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7-08 (수)

오피니언
Home >  오피니언

실시간뉴스

실시간 오피니언 기사

  • 홍범도 장군
    홍범도 장군(1868~1943)은 평민 출신 의병장이다. 일본군조차 두려워했지만 우리나라의 의병사에선 자취가 거의 지워진 인물이다. 그 이유는 ‘머슴 출신이어서 주류로부터 외면당했고, 소련 공산당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국민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평양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홍범도는 태어난 지 7일 만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동냥젖으로 키운 아이였다. 9살 땐 부친마저 여의고, 철들 무렵부터 머슴살이를 했을 정도로 매우 불우한 시절을 보냈었다. 한 때는 평안도 관찰사가 머무는 평안 감영(평양소재)의 나팔수로 군복무를 했다. 그러면서 명사수로 이름을 날리다가 난폭한 상관을 두들겨 패고 탈영했으며, 제지공장에 들어가서도 폭력적인 사장을 두들겨 패고 금강산 신계사에 절 머슴으로 들어갔다가 한 비구니를 만나 사랑을 맺어 그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 후 그는 ‘여천’이라는 아호(雅號)를 가졌으며, 항일투쟁으로 인해 일본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일본 경찰은 여천을 잡지 못하자, 그의 아내를 경찰서로 연행해 심하게 고문했다. 그의 아내는 고문후유증으로 옥사했고, 아들 양순은 1908년 6월 함흥수비대와 교전 중에 전사했다. 그럼에도 애국심은 더욱 솟구쳐 1920년 독립전쟁 사상 최대의 승전인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에서 최고 지휘관으로서 일본 정규군을 격퇴해 장군이 되었다. 그가 대승으로 이끌었던 봉오동 전투는 1920년 6월4일 새벽 홍범도 부대가 두만강을 넘어 함경북도 종성 강양동의 일본 헌병순찰대를 파괴하면서 시작됐다. 일본군은 남양수비대 소속 1개 중대와 헌병경찰중대로 월경 추격대를 편성해 뒤쫓다가, 삼둔자에 매복해 있던 홍범도 부대에 섬멸되었다. 함경도 나남의 일본군 19사단은 대규모 토벌대를 편성해 근거지 파괴 작전에 착수한다.봉오골 상동은 삿갓을 뒤집어 놓은 지형이다. 여천은 사방의 산기슭에 부대를 매복시키고, 이화일 부대로 하여금 토벌대를 유인하도록 했다. 의도대로 일본군이 삿갓 안으로 들어오자, 사방에서 사격을 퍼부었고, 일본군은 3시간 만에 사망자 157명을 포함해 사상자 500여명을 남기고 비파동쪽으로 도망쳤다. 임진전쟁 때 이순신, 권율 장군이 거둔 대첩 이후 일본 정규군을 상대로 거둔 첫 대승이었다. 4개월 뒤 청산리 대첩의 예고편이기도 했다. 봉오동 계곡은 현재 댐으로 인해 수몰된 상태이다.청산리 대첩은 1920년 10월 21일의 백운평 전투를 시작으로 완루구·천수평·어랑촌·맹개골·만기구·천보산·고동하 전투 등 6일간에 걸친 일련의 전투를 통틀어 일컫는다. 1920년 서간도와 북간도 지역을 침입한 일제의 대규모 병력에 맞서 독립군 연합 부대는 3개 연대로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홍범도는 제1연대장으로 대한 독립군과 국민회·의군단·한민회·의민단·신민단·광복단 소속의 연합 부대를 지휘하고, 김좌진은 제2연대장으로 북로 군정서를 지휘하였으며, 최진동은 군무 도독부의 지휘를 맡았다. 1920년 10월 21일 아침 김좌진의 부대가 백운평 계곡에서 적의 선발대 200여 명을 물리쳤으며, 같은 날 오후 홍범도가 이끄는 연합 부대가 완루구에서 추격하는 일본군과 전투를 벌여 400여 명을 사살하였다. 10월 22일에는 김좌진과 홍범도의 부대가 연합하여 어랑촌 계곡에서 항공기까지 동원한 일본군을 맞아 승리하였다. 이때 적이 입은 피해는 약 1000 명가량의 전사자와 부상자를 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후 맹개골·만기구·천보산·고동하 등지에서 연이어 일본군을 격파하였고, 전투는 10월 26일 일본군의 퇴각으로 끝이 났다. 이후 홍범도 장군은 활동무대를 소련의 연해주로 옮겼으나 1937년 소련의 지도자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됐고, 카자흐스탄 황무지에서 움막 생활을 하다가 1938년 크질오르다로 이주해, 병원 경비와 극장 수위로 근무하며 말년을 보냈다. 1943년 75세의 나이로 서거했다. 크질오르다 중앙공원묘지에 묻힌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금년이 봉오동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100주년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3월 1일 ‘3·1절’ 기념사에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의 승리를 이끈 평민 출신 위대한 독립군 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드디어 국내로 모셔올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 매체는 “홍범도의 유해가 그의 고향이고 조상들이 묻혀있으며 후손들이 있는 평양에 안치돼야 한다는 것이 북남은 물론 해외의 온 겨레가 한결같이 인정하고 주장하는 사실”이라고 역설했다.홍범도 장군은 지역에 상관없는 민족적 영웅이며, 한반도 어느 곳에 모시든 자주독립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분의 뜻과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는 일이다.
