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0-01-2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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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경이 있는 경전선 추억
    경전선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연결한 철도라는 뜻을 담아 머리글자를 넣어 경전선이라 명명하였다. 경부선 삼랑진역과 호남선 송정역을 잇는 총연장 300.6Km를 말한다. 이 구간 선로부설의 역사는 삼랑진~마산을 잇는 마산선 계통(1905년 5.26일)을 시작으로 영호남을 잇는 기찻길이다. 자연지형과 촌락에 따라 부설하다 보니 곡선구간이 많고 노반이 약해 마지막 남은 느림과 낭만의 대명사가 붙어졌다. KTX가 300Km/h, 준 고속열차가 250Km/h로 달리는 반나절 생활권 시대, 6시간 이상 운행됨을 낭만으로 포장한 것이 타당할까? 지금은 철도박물관에서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는 역들, 쉼표란 수식어가 붙은 간이역을 불러본다. 삼랑진역에 들어선 열차는 낙동강~한림정~진영~창원~마산~중리~산인~함안~군북~원북~평촌~진주수목원~반성~진성~갈촌~남문산~개양~진주~유수~완사~다솔사~북천~양보~횡천~하동~진상~옥곡~골약~광양~평화~순천~수덕~원창~구용~벌교~조성~예당~득량~보성~광곡~명봉~도림~이양~석정리~입교~능주~만수~화순~앵남~남평~효천~동송정~광주 송정역에 이른다. 함석양동이에 담은 재첩국을 진주로 팔러가는 ‘재첩사이소’소리가 진한 국물처럼 울려오면 하동역이다. 섬진강 철교, 봉황이 운다는 뜻의 명봉역, 여름의 향기 촬영장소로 명소가 된 빨간 벽돌의 아담함. 청량한 공기만큼 해맑게 핀 벚꽃, 부잣집 마당정도 크기의 광장, 정감이 넘쳐 주민들의 유일한 화전놀이 장소다. 5·18과 녹슨 기찻길, 광주로 푸성귀를 팔러가는 앵남역 보따리, 가물거리는 마음속 풍경이다  민족의 대 명절 설이 다가오고 있다. 자가용 시대에도 설이나 추석에는 대량 여객수송과 정시운전, 안전성에 장점을 갖춘 철도는 뉴스의 중심에 있다. 표를 구하기에서 시작되어 귀성까지 한바탕 전쟁이 일어난다. 그렇기에 철길 따라 사연도 많다. 60년대 말부터 70~80년대, 산업화가 한참 진행되던 시대를 회상하여 보면 호남의 눈물이 섞여있는 애환의 철길이다. 누이가 오기를 손꼽아 세었다는 어린 소년의 회상, 중학교를 갓 졸업하고 돈을 벌며 산업체 특별학급에서 주경야독 고등학교를 졸업했던 억척스런 삶을 살았던 누이들, 이제 부산 아지매로 현지인이 되어 버렸다. 사상공단과 국제상사 노동자 가운데 호남지역 여공들이 특히 많았다. 당시 목포와 부산을 오가는 유일한 보통 급행열차(151,152호)가 심야에 한번 운행되었는데 대명절에는 임시열차를 한차례 더 운행을 하였다. 콩나물시루 같은 만원열차에 짐짝처럼 실린 귀성객들은 열차가 지연되어도 불만한번 토로하지 않았다. 새벽2시경 심야에 열차가 도착하여 고흥으로 갈 버스가 없어 벌교역 대합실에서 동이 트기를 기다렸던 고흥방면 귀성객, 보성, 영산포 역 풍경도 마찬가지였다. ‘떠나보내는 이별의 아픔과 만남, 삶의 희망을 찾아 떠나는 애환과 그리움을 철길에 수놓은 조용필의 ‘대전블루스’는 당시 시대상황을 대변하였다. 한 많은 사연을 간직한 경전선과 호남권 기찻길이 확 바꾸어진다. 제5차 국토종합계획(2020~2040)에 의하면 인프라의 효율적 운영과 평화국토계획 일환으로 남해안 고속철도(부산~광주)와 동서내륙 철도확충(대구~함양~광주 KTX, 광주~함양~울산), 김천~광주 내륙철도 건설계획이 수립되어 전국을 2시간대로 연결하는 X자형 고속교통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부산~순천간은 복선 전철화가 완료 또는 공사 중이다. 하지만 호남권 광주송정~순천은 일제 강점기 건설된 이후 개량되지 않은 구간으로 남아있어 호남 차별의 대표사례다. 이 구간 총122.2㎞ 전철화에 드는 건설비는 1조7703억 원이 필요하고, 속도는 250㎞/h로, 건설이 완료되면 목포에서 부전까지 운행시간이 6시간 33분에서 2시간 24분으로, 광주는 2시간 36분으로 단축된다. 호남선 고속철도는 2015년 4월 2일 개통되었다. 미완의 광주~목포간 고속철도는 2023년을 목표로 부설 중에 있다. 경부선에 비하면 19년 늦어 정부와 정치권의 적극적인 관심과 예산지원이 필요하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산업화 도시를 만들고, 생계를 위한 민초들의 이농은 호남인구의 유출로 이어진다. 자료에 의하면 1925년 호남인구는 449만여명으로 영남348만여명, 충청265만 여명을 앞질렀다. 광복 후 1970년대까지 전국인구의 23%~20%를 유지한 호남인구가 1975년 18.56%, 2000년 11.36%로 뚝 떨어지더니 2013년에는 600여년 만에 충청인구가 호남 인구를 앞지른 현상까지 일어났다. 인프라 부족과 영남위주의 개발,독재정권이 자행한 호남 푸대접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어 놓은 결과다. 국가균형발전과 낙후된 지역 발전을 위하여 사람과 물류의 흐름을 빠르게 함은 철도건설의 또 하나의 목표다. 설날 차례 상에 올려놓을 민심의 풍향을, 철도건설의 시급성을 호남의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이를 실천에 옮기려는 유권자들의 의지와 표심의 뒷받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두고 지역감정에 빌어 붙어 대립과 분열, 갈등을 조장하고 이간질할 망령 바이러스가 극성을 부리지 않도록 경계를 하여야 한다.
