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04-14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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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악마의 미소는 파멸의 전주곡
    “밤새 안녕!”이라더니. 4월의 어느 일요일 작은 오후. 힘겹게 걸어오는 노부부가 있었다. 손을 꼭 잡고 걷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다. 세상의 그 무엇도 이보다 아름답지는 않으리라. 비록 여며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만은 보고 있잖은가. 마음의 눈으로, 행복의 눈으로, 연민의 눈으로 그리고 사랑의 눈으로 자기 자신들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를 돌봤다. 할머니는 독일 전차군단 장교처럼 당당하고 꼿꼿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불편했던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돌보는 꼴이 됐다. 예전보다 나아진 것은 없지만 할머니의 급속한 노쇠화가 오히려 할아버지를 더 건강해 보이게 한 것이다. 이들은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주민이다. 할아버지 전직은 교장 선생이라 들었다. 기골이 장대하다. 이분들도 세월만은 비켜갈 수 없었나 보다. 인생사란 이런 것이다. 성서에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리라”했다. 즉 욕심이 사망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매사에 과한 욕심이 인생사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정치에 욕심을 많이 내는 경우 패가망신으로 귀결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경우, 마지막 임기를 마치고 불출마한다면 어느 정도의 돈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럭저럭 살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욕심보가 놓아주질 않는다. 때문에 공천 때부터 국회의원을 더하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공천을 통과해 본선에 오르면 더더욱 수많은 돈이 들어갈 것이다. 그러다가 낙선하면 대부분은 타격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차라리 공천에서 떨어져 버리면 더 나을지도 모르는데. 엘이치(LH)사태 역시 과한 욕심 때문이다. 결국 공개된 전과자가 되는 것 아닌가. 이런 날을 피하기 위해 차명으로 꼭꼭 숨은 사람들도 물론 있을 것이지만. 도사들은. 어떻게 찾을 것인가. 난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상당수는 피하지 못하고 당연히 칼날을 맞을 것이다. 욕심 때문이다. 유태 격언에 “큰 부자에게는 아들은 없다. 다만 상속인만이 있을 뿐이다.” 무섭지 않은가. 이런데도 사람들은 무한한 욕심을 부린다. 불화와 액운은 대부분 부자나 권력가에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돈이 많아지면서부터 가족끼리도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암투를 벌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이 분열시키는 것이다. 요물이다. 단체 역시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광주에 존재하는 모 봉사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다. 단체회비로 1년에 20만 원씩이나 내면서. 그 당시에는 상당히 큰돈이었다. 그때는 참여자도 적었다. 하지만 화기애애했다. 그런데 커지면서부터 문제가 시작됐다. 사회적 영향력도 따라서 커지면서 임원에게도 무게가 실려졌기 때문이다. 언젠가부터는 활동을 한 적도 없고 관심조차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암투도 자연스럽게 심해졌다. 결국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빼버리는 일도 벌어졌다. 볼썽사나운 모습이 계속 전개됐다. 이런 부정적 상황들이 결국 못된 중상모략과 투서를 일삼게까지 했다. 중상 모략가는 언제나 중상모략을 밥 먹듯이 한다. 투서쟁이는 날마다 투서에 영일이 없다. 이런 쓰레기들이 얻는 것은 무얼까. 남 못 되는 것 즐기는 일이다. 그러면서 더더욱 더럽고 징그러운 악마로 변해간다. 이 모든 것들의 근원은 욕심이다. 과한 욕심을 버려라. 중상모략하지 마라. 투서하지 말라. 이 모든 것들이 당사자 자신부터 죽이는 일이니까. 아무리 발버둥 쳐대도 앞서 말한 노부부 단계를 그 누구도 벗어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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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4