    • 오피니언
    2020-07-07
  • 순천도호부는 행정과 군사요충지였다
    순천이 뜨고 있다. 생태도시로 알려지고 있을 뿐 아니라 환경부문에서도 각광을 받고 있다. 사실 순천은 행정, 교통, 문화, 군사의 요충지였다. 사통팔달로 이어지고 있는 지리적인 여건에서부터 행정을 비롯한 군사요충지라 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특히 자연환경은 소백산맥의 본줄기가 서부로 노령산맥으로 분기하고 남으로 곧게 뻗어 내려와 천황봉에 이어지고, 그 능선이 시의 남북으로, 그 지맥의 일부는 다시 동서로 달리고 있다.전체면적의 70%가 산지이며 전라남도에서 가장 산이 많은 지역으로 면적은 서울시의 1.5배나 된다. 직할하천인 섬진강이 구례군과 경계를 이루면서 시의 북부를 흐른다. 또 상류지역은 보성강이 송광면을 관류해 흐르다가 주암면 대광리에서 주암 다목적댐을 만든다. 게다가 시의 경계를 벗어나 섬진강과 합류한다. 역사적으로도 고대는 백제 땅으로 감평군 또는 사평, 무평이라 했다. 757년(경덕왕 16)에 승평군이 되었다가 부유현과 여수, 돌산까지 영속지로 해 전라남도 동부의 행정, 병마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이후 고려 성종2년(2983년)에 12목을 파견할 때 승주목이 됐다. 1036년(정종 2)에 승평군이 되고, 충선왕1년(11309년)에 다시 승주목으로 승격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순천부가 됐다.조선시대는 태종13년(1413년)에 순천도호부가 되었고, 이때 순천의 행정 영역은 현재의 순천시, 여수시 지역을 포괄하는 넓은 지역이었다.근대에 와서(1895년) 관제 개혁으로 순천군이 됐으며 이듬해 율촌면 이남 지역은 여수군과 돌산군으로 분리됐다. 더욱이 1910년 낙안군의 폐지로 그 산하 7면과 곡성군 일부가 순천군에 편입됐다.현대는 1949년에 순천읍과 도사면 일원 9개리와 해룡면 일부 12개리를 편입해 순천시가 성립됐고 나머지 순천군 지역을 승주군으로 개칭함으로써 순천과 승주가 분리됐다. 현재는 1995년 전국 시군 통합에 따라 승주군과 순천시가 통합하여 순천시로 됐다.그런 까닭일까? 임진왜란 당시 순천도호부의 역할은 대단했다. 전라좌수사인 이순신장군과 그 휘하의 순천부사 권준의 활약상은 역사적으로도 방증되고 있다. 권준은 본래 문관이었으나 임진왜란 당시 종3품 순천 도호부사(현재의 순천시와 여수시를 모두 관할지로 함)로 재직했다. 이순신 장군 휘하에서 여러 해전에 참전, 큰 공을 세웠다. 당시 전라좌수영의 5관 5포 중 가장 큰 고을인 순천도호부의 부사였기 때문에 실질적인 좌수영내 2인자의 역할을 했다. 이를 증명하듯 가장최상급자인 전라좌수사의 명을 직접 받아 전달하는 중위장의 역할을 권준이 맡았다. 2차 출전에서는 적군의 왜장을 화살로 쏘아 맞추고, 연이은 출전에서도 계속 공을 세워 1595년 원균의 뒤를 이어 경상 우도수군절도사(정3품)에 임명되었으나 이후 원균이 삼도 수군통제사(종2품)에 임명되자 사직했다. 그러나 칠천량에서 조선수군이 궤멸되고, 이순신이 다시 삼도수군 통제사로 복직되자 같이 충청도 수군절도사(정3품)로 임명돼 이순신의 막하에서 다시 재직하기도 했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부터 이순신과 함께 했던 사람으로, 사적으로도 매우 친밀했던 사이였다. 난중일기엔 권준이 잠깐 한산도를 비우는 시기와, 이순신의 파직 이후를 제외하면 권준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은 날을 찾기 힘들 정도다. 같이 식사를 하며 여러 일을 논의하는가 하면 술도 자주 마시고, 바둑을 두거나 활을 같이 쏘았다. 항상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을 찾아오지만 가끔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면 직접 권준을 초청해 같이 식사를 하기도 했다. 또 권준의 생일날 여러 장수들이 모여 같이 술과 음식을 먹으며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이뿐 아니다. 수많은 장군과 장수들이 순천도호부에서 활약했던 것으로 보인다. 권율과 진린 등의 조명연합군의 장군을 비롯한 군사들의 활약상은 군사요충지를 방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까? 허석 순천시장은 문화관광자원화 현장 점검에 나섰다. 지난달 26일 순천부읍성 공사현장(영동 1번지 일원)을 점검하고, 지속가능한 순천부읍성 관리운영방안 마련을 위한 연관부서 현장협업회의를 개최했다고 한다. 협업회의는 먼저 순천부읍성 공사 현장을 둘러보고 부서별 연계사업 공유, 순천만의 특화된 공간 구성 및 지속가능한 관리운영 방안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펼쳐졌다.현장을 찾은 허석 순천시장은 말했다. “과거 순천도호부는 행정과 군사의 요충지로 전라좌도 남부의 중심 역할을 해 왔다”며 “역사성과 장소성을 가진 공간의 완성을 통해 과거의 영광과 자부심이 순천의 미래에 재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이다.이처럼 순천도호부는 행정, 교통, 문화, 군사의 요충지였다. 역사적으로도 심도 있는 지역으로 연구와 함께 계승발전 시켜야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낙안읍성을 비롯한 송광사와 선암사 등의 유적유물은 귀중한 역사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오피니언
    2020-07-06
