보듯이 ‘간양록’에 적혀있다.강항은 오쓰 억류 생활 9개월에 두 번의 도주를 감행하나 번번이 실패한다. 오쓰의 영주인 도도 다카토라는 강항 일가족을 오쓰에서 오사카(大阪)로 옮겨가고, 그곳에서 또 후시미(伏見)로 데려갔다. 후시미는 당시 일본의 서울이다. 이곳에서 2년 남짓, 큰 선비 강항(姜沆)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그곳에서 일본 성리학의 기틀을 닦은 것으로 평가되는 학승(學僧) 후지하라 세이카(藤原惺窩)를 만났기 때문이다. 후지하라 세이카를 일본 성리학의 개조(開祖)로 평가하지만 알고 보면 세이카의 스승이 강항(姜沆)이다. 우리나라 인명대사전(韓國人名大辭典)에는 강항을 일본 성리학의 시조(始祖)로 적어놓고 있다. 개조나 시조는 같은 말이다. 그렇다면 강항(姜沆)과 세이카와의 관계는 이인삼각(二人三脚)으로 일본의 성리학을 근대학문으로 구축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래서 오쓰에 ‘홍유강항현창비’가 세워진 까닭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후지하라 세이카에게 주자학(朱子學)의 깊은 학리(學理)를 가르쳐준 스승이 강항(姜沆)이며 또 그의 의뢰로 강항(姜沆)과 두 형 그리고 학자 10여 명이 참여해서 사서오경(四書五經) 대자본(大字本)을 정서(淨書)하고 수진본(袖珍本: 옷소매에 넣을 수 있는 소책자)으로 대학, 중용, 논어, 맹자의 사서(四書)와 역경, 서경, 시경, 예기, 춘추, 곡례전경(曲禮全經)의 오경(五經)과 소학과 근사록(近思錄), 근사속록, 통서, 정몽(正蒙) 등을 필사(筆寫)했다. 수진본 16종은 현재 일본 왕궁의 국립공문서 관내 내각문고(內閣文庫)에 보전되어 있으며 강항(姜沆)의 서명이 뚜렷이 남아있다.일본에서 근래(1991년, 2007년)에 ‘일본에 유교를 전한 조선인’이라는 주제로 2권의 저서가 간행된 까닭은, 강항(姜沆) 이전에 이미 유교가 전해졌다 하더라도 원문(한문)을 해독하는 극히 한정된 몇 사람의 안중(眼中)에 머물러 있던 유교와 성리학을 강항의 도움으로 후지하라 세이카가 사서오경왜훈본(四書五經倭訓本 : 사서오경을 일본음으로 읽을 수 있게 만든 책)과 주자신주(朱子新注)의 훈점본(訓點本 : 새겨서 읽을 수 있도록 한 책)을 완성함으로써 유교와 성리학 접근을 쉽게 하고 그 문호를 넓혔으니 일본 근대화에 미친 강항(姜沆)의 영향을 짐작하게 한다.후지하라 세이카는 중국과 조선을 숭모(崇慕)하여 도항(渡航: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넘)을 꾀했으나 실패하고 독학(獨學)으로 어렵게 배움의 길을 걷던 참에 조선 사람 유학자 강항(姜沆)을 만남으로써 우리 글로 새겨 읽을 수 있는 왜훈본(倭訓本) 간행이라는 대사업을 완성했으니 두 사람을 개조와 시조라는 동의어(同義語)로 엮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그 뒤로 시대가 근대(近代)로 내려오면서 일본의 마을과 고을마다 배움의 집인 데라고야(寺子屋: 우리나라의 서당에 해당)가 서고 근대교육에 대한 열망이 불길처럼 일어남으로써 일본의 근대화가 촉진되었으니 일본 땅에 사상과 학문의 씨앗을 뿌린 강항(姜沆)의 이름이 ‘홍유현창비’로 섰음은 당연하다.단지 강항(姜沆)이 써 남긴 ‘간양록’이 사무치는 원한으로 격렬하게 일본을 매도했으므로 일본인이 읽고 질겁을 할 정도라 일본이 조선 강점 이후로 ‘간양록’을 보이는 대로 거두어서 불에 태워 없앴으니 강항(姜沆)의 이름은 오랫동안 잊힌 이름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본은 거의 씨가 말랐으므로 지식인 중에서도 강항을 깊이 아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랬던 것이 강항의 이름을 일본 전국에 알게 한 결정적인 사단(事端)은 1989년 2월 23일 일본의 NHK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45분짜리 「유자(儒者) 강항과 일본」이라는 프로다. 한국 취재까지 한 이 프로는 일본 전국에 큰 충격을 던진 바 있다. 그 전인 1980년 9월 1일자 일본의 아사히(朝日)신문 문화면에 「한·일을 이은 유자(儒者) 강항(姜沆)의 유적을 찾다」라는 제목의 기사가 강항(姜沆)재조명의 마중물이 되었다고 전해 온다. (계속)  /글= 강대의 수은강항선생기념사업회 사무총장
    • 기획.연재
    2019-05-16
  • 한눈에 보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https://www.youtube.com/watch?v=Kdhy3jXVKXA
    • 기획.연재
    2019-03-29
  • 미스인터콘티넨탈 코리아 오프닝 x 호남일보
    https://www.youtube.com/watch?v=UBdN_Bz1FN8&t=10s 2018년 미스인터콘티넨탈 코리아와 호남일보가 함께 합니다.
    • 기획.연재
    2019-03-29
  •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의 모든것
    https://www.youtube.com/watch?v=2ld7Db_9-Xs&t=31s
    • 기획.연재
    2019-03-23
  • 역대 광주시장과 흑역사
    https://www.youtube.com/watch?v=t9do_1JsiuQ&t=7s  
    • 기획.연재
    2019-03-23
  • 호남일보 TV 인트로
    https://www.youtube.com/watch?v=3S0slpLi9aI
    • 피플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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