  • [호일칼럼]가족잔치된 목포관광사진전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이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LH 등 일부 공직자들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다. 민심은 여당의 서울·부산시장 재선거 참패로 나타났다.이번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와 목포사진협회가 불공정 사고를 쳤다.목포사진작가회는 목포시에서 예산을 지원받아 한국사진작가협회의 지휘감독 아래  수년동안 목포시 관광 홍보를 위한 목포관광사진전을 공모, 전시해왔다.목포관광사진전은 2016년 시가 직접 추진했으나 2017, 2018년에는 한국사진작가협회 목포지부에 보조금을 지급해 개최했다.이 과정에서 목포관광사진전 주최측 인사의 부인, 며느리, 딸, 아들 등 대리인의 이름으로 출품한 사진들이 상금을 독식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또 수년동안 상금을 탄 주최측 인사의 부인과 딸의 작품을 확인한 결과 동일한 카메라 렌즈로 촬영한 사실이 드러났다.상금을 받은 딸의 작품 또한 아버지가 목포사진전에 같은 사진을 전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등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특히 공모전 진행 과정에서 목포사진작가회는 전국 다수의 출품자들로부터 참가비만 받고 탈락시키고 주최측의 부인, 며느리, 아들, 딸 등에게 대리출품케 해 상금 수천만원을 부정수령한 것으로 나타났다. 목포사진협회 전임 집행부를 맡았던 작가들은 낌새를 눈치채고 부정을 중지하라 충고했지만 현 집행부는 “벌금만 받으면 된다. 한국사진협회본부에서 직권정지 몇년받으면 된다”는 식으로 무시했다고 한다.그동안 국내 사진업계에서도 목포관광사진전 등과 관련한 소문이 무성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목포의 한 지역언론이 사진업계 전임 집행부 및 전문가들과 실제 원본데이터들을 분석한 결과 주최 측에서 상금을 싹쓸이 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지어 한 대회에서만 목포시장상 300만원을 내리 2년 동안 수상한 작품이 동일한 카메라로 촬영된 특정인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상금 150만원씩을 주최측 다른 인사의 부인, 며느리가 차지했다. 금상 300만원을 타간 고모씨의 ‘설경’이란 작품은 원본파일정보를 변조시켜 목포시에 제출했다. 프로사진작가협회의 한 작가는 “신안군의 전국대회와는 달리 목포는 대회포스터 한장 보내지 않았다”며 “이는 고의로 다른 작가들의 출품을 막고 자기들끼리 상금을 독식하려는 목적이 있었지 않나하는 의심이 든다”고 폭로했다.사진협회본부는 전국의 관광전 외에도 매년 별도의 촬영대회를 개최하는데 그때에도 목포시에서 광고비명목으로 400만원과 심사위원 파견비 등을 받아가는데 1년에 많게는 광고비로 800만원, 심사비 등 총 1000만원을 받아가면서 시상금에도 관여했다. 관광전 이외에도 촬영 대회에서도 집행부 가족이 은상을 받은 것으로 밝혀져 신성한 전국대회를 세금을 활용한 사실상 가족잔치로 전럭시켰다는 비핀을 받고 있다.목포시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감사 착수와 당국에 수사의뢰 의사를 밝혔고 목포시의회도 목포시 소관부서를 불러 사태를 파악하고 수사를 촉구했다. 목포시민들도 ‘대국민 사기극 재발방지’란 제목으로 서명을 받아 대통령에게 직접 촉구하기로 했다. 독재정부와 싸워 이겼고 군사정권때 민주화를 이루고 정권적폐도 청산한 위대한 우리국민이다. 이제 부정부패가 없는 나라를 세워야 희망이 있는 세상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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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3
  • 순천 아이미코 병원 안용환 의사
    밤이 깊다. 하지만 좀처럼 잠이 오지 않는다. 웬일일까? 무슨 생각을 그리할까? 살아생전에 경찰서와 병원을 멀리 하라는 선인들의 말, 그 말이 뇌리를 스친다. 삶에 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순천 아이미코 병원 소화기내과 안용환 원장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진정한 의사였고 박사였다. 환자의 마음을 어루만지면서 질병치료를 하는 순수한 의술을 지니고 있다.그는 언제나 히포크라테스선서와 제네바선언을 머릿속으로 각인하면서 의술을 펼치고 있다. 환자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상처를 치유하는 인성까지 갖추었다. 항시 웃음 띤 얼굴로 희망적인 말로써 환자를 위로하는 참신한 의사다. 상처부위를 세밀하게 관찰, 판독하는가 하면 오진을 용납지 않으려는 철학을 지녔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그곳 병원은 그를 찾는 환자들로 줄을 잇고 있다. 안 원장의 환자사랑이 물씬 풍긴다. 종합병원도 아닌 작은 병원으로써 환자들이 밀려오는 것은 안 원장의 환자사랑이 아닐까 싶다. 의학지식과 경험이 많을수록 명예와 위상이  높아질 것이라 믿는다.잠시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살펴볼까 한다. “나는 의술의 신 아폴론과 아스클레피오스와 휘기에이아와 파나케이아를 비롯한 모든 남신들과 여신들을 증언자들로 삼으며 이 신들께 맹세코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다음 선서와 서약을 이행할 것이다. 내게 이 의술을 가르쳐준 스승을 내 부모와 똑같다고 여기고 삶을 함께 하며 그가 궁핍할 때에 나의 것을 그와 나누고, 그의 자손들을 내 형제와 같이 생각하고 그들이 이 기술을 배우고자 하면 보수와 서약 없이 가르쳐줄 것이다. 의료지침과 강의 및 그 밖에 모든 가르침은 나의 아들과 나를 가르친 스승의 아들 및 의료 관습에 따라 서약하고 선서한 학생들 말고는 어느 누구에게도 전해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그 누가 요구해도 치명적인 약을 주지 않을 것이며, 그와 같은 조언을 해주지도 않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성에게 임신중절용 페서리를 주지도 않을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나는 절개를 하지 않을 것이고 결석환자라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맡길 것이다. 나는 어느 집을 방문하든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방문할 것이지만, 고의로 온갖 올바르지 못한 행위나 타락 행위를, 특히 자유인이든 노예이든 남자나 여자와의 성적 관계를 금할 것이다. 