  • 소통과 인간의 삶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티비 프로그램을 가끔 시청한다. 자연은 글 없는 교과서며, 말없는 스승이라는 사모함이 있어 물소리와 햇살 부서지는 푸른 잎에 감탄하며 보곤 했다. TV속 자연인들은 인터뷰를 통해 사업 실패 후, 혹은 불치 병 치유를 위하여 산속으로 왔다고 했다. 그들은 약초를 캐거나 버섯을 채취하며 자연과 소통했다. 청설모나 나무에게 말 걸으며 인간애착의 욕구 쯤 해소하고 세상의 바람을 피해 생태백신(?)인 자연 바람이나 맞으며 웰빙한다. 많이, 더 많이 가져야 하는 문명의 삶 대신 최소한의 소비로 자족한다. 사람한테 물리며 사는 것 보다 짐승한테 물리는 편이 더 나으리라는 판단이었을까? 사기당해 사업에 실패한 자연인은 자신의 내면과 혹은 자연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보통, 당한 사람은 투명하고 거짓 없이 다 소통했으나 상대의 부드럽고 달달한 말에 현혹당한 죄는 상대에 대한 무지와 의존의 댓가이리라. 그 상처에 대한 보상은 사회와 소통의 단절로 갈음한다. ‘너는 왜 잘 알아보지도 않고 그 사람의 말을 곧이 곧 대로 믿었느냐? 달콤한 말에 혹한 너도 그 사람이랑 다를 바 없다’ 등등 그 때 알았으면 안했을 때늦은 후회와 내면의 소리를 들었을까? 자연인들은 자신과 그리고 자연과 소통하며 새로운 삶을 산다. 이렇게 소통은 삶의 순환고리가 되어 삶의 방향키를 움켜쥐는가 하면 국가 간 소통은 국민들의 삶의 질을 결정하기도 한다.가로막힌 휴전선을 두고 북한과 미국과 한국 삼자간의 대화 역시 정치 경제 등의 문제가 얽혀 진실을 드러내지 못할 뿐더러 힘의 논리가 숨어 있다. 리더자의 사심까지 덧칠해지면 대화는 더욱 암담하고 불통의 장막이 드리워질 뿐이다. 중국과 홍콩의 대화도 그 입장은 서로 판이하다. 자유를 지키고자 하는 홍콩시민들의 애절한 절규가 지구촌에 울려 퍼질 뿐이다. 어느 한쪽이 권위와 사심을 실어 대화를 관철시키는 힘의 논리는 일방적 소통의 불공정을 드러내며 홍콩시민의 자유를 유린할 조짐을 보인다.   지난달 모 운동선수는 훈련 중 가혹행위로 고통을 호소했으나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렇게 어느 한쪽이 권위의 힘으로 제압해 오면 죽음과 소통하고 먼 길을 떠나기도 한다. 누구는 개나 고양이 등 애완동물을 키우며 소통을 하고 누구는 예술의 세계와 소통하고 누구는 책과 소통하거나 자기만의 신(神)을 찾아 소통하기도 한다. 소통은 공기와도 같이 인간과 세상 사이를 흐르며 삶을 호흡하게 한다.  보건 당국이 연일 코로나19 발생상황을 조사, 분석하여 자세히 전달하는 것은 국민들의 이해를 통한 협조로 소통할 것을 바라기 때문이다. 세계 사람들은 우리나라의 코로나 사태에 대해 투명하고 신뢰로워 모범적 보도라고 칭찬한다. 똑똑한 한국인과 좋은 리더자의 덕목이 공조한 좋은 소통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반해 일본의 경우 올림픽 개최 욕심을 숨기고 코로나 사태를 축소 은폐 보도한다는 세계 매스컴의 추측성 평가와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개인이나 사회, 국가에게 소통은 중요한 존재방식이므로 신뢰롭고 투명해야 하나 합법과 불법의 경계, 공정과 불공정의 경계, 가치로움의 경계 등은 사람마다 국가마다 다른 가치와 신념, 이해(利害)관계가 얽혀 있어 쉽지 않다. 게다가 디지털 시대 소통은 더 복합적이고 다양하다.SNS 등 디지털 소통은 우리의 감정과 인식에 변화를 주었다. 사회관계망 소통은 상대방의 목소리 톤이나 억양 표정 등에 일일이 신경 쓰지 않아 감정 소모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냥 결과만 알면 된다. 그러다 보니 상대의 감정을 공감해 주는 현대인의 공감 능력은 점점 퇴화되어 사회성이 떨어진다. 그야 말로 로봇형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스마트폰 상에서의 집단 따돌림이나 음성적 거래는 익명성만큼 불신, 불투명의 비인간적 소통들이 이루어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SNS나 인터넷은 빠르고 넓은 정보전달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약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고 불의에 항거하는 시위대의 현황을 실시간으로 퍼트려 부당한 일을 당하는 억울함을 막을 수도 있는 양날의 검 같은 소통 방식이다. 한편 교통의 발달은 세계 사람들의 소통을 더욱 빈번케 해 코로나 19의 팬데믹 사태를 발생케 했다. 코로나 발원지인 중국은 최근 야생동물거래 금지와 식용금지법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밀거래가 된다 하니 법망을 뚫고 바이러스와 곡예를 하는 사람들이 안타깝다. 동물생태학자인 최재천과 제인구달은 코로나사태로 인한 인류의 경각심이 희망이라며 인간이 자연과 소통하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네슬레, 까르푸 등 몇몇 글로벌 기업들이 아마존 열대우림 보호를 위해 ‘아마존산 보이콧’을 벌이고 있다. 아마존에서 난 콩이나 소가죽을 구입하지 않음으로써 삼림 파괴를 막겠다는 것이다(월스트리트저널, 2019.12.25.) 이는 브라질의 급속한 삼림파괴를 막음으로써 야생동물을 보호할 수 있고 야생동물들이 삶의 터전을 잃고 인간 동네로 내려오는 일을 막을 수 있어야 인수간 전염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네 자연인은 산으로 가지만 인간에게 짓밟히며 당하기만 해온 말 못하는 동물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 동물을 제압하는 인간의 일방적 소통, 이제는 멈춰야 한다. 동물존중과 자연 보호야 말로 그들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일이다. 그것이 공정한 삶이다.