    • 오피니언
    2020-01-21
  • 순천낙안읍성 초가지붕이엉 잇기
    순천낙안읍성은 보물이다.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성안의 초가마을로써 우리조상들의 얼과 혼이 담겨져 있는 곳이다. 특히 우리의 전통문화와 초가지붕이엉 잇기의 풍습은 다른 지구촌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 항상 부드럽고 따스함을 가까이 했던 우리조상들은 볏짚을 소중하게 여겼다. 짚을 이용한 생활도구를 비롯해 이엉에 이르기까지 그 사용처와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에서도 초가지붕의 이엉 잇기는 동네품앗이로 년 중 행사로 여겼다. 추수가 끝나면 볏 짚단을 일정한 장소에 쌓아두고 새끼를 꼬고, 날개를 엮는다. 사용할 만큼의 날개와 마름이 만들어지면 마을공동작업으로 초가이엉 잇기가 시작된다. 아마도 초가를 지니고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에서 제일 큰 일이 아니었을까 싶다. 지금은 시대의 변천으로 초가도 사라져가고 있다. 아니다. 초가와 전통문화가 한꺼번에 사라져가고 있는 것이다. 최첨단산업사회 아파트시대를 살아가면서 초가지붕이엉 잇기를 거론한다는 것은 촌스런 생각으로 간주할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의 전통문화인 초가지붕이엉 잇기는 간직해야 할 문화유산이기에 각인시키고 싶다. 다시 말해 초가지붕이엉 잇기는 우리의 전통문화와 조상들의 생활풍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서민문화를 방증하는 자료이기에 더욱 그렇다. 잠시, 우리의 초가이엉 잇기를 살펴보자. 초가지붕을 이는 방법에는 비늘이엉법과 사슬이엉법의 2가지가 있다고 한다. 비늘이엉은 그 모양이 물고기의 비늘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배집 등에 주로 사용된다. 짚의 뿌리 쪽을 한뼘 정도 밖으로 내어서 엮는 방법이며, 길게 엮은 날개 2장을 이엉꼬챙이로 뀌어 올린 다음 지붕의 앞뒤를 덮고 남은 부분으로 좌우 양쪽의 벽을 가릴 수 있다. 비늘이엉은 같은 양의 짚으로 엮어도 수냉이 쪽이 두껍고 튼튼하기 때문에 수명은 사슬이엉보다 오래간다. 그러나 지붕의 물매가 싸지 않으면 빗물이 잘 흐르지 않는 단점도 있다. 사슬이엉은 짚 뿌리 쪽이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덮는 방법이며, 볏 집을 일정한 양(量)으로 엮은 수십 장의 마름(둥글게 말아놓은 이엉)을 지붕 위로 올린 뒤에 멍석을 펴듯이 펴나가면서 덮는 방법이다. 이엉은 처마 끝 부분에만 부리 쪽이 밑으로 오도록 깔고 다음에는 이와 반대로 하여 덮어 나간다. 사슬이엉으로 이으면 지붕의 표면이 매끈하여 빗물이 잘 타고 내린다. 따라서 서부 지방에서 비늘 이엉을 사용한 집이 가끔 발견되며, 중남부 지방에서는 사슬이엉을 많이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늘이엉은 사슬이엉보다 2배 정도의 두께로 덮기 때문에 집안의 온기를 보존하는 데에 유리하고 수명도 오래가므로 추운 북부지방에서는 주로 비늘이엉으로 지붕을 덮는다.이엉을 얹고 용마름을 덮고 나면 이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매는데 이것을 고삿 맨다고 한다. 고삿 매기를 할 때 안으로 들어가는 고삿을 속고삿이라고 하고 밖으로 드러나는 고삿을 겉고삿이라고 부른다. 고삿 매기는 지방에 따라 조금씩 묶는 방법이 다르지만 보통 가로로는 여러 가닥이의 새끼를 매고, 세로로는 몇 가닥만 묶는 긴 네모꼴이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이다. 중남부 지방의 고삿 매기는 긴 네모꼴인 일자매기를 많이 사용하며, 서부 지방에서는 일자매기와 함께 마름모매기를 하며 사선매기를 한 지붕도 가끔씩 볼 수 있다. 또 바람이 심하게 부는 제주도나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는 새끼를 정방형으로 촘촘히 묶어야 한다. 따라서 전국적으로 가장 흔히 사용하는 고삿 매기의 순서는 지붕의 가로(긴쪽)로 여러 가닥의 새끼줄을 치는데 이것을 장매(누른새끼)라고 한다. 장매를 치고 나면 세로(짧은 쪽)로 3-5가닥의 자른 단매를 쳐서 장매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얽어 묶어야 한다. 이때 새끼끝 부분은 서까래(연목)에 단단히 잡아당겨 묶는다. 특히 영남 내륙지방이나 남서해안 일부지역에서는 처마 끝 이엉이 바람에 날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긴 눌림대(연침대)를 올리고 지붕을 뚫어 새끼를 끼워 넣어 서까래에 고정시킨다.이처럼 초가지붕이엉 잇기는 우리조상들의 지혜와 짚의 기능을 엿보이게 한다. 무엇보다도 서민들의 생활문화가 고스라니 담겨있기에 문화적 가치가 더욱 높다. 우리의 전통문화인 두레와 품앗이 등을 연상할 수 있고, 의식주와 연결된 서민생활을 엿볼 수 있다. 아무튼 전남 순천낙안읍성 초가이엉 잇기의 계승은 물론 전통문화사랑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다. 지방향토교육을 통해서라도 전통문화와 풍습 등 옛것의 소중함을 알아야 한다. 역사와 전통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야말로 문화인이다.  