나는 치료하는 중에는 물론이고 치료하지 않을 때조차도 사람들의 삶에 관해 내가 보거나 들은 것은 무엇이든 결코 발설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서, 나는 그러한 것들을 성스러운 비밀이라고 여겨 누설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선서를 이행하고 어기지 않으면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좋은 평판을 받고 나의 삶과 기술을 향유할 수 있길 기원하고, 내가 선서를 어기고 거짓 맹세를 하는 것이라면 이와 반대되는 일이 있길 기원한다.”그렇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통한 그들의 언행은 남달라야 한다. 그러나 그들의 현실은 너무도 동떨어진 의술로 변화되고 있다. 환자를 접할 때부터 모두가 돈과 결부시키는 상술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글쎄다. 도시가 팽창할수록 병원수도 늘어만 간다. 그것은 인구증가에 따른 도시민들의 환자수가 증가하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병들어 아픔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표정은 우울하면서도 어둡다. 특히 죽음과 연결되는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의 모습은 심오하다. 웃음을 찾아볼 수가 없고 근심만이 가득 차 있다. 특히 돈이 없는 환자일수록 중병을 앓고 죽음의 길을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산업사회가 발달되면 될수록 황금만능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산업사회로 변화되고 있기에 더욱 그렇다. 현 사회 전반에 걸쳐서 돈의 필요성과 돈의 위력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자본주의사회 취약성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학계만은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황금을 추구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의술은 사람을 다루는 인술이다. 우울하고 어두운 분위기를 명랑하고 밝은 분위기로 바꿔주는 의료계의 진상을 보고 싶다. 물론 그들에게도 보이지 않는 애로사항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가정생활과 자신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희생적 삶이 그들의 생활상이다. 안타까운 생활굴레에 갇혀 살아가는지도 모를 일이다.순천 아이미코 안용환 의사는 요즘 찾아보기 힘든 의사임에 틀림없다. 환자를 자신의 가족처럼 친절하게 대하고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의사박사다. 게다가 참한 인성으로 의사의 덕목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의사의 말 한마디가 희비를 가름한다고 했다. 의사의 따스하고 희망 섞인 한마디 말은 환자들을 낫게 하는 활력소가 아닐까 싶다. 안용환 의사의 따뜻하고 상냥한 말씨가 현사회의 울림통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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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12
  • [호일칼럼]치매
    “어디로 모실까요”, “쭉 바로 갑시다”이른 아침 5시쯤 등산복 차림의 노인은 어느 택시기사의 행선지 물음에 계속 ”쭉 갑시다“만 뇌이고 있었다. 택시기사는‘쭉 갑시다’를 반복하는 언행이 심상치 않아 치매라 직감하고 가까운 파출소로 안내하려는데 “사람 참 말이 많네“하면서 택시비를 주고 그냥 내려 버렸다.이른 아침 쭉 바로 가려는 노인의 행선지는 과연 어디였을까? 택시기사의 말대로라면 그 노인은 치매기가 있음이 분명하지만, 가정적으로 좋지 않은 일이 있어 누구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아 정처 없이 먼 길을 떠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택시기사의 궁금증은 아침 일찍 수원행 새마을호 기차를 타기 위해 택시에 승차한 나에게 방금 있었던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했다.치매 노인! 갑자기 택시기사로부터 치매 노인에 관한 얘기를 듣자 남의 일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예전 어느 모임에서 회원의 아버지가 치매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그 아버지는 평소 학식과 덕망이 높은 분으로 유명한 분인데 예절 바르기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어느 날 그 분은 아들에게 “안녕히 주무셨습니까“하고 큰절로 인사를 했다. 그 후 아침이면 날마다 빼놓지 않고 문안 인사를 하는 바람에 치매 아버지를 대할 때마다 가족과 아들의 처절한 슬픔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당시 아들은 치매 아버지의 아침 문안 인사에 지쳐 그만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존대말로 아침 인사를 하다니 끔찍한 일이다. 치매는 이처럼 소리없이 찾아든 가정파괴범이다. 고령화 시대에 들어서자 치매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치매 돌봄이 역할이 매우 힘들어 1년에 약 10만 명의 간병인이 직장을 떠나고, 직장과 가정 돌봄을 동시에 병행하는 사람은 240만명이나 된다. 이는 사회가 늙어가며 그에 따른 치매 케어 문제가 가정마다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다는 것을 의미한다.우리나라 인구구조의 변동이 빨라지고 있다. 현재 만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수는 850여만 명, 치매 노인은 제주도 인구보다 많은 81만6000명에 달하나 점차적으로 노인 인구의 비율이 높아지면서 2024년에는 치매환자 100만명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는 세계 1위이다. 