    • 오피니언
    2020-07-05
  • 남북경협 이젠 우리 힘으로
    지난 6월16일 14시 50분 북한은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건물을 비참하게 폭파했다. 앞서 13일 김여정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이 담화에서 “머지않아 쓸모 없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 이라고 한 예고 그대로 사흘만에 전격 실행된 것이다. 2018남북정상회담 당시 우리국민들은 평양냉면을 먹으로 다닐 정도로 평화무드가 익어 갔었다. 그러나 하노이회담 노딜 이후 진전 없이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미중무역 분쟁과 북한 경제 난국, 탈북자들의 국회진출, 탈북자와 극우주의자들의 대북전단 살포로 남북관계는 난관에 부딪치게 된 것이다. 존 볼턴 전 미국백악관 안보보좌관의 회고록은 우리가 늘 걱정했던 미국과 일본의 남북문제에 대한 간섭을 떠나 철저하게 우리민족의 앞날을 앞장서서 방해한 자본주의 강대국의 민낮을 찾아 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물론 존 볼턴의 회고록이 한·미·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수 있는 자료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평가절하할 수만 없는 현실이다.2018년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판문점 회담은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으며 새로운 동북아 정치질서의 안정과 평화정착을 시켜가는 한반도 운전자론을 기대하는 전국민의 지지속에 남북의 경제협력을 의심하지 않았다.4·27판문점 선언은 문재인정부의 대북정책의 로드맵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대북 대화를 통한 평화정착 입장을 밝혔지만 북한은 핵실험과 대륙간 유도탄을 발사하며 문재인정부를 곤혹스럽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재인정부는 인내심을 갖고 대북평화정책의 기조를 계속해서 보내자 북한은 평창동계 올림픽에 김정은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대표단으로 보내 화답하게 되었다. 이렇게 화해무드가 익어가게 되어 4·27판문점 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실현, 연내 종전선언,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성설치, 이산가족상봉 등을 발표했다.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구축, 판문점선언 재확인과 한반도 비핵화 전쟁포로(POW) 및 전쟁실종자(MIA) 유해송환등 4개 항목에 합의했다.하지만 2019년 2월 27~8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베트남 하노이에서  별다른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이후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김정은 위원장은 유엔과 미국으로부터 경제제재를 완화시키기 위해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나름대로 비핵화 의지를 보였으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비핵화”를 강력히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로 인하여 하노이 회담은 노딜로 끝났다.이후의 남북관계는 답보상태에 머물게 되어 예전에 없었던 한미워킹그룹을 통하여 미국의 강력한 개입으로 대북 봉쇄조치는 강화되었다. 더군다나 코로나 19로 죽어가고 있는 북한주민에게 트럭 1대분의 의약품 마저 미국의 반대로 보내지 못한 주권국가로서 면모를 잃어버리게 되었다.코로나19 확산으로 거대 자본주의 미국의 민낮과 존 볼턴 회고록으로 본 미국과 일본의 치졸한 행태에 주권 국가로서 우리는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4·27 판문점선언, 9·19평양공동선언은 남북한 우리민족 모두에게 희망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북한은 그 뒤 월드컵 남북예선전을 무관중으로 치렀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금강산에서 너덜너덜한 시설물을 꼴도 보기 싫다며 철거를 지시했다. 더 나아가 제 1부부장 김여정의 담화는 무례를 떠나 대적관계를 적나라하게 열거한 날폭탄이었으며 그것은 곧바로 남북공동 연락사무소 폭파로 이어졌다.우리정부는 통일부장관을 경질하였고 외교라인을 쇄신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의 확고한 평화와 경협에 대한 신념과 의지의 진정성을 인정한다.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자주독립적인 남북경제협력을 이끌어 내야 한다. 미국에 대해서는 할말을 하고 요구할 수 있는 요구를 하여 남과 북이 신뢰를 회복하여 우리 한민족이 동북아 정세 주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정은 위원장은 긴장과 위기를 맞았던 지난 6·25 70주년을 맞이하여 대남군사 행동을 보류했다.김정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을 15만 평양시민 앞에 열렬히 환호 받고 연설하도록 하였듯이 우리 힘으로 남북경협을 완수해야 한다.주권국가로서 대한민국은 8500만 한민족이 75억 인구와 함께 공생공존할 수 있는 대동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 오피니언
    2020-07-02
  • 사람의 입에는 ‘문을 못 단다’하지만
    “가장 많이 말하는 사람은 항상 가장 적게 행동하는 사람이다” 라는 격언(格言)이 있다. 정체성이 불분명한 저잣거리의 한 사람 진중권 씨를 생각하면서 떠오른 말이다. 사실 진 씨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것이 없다. 가끔씩 지저분한 먼지 날리는 작태를 보이기에 몇 마디 하고 싶어 소환해 본 것뿐이다. 상대하자니 더럽고 안 하자니 귀찮기는 하지만. 그러고 보면 진중권 씨가 노이즈 마케팅을 잘하는 것 같긴 하다. 이래야 먹고 사는가. 며칠 전 추미애 법무부 장관을 희화화하려는 듯 진 씨가 던졌다. 유치했다. 시대는 급변하고 있다. 그에 적절한 사고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이유답지 않은 이유, 비유답지 않은 비유를 들어가면서 지껄여 대고 있었다. 할 일이 없어서였을까. 그럼에도 언론들은 지면에 올려놓았다. 진중권은 여권이 윤석열 검찰총장을 집단적으로 괴롭히고 있다면서 이를 ‘인민재판’이라 했다. “검찰총장에 대한 집단 괴롭힘이 6·25때 인민재판을 보는 듯하다”고도 했다. “광장에 사람 하나 세워놓고, 온갖 트집을 잡아 있는 죄, 없는 죄 다 뒤집어씌우는 모습이 정말 가관이다”는 말도 했다. 가관은 오히려 진 씨 같지만. 기삿거리가 그리도 없었는지 언론은 필사 보도했다. 