    • 오피니언
    2020-01-20
  • 고향세 도입하여 지방소멸 막자
    고향세란 재정이 어려운 자치단체에 그 지역출신자 또는 인연이 있는 사람이 기부하는 금전을 말한다. 대신 국가에서는 기부금에 대하여 세액공제 등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고향세 납부를 유인하고 중앙과 지방 사이에 자연스런 재원 이전효과를 유도한다. 지방분권과 지방 인구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재정분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본 재정파탄의 위기를 겪었던 홋가이도 중부 우바라시는 고향세 덕분에 다시 미래를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고향세로 아이들의 교육을 지원하고 이를 토대로 농촌의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일본은 삼위일체 재정개혁 추진과정에서 빚어진 지역간의 재정격차를 완화할 목적으로 2008년부터 고향세를 도입하였다. 지자체에 소액을 기부하고 세액공제 혜택을 받고 기부자에게 답례품으로 농수산물을 선물하는 제도로 해마다 실적이 늘면서 열악한 지자체 재정을 늘리는 효자노릇을 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일본의 고향세를 벤치마킹해 재정 분권을 이룩해야 한다.새해에는 저출산 고령화,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지자체 소멸에 대응하기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  2017년 전북도의회 양성빈 의원이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78.3%가 고향세 도입에 찬성했고 적극 찬성이 19%, 찬성이 59.3%였다. 고향세가 도입되면 어디에 기부할 것이냐는 질문에 “태어나고 자란 곳”이 55%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이어 “부모의 고향” 12.3%와 “현 거주지” 26.6% 순 이었다. 기부금액으로는 6만~10만원이 33.8%로 가장 많았고, 11만~50만원이 17.2%로 뒤를 이었다.  지역 특산품을 답례품으로 제공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65.8%가 찬성의사를 나타냈다. 반대는 18.9%, 모르겠다 답변은 15.3% 였다. 고향세를 통한 지자체 수입 확보는 소멸 직전의 지방을 살리는 역할과 답례품으로 지역 농수축산물을 제공하면 농축업이 활력을 찾을 것이다. 고향세를 도입하기 위해서는 기부금품의 모집 사용에 관한 법률을 비롯 소득세법, 조세특례제한법, 지방세 특례제한법 등과 같은 관련세법들의 개정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부가 입법에 나서지 않으므로 공은 오로지 국회 몫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2016년 농림축산식품 해양수산위원장 황주홍 (전남 고흥, 보성, 장흥, 강진) 의원이 대표로 20명의 국회의원이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계류 중이어서 빨리 진행되지 않으면 이번 20대 마지막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렵게 되었다. 수도권(서울, 경기, 인천) 거주자가 소득세의 일부를 고향에 납부하도록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국정과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속히 진행하여 하루속히 고향세가 도입되어 지방 지자체의 인구소멸을 막아야 할 것이다.공공기관도 지자체에 이전하여 지방분권과 지자체의 재정건전을 이룩하여 균형있는 국토발전과 인구소멸로 인한 작은 지자체의 소멸을 막아야 한다.  
    • 오피니언
    2020-01-19
  •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국회 만들어야
    연동형 비례제는 정당 득표율보다 지역구 당선자가 적은 정당들에 비례대표로 의석을 보전해주는 제도다. 개정 선거법은 현행대로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의석을 구성하되 50% 연동률을 적용하도록 했다. 연동률이 적용되는 의석수(cap·캡)는 비례대표 47석 중 연동형 비례제가 적용되는 의석(30석)과 정당 득표율에 따라 배분되는 병립형 의석(17석)으로 나뉜다. 그러나 유권자 10명 중 9명은 이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의석수 셈법이 복잡하다 보니 관련 제도를 ‘전혀 모른다’고 답한 이들은 전체의 26.5%로 집계됐다. 이는 이해한다고 밝힌 응답자의 2배 수준이다. ‘조금 알지만 정확하지 않다’는 답변은 38.5%, ‘들어보긴 했다’고 밝힌 응답자는 20.6%로 각각 집계됐다. 특히 만 19~29세 청년들 2명 중 1명가량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아예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만 19~29세 응답자 중 ‘전혀 모른다’고 답한 이들이 전체의 47.3%에 육박했다. 학생 응답자 46.2%가 ‘전혀 모른다’는 입장으로 유일하게 40%대를 넘어섰다. 더구나 이번 총선에서 투표권이 부여되는 18살 유권자는 53만2000명 정도이다. 상당한 규모의 새 유권자가 유입되는 것이다. 모의투표 시행이든, 바뀐 선거제도의 적용 범위 또는 앞으로 시민으로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투표를 통해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한 교육 등 공교육의 커리큘럼으로 구성될 수 있을 만한 차원의 교육이 필요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또 정치권은 이를 청년정책 업그레이드의 계기로 삼길 바란다. 정치권은 정책과 인물, 선거제도 등 모든 면에서 청년이 주인되는 세상, ‘더 젊어진 정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선거법 개정으로 지역구 의석수와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법은 마무리 지었지만, 지역구 253곳을 시도별·지역구별 인구수에 따라 어떻게 쪼개고 붙일지 정하는 ‘선거구 획정’ 작업은 남은 과제다. 국회가 지역구 시도별 정수 등 선거구 획정 기준을 마련하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국회의원선거구획정위원회가 이를 바탕으로 선거구획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보내게 된다. 