그리고 급속한 고령화는 치매 발병률도 그만큼 높아 치매 질환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조만간 집집마다 케어 문제에 봉착할 것으로 보인다.며칠 전 아침 5시쯤에 방향감각을 잃고 무조건 “쭉 바로 가자“하시던 택시 승객 노인은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몇 번이고 노인에게 행선지를 묻고 또 물어 마침내 ++파출소로 인계 하려던 택시 기사! 그 택시기사의 인간적인 배려와 어른에 대한 공경심과 봉사정신은 귀감이 될만한 선행이고 남이지만 몇십 번 칭찬해도 부족할 효행이다.   치매는 더 이상 노인에게만 국한되는 질병은 아니다. 30~40대 젊은층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 이유로는 혈관질환, 스트레스, 우울증과 유전이 손꼽히고 있다.정상적인 사람이라도 고혈압, 고지혈증, 당뇨병, 심장병 등이 있으면 뇌의 혈관에 영양과 산소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을 때, 뇌세포가 서서히 파괴되어 치매에 걸릴 가능성이 있다.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다. 따라서 치매의 특성상 일단 치매에 걸리면 당사자뿐 아니라 주변 가족들의 상실감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현재의 추세라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가정은 치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봐야한다. 치매 행동은 환자의 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치매에 걸리면 평소에 욕심이 많았던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치게 되고, 언사가 안 좋았던 사람은 마구 욕설을 지껄이게 된다.치매는 행복한 가정에 살며시 찾아오는 가정파괴범이다.‘긴 병에 효자없다’는 말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 오피니언
    2021-04-11
  • 순천과의 깊은 인연 이순신
    대한민국에서 가장 존경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이라면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을 들 수 있습니다. 오는 4월 28일은 476돌이 되는 이순신 장군 탄신일입니다. 1592년 발발하여 7년간 진행되었던 임진왜란은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큰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권율 도원수 등 국난을 극복한 많은 장수들이 있었으나 유독 충무공에게만은 성웅이라는 칭호가 주어졌습니다. 왜일까요? 세 번의 최북단 변방근무, 두 번의 파직, 혹독한 고문, 그리고 백의종군 등 보통사람이면 그런 상황에서 나라를 위해 또 싸울 수 있었을까요? 그러나 이순신은 단 한마디의 불평도 없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분이기에 성웅이라는 칭호가 주어졌다고 봅니다.그 중에서도 순천 지역에서 있었던 왜교성 전투는 조선과 일본의 긴 전쟁을 종결시키는 중요한 전투로 사서에 기록되어 있으며, 순천왜성, 검단산성, 충무사의 유적지는 임란전적에 대한 순천 지역의 문화유산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이런 훌륭한 분과 순천이 깊은 인연을 맺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때 좌수영(순천)이나 통제영(한산도, 보화도, 고금도)이 있었던 곳을 제외하고는 그 체재기간이나 전투면에서 단연 순천 지역을 능가하는 지역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순천에 무려 8회에 걸쳐 연 65일 간이나 체재했고 그 중 신성포 앞바다에서 6일 간의 전투는 그야말로 혈투로써 최후의 관음포해전(속칭 노량대첩) 다음가는 처절하고도 한 맺힌 전투로 피아간 전사자 6700여명, 전선망실 80여척이나 되는 치열한 전투였습니다.과거에 일어났던 역사의 흔적을 후손에게 왜곡 없이 전달하여 부끄러운 과거는 교훈으로 삼고, 자랑스러운 일은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임진왜란이란 전란 속에서 우리 지역이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후손에게 올바르게 알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400년이 넘는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도 충무공 이순신의 삶은 여전히 우리에게 깊은 감명을 주고 있습니다. 충무공 이순신은 부임 후 곧바로 군관 나대용을 시켜 거북선을 건조했으며, 명랑대첩을 비롯하여 한산도대첩, 노량해전 등 임진왜란 당시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나라를 기적처럼 구해냈기 때문입니다. 23전 23승이라는 불패신화를 생각하면서 앞으로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난중일기를 통해서 역사의식과 애국정신을 마음에 되새기게 하고 임란 7년간의 전쟁 속에서 겪은 슬픔과 고뇌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국가의 안위만을 염려하는 백의종군과 필사즉사 정신은 우리 겨레가 가슴에 새겨야 할 영원한 메시지로 남아있습니다. 특히 임란 당시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현 여수시)는 순천부(현 순천시)의 관할지역으로 충무공의 흔적이 도처에 남아 있는 역사의 고을이며 충무공의 위대한 생애와 정신을 되새겨 보는 것은 후대를 살아가는 순천시민으로서 당연한 도리라고 믿습니다.우리는 자라는 청소년과 순천시민들에게 긍지와 자부심을 높일 수 있도록 순천 지역과 깊은 인연을 맺은 이순신 장군의 활동이 후손들에게 잘 전승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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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04-06
  • 상조, 믿어볼까 알아볼까?