아니면 기자 또는 해당 언론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가 싶기도 하고. 사실 윤석열 총장의 행태를 정상이라 할 수 있는가. 과거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윤석열 씨는 중앙지검 검사장으로 끝났어야 했다. 검사장이란 명칭도 쓸 수 없어 격도 한 단계 낮춰서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하지 않았던가. 과거 정부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하고 낭인으로 떠돌던 사람을. 그런 그에게 문재인 정부에서 따사로운 양지를 준 것 아닌가. 그런데 커다란 비극의 시작은 검찰총장까지 준 사실이다. 검사장이라는 옷도 맞지 않았는데. 총장에 걸맞는 역량과 도량은 전혀 아니란 말이다. 이런 부류들이 가는 길은 누구나 거의 같았다. ‘안하무인격, 기고만장’등으로 무장해서 세상의 지존으로 자신을 생각하는 것 말이다. 때문에 이 나라의 대통령 같은 작태를 벌이고 있는 것 아닌가. 사실 문재인이 대통령이 아니라 윤석열이 대통령 같다는 말까지 떠돌고 있잖은가. 측근문제, 장모문제 등은 전혀 신경쓰지도 않는듯해 보인다. 검찰조직도 자신의 측근들로 채워버렸고. 다행히도 추미애 씨가 장관으로 오면서 잘못된 것을 조금씩 바꿔가고 있기는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대체로 잘하고 있지만 윤석열 씨를 총장에 임명한 것만은 큰 패착이라 생각된다. 여기에 작은 똥파리 하나가 웅얼거리고 있고. 진중권 씨 말이다. 도대체 존재감도, 깊이감도 없어 보이면서. 진중권 부류들까지도 마음대로 떠들어 댈 수 있는 작금의 사회. 진정한 민주사회 아닌가. 과거를 더듬어 보자. 김대중 정부를 비롯해서 노무현 정부, 문재인 정부 등 민주정부에서만 기나 고동이나 떠들어댔다.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을 비롯한 군사독재정권이나 보수독재정권 하에서는 이러지 못했다. 그만큼 민주 정부에서 최대한도로 자유를 보장해주고 있다는 증거 아닌가. 지금 떠들고 있는 서생원 같은 사람들. 그때는 뭐 했었는가.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 역시 동급이라 생각된다. 추 장관이 윤 총장에게 한 말을 두고 “인성의 문제”로 본다면서 비난했다. 참으로 웃기는 어르신이다. 백인이 백 말을 한다 해도 김종인 어르신만은 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고 보지 않는가. 카멜레온 같은 떠돌이면서. “혀 아래 도끼 들었다”는 말이 있다. 잘못된 말로 언젠가는 재앙을 당할 수 있다는 잘 여며보길 바란다.
    • 오피니언
    2020-07-01
  • [호일칼럼]사라지는 것들의 아름다움
    요즈음 광주 남구의 진산인 제석산에서 짝을 찾는 비둘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이른 봄에 울던 소쩍새, 그 뒤에 울던 검은등뻐꾸기는 이제 짝짓기를 하고 한 해 살림을 시작했을 거다.지난해에 이어 어김없이 이어지는 이 제석산의 새소리는 자연의 순환이다. 갑작스러운 변괴만 없다면 이 자연의 순리는 사라지지 않고 해마다 평화롭게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계절이 바뀌며 들리는 이 새소리는 누구에게는 추억이고, 누구에게는 기다림이며 그리움이고, 누구에게는 자연의 아름다움일 것이다.하지만 한 번 사라지고 나면 다시 보기 어려운 것들도 많다. 우리 생활 주변의 것들만 해도 그렇다.전파사가 그중 하나다. 예전에 길가의 그 전파사는 거리를 걷는 사람들에게 멋진 음악을 공짜로 듣게 해주었다. 비 오는 날, 바람에 낙엽이 날리는 날, 하얀 눈이 펄펄 날리는 날, 거리에서 듣던 그 음악은 낭만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지나간 향수일 뿐이다.양장점이나 양복점, 구둣방도 이제는 보기 힘든 이름이다. 생산, 소비의 자동화 시스템이 가져온 변화이다. 이발소는 또 어떤가? 아마도 이발사를 하려는 사람이 없어서도 이 직종은 사라지고 있을 것이다. 이밖에도 학교 앞 문방구나 골목길의 점방, 작은 선술집 등도 찾기 어려운 지난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도심의 풍경도 마찬가지로 상전벽해다. 어린 시절 모래 장난을 하고 송사리를 쫓던 개울은 사라지고, 꽤 수량이 풍부하던 내도 복개가 되어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도시발전에 따른 어쩔 수 없는 현상이지만, 이렇게 사라져버린 풍광은 계절이 바뀌어도 다시 되돌아오지 않기에 아쉬움이 크다.현재 백운고가차도 철거 공사가 한창이다. 백운고가차도가 있는 백운광장은 구도심과 외곽을 연결하는 광주의 남쪽 관문이다. 지난 1989년 11월 개통 이래 31년 만에 철거되는 것이다. 일찍이 복개되었지만, 예전에 이곳 고가차도 아래쪽에서 주월동 쪽으로 흘러가는 냇물이 있었다. 당시 비만 오면 이 내를 중심으로 물이 차올라 땅이 질다는 ‘진다리’라 했으니, 백운동의 옛 이름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만든 진다리붓은 유명한 붓이었다. 60~70년대 광주전남에서 학교에 다녔다면 이 붓으로 습자연습을 했을 것이다.아무튼, 이 백운고가차도는 이제 도시철도 2호선에게 그 임무를 맡기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광주 남구청에 따르면, 이 고가차도 대신 지하차도가 만들어지고 2023년에는 도시철도 2호선 1구간 백운광장역이 개통할 예정이라고 한다.더하여 이곳 백운광장 일대를 중심으로 도시재생사업을 벌여 쇠락하는 상권을 다시 살리고, 유스타운을 조성하여 젊은 층이 찾아오게 한다는 것이다. 옛 보훈병원 부지 일대가 이 유스타운의 거점인데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의 청년복합플랫폼에는 청년창업 지원센터가 들어서고 8층 규모의 청년창업 지원주택도 조성될 것이라고 한다. 백운광장과 푸른길공원을 연결하는 공중보행로, 푸른길공원에는 스트리트푸드존, 로컬푸드직매장이 들어서고 전기차 충전시설을 갖춘 주차장도 마련된다고 한다. 또한, 백운광장과 맞닿은 광주 남구청사는 건물 외벽에 다양한 영상을 투사하는 미디어파사드로 활용된다고 하니, 사뭇 그 기대가 크다.광주 남구의회 오영순 사회건설위원장은 ‘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되면 남구청사 앞 백운광장은 남부권의 중심 역세권이 되고, 도시재생사업을 통해 초고층 빌딩이 들어서서 미국의 맨해튼과 같은 모습으로 바뀔 것’이라 한다.예전 사직동 앞을 흐르는 광주천의 이름이 대추여울이었다. 무등산에서 솟아오르는 해가 강물에 어려 잘 익은 대춧빛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 백운광장 일대의 초고층 빌딩숲은 그 무등의 잘 익은 대춧빛을 가장 먼저 받는 도심 풍광의 명소가 될 것이다.하지만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이다. 논밭과 과수원 사이로 맑은 내가 흐르던 과거의 백운·봉선동 일대의 풍광이 사라졌듯, 이제 또다시 현재의 모습도 우리 눈앞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렇다고 변화와 발전을 두려워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아름다움도 마음속에 간직했으면 한다.  