이후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획정안을 담은 선거법 개정안을 성안·심의하고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처리 절차를 밟는다. 앞서 선거법 개정안 처리에 공조했던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는 논의 과정에서 전북 김제·부안의 인구(13만9470명·총선 15개월 전 기준)를 인구 하한선으로 잡고 그 2배인 27만8940명을 상한선으로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기준대로라면 서울 강남과 경기 군포, 안산은 일부 선거구가 통합되고, 세종시와 강원 춘천, 전남 순천은 지역구가 늘어난다. 여야에선 경쟁적으로 현역 의원들의 불출마 선언이 이어지고 있다.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울 새 인물이 누구냐, 즉 국민의 눈높이와 시대정신을 충족하는 인물 싸움은 총선 판세와 구도 전체를 출렁이게 할 수 있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보수대통합’을 거듭 강조하는 가운데, 유승민계인 새보수당이 창당 깃발을 올렸다. 안철수 전 의원의 정계 복귀가 야권 재편에 미치는 영향의 크기는 총선전의 분수령이 될 수 있다. 바른미래당 당권파와 평화당, 대안신당의 ‘합종연횡’ 가능성도 열려있다.우리나라는 가장 짧은 시간 ‘경제적 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기적의 나라가 됐다. 또한 수평적 정권교체, 촛불명예혁명 등을 통해 아시아에서 가장 모범적인 정치 민주화를 이룬 나라다. 이러한 경험과 자산을 무기로 올해 4월 총선에서는 ‘촛불혁명2’를 반드시 성공시켜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국회를 만들어 대한민국 최고의 전성시대를 활짝 열어야 할 것이다. 왜곡되지 않게 우리들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양식있는 선량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이다. 자신은 길이가 더 길다고 또는 높이가 더 높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닌, 더 나아가 방향과 속도를 이야기하는 사람도 아니다. 진실은 사실보다 더 크다(The truth is more important than the facts). 오랜 시간속에서 사실을 헤치고 진실은 드러난다.  
    • 오피니언
    2020-01-16
  • 좋은 말은 무욕으로부터
    좋은 음식은 우리의 몸을 살린다. 반면에 나쁜 음식은 죽인다. 말 역시 마찬가지다. 좋은 말은 우리의 영혼을 구제해 준다. 주변인들에게까지도 행복을 피워준다. 하지만 나쁜 말은 우선 자기 자신부터 죽인다. 물론 주변 사람들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모로코 속담에서는 “험담은 험담하는 자, 험담의 대상자, 험담을 듣는 자를 죽인다”고 했다. 여기에다 “말이 만든 상처는 칼로 입은 상처보다 깊고 심하다”는 속담까지 만들어냈다. 그만큼 ‘말’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생각은 자기 머릿속에 있을 때 자기 것이다. 하지만 세치 혀를 통해 밖으로 나가는 순간부터는 그 말이 자기 자신을 조정한다. 때문에 심사숙고해서 말을 해야 할 것이다. “입은 말(馬)과 같다. 둘 다 자갈을 필요로 한다”는 독일 속담을 유념해가면서. 며칠 전, 수면내시경을 하던 중 검진대상자에게 험담을 했다는 보도. 참으로 어이가 없었다. 그 대상자는 수면내시경 중 불미스러운 일들이 종종 있다는 소리를 듣고서 검사실에 들어가는 순간 녹음 장치를 발동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검사를 마친 후, 들어본 결과는 기절초풍할 정도였다. 험담을 비롯한 온갖 잡소리를 다 했었기 때문에. 검진대상자에게 말이다. 그야말로 몰상식한 행동 아닌가. 명색이 의료인이라는 작자들이. 이런 부적인 일들이 우리 사회에 다반사라는 사실이 더더욱 슬프게 하고 있다. 요양원 등에서 생활하는 분들은 대부분 치매 등을 앓고 있는 나이 드신 분들이다. 이들에 대한 인간적인 관리도 부실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식사를 못하는 경우까지 있다고 한다. 식사를 거부하면 최대한 달래서 먹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도 그냥 놔둬버리기 때문에 혼수상태로 이러지는 경우까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 일에 종사하는 직업인들은 이 일을 하기에 정당한 급여를 받는 것 아닌가. 때문에 근무시간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한 보살핌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그런데 요양보호 대상자의 경우에는 가족까지도 패륜행위를 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이 더욱 경악케 한다. 돈.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 건강을 잃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유태인 격언에 “큰 부자에게는 아들은 없다. 다만 상속인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 의미심장하지 않는가. “어린 시절에 당신의 아이들을 훈련시켜라. 그러면 당신은 노인 시절에 그들로부터 훈련을 받지 않을 것이다”라는 유태인 속담과 함께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렇다. 돈은 필요하다. 때문에 벌 수 있는 한 벌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돈의 노예가 돼서는 안 된다. 노예가 되는 순간부터 자신의 삶이 그에 비례해 소멸되어가기 때문이다. 자식마저도 제대로 인성교육을 시키지 못해 결국 그 자식에게 먹혀가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러는 순간부터 돈은 오히려 자신의 목을 옥죄는 역할로 변해버릴 수도 있다. ‘내 자식은 안 그런다’ 는 부모들의 환상. 결국에는 ‘내 자식도 그런다’는 것을 깨닫게 될 무렵부터는 아무것도 스스로 행할 수 없다는 것도 함께 인지하게 된다는 사실. 이게 요즘 사람들의 자화상이다. 참으로 가슴 아프지 않는가. 해결책은 간단하다. 욕심을 버리면 된다. 그러면 자녀에 대한 지나친 기대도 사라진다. 이는 곧 언어의 순화로 이어진다. 이런 정적인 말들이 순기능을 해서 자녀는 물론 주변인들도 자기편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자기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해 가면서.