    여러 분야로 범위를 넓히고는 있습니다만, 상조의 주된 업무는 장례입니다.  요즘에는 과거처럼 번잡하거나 요란하지 않고 많이 간편해졌지요.그럼 요즘 장례 절차가 어떤지 알아 볼까요? 일이 생기면 먼저 고인(故人)을 어떻게 모실지 정해야 합니다. 화장이 보편화됐지만 매장을 원하는 경우도 적지 않고, 화장하더라도 납골당 안치, 납골 평장(平葬), 수목장(樹木葬)을 비롯한 자연장 등 여러 방법이 있으니까요.그 다음 장례식장과 빈소 규모, 장례 일수(日數)부터 수의(壽衣), 상주들 상복, 제단 상(床) 차림과 장식, 운구 차량까지 많은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부고(訃告)와 조문객 응대, 음식 장만과 도우미까지 챙겨야지요. 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짧은 시간 동안 해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누가, 어떤 근거로 하지요? 판단할 전문 지식이 없는 데다, 비교할 대상은 무수히 많은데 말입니다. 결국 ‘거시기’ 수준의 소문이나, 그 때 우연히 만나게 된 장례업 관계자의 조언이나 요구가 결정적 역할을 합니다.돌이킬 길 없는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가 ‘주먹구구식(式)’으로 치러지는 것입니다. 장례를 마친 다음 여러 의혹이 생겨도 확인하기 어렵고, 설령 뚜렷한 문제가 드러나더라도 대부분 귀찮다거나 체면을 챙긴다며 덮어버립니다.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준비’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러나 그것 또한 쉽지 않다 보니, 상조가 효과적인 대안으로 시작된 것이지요. 곡절은 있었지만 상조의 몇몇 문제는 대부분 해결됐고, 급변하는 사회 통념이나 추세에 적극 대응하고 있습니다. 일정 부분 합리적인 방향으로 선도하고 있기도 하지요.안타까운 점은, 과거의 편견(偏見)이 선입견(先入見)으로 작용하고 마침내 고정관념이 돼버린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상조(업계)에도 일부 책임이 있지만, 정확한 실체를 ‘알려고’ 하지 않고 한정된 지식이나 제한된 관점을 ‘믿으려고만’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그런 틈을 노려, 여러 개인과 집단이 어지럽게 경쟁하고 있습니다. 장례의 특수성을 빌미로, 과장된 전문성을 내세우고, 백일몽(白日夢) 같은 혜택을 들먹이며, 결국 잇속을 챙기려는 속셈이지요.  현 상황을 보면, 많은 가능성 중에서 선택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그대로고, 혼란이 새로운 양상으로 더욱 심각해진 느낌입니다. 이럴 바에야 앞일에 대비한다고 미리 걱정하고 수고하느니, 큰 일이 닥쳤을 때 적당히 대처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장례를 가족 몇 사람이 치르기는 어렵거나 불가능하고, 그래서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고, 그 검증된 실행 주체가 ‘상조(업체)’라는 데 공감한다면 우리가 할 일은 확실합니다.거창한 규모나, 호화로운 광고(廣告)나, 달콤한 사탕 같은 꼬드김에 휘둘릴 일이 아닙니다. 확고한 기준을 세우고 철저히 적용해 시비(是非)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냥 믿지 말고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금호라이프 홍보부장 sesank@naver.com
    • 오피니언
    2021-04-06
  • [호일칼럼]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가 요즈음 세태를 대변하고 있다. 이는 ‘그때 그때 달라요’의 뒤를 이은 말이다. 그 ‘이헌령 비헌령’은 군사독재시절의 굴절된 역사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자들이 곧 법이고 정의일 때의 한탄이기도 했다.하긴 요즈음 김학의 동영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는 ‘그때 그때 달라요’가 지금도 횡행하는 사회구나 한다. 도대체 무엇이 감학의 사건의 핵심이고 본질인지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김학의 성폭력이 나쁜건지, 그를 출국 못하게 한 것이 나쁜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백만번쯤 접어 김학의의 자유와 인권을 침해한 것이 맞다고 하자. 그럼 김학의는 불법한 자들에게 탄압을 받은 피해자이며, 억울한 희생자일 것이다. 또한 김학의는 비슷한 숱한 성폭력 가해자들을 대변하는 이 시대의 영웅일 것이다.오호 통재라! 아무튼 그건 그렇고 그땐 맞고 지금은 다르다를 대표할만한 현 사회의 현상 중에 집과 토지가 있다. 사실 이 부동산 사태의 본질은 주택을 주거가 아닌 소유의 개념으로 보는 데서 출발한다.좋은 집에서 살고, 그 집의 가격이 눈만 뜨면 껑충껑충 뛰어 부자가 된다면 누가 마다할까? 경험해 봤을지 모르지만 호주머니에 십여만원의 용돈만 넣고 외출해도 마음이 든든하다. 우연히 만난 친구와 밥 한끼 먹을 수 있고, 혹여 옛 스승이라도 뵙게 되면 슬며시 5만원쯤 용돈까지 넣어 드릴 수 있으니 걸음걸이도 당당해진다. 하지만 빈 호주머니일 때는 혹시 누굴 만날까봐 괜스레 마음이 조마조마해지는게 사실이다.그런데 몇억, 아니 몇 십억 집을 지니고 있으면 눈에 뵈는 게 다 무지개 아니겠느냐? 한때는…, 아니다. 우린 언제나 그런 부동산 부자를 부러워하고 그렇게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칫 투기꾼으로 몰릴 가능성이 크고, 사회와 경제를 교란시킨 주범이 될 수도 있으니,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린 게 부동산의 위험성이다.