    • 오피니언
    2020-06-30
  • [호일칼럼]고종명(考終命)
       예로부터 사람들이 생각한 오복(五福)은 치아, 자손, 부부해로, 재산, 명당이었다. 오복 중 첫째로 치아를 꼽았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잘 먹어야 장수 할 수 있고, 둘째로 자손은 대를 이어야 한다는 보수적인 관념에서다. 셋째, 부부해로는 자식보다 부부간 금슬 좋게 잘 살아야 집안이 화목하고, 넷째로 가진 것이 있어야 대접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이고, 다섯째, 명당은 죽어서 명당에 묻혀야 자손들에게 복을 전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그러나 유교에서 말하는 오복은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다. 수는 목숨이니 오래 삶을 뜻하고, 부는 부유함이니 넉넉한 재산을 일컬으며, 강녕은 건강하고 편안함을 말한다. 그리고 유호덕은 덕을 좋아하며 즐겨 행함으로써 남들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는 것을 의미하며 고종명은 제 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가족들 앞에서 죽는 것을 뜻한다. 오복의 덕목 중 고종명은 영종(令終)이라고도 일컫는다. 고종명은 모든 사람이 바라는 최후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다 그렇게 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병을 얻어 아프거나 어떤 불행한 사고를 당해 제 명대로 오래 살지 못하거나 편안한 죽음에 임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고종명을 속된 말로 아주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구구팔팔(9988) 이삼사(234)’이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아팠다가 죽는다’는 뜻이다.일찍 요절하거나 오래도록 병환으로 고생을 하다 죽으면,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에게까지도 큰 슬픔과 많은 고통을 안겨주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도록 건강하게 살다가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것을 원한다.그런데 고종명에 유호덕하려면 발생률이 극히 낮아지게 된다. 덕망을 쌓아 남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면서 명대로 오래 살다가 편안히 자연사로 죽는 사람은 무척 바람직하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겠지만 실제 그렇게 되기에는 매우 어렵고 희소하다. 후덕한 사람이 장수를 누리는 것은 가장 바람직하고 소망스런 일이다. 그러나 후덕한 자가 일찍 죽는 경우와 박덕한 자가 오래 사는 경우가 문제다. 유덕자가 요절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박덕자가 장수하는 것은 남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의학이 발달하고 건강음식이 계발됨에 따라 앞으로 고종명에 해당된 사람이 많아 질 것이다.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현상이 더욱 바람직하기 위해서는 덕망을 구비한 유호덕의 미덕도 함께 향상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 태어나 한평생을 살아가는 삶의 가치와 목표는 오복(五福)의 소유가 아닐까 싶다. 천수를 누리며 사는 수(壽),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평안하게 사는 강녕(康寧),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누리며 사는 부(富), 덕을 베풀며 사는 유호덕(攸好德), 천수를 누리고 자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편안히 눈을 감는 고종명(考終命), 이 오복은 누구나 마음먹기에 달려있는 게 아니다.특히 오복 중에 일생을 마무리하는 고종명은 세상과 하직하는 복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도 따라야 이루어지기에 가장 힘들며 또 한편 두려운 것이기도 하다.요즘 화두가 되고있는 웰다잉(Well-Dying)은 죽음을 긍정적으로 맞이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부정적 관념 때문에 금기시해 왔던 웰다잉은 이젠 웰빙(Well-Being)과 함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웰빙은 우리말로 ‘참살이’다. 사전적 의미로는 ‘복지, 안녕, 행복’을 뜻하고 ‘잘 사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잘 사는 것’이라 함은 물질적인 풍요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을 일컫는다.웰 다잉은 인간으로서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소망을 전제로 삶의 내면을 풍요롭게 가꿔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 즉 ‘사람이 사람답게 죽는 것’을 의미한다.퇴계 이황 선생께서는 세상을 떠나실 때, 온 가족들에게 “매화나무에 물을 꼭 주어라”고 했다 한다. 매화나무에 물 주기가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퇴계 이황 선생은 평생 초심을 잃지않고 검소하게 사셨던 분이셨기에 그분만이 가능한 마지막 유언이었다고 생각한다.  