    • 오피니언
    2020-01-15
  • 백곡 김득신(金得臣)과 억만재(億萬齋)
    백곡 김득신(金得臣)과 억만재(億萬齋)백곡 김득신(金得臣)은 조선조 17세기의 사람이다. 김득신(1604~ 1684)의 자는 자공(子公), 호는 백곡(栢谷)·귀석산인(龜石山人)이다. 충무공 김시민(金時敏)의 손자이며, 경상감사 김치(金緻)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사천목씨로 목첨(睦詹)의 따님이고, 아내는 경주김씨이다.김득신(金得臣)이 태어날 때, 그의 아버지 김치(金緻)는 길을 가다가 노자(老子)를 만난 꿈을 꾸었다. 그런 연유로 아이 때의 이름을 노자의 자(字)인 담(聃)을 넣어 몽담(夢聃)으로 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신몽을 꾸고 태어난 아이답지 않게 머리가 노둔하였다.10살에 비로소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흔히 읽던 십구사략의 첫 단락은 26자에 불과했지만 사흘을 배우고도 외우지를 못했다.부제학과 경상감사를 역임한 백곡의 부친 김치는 아들의 노둔함을 질책하기는커녕 “학문의 성취가 늦는다고 성취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저 읽고 또 읽으면 반드시 큰 문장가가 될 것이다”하면서 오히려 격려하고 희망을 주었다. 백곡의 노둔함은 당대의 우스개로 회자되곤 했다. 수도 없이 읽은 ‘백이편’ 첫장에 나오는 당시(唐詩)조차 기억하지 못해, 말 위에서 떠오른 ‘마상봉한식’(馬上逢寒食, 말 위에서 한식을 맞았네)의 대구를 찾지 못해 수염을 배배 꼬는 모습을 보고, 하인이 ‘도중송모춘’(途中送暮春, 길 위에서 다시 봄을 보내네)이라고 일러 주었다고 한다. 하인에게서 대구(對句)를 들은 그는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려 하인더러 말에 타라고 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내가 말구종을 해야겠으니 고삐는 내게 주라”고 했다. 맡아놓은 꼴찌였지만, 질투도 시기도 하지 않았다. 배울 게 있으면 누구나 스승이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유명한 작품들을 반복하여 읽으며 외웠다. 책을 열심히 읽었기에 주위 사람들이 그를 간서치(看書癡)라고 불렀다. 간서치는 책벌레라는 말이다. 요새 말로 독서마니아·독서광이었다. 책벌레 김득신의 책읽기에 대한 일화가 적잖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백곡이 혼례를 치르던 날의 이야기다. 백곡이 책을 좋아한다는 말을 들은 장모는 소문을 확인하기 위해 신방에 있는 책을 모두 치웠다. 아니나 다를까 첫날밤 신랑은 신부를 제쳐두고 방을 뒤지며 책을 찾았다. 경대 밑에서 발견한 것은 책력(冊曆)이었는데, 밤새도록 읽고 또 읽은 백곡은 날이 새자 그만 두었다고 한다.80이 넘도록 장수한 백곡은 딸이 먼저 세상을 떠났는데, 분주한 장례 행렬을 따라가면서도 그가 손에서 놓지 않고 보았던 글이 바로 ‘백이전’이었다. 또 부인의 상중에 일가친척들이 ‘애고, 애고’ 곡을 하는데, 그는 곡소리에 맞춰 ‘백이전’의 구절을 읽었다고 한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다.백곡은 59살에야 대과에 가까스로 급제했다. 하지만 백곡은 급제하자마자 괴산 달래강변 개항산 언덕 위에 취묵당이란 집을 짓기 시작한다. 그는 말하기를 “나는 태생이 노둔해서 다른 사람보다 배나 더 읽었다. ‘사기’· ‘한서’와 한유와 유종원의 글은 모두 베껴서 만여 번이나 읽었다”고 했다. 그중에서 ‘백이전’을 가장 좋아해 1억 1만 3000번이나 읽고 나서, 취묵당 안에 있는 자기 서재 이름을 ‘억만재(億萬齋)’라고 불렀고, 자신이 읽은 책의 목록과 횟수를 기록했던 ‘독수기’를 남겼는데 ‘독수기’에 보면 만 번 이상 읽는 책의 목록이 36편이나 실려 있다. 천 번 이상 읽는 것은 기록에  올리지도 않았다고 한다.백곡은 17세기 황폐한 조선의 시단(詩壇)을 당시(唐詩)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조선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인 택당 이식(李植)은 그의 시를 ‘당대의 으뜸’이라고 평가했다. 충북 증평군 율리에 있는 그의 무덤 앞 묘비엔 이현석이 지은 묘갈명과 서문이 새겨져 있다. 서문엔 백곡의 이런 말이 인용돼 있다. “재주가 남만 같지 못하다 해서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같이 노둔한 사람도 없지마는 끝내는 역시 이룸이 있었으니, 이것은 부지런히 힘쓰는 데에 달렸을 뿐이다. 만약 재주와 기량이 넓지 못하더라도 하나하나에 정성을 다해 공을 이룬다면, 재주가 많으면서 이룸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고.‘백이전’을 1억 1만3000번이나 읽고 자기 서재를 억만재(億萬齋)라고 현판을 써 붙인 백곡 김득신의 은근과 끈기 있는 노력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본받을 만하다. 노력은 성공의 어머니란 격언이 있듯이, 백곡은 그 타고난 노둔함을 뼈를 깎는 노력으로 이겨냈다. 그리하여 온전하게 자기의 길을 갈 수 있었다. 참으로 갸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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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4
  • 정과 사랑이 빛을 잃을때
    정과 사랑은 감동의 단어다. 이 세상에서 정과 사랑보다 더 좋은 감동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낱말은 없을 것이다. 사람은 정과 사랑 으로 아름답고 온전한 인격을 갖춘다고 한다. 또 그 정과 사랑으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며, 이웃과 더불어 화목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정과 사랑이 충만할 때 인생의 어려움과 고통을 견딜 수 있고, 정과 사랑의 이름으로 목숨까지도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정과 사랑이 빛을 잃어가고 있을 때, 우리사회는 메마르고 병들어 가지 않을까 싶다. 과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심만이 팽배한 사회에서 정과 사랑이라는 단어가 성립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던져 본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연말연시를 접하면서 “헤어짐과 만남” 그리고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단어들을 대할 것이다. 사회 곳곳 에서 꿈틀거리는 송년회와 신년회 그리고 예식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표정에서 정과 사랑, 그 진지함을 엿 볼 수 있다. 끈끈하게 맺어진 정과 사랑, 그 끄나풀이 나풀거릴 때 우리의 삶도 빛을 발하지 않을까 싶다. 한해를 보내는 아쉬움과 신년을 맞이하는 반가움에서 정과 사랑은 예민하다. 보내고 맞이하는 느낌은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다수 의 사람들은 지난해를 거울삼아 신년의 새로운 희망을 설계하고 새로운 정과 사랑에 빠질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게다가 사람관계 에서도 헤어짐과 만남을 통해 정과 사랑의 이동경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지난주였다.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만난 싸인 회원들의 마음은 착잡했다. 9년간의 암 투병 끝에 생을 마감한 회원을 보내야 만 했다. 그와 맺었던 지난날의 정과 사랑이 끈적끈적 달라붙었다. 그러나 어쩌랴! 