그렇게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경우는 사회적인 문제부터 자잘한 일상사에 걸쳐 수없이 많다. 하다못해 강의 시간에 여성의 스커트로 농담하던 일도, 또 그걸 언급하는 것도 2차 피해니 어쩌니 하는 세상이다. 아무튼 매사를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에 견주어 보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아예 입에 지퍼를 달아야 사는 세상이다.장자는 중국의 성인이지만, 2300여년의 세월을 넘어 이 시대의 스승이다. 선생의 의복은 거칠고 남루했으며 신발은 끈으로 발에 묶어야 했다. 그러나 선생은 자신이 비천하거나 가난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선생이 부인의 상을 당했을 때다. 친구 혜시가 조문을 왔는데 선생은 대야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 혜시가 어찌 이럴 수 있느냐고 따지자, 선생은 ‘왜 슬프지 않겠느냐? 그러나 생각해보니 아내는 애당초 무에서 삶을 얻었고, 그 삶이 다시 죽음이 되었으니 이는 4계절의 순환과 같다. 아내는 지금 우주안에 잠들어 있다. 슬피 우는 것은 자연의 이치를 모르는 것과 같다’고 대답했다. 선생의 임종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장례식을 성대히 치르자고 의논했다. 이에 장자는 ‘나는 천지로 관을 삼고 일월로 연벽을, 성신으로 구슬을 삼으니 만물이 조상객이다. 이에 무엇이 더 필요한가?’라며 의논을 중단시켰다. 그러니 장자 선생 같은 분이 아니고서야 어찌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겠는가? 따져보면 부동산 문제의 본질은 우리 모두의 마음에 있는 주거의 소유개념, 돈에 대한 탐욕에 있다. 누굴 탓할 문제가 아니다.그래서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의 세상에서의 바람은 정치지도자의 결단력이다. 일이 터지면 사과하고 고개 숙이지 말고 미리 예단하여 과감하게 치고 나가는 지도자였으면 한다. 더하여 인정도 있고, 무엇보다 주변에 대한 의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기 일자리창출을 했구먼’하는 외모만 희여멀끔한게 아닌, 결단력과 용기로 내면이 튼튼한 사람이 대통령도 시장도 되었으면 좋겠다. 이것만큼은 그때도 맞고 지금도, 앞으로도 맞았으면 한다.  
    • 오피니언
    2021-04-05
  • [호일칼럼]유아디지털 교육과 뇌 발달
    디지털 시대, 디지털적 삶을 살아가게 될 아이들의 교육문제는 중요하다. 유아들의 뇌는 성장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디지털적 교육은 매우 신중한 선택이어야 한다. 그러나 디지털의 대세적 흐름은 이미 유아들을 디지털화시키고 있다. 핵가족 부모에게 ‘스마트폰’은 유용했다. 집안일할 때, 외식할 때, 아이의 눈과 손발을 묶어두기 위해 스마트폰 동영상을 틀어 주고 일하거나 밥을 먹는다. 교육용 앱도 많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부모는 유모차에 스마트폰을 장착해두기까지 한다. 그러는 사이 3세 이하 아이들의 스마트폰 과의존 현상이 해년마다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는 우려를 낳고 있다.(육아정책 연구소)발달심리학적으로 0~3세까지의 영유아들은 감정 정서의 뇌가 가장 빠르고 예민하게 발달하며 이는 후일 인성의 기초가 되므로 일생 중 가장 중요하다. 이 시기의 아이는 입 손 눈 코 귀 등의 오감을 통해 세상을 탐색, 직접 만져보고 부비며 오감을 자극 받는 아날로그적 체험이라야 한다. 이때 스마트폰이 발달에 지장을 초래하면 후일 정신 및 정서 장애로 연결된다. 만 3~6세 유아 때는 인간의 종합적인 사고와 창의력, 판단력, 주의 집중력, 감정의 뇌를 조절하는 전두엽이 발달하는 시기로 인간성, 도덕성 등이 발달한다. 이때 인간성을 잘 기르지 못하면 후일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서유헌 뇌과학자)  이러한 뇌 발달의 과정을 무시한 채 스마트 폰을 지속적으로 줄 경우 두뇌발달의 불균형은 물론 정서 발달, 사회성 발달에 지장을 초래 할 수 있고 주의집중 산만, 한가지 물건에 집착, ADHD(과잉행동장애)등이 나타나 생활의 부적응을 초래 할 수 있다. 따라서 유아에게 디지털영상 학습이나 영상을 보여주는 것은 심리적 학대일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 과의존(중독) 아동의 경우 뇌 발달의 불균형은 물론 뇌신경호르몬 기능장애, 뇌기능손상 및 회로의 퇴화, 블루라이트로 인한 수면호르몬인 멜라토닌 감소로 수면장애와 수면부족, 폭력성, 충동조절 어려움, 사회성발달 저하 등 돌이키기 힘든 폐해가 있을 수 있다고 경고 한다.(경희대 소아청소년과 이은혜 교수)하지만 자본주의의 눈은 상업용 에듀테크 시장 활성화를 서두른다. 아동용 디지털 학습 지원  플랫폼을 마련하여 유아교육자들을 유혹, 각종 포럼이나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이 혼돈의 소용돌이에서 아이들을 실험대에 올려놓아야 하는지 갈등하는 학부모들을 생각하면 유아교육자로서 우려의 마음이 크다.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언론 인터뷰에서 “세 자녀의 스마트폰 사용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자녀가 14세가 될 때까지 스마트폰 사용을 금지하고 식탁에서는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없도록 한다. 