    • 오피니언
    2020-06-28
  • [호일칼럼]흥국사 창건과 보존의 의미
    흥국사는 여수반도의 주산인 영취산 아래 위치하여 예로부터 지역민으로부터 신령한 산으로 인식되어 기우제나 치성을 드렸던 곳이다. 진달래가 많아 진달래 산으로 알려진 영취산 자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흥국사의 사적기를 보면, ‘국사께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하고 면벽관심(面壁觀心)하고 심신연마에 환경이 좋은 성지를 택하여 가람을 창설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즉 ‘흥국사가 흥하면 나라가 흥하고 나라가 흥하면 이 절도 흥할 것이다’라고 개산(開山) 이념을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1195년(고려 명종 25년)에 보조국사(지눌 스님)가 창건한 흥국사 안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 팔상전 등 문화재가 많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 축대의 거북과 용, 꽃게 모양을 곁들인 대웅전은 흔히 ‘반야수용선’이라 불리며 이는 고통의 연속인 중생을 고통이 없는 세계로 건너게 해주는 도구가 배이며, 이 배는 용이 지키고 있으므로 바로 용선이라는 것이다.흥국사는 보물의 창고로, 보물 제396호 대웅전은 빗살문을 달아 개방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며 보물 제563호 홍교는 무지개다리라는 뜻으로 홍예 교라고도 하며 관람하다 보면 정말 무지개 모양처럼 놓았음을 느낄 수 있다. 현존하는 홍교 중 가장 높고 길며 다리 중간 아래에 용의 머리가 조각돼 있어 사악한 기운이 절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벽사 기능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대웅전 후불탱화, 노사나불 괘불탱, 대웅전 수월관음도, 응진전 십육 나한도, 대웅전 목조 삼가 여래 삼존상 동종, 목조 지장보살 삼존상. 시왕상 일괄 및 복장유물, 대웅전 관음보살벽화 등 보물 10점이 보존된 문화적 보존의 중요한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 절이다사찰의 명성에 맞게 흥국사는 조선조에 들어와 호국 사찰로서의 위상이 한층 더 높아졌으며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흥국사에서는 기암대사(奇巖大師)가 스님 300여 명을 이끌고 승병으로 나서 활약하게 된다. 흥국사는 남해에 바로 인접해 있으므로, 이곳의 스님들이 수군으로 투입되었고 승군들의 주둔지인 주진사(駐鎭寺) 역할을 하여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수군 승병이 있었던 곳이며 흥국사 안에서 수군 승병 300여 명이 훈련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왜란과 호란의 전란 속에서도 승병을 모집하고 외적과 대항한 것도 공동운명체로서의 불심을 실천한 곳이다. 고통받는 민족과 백성을 절 안에서 수행을 통해서 구제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전란의 현실 속에서 적극적으로 고통의 근원을 해결하는 자비를 실천한 곳이 흥국사다.흥국사가 위치한 ‘여수국가산업단지는 1974년 4월 여천산업기지 개발구역으로 고시되어 1914년 12 월 여수국가산단 확장단지 조성사업 준공으로 20.125㎢(약 608만평)부지에 사업비 10,648억 원을 들여 40년간 조성하여 개발 사업이 마무리됐다. 국가 경제발전에 기여, 지역경제 활성화로 연간 생산액 98조억 원, 수출액 427억 불, 고용인원 1만9000명, 272개사가 입주하고 있다. 여수국가산업단지는 국토확장을 위해 국내 최대 규모로 바다를 메워 산업단지를 조성한 곳으로 균형 있는 국토개발의 모범이며 전남 동부 지역의 산업발전 계기를 마련하는 긍정적 효과를 가져 왔다. 반면 여러 사안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많다. 첫째 섬진강에서 유입되는 민물과 바닷물의 순환을 막아 풍족하고 다양한 어족자원의 고갈을 가져왔다. 둘째 흥국사 진입환경이 열악하여졌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찰이 심산유곡에 있어 재가불자이든 관광객이든 심신의 안정을 찾는 힐링의 목적도 따르지만, 왠지 흥국사 진입로는 화학공단을 통해 진·출입을 하게 되어 공해에 따른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흥국사에 진입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조성하여 접근성이 쉽게 하든지 아니면 기존 도로 주변을 정리하여 쾌적한 환경을 느낄 수 있는 녹지정책이 필요하다. 셋째 공해에 따른 문화재의 훼손방지와 보존의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넷째 공단부지 부족으로 흥국사 입구까지 조성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역사 인식이 반영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여 주었으면 한다. 많은 산업유발 효과와 전남지역의 경제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만큼 호국과 문화재가 아울러 이룰 수 있는 산업계의 관심과 정책당국의 노력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여파로 답사 당시 동행하였던 친구와 필자만이 경내를 거니는 쓸쓸함이 흥국사의 현실이다.  
    • 오피니언
    2020-06-25
  • 치(恥)가 있는 사회
    부끄러움을 뜻하는 한자 치(恥). 마음 심(心)과 귀 이(耳)가 합쳐진 글자다. 곧 ‘치’라는 글자는 ‘마음의 소리를 듣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양심의 소리다. 가령 누군가가 그 어떤 잘못을 저질렀을 때 주위의 어느 누구도 모른다고 하더라도 당사자만은 알 것이다. 양심만은 자신을 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그걸 잊고 산다. 아니 알고 있으면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뻔뻔스러워진다. 같은 잘못을 반복한다. 이렇게 학습되어가다 보면 점점 더 강해진다. 안하무인격이 된다. 대부분의 강력한 형사사건에서도 이런 면들이 수도 없이 엿보인다. 고유정의 전 남편 살인사건을 봐보라. 얼마나 잔인한가. 그리고 철저한가. 보통사람들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다. 결국 이 사건으로 1심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최종심에서는 어떻게 판결이 날지 궁금하다. 고유정은 철두철미하게 의붓아들은 죽이지 않았다고 우기고 있다. 전 남편살해는 우발적 살해행위였다고 인정하지만. 처음에는 전 남편도 죽이지 않았다고 했다. 수사관들이 들이닥쳤을 때부터 뻔뻔스럽게도. 아주 천연덕스럽게 주차장에서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안했는데.”라는 말을 하는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런데 더더욱 천인공노할 일은 자기가 죽였다면서도 시신의 행방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죽었고 죽인 사람도 있는데 시신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니 말이 되는가. 참으로 기이하지 않는가. 왜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까. 근원을 찾아가자면 바로 치(恥)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양심하고는 문 닫고 살았다는 뜻이다. 이런 현상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바로 어렸을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알려지기에는 고유정의 부모가 재력가라고 한다. 그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참으로 궁금해진다. 인간은 자고로 기질적 요인과 환경적 요인에 의해서 형성된다고 한다. 기질적 요인은 타고나는 것이다. 크게 보면 동양인과 서양인의 성격이 다르다. 대체로 동양인은 정적이고 서양인은 동적이라 한다. 세분화해 가면 같은 한국인이라 해도 각각의 집안 형질에 따라 성격들이 다르다. 환경 역시 영향을 미친다. 앞서 말한 동양인은 정적이고 서양인은 동적이라 할 수 있는 것은 동양인은 주로 초식을, 서양인은 육식을 주로 해왔기 때문이라 한다. 이는 환경적 요인이다. 결국 환경적 요인이 기질적 요인에, 기질적 요인이 환경적 요인에 상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사회복지에서는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 그의 환경에 대해 특히 숙고한다. 때문에 인간을 상황속의 인간, 환경속의 인간이라 한다. 상황과 환경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유정이 오늘날 저리도 엄청난 괴물인 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부모는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아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환경은 자신이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양육자가 중요해진다. 여하튼 고유정은 치(恥)가 고장 난 것만은 확실하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고유정 뿐일까.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정치계, 경제계, 문화계 등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두룩하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실제 사례들을 수없이 봐왔잖은가. 필부필부의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에도 수많은 부적인 사람들이 있잖은가. 때문에 이를 조금이라도 정화시키기 위해서는 치(恥)를 살릴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본다. 주변 환경의 개선 역시 중요하고…….    