인명은 재천인 것을, 삶과 죽음의 선상에서 정과 사랑은 필수적으로 따라 붙는다. 그것은 그동안에 살아왔던 흔적 들이 정과 사랑으로 고스라니 남아있기 때문이다. 지난세월을 상기하는 추억담이 펼쳐지는가하면 고인의 이야기로 시간이 흘렀다. 먹먹한 가슴을 뒤로하고 정과 사랑의 빛을 생각해 본다. 사람은 정에 반응하는 육신과 사랑에 반응하는 영혼으로 한 몸을 이루고 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과 사랑을 같은 뜻으로 해석 하고 있는 듯하다. 정에 기인한 육신은 사라지더라도 사랑에 기인한 영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따라서 효도는 정으로 양육하는 것 이 아니라 사랑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현 사회흐름은 심상치 않다. 정과 사랑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첨단 문명이 발달할수록 어느 한쪽을 잃어간다고 한 다. 현 사회는 자기중심적 물정으로 물질적인 욕심이 불어나고 있는 반면 정신적인숭배와 효심적인 사랑은 기울고 있다는 방증이 다. 순간 많은 독자들에게 감동을 준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를 담은 “국화꽃 향기”라는 영화 한편을 생각했다. 암이라는 죽 음의 그림자와 아기라는 생명의 씨앗이 공존함을 그렸다. 단순한 사랑이야기에 갇히지 않고, 숭고한 사랑을 통해 인간의 본질적인 영역에 대한 질문으로 끌어올린 작품이다. 새로운 생명과 죽음을 잉태한 고뇌의 작품이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희생의 갈림길에 서 그녀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아픔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 영혼을 말끔히 씻어주는 순백의 사랑 이야기다. 어쩌면 이웃과 함께 하는 사랑, 희생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은 시들어 가는지도 모른다. 고귀하고 성스러운 사랑을 더할 때, 순 수한 정과 사랑이 빛을 발할 때, 우리사회는 더 큰 보람과 행복을 느끼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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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1-13
  • 2020 세계 간호사의 해를 맞이하여
    현대는 날로 인간의 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건강관리와 웰빙(well-being)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보편적 건강보장(Universal Health Coverage)'은 모든 사람들이 소외받지 않고 필수 보건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보편적 건강보장 실현에 핵심 역할을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간호사이다. 그래서 개인과 가족, 지역사회를 대상으로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유지 및 증진을 돕는 활동을 수행하는 의료인인 간호사의 역할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다.  이러한 간호사의 역할을 인정하고 격려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가 현대 간호학의 창시자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 (Florence Nightingale)’ 탄생 200주년인 2020년을 세계간호사의 해로 정했다.  특히 전남 고흥 소록도에서 오스트리아 간호사인 마리안느와 마가렛이 한센병 환자들을 위하여 43년간을 숭고한 헌신과 희생을 하였다는 감동적인 이야기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이러한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간호협회에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노벨평화상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100만인 서명을 달성하였다고 한다. 지역사회, 시민단체 그리고 한국 종교계가 힘을 모아서 두 간호사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하려는 이유를 두 간호사의 행적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다. 위 두 간호사는 1962년 20대의 꽃다운 나이에 봉사자가 필요하다는 요청 소식을 듣고 직접 자원해서 편견과 비탄의 섬인 소록도에 들어왔다. 가족과 의료진한테도 외면당한 한센인을 위해 두 간호사는 평소에 마스크와 장갑 낀 전문의들도 꺼리는 환자들을 맨손으로 어루만지며 치료해 주었다. 그들은 환자들이 말리는 데도 짓물러 진물이 나고 썩어들어 문드러지진 환부를 미소를 지으며 약을 꼼꼼히 발라주었다. 남은 시간엔 죽을 쑤고 과자도 구워 들고 마을을 돌며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리고 매년 조국을 방문해 모금활동을 펴서 의약품을 구했고, 폐결핵센터와 정신병동을 세우며 한센병자 아닌 아이들을 위한 기숙사까지도 건립했다. 이렇게 소록도에서 한센인을 위해 자원 봉사하다가 2005년 11월 22일,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져 소록도에 불편을 주기 싫어서 떠난다는 편지 두 장만 남기고 조용히 출국하였다. 이후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의 눈물겹도록 감동적인 활동상은 2017년에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 도서 「소록도의 마리안느와 마가렛」 등을 통해 새로이 조명됐다. 그 이후 2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마리안느와 마가렛 간호사를 기억하는 이들이 점점 줄어들었는데, 다시 녹동고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500통의 편지를 써서 두 간호사의 노벨평화상 수상을 염원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간호사들도 한때는 서독으로 파견되어 환자 몸을 씻어주는 일 등의 병수발까지 도맡아 하는 특유의 성실함을 발휘해 독일인들에게 인정을 받기도 하였다. 이러한 행위가 개인과 가족 더 나아가서는 한국경제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었다.  백의의 천사라고 불리는 간호사들이 몸소 보여준 희생과 헌신이 물질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는 우리의 차가운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불멸의 희망은 볼 수 있는 것이 되어야 한다. 간호사는 환자 앞에 있어야 한다.”라고 말한 마리안느 스퇴거의 말이 그동안 환자들을 위해 손과 발의 역할을 했던 자신의 행동을 대변하고 있다.  요사이 환자들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은 간호사들이 매우 힘들다는 뉴스가 들려오고 있다. 환자들도 자신을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는 간호사에게 질타보다는 위로와 감사의 말을 건네면, 간호사들도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더욱 잘 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2020 세계 간호사의 해를 맞이하여, 국민 건강을 위하여 노고가 많은 간호사에게 진심으로 감사와 존경을 보낸다.