또 취침 전에도 (스마트폰 등) IT기기를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아이폰을 만든 잡스도 아이들이 아이패드를 못쓰게 했는데 이는 스마트폰의 심각성 때문이다. 왜 우리는 디지털의 시조인 그들의 행동에 주목하는가?일찍 주면 줄수록 아이들의 중독위험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빌게이츠처럼 14세를 고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코로나 집콕의 현실은 가혹하다. 최대한 늦추는 대신 놀이와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주자. 또한 외출시 아이에게 필요한 장난감과 동화책 등을 준비해 엄마의 스마트폰을 아이 장난감으로 대체하거나 부모의 휴식과 자녀의 뇌망가뜨리기를 바꾸지 말아야 한다. 카톨릭의대 김영훈 교수는 최대 만 6세까지는 늦춰보라 권유한다. 그리고 부모와 함께 세운 계획적인 사용, 사용시간의 엄격한 준수, 부모의 감독과 지도가 필요하다 한다. 현실적으로 어렵지만 부모의 사랑과 교육의지가 자녀 디지털교육의 시기를 결정할 것이다. 디지털 매체는 유아를 신동으로 만들기는 커녕 유아의 뇌에 유해하다. 유아들의 뇌는 오감을 통한 직접체험의 원시적 환경에서 잘 발달하기 때문이다. 영유아는 가르친다기보다 이끌어 주고 도와주며 기다려 주고 지켜주어야 한다.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유아들의 자연의 시간표를 문명의 디지털시간 표에 맞춰 놓으면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 오피니언
    2021-04-04
  • [호일칼럼]영화 ‘미나리’와 행복지수
    영화 ‘미나리’가 미국 ‘골든 글로브상’을 받은 데 이어 ‘아카데미상’ 수상 후보작으로 떠오르며 미나리 소비가 늘어났다는 소식이다. ‘미나리(Minari)’는 2020년 개봉한 미국 드라마 영화로, 정이삭이 감독과 각본을 맡았다. 1980년대 미국 아칸소로 이주한 한인 가정의 이야기다. 제이컵(스티븐 연)은 캘리포니아에서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다 비옥한 땅에서 새 출발을 하겠다며 아칸소의 시골 벌판에 트레일러 집을 마련하고 땅을 일궈 한국 채소를 기른다. 남편의 뜻을 따라 아칸소에 오긴 했지만,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아이들을 위해 캘리포니아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모니카의 어머니 순자(윤여정)가 이들을 돕기 위해 한국에서 바리바리 싸 온 보따리에는 고춧가루며 마른 멸치 등이 가득하다. 낯선 환경에서 끈끈한 가족애와 서로 의지하는 모습은 핵가족화로 인간애가 사라져 가는 현 세태에 가족사랑에 대한 한국적 정서가 물씬 풍긴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미국으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은 다른 채소보다 잘 자람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는 정이삭 감독은 미나리의 질긴 생명력과 강한 적응력을 “딸에게 들려주고 싶었다”라는 것이다. 풀 냄새 가득한 푸른 초원에 전개되는 과정에서 실망과 분노, 좌절과 갈등, 이어지는 기대, 화마 속에 가재도구를 끄집어내고, 방황하는 할머니와 길을 막는 손자, 모든 것이 불타버린 자리에도 가족이란 이름으로 사랑의 꽃 피어오름이 클로즈업되며 우리의 뇌는 마치 프로그래밍이 되어 있기라도 하듯 순환 과정을 되풀이되며 끝난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시아계 혐오 범죄나 세계 곳곳에서 다른 인종을 이방인으로 보는 인종차별, 성차별, 계급차별로 쉽게 배제하려는 현실은 우리가 그토록 이루려고 달려왔던 목표들이 과연 행복을 가져다주는 걸까 회의감마저 들게 한다. 우리는 그 목표를 꿈이라고 말한다. 왜 우리는 목표에 자석처럼 끌려가는 것일까? 목표가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불나방이 불빛에 이끌리어 가듯이 그 대상에 취하는 것이다. 한 시절 손자에게 미나리가 잘 자라고 있음을 천연스럽게 보여주었던 행복, 불타버린 농장에서 휘청거리며 길을 잃고 방황하는 좌절, 슬픈 현실이지만 ‘아메리칸 드림’은 진행형이다. 오직 딸 내외의 아메리칸 꿈을 이루기 위한 윤여정의 연기는 조연에 불과하지만, 주연보다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참 주연의 삶은 일상에 스며있는 소소한 아름다운 것들임을 인식해야 한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는 투기의 광풍. 아파트 투기다, 땅따먹기다. 공정성을 잃은 공공 적들의 광분, 불빛 주위를 맴도는 수많은 불나방 같은 군상, 새벽이슬에 허상의 꿈이 되어 소위 그들이 애지중지하며 파놓은 욕망의 무덤엔 일장춘몽 나방의 사체처럼 쌓일 뿐이다. 매년 3월 20일은 ‘세계 행복의 날’이다. 대한민국은 GDP 세계 10위, 개인 GDP 25위, 행복지수 62위((50.88)이다. 행복지수는 2013년 41위가 최고 성적으로 이후, 50위권에 머물다 2020년 61위, 올해는 62위로 한 계단 내려왔다. 국민 행복도는 118위로 초라한 행복성적이다. 행복도가 높은 선진국의 공통된 특징은 높은 신뢰다. 행복을 이루기 위해 달려왔던 수많은 시간 동안 쌓인 피로와 메말라 버린 감정…. 시간에 쫓겨 온 삶의 시간, 작금의 LH 사태는 공공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고 불신을 양산한 참사다. 공공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정글 같은 각자도생의 각박한 현실이 고달프게 펼쳐진다. 서로 물고 물어뜯는 사회가 행복할 리 없다. 정의와 공정을 좀 먹어 대한민국은 더욱 피폐해질 뿐이다. 아름다운 삶의 향연에서 우리는 주인공이 되어 살아가지만, 때론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 조연의 역할을 할 때도 많다. 우리는 함께 나누며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기에 조연의 역할이 필요한 것이다. 미국은 물론, 한국에서도 벌어지는 현실들은 영화 ‘미나리’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과연 양국 모두가 제대로 접근하고 있는지 깊게 고민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여우조연상 후보에 오른 윤여정이 돋보이는 것은 일상에 스며있는 소소한 행복이 신뢰 사회의 초석임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 오피니언