    • 오피니언
    2020-06-24
  • '우물물은 강물을 범하지 않는다(井水不犯河水)'
    홍콩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다시 대규모 시위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다. 홍콩의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온 ‘민간인권전선’은 트위터를 통해 "홍콩 주권반환 기념일인 7월 1일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겠다"고 밝혔다.민간인권전선측은 국가보안법(홍콩의 국가 안전을 수호하는 법률 제도와 집행 기제를 건립하고 건전하게 하는 결정)이 홍콩기본법과 국제자유권규약(시민·정치권에 관한 국제규약)을 위반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또한 홍콩 시민들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홍콩 사법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되돌릴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혁명’을 계속할 것이라고 전했다.미국 경제전문 잡지 포춘은 영국이 홍콩의 주권을 중국으로 반환하기 2년 전인 1995년 6월호 커버스토리로 ‘홍콩의 사망(The Death of Hong Kong)’을 다룬 적이 있다. 홍콩 시위사태가 벌어진 이유는 ‘범죄인 인도법(일명 송환법)’ 개정 반대에서 비롯됐지만 그 이면에는 중국 정부가 강압적으로 추진해 온 ‘홍콩의 중국화 정책’에 대한 홍콩 시민들의 불만 때문이다.특히 중국 정부는 2047년까지 50년간 보장하기로 했던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지키지 않고 있다. 일국양제는 하나의 국가에 2개 체제, 다시 말해 국가는 사회주의 체제의 중국이지만 홍콩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정치 체제에 따른 각종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홍콩의 민주주의 체제와 자율성, 정체성을 지키려는 홍콩 시민들은 거대한 중국의 힘에 밀릴 수밖에 없다.서방은 ‘중국의 홍콩화’를 기대했지만 현실은 홍콩이 중국처럼 바뀌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칫하면 포춘의 예측이 맞아 떨어질 수도 있다. 지난해 홍콩을 달궜던 민주화 시위의 배경에는 홍콩의 극심한 불평등과 빈약한 사회보장시스템에 있다. 포용성 강화 없는 경제성장은 언제든 사회적 안정을 해치는 불씨로 작동할 수 있다. 홍콩 사태는 여러가지 정치적 이유도 있지만 결국 불평등의 문제가 가장 컸던 것 같다.주택 문제가 가장 극명한 것이지만 임금문제, 전무한 실업급여 등 복지시스템의 문제도 있다. 홍콩 젊은이들은 완전한 자유방임 경제에 내몰린 상황이다. 홍콩은 글로벌 금융의 중심지라 전 세계 인재들이 모이다보니 홍콩에서 태어나 사는 젊은이들은 글로벌 투자은행(IB) 등 전 세계 인재들과 홍콩에서 싸워야 한다. 일한 지 1개월 넘으면 언제든 해고가 가능할 정도로 노동시장은 너무나 유연하다.홍콩은 우리나라에 비해 물가가 1.5배 가까울 정도인데 대졸 초임은 월 200만원 언저리이며 즐비한 명품샵 등 화려한 모습도 있다. 지니계수가 0.54 정도로 굉장히 불평등이 심한 나라이기에 이번 시위에서 그런 부분들이 폭발한 것이다.홍콩의 어두운 이면이 완전히 드러난 이번 사태는 최근 전 세계적 저물가의 수요측면과 함께 사회적 안정 등을 볼 때 불평등 이슈, 소득분배의 형평성을 제고하는 여러 사회보장체계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는 시사점을 준다. 지난해 시위로 인해 홍콩의 경제성장률은 -2% 정도의 후퇴가 예상된다. 하지만 IMF 구제금융과 같은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낮다. 한때 ‘동양의 진주’로 불렸던 홍콩의 경제 전망은 암울하기만 하다.?홍콩 경제의 핵심인 금융업은 물론 그동안 불패 신화를 이어가던 홍콩의 부동산 시장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홍콩의 글로벌 금융허브로서의 기능은 중국경제 덕분에 있다. 중국 경제 자체가 10년 전부터 계속 위기설은 나오지만 자본시장 개방도가 워낙 다른 나라들과 다르고 정부의 통제수단도 여전히 많기 때문에 큰 위기를 겪을 가능성은 극히 낮다.일국양제 하에서 홍콩의 번영과 발전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다. 동맹인 미국이 최우선이지만 전략적 파트너인 중국과 적대관계가 되면 한반도에는 정말로 신냉전이 올 수 있다. 어떤 경우에도 두 나라와 우호 관계를 깨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실사구시의 지혜로 장기적 국익을 도모하는 전략이 절실한 때다.
    • 오피니언
    2020-06-23
비밀번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