    • 오피니언
    2020-01-12
  • 과잉소비와 미니멀리즘 사이에서
      얼마 전에 새로운 일자리를 따라 이사를 하게 되었다. 임시 거주지인지라 살림은 최소화하며 살 각오였다. 그런데 먼저 살던 사람이 살림살이를 버리고 갈 거라 말 해 주었다. 책상 식탁 냉장고 에어컨 티비 소파 살펴보니 아직 썽썽한데다 필요한 것들이라 그것들을 그대로 쓰겠다 부탁해서 지금까지 잘 쓰고 있다. 그 이후에도 새 아파트단지로 이사 가는 사람들이 살림살이를 버리고 가는 집들이 더러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속이 쓰렸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저 멀쩡한 가구들이 버려지는구나, 요즘 사람들 마인드가 저런가? 후손들과 환경오염을 생각하면 미니멀라이프(최소한의 물건만 소유하며 내면에 집중하는 삶)적 삶도 있는데…’이처럼 국민들 의식은 행동을 낳고 그 행동은 사회적으로 영향을 미쳐 사회적 자산 가치로 전환되는 순환의 연결 고리가 된다고 한다. 하여 불공정, 불신, 환경오염 등 그릇된 의식수준이나 가치 규범 등은 사회적 자산으로서 경제를 어렵게 몰고 갈 수도 있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 환경교육을 받았으면 무엇 하겠는가? 의식수준 미달로 실행에 옮기지 않는다면….지난 시절 미래는 늘 꿈이 있는 희망적 삶이었다. 현실이 다소 어렵더라도 참고 견디며 열심히 일하다 보면 삶이 좋아 질거라는 기대로 살아갈 힘을 얻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래는 불확실한 모습으로 우리 사회를 암울함 속으로 끌고 가기 시작했다. 성장을 기본으로 설계된 세계경제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인한 공급 과잉과 인구 감소에 따른 수요 축소로 인해 전 세계 경제성장률이 동반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나라 역시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음을 알리는 GDP와는 별개로 언론에 의하면 경제는 어렵고 청년실업이 난제이며 세계 제일의 부채국가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한국은 OECD 국가 중 양극화와 사회갈등이 심한 나라 중 하나라고 보도한다. 홍성국 혜안리서치 대표는 각종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경제의 이러한 문제점에 대해 인구감소로 야기되는 수요 축소로 인한 수축사회로의 진입을 언급하였다. 그 이유로는 역사상 최고수준의 부채와 양극화, 인구 감소, 숙련된 전문가와의 노동력 과다 및 자동화로 인한 공급과잉과 수요축소의 상시화를 꼽았다. 특히 “한국의 산업구조는 소재(철강, 화학, 정유), 산업재(기계, 조선, 건설, 운송), 자동차, IT의 비중이 과도하다”고 말하며, “지금 이 산업들은 세계적 차원에서 모두 공급과잉으로, 중국의 투자와 기술 진보로 구조적인 어려움에 부닥쳐 있다”라고 진단했다. 홍대표는 이러한 한국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자양분으로 사회적 자본을 강조했다. 사회적 자본이란 공동 이익을 위한 사회적 조직의 특성으로 개인을 연결해 주는 관계와 규범을 말하는데 신뢰, 친사회적 규범, 협력적 네트워크, 포용성장, 공정사회, 미니멀리즘 등의 확충 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미니멀리즘 한가지만을 놓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 자본으로써 한국경제의 안정적 성장의 자양분이 되는지 살펴보자.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관념은 자본주의가 만든 무서운 가치관일 수 있다. 이는 소비를 해야 돈이 돌므로 인간을 물건의 노예로 만들려는 자본주의의 음모로 보여진다. 자본주의는 환경오염, 생태계파괴, 과잉생산 등의 폐해보다 오직 소비만을 부추김으로 팽창사회를 만드는데 심혈을 기울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반하여 미니멀리즘은 꼭 필요한 물건만 간소하게, 조금 불편한 것은 감내하며 정신의 공간을 넓히자는 취지라고 한다. 홍성국 대표가 수축사회의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는 요인의 하나로 미니멀리즘을 강조한 것은 그 동안 물질의 팽창이 가져온 정신의 수축이 역 전환될 수 있는 기회로 본 것이 아닐까? 우선 당장 소비가 줄어들면 경제성장의 수치가 낮을지 모르나 상대적으로 환경회복 및 과잉소비 자제로 자원절약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의 정신은 물질에서 얻는 행복 대신 소박하고 단순한 삶을 통해 얻어지는 정신적 행복감을 찾고 몰두하며 길들여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법정스님처럼 극단적 미니멀리즘을 추구하자는 것은 아니다. 허탈함과 물욕을 채우기 위한 사치스런 과잉소비를 지양하자는 말이다. 필자 역시 한때는 오버코트가 여러 개였던 과잉소비자였다.