    2021-04-01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있다. 인간의 본성일지도 모른다. 나쁜 행위라고 말할 수도 없다. 열심히 노력해서 인정받으려는 것이 결코 잘못된 행위는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하게 집착하면 강박관념이 생긴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과도한 불안이 자신을 덮쳐버릴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회복지학도들이 사회복지현장실습을 마치고 돌아와서 마지막 과정으로 발표를 할 때 너무 잘하고자 하는 생각만 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조그만 실수라도 해서 발표를 망칠까 걱정하면서 불안해할 것이다. 또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과도한 분노를 표하기도 할 것이다. 어떤 사람이 프로젝트를 수행한 후 회사대표로부터 약간의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은 일이 있다. 그런데 이를 자신에 대한 비난으로 인식해버렸다. 과도한 인정욕구 때문이다. 무조건 좋은 이야기, 칭찬해주는 말만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표가 미미한 지적만 해도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공포. 그래서 버림받을 것 같은 두려움이 엄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방어적으로 드러내야 했다. 때문에 강한 분노와 불만으로 표출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어떻게 항상 인정해 주고 받아줄 수만 있겠는가. 소아병적인 인정욕구는 오히려 자신의 성장만 방해할 뿐이다. 상대방으로부터 인정받기는 정말 쉽지 않다. 상대방이 인정해 준다고 하더라도 사실 그때뿐이다. 그런데도 이에 집착하면 늘 인정받음의 허기짐이라는 늪에 빠질 수 있다. 이런 경우 혼자 해결하기 어려우면 상담 기관을 활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이마저도 자존심이 상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런 지경까지 이르게 되면 백약이 무효다. 이럴 때는 제도권 내의 신앙을 가져볼 필요도 있다. 필자는 다양한 사회복지학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강의 시간에 학생들에게 가끔씩 얘기한다. 무종교라면 그 어떤 종교라도 가져보라고. 제도권 종교에 한해서. 종교의 기본사상은 사랑이다. 어떤 종교이든지 간에. 사랑이 있어야 사회복지 대상자들을 별다른 거부반응 없이 돌볼 수 있다. 인정을 못 받았다고 애달파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다. 신앙을 가져보면 달라질 수 있다. 신앙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이 믿는 신으로부터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삶이다. 늘 기다려주고 베풀어주는 신. 사랑의 신을 마음 안에서 체험하고 모시고 산다면 그 무엇보다도 두려운 것이 없을 것이다. 성서에 “인정을 받는 사람은 스스로 자기 자신을 내세우는 자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세워 주시는 사람이다”(2코린 10.18).“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 스스로 잘났다고 내세우는 사람은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겸손이다. 죄 없는 신과 같은 존재로 스스로를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자각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역설적이지만 그 순간부터 신과 가까이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즉, 신과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자리는 바로 아래로부터의 삶이다. 진정한 사랑은 자기 자신의 낮춤으로부터 시작된다. 자기 자신을 가장 낮추는 자는 떨어질 것이 없다. 그래서 인정받기 위해 노력할 필요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편하겠는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그렇잖은가.
    • 오피니언
    2021-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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