정치인들이 치적을 위해 내세우는 경제 성장률의 숫자는 어쩌면 우리 국민의 본질적 행복과 거의 무관한 허구인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가 자본주의식 셈법으로 국가의 경제 상태를 GDP로 나타내며 선진국 기준으로 삼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물질의 풍요, 그에 걸 맞는 국민들의 삶의 태도와 수준 높은 의식, 규범, 사회적 공정성, 정의, 소득 분배의 균형지수 등도 함께 올라가야 진정한 선진국 대열에 설 수가 있다고 경제학자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사회적 자본의 확충이 경제의 어려움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의 하나라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가지고 조금만 그 쪽으로 방향을 틀어도 수축사회로 진입한 인류 문명사회의 열기를 진정시키는 파란불 신호등이 되지 않을까 한다. 미니멀리즘은 지나친 물질숭배주의에서 벗어나 정신의 풍요와 만족을 가져오며 상호 신뢰와 공정성과 협동성, 친사회적 마인드까지 이끌어 내 한국경제를 버블없는 성장으로 이끄는 직진 신호가 될 것이라 믿고 싶다. 과잉소비와 미니멀리즘 사이에서 한번쯤 고민하는 새해가 되길 소망한다.           
    • 오피니언
    2020-01-09
  • 퀘렌시아로 행복을
      벌써 지난해가 되어버린 기해년 12월24일 저녁 모처에서 회의를 마치고 근처 식당에 갔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남자노인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공은 완전히 풀려있고 턱은 축 늘어진 체로. ‘어디서 봤을까’ 아무리 생각을 거듭해 봐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며칠이 지난 다음에야 생각났다. 광주시내 모 대학병원에서 과장까지 하고 개업한 의사였다. 한때는 아주 잘 나가는 부류 중 한 사람이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심히 충격적이었다. 치매환자라는 것 때문에. 그렇게도 영특하고 명의로 이름을 날렸던 사람이 몰라볼 정도로 변형되어 있었던 것이다. 인간사 모를 일이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의식이 있을 때 올바르게 살아야 할 것이다. “‘돈’은 건강할 때는 자산이라 하지만 아픈 뒤에는 유산이라 한다”는 그 누군가의 말. “전반전은 나보다 높은 코치의 말에 따르지만 후반전은 나의 명줄을 잡고 있는 의사의 명령에 따른다”는 말과 함께 마음 깊이 새기면서 살아가야 하리라. 그런데 일부 정치인들을 비롯한 험담을 좋아하는 엽전들은 이를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아무리 주변인을 험담해도 자신의 격이 올라가지 않는데도. 오히려 험담의 대상자를 올려주고 자신은 추락해 갈 뿐인데도 말이다. 오물덩어리 삶을 줄곧 살아온 것을 주변사람들이 잘 알기에 더더욱 그렇다. 하기야 이를 인지할 정도라면 추한 언행들을 일삼겠는가. 그러니까 엽전들이지. 스페인어에 퀘렌시아(Querencia)라는 말이 있다. 투우 경기장에서 투우가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르는 장소라는 뜻이다. 요즘에는 ‘제3의 공간(The third place)’이라는 말로도 쓰인다. ‘나만의 안식처’란 뜻이다. 행복과 불행 자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흘러가는 시간들. ‘인간’이라기보다는 한 쪼가리의 기계부품이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게 되면 어떨까. 무척 공허하지 않을까.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어루만지면서 삶을 영위해 가야 할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제3의 공간’이 아닐까. 비교적 잘 살고 있는 사람이나 집단들은 대부분 제3의 공간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져봄이 현명하리라. 나만의 또는 우리의 파라다이스를 위해. 미국의 사회학자 레이 올든버그(Ray Oldenburg)도 이를 그의 저서 ‘정말 좋은 공간’에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에너지 충전을 위한 별도의 장소라 했다. 제3의 공간이란 게 특별한 것은 아니다. 자신이 느끼기에 편한 곳이면 된다. 언제든지 갈 수 있고, 떠날 수도 있어야 한다. 구차한 격식도 없어야 한다. 물론 직분의 높낮이도. 이런 공간은 미술관·극장·공연장 등 각종 문화관은 물론 커피숍, 술집, 갈대밭, 숲속, 산, 바닷가, 낚시터, 외딴 섬 일수도 있다. 본인이 마음껏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누구나 느껴봤을 것이다. 여행의 진한 향기를. 삶터의 경계선을 지나면서부터 자유의 미를 눈과 마음에 담았던 추억 한 두 토막에 스민. 갑자기 떠오른다. 북풍한설 휘몰아치던 춥디추운 어느 겨울날. 칼바람에 서로 몸을 부대끼며 상대방을 지켜주던 갈대들의 볼 빨갛게 물들어가는 사랑의 노래 소리가. 달빛서린 잔잔한 호수 물결위로 은은하게 피어오르던 베토벤의 월광소나타 선율도. 이런 추억에 젖어들 수 있는 마음이라는 공간자체도 역시 퀘렌시아가 아닐까. 그렇다. 마음껏 젖어보자. 그리고 행복하게 웃자. 추한 엽전들은 아귀 세상에서 살라고 놔두고.  
    • 오피니언
    2020-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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